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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권 황금해골단
얼마 후 전열을 정비한 스너비 영지병은 각자 부대별로 휴식을 취했고, 부관은 하벨에게 달려와 보고했다.
“영주님, 1만 명 중에 2122명이 죽고 847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궁병이나 석궁병들은 피해가 적었지만 보병들이 가장 많은 피해를 보았습니다.”
“으음… 아무래도 직접적으로 적들과 싸웠으니 당연히 피해가 컸겠지. 병사들에게 충분한 휴식을 주도록.”
“안 그래도 각 부대별로 휴식하고 있습니다.”
“그래? 잘했군. 보급부대에게 일러 즉시 병사들에게 따끈한 수프와 빵, 삶은 고기와 과일까지 푸짐하게 나누어주라 일러라. 떨어진 체력을 회복해야지.”
“그, 그래도 되겠습니까?”
“이미 내가 지시를 해두었으니 지금쯤이면 보급부대에서 준비가 다 되었을 것이야. 가져가 나누어 주도록.”
“어, 언제 그런 것까지 준비하셨습니까?”
“영지를 지키기 위해 나선 병사들이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사기를 높여둬야 해. 아끼지 말고 넉넉하게 나누어 주도록.”
“감사합니다, 영주님. 지친 병사들도 좋아할 것입니다.”
부관의 말대로 따끈한 수프와 빵, 삶은 고기에 과일까지 푸짐하게 병사들에게 지급되자 떨어졌던 체력이 다시 보충되었다.
킬라스 제국의 남부함대 병사들도 신속하게 후퇴해 해안에 정박 중인 배를 바라보면서 휴식을 취했으며, 일부 병사들은 해안의 끝 경사진 곳에 척후병을 세우고 해안에도 각 부대별로 물을 마시면서 휴식했다.
제대로 식사도 못하고 말이 아니었다.
처음 상륙할 때에만 해도 사기가 하늘까지 치솟던 병사들이 이제는 사기가 꺾여 지친 모습이었다.
몇 시간 휴식을 취한 후 다시 2차 공격을 퍼부을 것이었지만 지금은 떨어진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서 이렇게나마 해안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오스틴 군단장은 지친 병사들의 얼굴을 바라보고서야 첫 전투에서 패했다는 것을 실감했다.
‘으음… 내가 이렇게 어이없이 패하다니.’
호스틴 군단장 곁으로 부관이 달려왔다.
잠시 숨을 고른 그는 즉시 보고했다.
“군단장님, 보고 드리겠습니다. 우리 측 피해는 3만4천 명으로 전사자가 2만8천 명 정도 되며 6천 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으음… 그럼 부상자를 포함하면 4만7천 명이 남은 것인가?”
“그렇습니다. 한 번의 전투라고는 믿기 힘든 심각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내가 너무 적들을 쉽게 생각했어. 방심만 하지 않았던들 이렇게까지 큰 피해는 없었을 것을…….”
“실망하기는 아직 이릅니다, 군단장님. 적들은 겨우 1만도 안 되지만 우리에게는 그들보다 몇 배나 많은 병사들이 남아 있습니다.”
도시 켈베른.
15만의 상주인구와 상단과 용병, 유민 등 하루 유동인구 3만의 상업도시이다.
대륙의 동부 왕국인 드라이온 왕국의 서부 국경 도시이며, 도시 외곽에는 왕국 서부군 5만이 주둔 중이다.
아비린 왕국과는 율린강을 두고 국경이 나뉘어 있다.
문제는 율린강을 넘어 드라이온 왕국령쪽은 30여 개의 봉우리를 가진 해발 2백 미터 미만인 야산들이 있어서 밀농사를 지을수 없었다.
그러나 율린강 넘어 아비린 왕국령은 평야로 밀농사가 잘되는 비옥한 축복받은 땅이다.
율린 평야라 불리는 이곳에서 생산되는 밀로 아비린 왕국의 동부 영지들은 굶주림을 겪지 않는다.
율린 평야는 동부의 다섯 영지가 서로 나누어 다스리고 있지만, 그만큼 평야가 넓고 비옥해 밀이 많이 생산되는 곳이다.
그러나 230년 전만 하더라도 이 율린 평야는 드라이온 왕국령이었다.
