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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권 황금해골단
고급스럽고 귀하면서도 귀족들의 품위를 높여주는 물건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귀족부인들뿐만 아니라 귀족들도 관심이 높았다.
일부 귀족은 화이트 도자기에 매료되어 광적인 수집을 보이는 자들까지 있었다.
“하앗… 얏!”
기합소리를 내지르면서 하벨은 자신의 소드 브레이커를 휘둘렀다.
이곳은 영주성의 지하에 마련된 하벨의 개인 연무장으로, 모처럼 시간이 생겨 굳어 있던 몸을 풀어주려고 다시 검술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기마자세에서 몸통 찌르기를 하고는 다시 아래막기를 하면서 기본적인 검술을 연습하던 그는 점점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몸이 풀린 듯 유연하게 몸을 움직였다.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상의를 벗은 몸에서는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사아악, 휙휙… 파팟!
벌써 4시간이 넘어가는 검술 연습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파워가 아직 살아 있었다.
또한 소드 브레이커가 허공을 가르고 지나갈 때마다 파공성이 장난 아니었다.
“하하… 오랜만에 검술연습을 했더니 아주 상쾌해.”
수건으로 흘러내리는 땀을 닦고는 한쪽에 마련된 자리로 이동해서는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하벨은 바쁜 업무 중에도 틈틈이 마법서를 꺼내 읽으면서 외웠기에 9클래스의 마법까지 알고 있었지만 아직 자신은 6서클에서 더 이상 진전이 없이 정체되어 있었다.
“흐음… 마법 고리가 6개나 되었지만 언제부터인가 마법이 정체된 것 같은데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 아냐. 내가 너무 서두르고 있는지 모른다.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생각하다 보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겠지. 너무 조급해하지 말자. 하벨, 넌 할 수 있어.”
하벨은 조급했던 마음을 추스르면서 눈을 감고는 다시 천천히 명상에 빠져들었다.
그의 거칠던 호흡도 점점 안정을 되찾았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기를 반복하자 하벨은 시간도 잊고 자기 자신도 잊는 깊은 명상에 빠져 무아의 상태가 되어 마음이 평온해졌다.
마음이 고요한 심해 같은 상태가 되자 하벨의 자아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자신이 그동안 배우거나 익혔던 모든 것들을 다시 성찰했다.
그것은 그동안 정체되어 있었던 6서클의 벽에 다다르는 기회가 되었다.
잡힐 듯 잡히지 않았던 기회가 또다시 찾아오자 하벨은 의지를 불태웠다. 그 같은 의지는 투명한 막 같은 6서클의 벽 속으로 스며들었다.
‘아… 따뜻하고 평온한 게 마치 엄마 품속 같아. 너무 좋아서 이대로 눌러 앉고 싶어.’
채채채챙.
그러나 그때 어디선가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 하벨은 그만 마음의 평온이 깨어져버렸다.
“아, 안 돼.”
안타까움에 소리쳐보았지만 의지는 다시 현실로 되돌아와 버렸다.
조금만 더 그곳에 머물렀으면 6서클의 벽을 허물고 7서클에 당당하게 올랐을 것이기에 너무나 안타까웠다. 안타까움은 곧 분노로 되돌아왔다.
순식간에 굳어진 얼굴과 두 눈에서 살기가 뻗어 나왔다.
덜컹.
“허, 허억! 영주님, 큰일 났습니다. 어쌔신들이 침입해왔습니다.”
“으음… 알았다. 루팽은 어디 있나?”
“어쌔신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으음… 어쌔신들은 얼마나 침입해 왔던가?”
“죄, 죄송합니다, 영주님. 아직 정확한 숫자는 모르겠지만 30명은 될 것 같습니다.”
“나의 호위를 맡고 있는 클로버 기사단원들이 2백 명인데 그까짓 어쌔신 30명을 당하지 못하고 밀린다는 게 말이 되나?”
“여기는 영주님의 영주성 안이며 지금은 새벽이라 영주님의 개인 연무장을 지키는 클로버 기사단원은 겨우 20명뿐이기에 숫자에서 밀려서 고전 중입니다.”
“그동안 너무 나태해졌군.”
“싸우는 소리를 들었을 테니 조금만 더 버티면 곧 기사들과 병사들이 이곳으로 달려올 것입니다.”
“그것을 어쌔신들이 모르겠나? 나름대로 그들은 모든 준비를 해서 온 자들이야.”
하벨은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힘들 내라. 영주가 저 안에 있다.”
채채챙.
“막아라. 막아야 한다.”
어쌔신들의 목소리가 들리면서 뒤에 루팽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으며, 흑의에 복면까지 눌러쓴 어쌔신 세 명이 개인연무장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영주가 저기에 있구나. 너희들은 호위병을 맡아라.”
