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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다크 실버문
“그렇습니다. 그 어떤 예외도 없었습니다. 만약 그렇다고 해도 그자를 되돌려 보냅니다.”
“으음… 그럼 뇌물도 통하지 않겠군.”
“영주가 직접 병사들에게 그렇게 지시했으며, 병사들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주고 있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는 게 더욱 문제입니다.”
“허허… 그런 곳이 있다니… 이거야 원.”
“밤이나 낮이나 예외가 없습니다. 그러니 문제입니다.”
“그럼 마법을 이용해보는 건 어떨까?”
“그것도 나름대로 알아보았더니 외성과 영주성에는 대방어마법진이 설치되어 있고, 또한 텔레포트 마법이 안 되도록 디스펠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다 합니다. 군대가 직접 쳐들어가지 않고는 방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
“으음… 그럼 병사를 죽이고 그자로 위장하면 어떨까?”
“그것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매일 오전 8시에 교대하는데 4서클 마스터 마법사가 직접 입회하면서 교대한다고 합니다. 또한 수시로 인원점검을 실시하고 있고, 암호도 수시로 바꾼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냥 병사를 죽이고 침투하면 발각됩니다.”
부하 어쌔신의 말에 카이던은 답답한 듯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거야 원… 방법이 없겠나?”
“매일같이 영주성에 채소와 과일, 식량을 실은 짐수레가 10대씩 들어가는데 그걸 이용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다른 남자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것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철저하게 검문하고 있으며, 짐수레를 모는 자의 신분을 철저하게 알고 있습니다. 또한 사전에 바뀐 것을 알리지 않으면 단 한 사람이라도 더 들어가지 못합니다.”
“짐수레 밑이나 물건 속에 숨는 건 어때?”
“그것도 철저하게 각 검문소를 통과할 때마다 확인하고 있기에 쉽지 않습니다. 검문은 3서클 유저 마법사의 입회 하에 하거든요.”
“으음… 그럼 왕성보다 더 치밀하게 검문하는 거잖아.”
“그렇습니다. 저도 알아보고는 도무지 믿기 힘들었습니다. 좀 더 알아보기 전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크흠… 어쩔 수 없지. 일단은 좀 더 조사해보고 방법을 연구해보자.”
파에이슨 국왕은 최근 몸이 극심하게 피곤함을 느꼈다.
처리해야 할 업무가 많아서 그런가보다 하면서 하루하루를 넘겼지만 그 피로도는 조금씩 높아졌다.
“아… 너무 피곤해. 하지만 식욕은 오히려 더 좋아졌어.”
“폐하, 오늘은 그만 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허허… 시종장. 이만한 일로 쉬면 결재해야 할 서류만 더 늘어나게 돼.”
“폐하, 그럼 대신관이라도 불러 올까요?”
“아니, 되었네. 이 정도 피곤한 걸 가지고 바쁜 대신관을 부른대서야…….”
시종장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폐하, 마침 왕궁에 대신관이 와있으니 잠시 신성샤워라도 받는다면 훨씬 덜 피곤하실 겁니다.”
“음… 하긴 그것도 좋겠지. 시종장이 수고 좀 해주게.”
“예, 폐하. 제가 잠시 나가서 모셔오겠습니다.”
파에이슨 국왕이 고개를 끄덕이자 시종장이 국왕의 집무실을 나가 대신관을 데려왔다.
“폐하, 호드리고 대신관을 모셔왔사옵니다.”
“어서 들어오시라 하게.”
“예, 폐하. 대신관님,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안으로 들어온 대신관은 후덕한 인상에 금테가 있는 신관복을 입고 있었다.
“폐하, 어디가 불편하십니까?”
“하하… 큰 병은 아니고 밀린 서류를 처리하느라 조금 피곤해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신성력으로 샤워를 해드리겠습니다. 그럼 피로회복이 될 것이옵니다.”
“허허… 이거 미안하구려.”
“아니옵니다, 폐하.”
호드리고 대신관이 신성력을 일으키자 그의 손에서 환한 빛이 솟아나와 파에이슨 국왕의 몸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국왕은 나른했던 몸이 훨씬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허허… 역시 대신관이구려. 훨씬 몸이 가벼워진 것 같소.”
“큰 병은 없으신데 너무 집무에 시달려서 그런 것 같으니 당분간은 너무 무리하지 마십시오, 폐하.”
“알겠소, 호드리고 대신관.”
“그럼 전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폐하.”
“그러시게.”
대신관에게서 신성력으로 샤워를 한 것 덕분인지 국왕은 이후 며칠간은 훨씬 가벼운 몸으로 업무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서 또다시 몸이 극심하게 피곤해졌다.
또 파비스 왕세자도 파에이슨 국왕과 같은 증상을 보였다.
브린츠 왕자는 요즘 국왕의 친위세력인 신병들의 훈련 상태를 점검하느라 무척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브린츠 왕자의 뒤로 하벨이 다가와 말했다.
“왕자님, 피곤하신 것 같아 보이십니다.”
“하하… 그렇게 보입니까? 내가 요즘 신병들의 훈련 상태를 점검하느라 몸이 좀 바쁘다보니 피곤합니다. 큰 병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음… 왕자님, 최근 헤스페 공작의 움직임은 어떻습니까?”
“첩자들의 보고로는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하니 걱정하지 마시오, 하벨 백작.”