드라이온 왕국이 아비린 왕국과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율린 평야를 넘겨줬던 것이다.
언제나 기회만 보고 있던 드라이온 왕국은 얼마 전 아비린 왕국의 남부에 크라운 왕국군이 쳐들어와 영지를 점령하고 전쟁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드문 기회였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아비린 왕국 측에서 첩자를 보내 정보를 수시로 끌어 모으기에 병력 이동이 용이하지 못했지만 아비린 왕국에서 천일염과 각종 신 물건이 생겨나 왕국 간 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도시 켈베른이 몇 년 사이에 무려 다섯 배나 급성장했기 때문이다.
아비린 왕국이 크라운 왕국과의 전쟁으로 인해 잠시 시선이 그곳으로 쏠리고 있을 때 드라이온 왕국에서는 이때야말로 율린 평야를 되찾을 때라고 판단하고는 15만의 대군을 비밀리에 끌어 모아서는 이동시켜 서부군이 배치되어 있는 곳에 배치가 완료되었다.
야전 사령관 막사에는 자작의 작위를 가지고 있는 만인대장 15명을 비롯해 백작들인 5만의 병력을 책임지고 있는 군단장 3명도 앉아 있었다.
사령관의 부관인 네올 자작이 먼저 막사로 들어오더니 말했다.
“사령관님 오십니다.”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자 은색의 번뜩이는 플레이트 메일을 착용한 라비아나 후작이 막사 안으로 들어섰다.
금발에 녹색 눈을 가진 라비아나 후작은 여성이었다.
근육도 그리 발달되어 있지 않고 호리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어쨌든 그녀가 먼저 자리에 앉았다.
“모두들 앉으세요.”
“감사합니다, 사령관님.”
모두들 자리에 앉자 라비아나는 부관에게 눈짓을 했고, 부관인 네올 자작은 준비해둔 서류를 펼치면서 보고를 시작했다.
“율린 강을 건너면 먼저 만나는 곳이 아벨리스 영지로 제이논 자작이 다스리고 있습니다. 세작들의 보고로는 중장기병 8백 명에 기병 2천5백 명, 보병 1만3천 명을 포함하면 1만6천3백 명이나 되었지만 몇 달 전 크라운 왕국과 전쟁이 일어나면서 중장기병 5백 명과 기병 1천5백 명, 보병 1만 명을 긴급 지원했기 때문에 현재 영지에 남아 있는 병력은 중장기병 3백 명에 기병 1천 명, 보병 6천3백 명으로 모두 해도 7천6백 명이 전부입니다. 갑자기 너무 많은 병력이 빠져나가자 제이논 자작은 영지민을 5천 명 끌어 모아 군사훈련을 시키고 있다 합니다.”
“그래 보아야 겨우 1만2천6백 명이 아닙니까.”
“수도 적거니와 오합지졸들입니다.”
“큭큭… 하긴 몇 달 훈련 받았다고는 하지만 모두 보병들이니 그리 걱정할 수준은 아니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비단 아벨리스 영지뿐만 아니라 나머지 아스터 영지와 벨리란 영지, 에델린 영지, 라비나 영지까지 전부 끌어 모아도 5만5천 정도이며, 그중에 2만5천 정도는 오합지졸들입니다.”
“좋아요. 그 정도 병력이라면 국경 서부군 5만을 동원할 필요가 없겠지만 확실하게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그들도 함께해야만 해요. 이제부터 병력을 4군으로 나누겠어요. 먼저 로웰 군단장은 4군 4만으로 아벨리스 영지를 공격하고, 3군은 길버트 군단장이 맡아서 역시 4만을 이끌고 아스터 영지를, 2군의 4만은 에반 군단장이 맡아서 벨스란 영지를 각각 공격하도록 하세요. 나는 3만의 병력과 서부군 5만을 포함한 8만의 1군으로 에델린 영지를 공격하겠어요. 그렇게 되면 5일 정도면 무난하게 4곳의 영지를 점령하게 될 거예요. 그럼 나머지 라비나 영지 한곳이 남게 되는데 그때가 되면 아비린 왕국 측에서도 긴급하게 병력이 지원될 거예요. 그러니 우린 4개 군단을 다시 모아서 전열을 정비해 대비해야만 합니다.”
