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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다크 실버문
모든 준비를 끝마친 병사들은 전방을 주시했고, 얼마 후 대지에 미세한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몬스터 무리가 몰려오는 것이었다.
쿠워어어!
포효와 함께 전방에서 오우거 두 마리가 튀어나왔다.
거대한 체구에 근육질로 이루어진 오우거는 지상에 있는 몬스터 중에서도 상위에 있는 포식자로, 그 힘과 그 포악성은 다른 몬스터들도 두려움에 떨 정도였다.
오우거들은 한 손에 피와 살점이 묻은 나무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인간들의 냄새를 맡고 흥분했는지 놈들의 눈이 살기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오우거 두 마리는 먹이를 발견한 듯 목책 뒤에 상체를 숙이고 있는 병사들을 향해 달려왔다.
기회를 노리던 제7천인대 제3백부장이 공격명령을 내렸다.
“석궁병들은 화살을 쏘아라!”
수십 발의 화살이 날아가 오우거에게 명중되었지만 질긴 오우거의 가죽 때문에 대부분 튕겨나 버렸다. 고작해야 가벼운 찰과상 정도를 입힌 정도였다.
‘으음… 석궁은 그리 효과가 없구나.’
쿠워어어!
포효와 함께 몽둥이를 휘두르는 오우거들이 어느새 50미터 앞에까지 다가와 있었다.
“수류탄을 던져라!”
오우거 두 마리는 날아온 수류탄을 보고도 무시하고 지나쳤고, 그 순간 수류탄이 폭발했다.
콰쾅!
석궁의 화살에도 끄떡없던 오우거의 질긴 가죽이 수류탄의 폭발에 찢겨 나갔다. 분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녹색 피로 보아 제법 심각한 부상을 입은 듯했다.
비틀거리던 오우거는 다시 한 번 분한 듯 포효했으나 병사들은 그런 오우거를 향해 수류탄을 던졌다.
쿠워어어어!
흙덩이가 튀어 오르며 흙먼지가 자욱하게 퍼졌고, 주변이 온통 오우거의 피비린내와 화약 냄새로 가득 찼다.
오우거 두 마리는 큰 부상을 입고는 쓰러졌지만 가슴이 미약하게나마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죽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오우거가 쓰러졌다! 보병들은 달려가 놈들의 목을 잘라라!”
“어서 서둘러라!”
병사들이 달려가 검으로 오우거의 목을 내리쳐 끝장을 낸 후 짐수레에 죽은 오우거 두 마리를 실어 가져왔다.
“잘했다. 죽은 오우거는 한쪽에 잘 두어라. 그게 다 돈이다.”
“예, 알겠습니다!”
처음에는 몬스터의 습격에 겁을 집어먹었던 병사들도 동료들이 오우거를 간단하게 잡은 것을 보자 사기가 올랐다.
백부장이 긴장한 병사들에게 경고성을 보내려고 크게 외쳤다.
“모두들 긴장해라. 곧 몬스터 떼가 몰려올 시각이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오크 무리가 모습을 드러내고 병사들을 향해 달려왔다. 몰려오는 오크 무리가 얼마나 많은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얼핏 보아도 수천 마리였다.
“오크가 나타났다! 궁병들과 석궁병들은 화살을 쏘아라!”
그러자 수백 발의 화살이 포물선을 그리면서 떨어졌고, 달려오던 오크들은 하나 둘 화살에 맞아 쓰러지기 시작했다.
“계속 쏘아라! 오크를 다 죽여야 한다! 쏴라!”
궁병들과 석궁병들은 침착하게 백인대장과 천인대장이 명령하는 대로 오크들을 공격했다.
그 덕에 오크들이 수없이 쓰러졌지만 워낙 수가 많은지라 뒤쪽에 있던 놈들이 어느새 백 미터 앞에까지 다가와 있었다.
“수류탄 투척 준비! 투척해라!”
백부장의 명령에 50명의 병사들이 수류탄 심지에 불을 붙이고는 힘껏 던졌다. 그리고 바로 뒤로 빠지자 그 뒤에 있던 병사들이 다시 수류탄의 심지에 불을 붙여 던졌다.
수십 개의 수류탄이 오크를 향해 날아가 폭발했고, 흙덩이와 함께 오크들도 허공으로 떠올라 내동댕이쳐졌다.
워낙 위력이 좋은 수류탄이었기에 한 번의 폭발에 오크 10여 마리가 그대로 쓰러져버렸고, 주위에서 있던 놈들까지 폭발에 휘말려 부상을 입고 비틀거렸다.
하지만 전투종족인 오크 무리는 동료가 죽어 쓰러지는 상황에서도 앞으로 달려왔다. 정말 지독한 놈들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전방을 향해 빠르게 달려오던 오크들은 갑자기 나타난 함정에 빠졌다.