두 명의 어쌔신들은 호위병을 상대하고, 어쌔신 두목으로 보이는 자는 성큼 하벨에게 달려왔다. 어쌔신 두목은 손에 들고 있던 롱소드를 휘둘렀다.
채채챙!
어쌔신이 휘두른 롱소드를 하벨은 여유롭게 소드 브레이커로 모두 막아내었다.
“으음… 왕자를 구했다더니 역시 검술실력이 뛰어나군.”
“넌 누구냐?”
“흐흐흐… 그건 알 것 없고 넌 죽어주면 된다.”
“네놈들에게 죽을 내가 아니다.”
“흐흐흐… 검술실력이 제법이지만 나보다는 한참 아래야.”
휘휙, 파파팟!
하벨은 상체를 좌우로 흔들면서 어쌔신의 공격을 여유롭게 피하고는 바닥을 박차고 뒤로 튕기듯 날아가며 한 손바닥을 내뻗었다.
“매직 미사일(Magic missile).”
“허억, 마법사였어?”
콰콰쾅!
어쌔신 두목은 뒤로 공중제비를 돌면서 매직 미사일을 피하고는 얼굴을 찡그렸다.
비록 복면 때문에 표정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는 꽤나 당황하고 있었다.
벽에 적중된 매직 미사일은 소멸했지만 벽의 일부가 부서질 만큼 위력이 대단했다.
두목 어쌔신은 의뢰를 받을 때 이미 하벨이 검술이 제법 뛰어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마법까지 펼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예상도 하지 못했기에 상당히 당황했다.
‘으음… 이거 어렵게 되었는데, 어쩌지?’
어쌔신 두목 곁으로 거리를 좁히던 하벨은 갑자기 뒤로 멀리 물러났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 이유는 금방 드러났다.
어쌔신 두목은 언제 품속에서 꺼낸 것인지 입에 대롱을 물고 있었는데 하벨을 향해 독침을 쏘려 했다가 주춤거렸던 것이다.
‘으… 어떻게 내가 암습을 하려는 걸 알고 물러났지?’
“흥, 그런다고 피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받아랏!”
후욱, 훅훅!
대롱에서 발사된 독침이 하벨을 향해 날아왔지만 이미 준비하고 있었던 그이기에 어쌔신 두목의 공격은 무위로 끝났다.
“실드(Shield).”
티티팅!
독침은 하벨이 펼친 보호막에 가로막혀 바닥에 힘없이 모두 떨어졌다.
“이, 이런 제기랄.”
“체인 라이트닝(Chain lightning).”
파지지직!
“크으… 아아악!”
번개사슬이 어쌔신 두목의 몸을 강타하자 그는 몸을 부르르 떨며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홀드 퍼슨(Hold person).”
“으으… 이익, 몸이 움직이지 않아.”
“그만 포기해라. 넌 내 손에서 벗어날 수 없어.”
“흐흐흐. 역시 대단해. 오늘은 내가 졌지만 다음번에는…….”
번쩍!
포박된 채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던 어쌔신 두목은 품속에서 마법 스크롤을 꺼낸 후 찢어서 빛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푸푹!
“아악… 커억!”
털썩.
어렵게 두 명의 어쌔신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호위병 곁으로, 어느새 루팽이 달려와 적들을 순식간에 검으로 베어버렸다.
조용하던 영주성이라서,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는 금방 곳곳으로 퍼져 나갔기에 그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클로버 기사단원들이 즉시 롱소드를 들고 뛰어 왔던 것이다.
이미 영주성에는 비상종이 울리면서 병사들도 무기를 들고 달려와 어쌔신을 포위했기에 그들은 더 이상 기사들의 상대가 아니었다.
처음에 어쌔신들은 기습의 묘미를 살렸기에 유리했지만 클로버 기사단원들은 평소 혹독하게 훈련을 받은 자들이었기에 금방 정신을 차려 잘 대처해주었다. 여기저기에서 기사들이 달려와 지원해주어서 하벨의 영지는 금방 어쌔신들을 진압할 수 있었다.
클로버 기사단원은 10명이 죽고 7명이 부상을 당했지만 기습 침투했던 어쌔신들은 모두 35명으로 두목을 제외한 전원이 기사들의 검에 베여 쓰러졌던 것이다.
‘으음… 내가 그동안 너무 예지력만 믿고 신변안전에 대해서 등한시했구나. 이번과 같이 며칠간 명상 중일 때에는 특히 조심했어야 했는데 말이야.’
“영주님, 괜찮으십니까?”
“나는 괜찮지만 앞으로 또 이 같은 일이 생길 수 있으니 그게 걱정이구나.”
“영주님, 신변안전을 위해서 클로버 기사단원을 대폭 늘려야겠으니 허락해주십시오.”