“사령관님, 5일 만에 아비린 왕국에서 병력이 지원되겠습니까?”
“율린 평야의 중요성을 안다면 신속하게 병력을 끌어 모아 올 거라 예상됩니다. 다만 그때까지 아비린 왕국에서 지원병들이 도착하지 않으면 그만큼 우리에게는 유리해지는 거예요. 라비나 영지를 단숨에 점령해 율린 평야가 완벽하게 우리 드라이온 왕국령이 되는 것이니 말이에요.”
“사령관님, 듣고 보니 정말 그렇습니다.”
“그럼 군단장들은 신속하게 각자의 군단병력을 장악해 전열을 정비시키도록 하세요. 병사들에게 빵과 수프를 먹이고 출발할 겁니다. 오늘밤에 네 영지와 전투를 시작할 거니까요.”
“예,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군단장들과 만호장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막사를 나가자 사령관인 라비아나 후작은 옆에 서 있는 부관인 네올 자작에게 나직하게 말했다.
“부관이 보기엔 어떨 것 같아?”
“제가 예상하기로는 사령관님께서 말씀하신대로 5일이면 네 영지는 무난하게 점령할 것으로 보입니다만 문제는 아비린 왕국 측에서 지원 병력이 언제쯤 오는가입니다. 그것에 우리의 점령지가 율린 평야를 넘어갈지 아닐지 좌우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호호호… 나도 아비린 왕국 측에서 5일 만에 율린 평야까지 지원 병력이 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래도 군단장들에게 이렇게 말해둬야 조금이라도 더 빨리 맡은 영지를 점령하고 모일 거야. 안 그래?”
뿌우우!
진군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드라이온 왕국의 20만 병력이 군단별로 이동을 시작했다.
선두의 중장기병들과 기병들이 먼저 치고 달려 나가는 상황이었기에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전방에 그리 높지 않은 야산이 있었지만 길이 그렇게 험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대병력이 이동하는 데에도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먼저 출동시킨 척후병들의 보고로도 각 영지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조용한 밤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파죽지세로 야산을 넘은 병사들은 율린 강도 쉽게 도강하여 율린 평야에 들어서면서 군단별로 흩어졌다.
율린 평야는 무자비한 약탈과 방화를 일삼는 드라이온 왕국병사들이 공격해 오고 있는데도 전혀 대비가 안 되어 있었다.
“사령관님, 생각했던 것보다 더 쉽게 영지를 점령할 수 있겠습니다.”
“호호호… 나도 내심 긴장했는데 이렇게 허술하다니 눈으로 보고서도 믿을 수 없을 정도야.”
“비록 간간이 저항하겠지만 예상보다 훨씬 일찍 영지 점령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도 방심하면 안 되니 척후병들을 더 내보내라.”
“예, 사령관님.”
킬라스 제국의 남부함대가 해안에서 쉬고 있는 새벽에 하벨 혼자서 적들의 진영으로 소리 없이 잠입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건 하벨이 플라이 마법으로 허공으로 날아가면서도 투명술인 인비저빌리티(Invisibility) 마법까지 더블 캐스팅을 했기 때문이다.
등에 멨던 석궁을 꺼내 든 하벨은 한 막사의 천장에 내려섰다. 그리고 허리에 묶어 놓았던 마법주머니 속에서 포탄을 꺼냈다.
포탄의 심지가 보통 포탄보다 두 배는 길어 보였다. 심지가 긴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하벨은 포탄의 심지에 불을 붙이고 날아서 그 장소를 벗어났다.
이렇게 십여 곳의 막사 천장에 포탄을 설치하고 불을 붙였다.
콰콰쾅!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포탄이 폭발하자 막사는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이며 산산조각 나버렸다.
“뭐야?”
“저, 적이 나타났다.”
뿌우우우!
비상 나팔소리가 울려 퍼졌다. 선잠에 빠져 있던 병사들은 화들짝 놀라면서 각 부대별로 집결했다.
등에 메어둔 석궁을 꺼내 든 하벨은 위치가 좋은 곳으로 이동해 그곳에서 적들을 향해 석궁을 겨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