병사들은 도열해 있던 곳에서 20미터쯤 떨어진 앞에 횡대로 길게 구덩이를 파두었는데, 구덩이는 길이도 길이였지만 깊이가 5미터 정도로 깊었으며, 넓이도 10여 미터나 되었기에 오크들은 속절없이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뒤에서 달려오던 오크들이 함정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멈추자 명령만 기다리던 스피어 병사들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창을 던져라!”
“오크를 다 죽여야 한다! 창을 던져라!”
슈슈슈슝!
창의 사정거리에 들어온 오크들은 스피어 병사들이 내지른 창이 가슴에 꽂힌 채 절명해갔다.
“수류탄을 던져라!”
콰콰쾅!
여기저기에서 수류탄이 터지면서 오크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수천을 헤아리던 오크들이 이제는 고작 몇백 마리로 줄었다.
긴장감에 손바닥에 땀이 흥건해진 알로프 제1천인대장이 공격명령을 내렸다.
“제1천인대와 제8천인대는 공격하라, 공격!”
그러자 도열해 있던 병사들 중 양쪽 가장자리에 서 있던 제1천인대와 제8천인대의 보병들이 각자 무기를 손에 들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적들이었다면 이미 졌다는 것을 알고 도망쳤겠지만 전투종족인 오크들는 그러지 않았다. 공격해오는 병사들과 싸웠다.
그렇지만 수백의 오크 무리가 2천 명이나 되는 병사들을 맞아 싸우기에는 무리였고 얼마 후 모든 오크들은 바닥에 쓰러졌다.
“와아아아!”
“이겼다! 오크들을 모두 죽였다!”
전투가 끝났다 생각한 병사들은 환호성을 질렀지만 아직 전투가 끝이 난 것은 아니었다.
죽은 오크 떼의 피 냄새를 맡고 몬스터 무리가 몰려들었다.
오우거와 트롤을 비롯해 고블린까지 보였다.
“몬스터가 몰려온다! 전열을 정비하라!”
평상시 같으면 오우거는 다른 몬스터를 공격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수천의 오크 무리가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기에 굳이 다른 놈들을 공격하지 않고, 죽은 오크를 잡아먹기 위해 몰려든 것이다.
“몬스터를 전부 죽여야 한다! 진군하라!”
창을 든 방패병이 먼저 열을 맞추면서 앞으로 진격했고, 궁병과 석궁병들이 뒤따랐다.
오크의 시신을 뜯어 먹던 오우거나 트롤이 진군해 오는 병사들을 보고는 움찔하며 멈추어 경계했다.
“수류탄을 투척해라!”
“수류탄 투척!”
콰콰쾅!
폭음이 터지면서 그 폭발력에 트롤의 몸에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그중 몇 마리는 떨어져 나간 팔에서 흘러내리던 피가 멈추더니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트롤의 상처가 재생되고 있다! 공격을 더 퍼부어라!”
퍼퍼퍽!
석궁병들이 쏜 수십, 수백 발의 화살에 맞은 트롤이 비틀거리면서 괴로워했다. 워낙 강력한 위력을 가진 석궁이라 화살이 피부를 뚫고 박혔기 때문이다.
“재생하지 못하게 머리를 잘라야 한다. 머리를 잘라라!”
그러자 용감한 한 병사가 검을 휘둘러 트롤의 머리를 잘랐고, 머리를 잃은 트롤의 거대한 몸이 쓰러졌다.
“우와… 트롤을 내가 잡았어!”
그것이 시작이었다. 용기를 얻은 병사들은 물러서지 않고 협공으로 몬스터를 죽이기 시작했다.
트롤 같은 몬스터는 10여 명이 달려들어 칼로 찌르고 석궁을 쏘고 하면서 잡아 죽였고, 오우거에게는 먼저 수류탄을 던져 부상을 입게 만든 뒤 역시 10여 명이 달려들어 공격했다.
또한 고블린 같은 작은 몬스터들은 궁병들이나 석궁병들이 화살을 쏘고 수류탄을 던지니 천하의 몬스터 무리도 속수무책으로 도륙되어갔다.
그동안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다고는 해도 실전이 전무했는데 몬스터와의 전투를 겪으면서 전투경험이 쌓이게 되었다.
몬스터와의 전투는 두 시간이 넘어가자 끝이 보였다. 죽은 몬스터의 사체가 산처럼 쌓인 광경은 기묘한 것이었다.
3만 마리나 되는 각종 몬스터들이 어떻게 한꺼번에 몰려오게 된 것인지는 몰랐지만 어쨌든 스너비 영지병 덕분에 츄이 자작의 딕케이 영지는 별다른 피해 없이 몬스터를 소탕할 수 있었다.
“죽은 몬스터를 오크는 오크대로, 오우거는 오우거대로 분류해 쌓아두어라.”
