소설리스트

행운 Luck-67화 (67/156)

0067 / 0156 ----------------------------------------------

제3권  다크 실버문

베다 후작의 말에 하벨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브린츠 왕자와 베다 후작을 차례대로 바라보고 대답했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렇게 될 것을 예상하고는 나름대로 충분하게 대비를 했습니다.”

“하벨 백작, 이렇게 될 줄 알고 대비했다니요?”

“잘 훈련된 20만의 병력이라면 되지 않을까요?”

“으음… 역시 하벨 백작이군.”

“허억… 어떻게 이런 작은 영지에서 20만이나 수련을 시켰단 말이오? 도저히 믿기 힘들군요.”

브린츠 왕자와 베다 후작은 깜짝 놀랐다.

“브린츠 왕자님, 베다 후작님, 지금 이곳은 스너비 영지를 벗어난 지역이니 일단 스너비 영지로 들어가시죠.”

“아차… 그렇구려.”

“2왕자인 도이란 왕자님이 이제 왕위에 오르게 되었으니 가까운 시일에 대대적인 병사파병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벨 백작은 형님이 이곳 스너비 영지를 노릴 것으로 생각합니까?”

“그렇습니다, 왕자님. 틀림없이 그럴 것입니다.”

“으음… 하긴 스너비 영지가 왕국에서 가장 부유한 영지이니 노릴 만하군요.”

“명분이야 만들기 나름입니다. 특히 브린츠 왕자님께서 스너비로 피했으니 국왕과 왕세자를 독살했다는 소문을 퍼뜨린 뒤 스너비 영지로 공격해올 것입니다.”

“으음… 국왕파가 무너진 이상, 이제 중도파와 귀족파가 득세하는 것은 기정사실이니 큰일입니다.”

걱정으로 굳은 표정의 브린츠 왕자와 베다 후작의 얼굴을 쳐다보면서도 하벨은 속마음을 차마 말하지 못했다.

‘후후… 브린츠 왕자와 베다 후작은 알까? 얼마 후에는 아비린 왕국이 분열되어 3왕국이 된다는 걸…….’

꽝!

테이블에 가해진 충격에 찻잔이 흔들려 찻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화가 치민 귀족파의 수장인 헤스페 공작은 좌우에 앉아 있는 귀족들을 노려보았다.

“2천 명이나 되는 병력을 동원하고도 겨우 4백여 명을 처리하지 못했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 말이야! 말들 해보게!”

“…….”

20여 명의 귀족파 귀족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런 말도 못했다. 그리고 뉴얼 백작이 말문을 열었다.

“공작각하, 제가 듣기로는 브린츠 왕자와 베다 후작과 그 일행을 거의 다 잡을 뻔했는데 운이 없게도 그때 마침 하벨 백작의 영지병들이 대거 나타나 실패했다고 합니다.”

“브린츠 왕자가 하벨 백작의 스너비 영지로 향한다는 건 빤한 사실인데 그 길목만 잘 지켰던들 일이 이렇게는 안 되었을 것 아닌가!”

“예, 물론 길목마다 병력을 배치해 막았지만 워낙 죽기 살기로 도망가는지라 막대한 피해만 입은 채 돌파 당했습니다.”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이렇게 놓쳐버리다니… 젠장.”

“공작각하, 이번 기회에 아예 스너비 영지를 도모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뉴얼 백작의 말에 공작은 의아한 표정이었다.

“스너비 영지를 말인가? 하지만 하벨 백작은 그리 호락호락한 자가 아니야.”

“그렇습니다만 스너비 영지에서 가장 발달된 플로렌스는 아주 매력적인 곳입니다. 포에니 공작의 병사들에게 그곳을 약탈할 수 있게 해준다면서 선봉으로 내세운다면 우리 귀족파의 피해는 최소가 될 것이니 아주 좋은 계획인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으음… 도이란 2왕자님께서 왕위에 오른다고 해도 브린츠 왕자가 살아 있는 한 내전은 끝이 없을 테니 좋은 작전인 것 같군. 좋아, 뉴얼 백작이 책임지고 협상해보도록.”

