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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권 황금해골단
“감사합니다, 영주님.”
밀 자루를 받아가는 마을 주민들은 모두 하벨에게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면서 집으로 돌아갔고, 촌장과 일부 주민들은 남아 밀 자루를 마을 회관으로 옮겼다.
“밀을 전부 내렸으면 이제 출발하자, 스탈 경.”
“예, 영주님. 출발한다. 서둘러라. 출발!”
영주 일행이 멀어지자 촌장과 마을 주민들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다가 각자 집으로 사라졌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정말 좋은 영주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귀족들은 모두 탐욕스럽고 마음에 안 들면 죽이기까지 하는 무서운 사람이라 인식되었지만 새로 온 영주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하벨은 한참을 이동해 오후 늦게야 영주성에 도착했다.
해안의 절벽 위에 세워진 영주성은 멀리서 볼 때에는 백색의 성이라 제법 멋있었는데, 직접 들어와 보니 곳곳에 칠이 벗겨지고 허물어지거나 벽에 금이 간 곳도 보였다.
“뭐야, 이거 너무 낡았잖아? 스탈 경, 영주성이 왜 이래?”
“보수할 비용이 없어서 아직 이렇습니다, 영주님.”
“으음… 이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인데?”
하벨이 스탈과 대화하고 있을 때 하녀들과 집사가 다가오더니 고개를 숙이면서 인사했다.
“영주님께 인사 올립니다.”
“집사와 하녀들인가?”
“그렇습니다. 저는 영주성을 책임지고 있는 집사 빈센트이고 이쪽은 하녀장인 셀리나와 하녀들입니다, 영주님.”
빈센트 집사는 사십대 후반으로 보이고 깡마른 몸에 광대뼈가 툭 튀어나와 있으며 보기에도 여간 깐깐한 성격이 아니지 싶었다.
또한 하녀장인 셀리나는 둥그스름한 얼굴에 풍만한 몸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무척 정이 많을 것 같았다. 마치 옆집 아주머니 같은 인상이다.
“반갑네. 나는 클로버 폰 하벨 백작이며 이제부터는 스너비 영지를 다스릴 영주이네.”
“최선을 다해서 영주님을 뫼시겠습니다. 식사가 마련되어 있으니 안으로 드시지요.”
“알았네. 스탈 경도 같이 가세나.”
거대한 홀의 천장에는 샹들리에가 밝게 빛나고 긴 테이블에는 하벨과 기사 스탈이 앉아서 식사를 했다.
“음… 요리가 맛있군.”
“감사합니다, 영주님.”
“영주성은 집사가 관리했다곤 하지만 영지는 누가 관리했나? 행정관인가?”
“조르단 행정관이 전담하여 영지를 관리해오고 있습니다.”
“식사 후에 조르단 행정관을 좀 봤으면 하는데, 집사.”
“오전에 세브리노 마을에 사소한 일이 생겨 그곳에 갔는데 영주성으로 돌아올 때가 되었습니다.”
“빈센트 집사는 얼마나 이곳에서 일했지?”
“올해로 34년째입니다, 영주님.”
“34년이나 되었나?”
“그렇습니다, 영주님. 13살 때부터 영주성에 들어와 잡일부터 시작해 집사 일만 19년째입니다.”
“앞으로도 나를 많이 도와주게.”
“여부가 있겠습니까. 최선을 다해 영주님을 뫼시겠습니다.”
“좋아, 그럼 조르단 행정관이 영주성에 오면 보고를 받을 테니 준비해두게.”
“예, 알겠습니다, 영주님.”
하벨이 기사 스탈과 차를 마시며 스너비 영지에 관계되는 일을 듣고 있을 때 집사가 다시 홀에 들어왔다.
“영주님, 조르단 행정관이 돌아왔습니다.”
“그런가? 얼마나 기다리면 되지?”
“곧 보고할 문서를 들고 올 것이니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알았네. 그럼 차나 한잔 더 가져다주게나.”
“예, 바로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쪼르르.
“향과 맛이 좋으니, 스탈 경도 한잔 더 하게.”
“감사합니다, 영주님.”
그렇게 차를 두 잔째 마시고 있을 때 홀의 문이 열리면서 배가 심하게 많이 나온 전형적인 비만형 오뚝이 몸매를 가진 중년인이 들어왔다.