“예, 알겠습니다.”
병사들은 쓰러진 몬스터를 분류해 한쪽에 잘 쌓았다. 워낙 숫자가 많았지만 병사들은 속전속결로 처리를 해나갔다.
그제야 츄이 자작이 호위병을 이끌고 하벨에게 다가왔다. 하벨을 믿지 못한 것을 떠올렸는지 그의 낯이 굳어 있었다.
“하벨 백작님, 정말 큰일을 해주셨습니다.”
“아닙니다. 병사들이 잘 싸워주었기 때문입니다.”
“설마 몬스터가 쳐들어올까 하고 의심했는데 그게 사실이었다니 정말 놀랐습니다.”
츄이 자작은 하벨에게 큰 은혜를 입었기에 훨씬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고 얼굴에는 미소가 감돌았는데, 이전보다 훨씬 겸손해진 모습이었다.
“다행히 잘 처리가 된 것 같습니다.”
“하벨 백작님, 정말 감사합니다. 만약 방비를 하지 못했다면 영지민의 피해가 엄청났을 것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올리비에 양은 성에 있습니까?”
“아, 아닙니다. 여기에 와 있습니다. 마침 저기 오는군요.”
“하벨 백작님!”
흰 원피스를 입은 올리비에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올리비에를 본 하벨의 얼굴에도 환한 웃음이 떠올랐다.
“올리비에 양, 위험한 곳인데 성에 있지 않고요.”
“백작님이 걱정되어서요. 그리고 제 눈으로 직접 흉포한 몬스터를 보고 싶었어요.”
“다행히 큰 피해 없이 몬스터를 소탕했습니다.”
“예, 저도 다 지켜본걸요. 정말 대단하세요.”
올리비에의 칭찬에 하벨의 얼굴에는 미소가 감돌았고,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츄이 자작님, 몬스터를 분류해놓았으니 영지민들을 불러서 처리해주십시오.”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잘 처리해놓겠습니다.”
츄이 자작은 부관에게 일러 영지민들을 불러오게 하여 몬스터의 처리를 지시했다.
몬스터 사냥으로 생긴 몬스터의 가죽과 부산물을 처리한 경험이 많은 딕케이 영지민들은 재빨리 죽은 몬스터의 가죽을 벗기고는 부산물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몬스터의 가죽과 각종 부산물을 처리하면 제법 수익을 올릴 겁니다. 그걸 가지고 이곳에 성을 하나 세우고 벌목을 하십시오.”
“성을 세우라고요?”
자작이 의아한 듯 되묻자 하벨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이곳은 앞으로 딕케이 영지에서 중요한 수입원이 될 것이니까요.”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군요.”
“하하하… 아무것도 모르시는 것 같으니 제가 말씀드리죠. 이것을 한번 봐주시겠습니까?”
하벨은 검은 돌 같은 것을 내밀었다. 그것을 본 츄이 자작과 올리비에는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이것은 킬본 마을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조금만 땅을 파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러자 하벨이 그들에게 되물었다.
“그럼 이것이 어디에 쓰이는지 아십니까?”
“글쎄요. 이런 것을 어디에다 쓰겠습니까?”
“이것은 석탄(石炭, Coal)이라는 것인데 어두운 색을 띠며, 연료로 쓰입니다. 쉽게 설명 드리자면 나무로 불을 때는 것 같은 용도로 사용이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그 말에 자작과 올리비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것이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불이 쉽게 붙으면서도 고열을 내기 때문에 대장간에서 쓰면 아주 좋을 겁니다. 자금을 절반씩 투자하여 이곳에 석탄광산을 만들어 생산해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으음… 이게 돈이 될 줄은 몰랐군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자 올리비에도 기쁜 듯 자작에게 말했다.
“아버지, 잘하셨어요. 하벨 백작님 덕분에 딕케이 영지의 주요 수입원이 하나 더 생겼네요.”
“일단 석탄광산을 만들어 석탄을 생산하면 연탄이라는 것을 만들 겁니다. 그럼 아주 다양한 용도로 사용 가능하게 되죠.”
“어떤 용도지요?”
“뭐, 일단 대장간에서 사용될 것이고 일반 가정에서도 겨울에 난방용으로 사용하면 좋습니다.”
몬스터 퇴치는 물론, 석탄의 개발까지 큰 은혜를 입게 된 츄이 자작은 하벨 백작을 다시 보게 되었다.
‘으음… 역시 보통 사람은 아니구나. 다행히 올리비에가 좋아하고 있고 그도 좋아하는 것 같으니 잘된다면 나에게도 큰 힘이 되겠어.’
츄이 자작은 다음 날부터 대대적으로 영지민을 끌어 모아 킬본 마을부터 다시 정비했고, 석탄광산을 개발하기 위해 살라만 숲도 벌목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킬본 마을은 석탄광산으로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