“예, 공작각하.”

“국왕파를 거의 다 제거했으니 자네들은 신속하게 도이란 왕자님을 왕위에 올릴 대관식 준비를 서두르도록. 그런 다음에 그 여세를 몰아 연합군을 동원해 스너비 영지로 피한 브린츠 왕자를 잡으면 끝이다. 알겠는가?”

“예, 공작각하!”

헤스페 공작의 얼굴이 부드럽게 풀어졌다.

모두가 돌아간 후, 헤스페 공작은 창밖을 내려다보면서 귀족들의 마차가 모두 떠나가는 걸 확인하더니 중얼거렸다.

“쵸파, 거기 있나?”

“예, 공작각하.”

스스슷.

헤스페 공작의 등 뒤 5미터 지점에 검은 옷을 입고 복면까지 한 자가 한쪽 무릎을 꿇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쵸파, 너는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포에니 공작 저택으로 숨어들어 공작을 감시해라. 가랏.”

“존명.”

스스스슷.

쵸파라는 자는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헤스페 공작은 그제야 안심이 된다는 듯 입술 한쪽을 치켜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도이란 왕자님께서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는 누구도 믿을 수 없어. 특히 포에니 공작을 감시해야 안심이 돼. 크크크… 이 시기만 잘 넘긴다면 앞으로는 나 헤스페가 이 아비린 왕국을 다스리게 될 거야.”

다각다각.

마차 10대가 한꺼번에 움직여도 될 정도로 넓은 대로를 5천 명이나 되는 무리가 이동 중이었다.

스너비 제3기병대의 중간 부분에서 이동 중인 하벨은 자신의 옆에 있는 브린츠 왕자와 베다 후작를 쳐다보았다.

“왕자님,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아… 아닙니다, 백작. 그냥 심란해서…….”

“곧 영주성에 당도하니까 조금만 더 참으십시오.”

“음… 모처럼 스너비 영지에 오니 그간 많이 발전되었구려.”

“그, 그렇습니까?”

“역시 하벨 백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대단해요.”

“감사합니다, 왕자님. 그런데 베다 후작님께서는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십니까?”

“아… 미안하오. 잠시 생각할 게 있어서…….”

“헤스페 공작을 생각하는 겁니까?”

베다 후작은 눈이 커지면서 놀랐다.

“그… 그걸 어떻게?”

“지금은 국왕파의 세력이 약해졌지만 절망할 정도는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도이란 왕자님이 이제 왕위에 오를 것이고, 그럼 헤스페 공작군과 포에니 공작군이 연합한 엄청난 대군이 밀려들 텐데 왜 걱정이 안 되겠소.”

베다 후작의 걱정스러운 말에도 하벨은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들이 보유한 병사들을 동원해도 30만 정도일 겁니다. 그에 반해 나의 스너비 영지병들은 현재 20만이지만 그들이 이곳에 도착할 때 즈음에는 적어도 23만은 될 것이니 싸워볼 만합니다.”

“그래도 숫자적으로 7만 정도가 차이가 나는데 괜찮겠소?”

“연합군은 급조한 병력이 대부분이라 실제 싸울 수 있는 전력은 불과 15만도 안 됩니다. 그 나머지 15만은 농노병들이니 훈련도 제대로 안 되어 있으니까 무력에서는 우리의 상대가 안 됩니다. 그리고…….”

하벨의 말에 베다 후작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리고요?”

“아직은 공개하고 있지는 않지만 아주 놀라실 만한 신무기를 이미 개발해 배치해두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하하… 역시 하벨 백작이구려. 언제 그런 것까지 다 준비했습니까?”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것입니다.”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것이다? 심오한 말이군요.”

그러는 사이 영주성이 보였다.

경사진 언덕 위에 세워진 거대한 성과 그 앞에 세워진 성벽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대단한 위용을 느낄 수 있었다.

“왕자님, 저기 성이 보입니다.”