눈썹이 처지고 입술이 두껍지만 전체적으로 인심 좋게 생긴 이웃집 아저씨 같은 타입이었다.
“영주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행정관 조르단입니다.”
“반갑네. 집사도 옆에 있으니 바로 보고를 받고 싶은데 가능한가?”
“예, 그럼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시작해보게.”
조르단은 보고를 시작했다.
“스너비 영지에는 96개의 마을에 6만2천 명의 영지민이 있습니다.”
“노예와 유민이 거기에 포함되었나?”
“그건 아닙니다. 노예는 약 1만7천 명에 유민은 1만 명 정도 됩니다.”
“그럼 9만 명 정도 된다는 말인데 인구 조사는 언제 했나?”
“3년 전에 한 번 하고 지금껏 못 했습니다.”
“스너비 영지의 영주는 언제부터 없었나?”
“3년 전에 레드포드 영주님께서 몬스터 사냥에서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후부터입니다.”
“그렇군. 그럼 영지의 병사는 어떻게 되나?”
“병사는 총 1천2백 명인데 그중에 기병이 3백 명, 나머지는 일반 보병들입니다. 영주성에는 3백 명의 보병과 1백 명의 기병이 있습니다.”
“영주성에서 일하는 사람은?”
이번에는 옆에 있던 빈센트 집사가 대답했다.
“집사인 저를 비롯해 셀리나 하녀장과 하녀 10명, 남자 노예 50명과 여자 노예 30명까지 해서 총 92명입니다.”
“하녀까지는 필요하다는 걸 알겠는데 노예들은 어디에 필요한가?”
“힘쓰는 일에는 남자 노예들이 동원되며, 여자 노예들은 하녀장과 하녀들이 요리나 빨래를 할 때 도와주고 있습니다. 영주성에는 기사님을 포함해 기병과 보병 등 약 4백 여 명의 사람들이 상주하고 있기에 생각보다 일이 많습니다.”
“병사들의 식사와 빨래를 하려면 그 정도의 인원은 필요한 게 맞겠어. 영지에는 기사가 얼마나 있지?”
다시 조르단이 질문에 대답했다.
“영주님을 모시러 떠났던 스탈 경과 잉스 경, 베룬 경과 영지에 남아서 병사를 관리하고 있는 리처드 경, 렉스 경, 리오 경을 포함해 모두 6명입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적은 것 같은데, 혹시 헤이즌 자작은 병사들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 알고 있나?”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총 7천 명 정도를 보유하고 있으며 그중 중장기병이 6백 명, 기병이 1천4백 명, 나머지는 보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비린 왕국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고 있는데 혹 영지전 같은 것도 일어나는가?”
“주변의 영지에는 없었지만 왕국의 동부나 남부에서 간혹 일어나기는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알겠네. 그럼 영지의 수입은 얼마나 되나?”
“영지민의 세금으로 4천 골드, 상인의 세금이 2천 골드, 몬스터를 사냥해서 얻은 각종 가죽이나 부산물의 판매로 얻은 수익이 5백 골드 정도로 총 6천5백 골드입니다만, 영주성의 식비와 기타 비용으로 1천2백 골드를 지출하며 병사들의 급료로 3천 골드, 기타 비용으로 3백 골드, 왕궁에 보내는 세금으로 1천2백 골드를 지출하기 때문에 남는 게 약 8백~1천 골드 정도입니다. 그래서 약 5천 골드 정도 보관되어 있습니다.”
“조르단 행정관, 한 가지 알려줄 게 있네. 내가 국왕폐하로부터 영지를 하사 받을 때 1천 골드의 정착금과 3년 동안 세금 면제를 받았으니 올해부터는 왕궁으로 보내는 1천2백 골드는 안 보내도 될 것이네. 보고가 끝나면 내가 1천 골드를 줄 테니 보관해두게.”
“영주님, 행정적인 업무는 제가 총괄하지만 영지에서 거둬들이는 돈은 집사이신 빈센트 경이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게 맞나, 빈센트 집사?”
“그렇습니다. 영지에서 거둬들이는 돈은 모두 영주님의 재산인데 송구스럽게도 현재 5123골드가 남아 있습니다.”
