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운 Luck-60화 (6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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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다크 실버문

두두두두.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2천 명의 기병들, 그 뒤에는 3천 대의 짐수레와 20대의 마차가 뒤따르고 있었다.

각 마차의 지붕 모서리에 꽂힌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깃발에 네잎 클로버가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스너비 영지 하벨 백작의 문장이었다.

또 보병들이나 기병들이 입고 있는 가죽 갑옷에도 네잎 클로버 문장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짐수레와 마차의 양옆을 기병들이 호위하면서 천천히 달리고 있었고, 뒤쪽에는 각종 병장기를 소지한 보병들이 1만이나 행군하고 있었다.

지금 이동 중인 총병력만도 2만이다.

이들이 향하고 있는 곳은 츄이 자작의 영지인 딕케이였다.

하벨이 딕케이로 가는 것은 올리비에의 초청 때문이지만 이 정도의 병력을 이끌고 갈 필요는 없었다.

영주의 마차에는 하벨과 빈센트 집사, 루팽이 타고 있었다.

하벨이 천천히 이동 중인 마차의 창을 열어 밖을 내다보자, 빈센트 집사와 루팽이 그런 하벨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장시간의 이동이라 지루했던지 빈센트 집사가 말했다.

“영주님, 올리비에 아가씨의 초청이었다고는 하지만 왜 2만이나 되는 병력을 이끌고 딕케이로 가시는 것입니까?”

“집사도 예상하고 있겠지만 츄이 자작을 만나 올리비에와의 혼담을 확정짓기 위함이며, 2만의 병사도 필요하기 때문이지.”

“이해가 잘 안 갑니다. 혼담을 위해서 2만의 병력을 데려가는 게 말입니다.”

“후후후… 그럴 거야. 하지만 집사도 곧 알게 될 거야. 미리 알면 재미없잖아.”

“영주님의 선견지명에 저는 늘 탄복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기대를 해보겠습니다.”

“하하하… 집사와 루팽은 그저 지켜만 보라고.”

생각했던 것보다 길이 험하지 않아 이동에는 불편이 없었다.

또한 2만이나 되는 병력이 이동하다 보니 몬스터나 산적도 일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10일이나 야영을 하며 이동한 하벨 일행은 딕케이 영지의 초입에 당도했다.

밀밭에서 일하는 농부들이나 마을의 집들을 본 하벨은 딕케이가 많이 열악한 환경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으음… 예전의 스너비 영지처럼 낙후된 모습이군. 어딜 가나 귀족들은 호의호식하면서 편하게 살 수 있지만 농노들이나 노예, 그나마 나은 영지민들이라도 생활은 그리 나아 보이지는 않는군. 그것이 못내 안타깝구나. 신분제가 뿌리 깊게 내린 이 세계에서는 내가 국왕이라도 바꾸기 어렵다. 다만 스너비 영지처럼 영지를 발전시켜 영지민들이 배곯지 않고 살기만 바랄 뿐이다.’

올리비에가 화이트 베어 경기병 2백 명을 호위병으로 대동하고 하벨을 마중 나왔다가 2만의 병력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하벨 백작님, 이 많은 병사들은 무엇입니까?”

“올리비에 양, 놀랐습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딕케이를 공격하러 온 것은 아니니까 말입니다.”

“미,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 당황했어요.”

“그럴 겁니다. 내 설명해드릴 테니 일단 마차에 오르세요.”

올리비에가 마차에 오르려고 하자 하벨이 손을 내밀었다.

순간 올리비에의 얼굴에 홍조가 피어났다. 그녀는 수줍게 손을 내밀었고, 하벨의 도움으로 손쉽게 마차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자 루팽과 빈센트 집사가 마차에서 내렸다.

“루팽과 빈센트 집사는 왜 마차에서 내리나?”

“영주님, 너무 오랫동안 마차 안에만 있었더니 허리가 아파서요. 잠시 바깥바람 좀 쏘이다가 들어가겠습니다.”

“그런가? 알았네.”

하벨과 올리비에는 루팽과 빈센트 집사가 둘만의 시간을 위해서 자리를 피해준 것을 눈치 채고 있었지만 모른 체했다.

올리비에는 마차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어 두리번거리면서 살폈다. 하벨은 그런 올리비에를 쳐다보고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어머, 마차 안이 정말 고급스러워요.”

“빈센트 집사가 마련한 마차인데 저도 마음에 들더군요.”

“왕족의 마차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겠어요.”