“아… 왕성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것 같군요, 하벨 백작.”

“그렇습니까? 성에 도착하면 먼저 목욕부터 하신 후에 맛있는 요리도 드시면서 오늘은 푹 쉬십시오.”

“고맙소, 하벨 백작.”

하벨과 브린츠 왕자 일행이 영주성 앞에 도착하자 성문 위에서 내려다보던 병사가 소리쳤다.

“영주님께서 돌아오셨다! 성문을 내려라!”

“성문을 내려라!”

그그그긍.

영주성의 거대한 성문이 쇳소리를 내면서 스르르 내려왔다.

기병들이 먼저 성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고 곧 그들의 시야에 영주성의 커다란 광장이 나타났다.

성으로 들어간 브린츠 왕자와 베다 후작은 목욕을 끝마치고는 하벨이 마련한 소연회실로 향했다.

하벨과 올리비에가 그들을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브린츠 왕자님, 베다 후작님.”

“오랜만입니다, 백작부인.”

“반갑습니다, 백작부인.”

“이미 소식을 들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왕자님께서 심려가 크시겠어요.”

올리비에의 말에 브린츠 왕자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미 일어난 일이니 어쩔 수 없지요.”

“왕자님께서는 앞으로의 일이나마 잘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십니다.”

“백작께서 잘 도와드릴 것이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말씀만이라도 고맙습니다, 백작부인.”

“정성으로 차린 요리가 식기 전에 들어보십시오.”

“고맙습니다, 백작부인.”

브린츠 왕자와 베다 후작은 의자에 앉았다.

하지만 브린츠 왕자는 요리를 보고서도 선뜻 포크를 집어 들지 않았다.

“왕자님, 너무 걱정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우선 요리를 드시면서 잠시 잊으십시오.”

“고맙소, 하벨 백작.”

브린츠 왕자가 포크를 들자 베다 후작도 포크를 들어 요리를 먹기 시작했다. 잠시 그들을 바라보던 하벨이 와인을 집어 들었다.

“왕자님, 와인도 곁들여보십시오.”

“아… 고맙소이다, 백작.”

그가 목이 탄 듯 와인을 단숨에 마시자 하벨은 와인을 더 권했다.

“왕자님, 한 잔 더 하십시오.”

그렇게 브린츠 왕자가 술에 취해 테이블에 머리를 박자 올리비에가 하인들을 동원해 왕자를 옮기도록 하며 자연스럽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이윽고 하벨은 베다 후작과 술을 더 나누었다. 베다 후작의 얼굴도 그리 밝지 않은 것을 보니 그도 마음고생이 많았던 것 같았다.

“후작님, 힘을 내셔야 합니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국왕폐하와 황태자께서는 이미 돌아가셨고, 그나마 브린츠 왕자님이 계시지만 사실상 도이란 2왕자님이 왕위에 오르실 것 같소. 또한 헤스페 공작이 완전하게 정권을 잡을 것 같은데 어찌 걱정이 안 되겠소.”

“그건 그렇지만 이곳 스너비 영지를 그리 쉽게는 도모하지 못할 겁니다.”

“아니오. 그들은 우리를 반역자라 할 것이고 막대한 병력을 보내 진압하려고 들 것이오.”

“저들이 이곳 스너비 영지로 몰려오더라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나의 영지병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거든요.”

“어떻게 단기간에 20만이나 되는 병력을 준비했는지 정말 불가사의하구려.”

“자금이 충분하게 있는데 뭔들 못하겠습니까?”

“아니요, 하벨 백작. 자금이 충분해도 이런 막대한 위업은 아무나 이룩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건 기적입니다, 기적.”

“고맙습니다. 그렇게 좋게 봐주셔서.”

베다 후작은 하벨과 함께 한참을 와인을 같이 마시다가 자신에게 주어진 방으로 돌아갔다.

혼자 남은 하벨은 와인을 홀짝거리며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으음… 아비린 왕국의 분열이 이미 시작되었으니 정신 차려야겠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