“그런가? 그럼 영주성이 많이 낡았던데 보수에 지출을 좀 하지 않고?”
“공식적으로 나가는 비용은 어쩔 수 없지만 그 밖에는 영주님의 허락 없이는 단 1코인이라도 임의로 지출할 수 없습니다.”
“후후후… 그것만 봐도 빈센트 집사가 얼마나 원칙대로 일을 처리했는지 알겠으니 앞으로도 나를 많이 도와줘야 할 거야.”
“영주님,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조르단 행정관과 빈센트 집사에게서 영지의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서 보고를 들었으니 그 정도면 대략적이나마 영지 사정을 알게 되었다. 이제부터 영주로서 첫 임무를 내리겠으니 잘 듣게. 영지의 인구조사를 실시한다. 그 임무는 스탈 경이 맡아서 영지의 96개 마을에 있는 모든 영지민과 노예, 유민들의 수를 조사하도록. 기간은 일주일이다.”
“일주일이면 너무 촉박합니다, 영주님.”
“영주성을 지키는 병사들을 제외한 병사 8백 명 중에 기사 6명이 각각 1백 명의 병사를 대동하고 영지의 각 마을을 조사할 때 남녀의 성별과 어린아이, 청년, 성인, 노인 등 나이별로 조사하고 노예와 유민도 마찬가지야. 또한 어느 영지민이 노예나 유민을 보유하고 있는지까지 모든 것을 조사하도록.”
“예, 영주님. 꼭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아침 일찍 스탈 경은 내가 지시한 일을 착수하고 오늘은 여기까지.”
테이블에서 일어난 하벨은 홀을 벗어나 목욕탕으로 들어가 몸을 씻고는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는 마법서를 꺼내 마법 공식을 외운 후 명상을 하고는 침대에 누웠다.
‘으음… 영지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낙후되어 있으니 내일부터 영주성을 먼저 살펴보고 나서 영지의 각 마을을 순회하여 직접 살펴본 후 대책을 마련해야겠어.’
하벨은 영지의 각 마을을 순례해보았다. 마을들은 역시나 너무 낙후되어 있었는데 헐벗고 굶주리는 영지민이 절반 가까이 되었다.
대부분의 마을은 밀농사를 해서 생활했고, 영지의 서쪽 해안에서는 고기잡이를 해서 먹거나 생선을 말려 그것을 팔아 식량을 구입했다.
영지에 특산물이 될 만한 것은 아직 없었으며 북쪽은 드래곤 산맥의 끝자락이라 몬스터가 매년 출몰했기 때문에 몬스터를 사냥해 그 가죽과 부산물을 팔아 생활하고 있었다.
획기적인 대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영지의 발전은 불가능했다.
스너비 영지는 너무 낙후된 영지라 인근의 영주들도 이득이 전혀 없어 영지전 같은 것은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이 그나마 천운이었다.
인구조사를 해보았더니 96개 마을에 영지민은 63022명이며 노예가 17834명, 유민이 16324명이었기에 스너비 영지의 총인구는 97180명이었다.
“으음… 노예와 유민을 합하면 약 10만이구나. 특산물도 없는 상황에 이틀에 한 끼 먹기도 벅찬 생활을 하다 보니 사람들의 얼굴에 희망이 전혀 없었어. 이러다가는 망하겠어. 뭔가 획기적인 사업을 해야만 일어설 수 있는데… 뭐가 좋을까?”
며칠을 고민하다가 바다를 보니, 문득 염전이 떠올랐다.
그래서 주방에 들어가 조사를 해보았더니 역시나 이곳에는 천일염이라는 것이 없었다. 암염을 캐서 사용하는 바람에 가격도 엄청나게 비쌌다.
영주 집무실 창밖을 내려다보던 하벨은 깊은 생각에서 깨어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확실하게 소득을 올리기 위해서는 천일염만 한 것이 없어. 당장 시작하는 게 좋겠어. 빈센트 집사!”
“부르셨습니까, 영주님?”
“오늘은 어디 가볼 곳이 있으니 2백 명의 병사를 준비해주게.”
“알겠습니다, 영주님.”
병사를 대동하고 영주성을 나온 하벨은 말을 타고 해안을 둘러보고 오후 늦게 돌아와서 빈센트 집사를 집무실로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