“그렇게 봐주니 기분이 좋은데요.”

“호호… 아무튼 대단하세요, 백작님.”

“올리비에, 보고 싶었습니다.”

“저도 보고 싶었습니다, 백작님.”

하벨과 올리비에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껴안았다. 그리고 천천히 두 사람의 입술이 포개졌다.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진한 키스는 그 무엇보다도 달콤했다.

잠시 후 키스의 여운으로 얼굴을 붉힌 올리비에가 물었다.

“백작님, 그런데 왜 이렇게 많은 병사들을 이끌고 오신 거죠?”

“올리비에의 19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무엇보다 딕케이 영지에 위기가 닥쳤기 때문입니다.”

“위기라고요? 자세하게 말씀해주세요.”

“딕케이 영지의 북쪽에는 살라만 숲이 있으며, 그곳에는 몬스터가 많이 있지요.”

“그, 그럼 몬스터 때문에 병력을 데려온 거예요?”

“그래요. 2만 명이나 이끌고 왔지요.”

“백작님, 그거라면 걱정 안 해도 돼요. 2년마다 8백 명의 용병을 모집해 몬스터 사냥을 하고 있고, 몬스터 사냥한 지가 이제 겨우 8개월밖에 안 되었어요.”

“올리비에, 그건 그렇지가 않아요. 이번에 습격하게 될 몬스터는 오크와 트롤, 고블린과 오우거를 포함하면 만여 마리나 될 것입니다.”

엄청난 몬스터의 수에 올리비에는 눈이 커지가 그걸 이해한다는 듯 하벨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 그럴 리가요.”

“내가 추측하기로는 몬스터 습격이 5일밖에 남지 않았어요. 당장 대비를 해야 합니다.”

“그걸 어떻게 아세요? 5일이라면 제 생일 이틀 전이네요?”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내 예감은 잘 들어맞거든요. 날 한번 믿어줄래요?”

“믿을게요. 아니, 믿어요, 백작님.”

영주성에 있던 츄이 자작은 갑자기 딕케이 영지에 대대적인 병력이 들어섰다는 보고를 받고는 깜짝 놀랐다.

혹여 영지전이라도 일어나는 건가 싶어 긴장했는데 화이트 베어 경기병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영주성에 도착했다.

“영주님, 하벨 백작이 영지로 진입하였습니다.”

“그런가? 듣기로는 대규모의 병력을 이끌고 왔다 하던데?”

“예, 기병 3천에 보병 1만7천, 총 2만 명이라 합니다.”

눈썹을 꿈틀거리면서 츄이 자작의 얼굴이 굳어졌다.

“으음… 무슨 일로 그렇게 많이 데려왔단 말인가.”

“하벨 백작님께서는 영주님과 사이가 좋은 편이며, 특히 올리비에 아가씨와는 특별한 관계이신 것 같은데… 자세한 사정은 도착해 말씀드린다 합니다.”

‘으음… 하벨 백작의 스너비 영지병이라면 안심해도 될 거야. 그는 올리비에와 가까운 사이이니까 말이야.’

츄이 자작의 영주성 앞에 도착한 하벨 일행은 데러온 병력을 영주성 근처에 막사를 설치해 대기하도록 했고, 하벨의 마차와 클로버 기사단만이 영주성 안으로 들어갔다.

츄이 자작과 집사를 포함한 10여 명이 성의 광장에서 대기했다. 하벨의 마차가 멈추고, 안에서 하벨과 올리비에가 내렸다.

“어서 오십시오, 하벨 백작님.”

“오랜만입니다, 츄이 자작님.”

“먼 길 오시느라 힘드셨을 테니 어서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예, 감사합니다.”

츄이 자작이 앞장서자 루팽을 비롯한 클로버 기사단원 5명과 빈센트 집사가 하벨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대연회실에는 이미 요리가 한상 차려져 있었다.

츄이 자작이 안내한 자리에 하벨 백작이 자리에 앉자 그도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하벨의 맞은편에는 올리비에가 앉았으며, 하벨의 옆에는 루팽과 빈센트 집사가 나란히 앉았다.

이들도 하벨로부터 귀족의 작위를 받았기에 같이 식사를 할 자격이 있었다.

“식사시간에 맞추어 마련했습니다. 드시죠.”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츄이 자작이 마련한 요리는 맛이 뛰어났고, 그래서 식사 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러던 중 츄이 자작이 말문을 열었다.