“알겠다. 이번 일을 겪고 보니 나도 그런 생각이 드는구나.”
“감사합니다. 영주님.”
“루팽이 이번 일을 맡아서 우수한 실력을 가진 자를 선발해라. 클로버 기사단원을 5백 명까지 늘리도록.”
“영주님, 그렇게 된다면 앞으로 클로버 기사단원들이 적어도 250명은 항시 곁에 있을 수 있겠습니다.”
다음 날.
하벨은 영주성에 직접 마나석 한 개로 마법결계를 설치했다.
텔레포트 같은 이동마법으로 영주성으로 직접 들어오지 못하도록 영주성에 보이지 않는 보호막이 생성되었다. 이 마법결계은 강력한 주문이 걸려 있어서 대마법사라고 할지라도 직접 들어오지 못하게 되었다.
또한 알람마법도 곳곳에 설치되었기에 어쌔신이나 다른 적들이 성문을 통과하지 않고 성벽을 넘어 침투하게 되면 즉시 요란한 소리가 울리게 되도록 되었다.
이 두 가지만 해도 대단한데 여기에다가 대 방어 마법진을 설치했기에 6클래스의 강력한 공격마법에도 영주성이 견딜 수 있도록 마나석을 한 개 투입해 설치했다.
마나석은 얼마 전에 하벨이 직접 궁정마법사에게서 10개를 구입했던 것이었다. 마나석 한 개는 5천 골드나 하는 엄청난 물건이었으나 자금이 넘쳐나는 하벨이었기에 과감하게 열 개나 구입했던 것이다.
최근 2년 동안에 아비린 왕국은 천일염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그 자금력으로 전투력을 키웠다.
귀족파와 중도파는 급격하게 국왕파가 병사를 대대적으로 모집해 양성하자 위기감을 느껴 회의를 소집했다.
하지만 귀족파는 귀족파대로, 중도파는 중도파대로 서로 이권이 걸려 있었기에 쉽게 뭉치지 못했다.
그 틈을 집요하게 파고든 국왕파에서는 귀족파와 중도파의 하급 귀족들부터 소리 소문 없이 포섭해 나갔다.
자신감을 얻은 후에는 중급귀족과 고위귀족들까지 이제는 당당하게 포섭하여 일시에 귀족파와 중도파를 누르게 되었다.
30퍼센트 정도였던 국왕파의 세력은 이제 55퍼센트를 넘어섰기 때문에 귀족파 25퍼센트와 중도파 20퍼센트는 더 이상 국왕파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급기야 최근에는 귀족파와 중도파가 자신들의 지지세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국왕파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국왕파에서는 이들 두 세력인 귀족파와 중도파 귀족들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서, 그들을 왕국의 변방으로 발령해 왕국을 수호하도록 조치했다.
아비린 왕국의 남부 국경사령부.
3만의 병력을 보유한 남부 국경사령부에 귀족파의 고위귀족인 아나류 후작이 부임했다.
크라운 왕국의 국경과는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꿀꺽꿀꺽.
크으으.
“내가 권력에서 밀려나 이곳으로 좌천되다니… 말도 안 돼.”
“후작각하, 그렇다고 계속 술만 드시면 어쩝니까?”
“다린 부관, 내가 지금 술 마시는 것 말고 뭘 하겠나?”
“비록 중앙정치에서 밀려나셨지만 조금만 참으십시오.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것입니다.”
“아, 아냐. 이제 귀족파나 중도파는 끝났어. 국왕파가 득세했기 때문에 더 이상 나에게는 기회가 없어.”
“귀족파의 수장인 헤스페 공작님께서 이대로 국왕파에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그래. 헤스페 공작님께서 계셨지.”
“그렇습니다. 조금만 이곳에 계시면 좋은 소식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언제까지나 이곳에서 썩고만 계시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핫핫핫… 역시 나를 걱정하는 사람은 다린 부관뿐이야. 고맙네. 오늘만 술을 마시고 내일부터는 정신을 차려야겠어.”
“후작각하, 최근 크라운 왕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척후병들의 보고로는 강 건너 야산 너머에 있는 크라운 왕국 북부 국경사령부에 병력이 계속 충원되고 있다 합니다.”
“그래? 내가 한 달 전에 듣기로는 4만 정도라 걱정할 것 없다 생각했는데?”
“예,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우리와 비슷한 6만으로 늘어났다 합니다.”
“뭐라? 6만!”
“우리와 전쟁이라도 하려는지 얼마 안 되는 기간 동안 국경사령부 쪽으로 병력을 늘리고 있으니 첩자를 투입해 살피는 게 좋겠습니다.”
“으음… 그렇다면 알아보는 게 좋겠어. 내일 당장 첩자를 파견해보게.”
“예, 후작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