“이건 제 예감인데 한 달 내로 큰일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큰일이라고요? 무슨…….”
“국왕폐하와 파비스 왕세자님의 신변에 이상이 있을 것 같습니다.”
“암살이라도 일어난단 말인가요?”
“저로서도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큰일이 일어나긴 할 겁니다. 왕자님께서는 수도 크라운 외곽에 병력을 정비해두십시오.”
“하하… 하벨 백작, 너무 예민하신 것 아닙니까?”
“…….”
하벨은 느긋한 브린츠 왕자에게 예지력으로 미래를 본 결과 국왕과 왕세자의 독살이 일어난다고 속 시원하게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왕자님, 마지막으로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만약 신변에 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즉시 스너비 영지로 오십시오. 제가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하하하… 하벨 백작의 마음은 잘 알았어요.”
브린츠 왕자는 웃으면서 하벨의 말을 넘겨버렸다. 왕궁에 있는 국왕과 왕세자의 곁에는 친위대가 배치되어 있기에 신변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브린츠 왕자는 곧 웃음으로 넘겼던 일을 후회했다.
갑자기 파에이슨 국왕과 파비스 왕세자가 동시에 쓰러지더니 의식을 잃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헤스페 공작은 이미 본능적으로 왕궁에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들어 포섭해둔 시녀들이나 시종들을 동원해 국왕과 왕세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다.
“흐흐흐… 이것이었구만? 역시 나의 예감은 알아줘야 해. 카멜, 거기 있는가?”
“불러계시옵니까, 공작각하.”
“즉시 귀족파의 귀족들을 모이라고 하게. 오늘밤 회의를 할 것이야.”
“알겠사옵니다. 즉시 모이도록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그날 밤 귀족파의 귀족들이 헤스페 공작의 저택으로 모였다.
어리둥절한 표정의 귀족들 가운데 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뉴얼 백작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헤스페 공작각하, 무슨 일이십니까?”
“모두들 잘 듣도록. 국왕과 왕세자가 어젯밤에 쓰러졌다.”
“국왕과 왕세자가 말입니까?”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웅성거리는 소리가 회의실 안을 가득 채웠다.
“사실이다. 대신관이 신성력을 불어넣었지만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니 독에 당한 것 같다. 아마 내일 저녁을 넘기지 못하고 죽을 것 같으니 대비를 해야 한다.”
“공작각하, 어쩌면 우리 귀족파에게는 천재일우의 기회인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기회를 잘 이용하지 않으면 두 번 다시 기회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
점점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쇼왈츠 자작이 참지 못해 물었다.
“무… 무슨 말씀이시온지?”
“국왕과 왕세자가 쓰러진 이상 우리가 정권을 잡아야 된다는 말이다.”
흥분한 헤스페 공작이 말했다.
“그럼 반란을 일으키신단 말씀입니까?”
“국왕의 병력이 상당한데 가능하겠습니까?”
실내에는 또다시 웅성거림이 차올랐다.
“조용히 해라. 수도 크라운 외곽에는 클라이스 백작의 수도방위군 4만이 있고, 또한 최근에 국왕이 대대적으로 신병을 모집해 훈련 중인 3만의 병력을 합하면 7만 정도 된다.”
“또한 국왕파의 병력까지 치면 15만은 넘을 텐데요?”
“흐흐… 걱정 없다. 나의 사병만 해도 6만이나 되고, 너희들의 사병들까지 합한다면 20만은 된다. 국왕파의 병사들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이런 때에 우리가 전열을 정비해서 기습한다면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공작각하, 비록 국왕과 왕세자가 죽더라도 국왕파에는 3왕자인 브린츠 왕자가 있습니다.”
쇼왈츠 자작이 비열한 표정으로 말했다.
“흐흐… 우리에게는 좀 더 명분에서 앞서는 2왕자인 도이란이 있으니 걱정 없다. 어차피 국왕과 왕세자가 동시에 죽는다면 명분상으로도 2왕자가 왕위에 오르는 게 합당하지.”
“아… 역시 공작각하이십니다.”
“자네들은 돌아가자마자 사병들에게 무장을 시키고 언제든 출동할 수 있도록 조치해두도록.”
“예, 공작각하!”
그 시각, 국왕파의 귀족들도 갑자기 국왕과 왕세자가 쓰러지자 다들 한자리에 모였다.
대신관을 불러 진맥을 해보았지만 뚜렷한 처방을 할 수 없었다. 이미 신성력을 쏟아 부어보았지만 아무런 차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베다 후작과 국왕파의 귀족들은 설마 국왕과 왕세자 두 분이 한꺼번에 돌아가시기야 하겠는가 하고 방심하면서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귀족파의 수상한 움직임만 파악하고 있었다.
또한 중도파의 수장인 포에니 공작은 귀족파와 국왕파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 날 오후, 침대에 누워 있던 국왕과 왕세자가 입에서 검붉은 피를 내뿜으며 숨이 거뒀다.
유언도 없이 파에이슨 국왕과 파비스 왕세자가 동시에 죽어버리자 아비린 왕국은 혼란에 휩싸였다.
왕위 계승을 놓고 국왕파와 중도파, 귀족파의 귀족들이 모두 모였다.
당연히 국왕파에서는 3왕자인 브린츠 왕자를 밀었고, 귀족파에서는 2왕자인 도이란이 왕위에 올라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