“하벨 백작님, 이번에 제 여식의 생일에 참석해주신 것을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2만이나 되는 병력을 이끌고 오신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당연히 궁금하실 테니 말씀 드리겠습니다. 딕케이 영지에 있는 살라만 숲에 살고 있는 몬스터 때문입니다.”

“몬스터요? 2년마다 몬스터 사냥을 하고 있기에 걱정하실 정도는 아닙니다.”

“올리비에에게 듣기로는 8개월 전에 몬스터 사냥을 하셨다고 하더군요.”

“그렇습니다.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만, 문제가 있습니까?”

“제 생각에 대대적인 몬스터의 습격이 있을 것 같습니다.”

“으음… 이상하군요. 어떻게 그런 일을 아시는 것인지…….”

“글쎄요. 이걸 어떻게 설명해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위험을 감지하는 예감이 발달한 편이라 이렇게 무작정 병력을 이끌고 오게 되었습니다.”

“흐음… 그저 예감에 의지해 무작정 병사를 움직이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을 텐데요.”

“예, 저도 그것을 잘 알고 있지만 워낙 위급한 일이라 이렇게 무례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츄이 자작은 잠시 망설이는 듯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백작님의 말씀을 믿겠습니다. 그런데 몬스터는 언제 습격해 오는 겁니까?”

“앞으로 5일 남았습니다.”

하벨의 말에 츄이 자작은 깜짝 놀랐다.

“5일이라구요? 올리비에의 생일이 7일 남았는데 그렇다면 생일 파티는 불가능하겠군요.”

“아닙니다. 생일 파티는 예정대로 여셔도 됩니다. 다만 살라만 숲의 초입 마을인 킬본 마을에 병사들을 투입해 몬스터를 퇴치해야겠습니다.”

“몬스터가 얼마나 습격해 올 것 같습니까?”

“제가 생각하기로는 1만 마리는 될 것 같습니다.”

“뭐, 뭐라구요? 1만 마리나 된단 말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2만의 병력을 데려온 것입니다.”

“으음… 백작님의 말씀대로 1만 마리의 몬스터가 습격해 온다면 정말 큰일입니다. 아시다시피 킬본 마을에는 변변한 목책도 없으니 말입니다.”

츄이 자작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미간을 찌푸렸다.

“예,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끌고 온 2만의 병력으로 이번 몬스터 습격을 막아보겠습니다.”

“하지만… 몬스터가 과연 습격해 올지 의문스럽군요.”

“일단 제가 한번 막아볼 테니 믿어주십시오. 내일 아침 병사들을 이끌고 킬본 마을로 가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츄이 자작은 허락은 했으나 내심 얼떨떨했다.

백작이나 되는 이가 예감만을 믿고서 병사를 2만이나 이끌고 온 것도 이해하지 못할 행동이고, 거기에다가 난데없이 몬스터가 습격해온다고 말하니 황당한 것이다.

하지만 그가 워낙 자신 있게 말해서인지 믿음이 갔다.

‘으음… 직접 하벨 백작의 얼굴을 보니 그렇게 실없이 움직일 사람이 아니었어. 정말 몬스터가 습격해올까? 5일 후에 습격해 온다고 날짜까지 말하는 걸 보니 뭔가 있기는 한 것 같은데 어쨌든 지켜보면 알 수 있겠지.’

다음 날.

킬본 마을로 향한 하벨은 천인대장과 백인대장들을 막사로 불러 각자에게 임무를 하달했다.

그들은 병사들을 시켜 살라만 숲의 초입에 무성하게 자라 있는 나무를 대대적으로 벌목해 목책과 감시탑을 세웠다. 또한 벌목한 장소에 참호를 파고 곳곳에 구덩이를 깊게 파서 함정도 설치했다.

워낙 많은 인원을 투입해서 작업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그렇게 몬스터의 침입에 대배한 4일이 지나고 백작이 몬스터가 습격해 온다고 예견한 5일째 날이 밝아왔다.

무장한 병사들은 이미 몬스터가 쳐들어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서둘러 아침 식사를 마치고 무기를 점검했다.

둥둥둥둥.

북소리가 울려 퍼지자 긴장하고 있던 병사들은 막사에서 재빨리 튀어나와 각자가 소속되어 있는 천인대로 향했다.

임시로 마련된 목책이 곳곳에 설치되었으며, 스피어를 손에든 병사들이 긴장했는지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리는 상황에서도 그것을 닦을 생각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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