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운 Luck-35화 (35/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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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권  황금해골단

‘으음… 비록 백작이라고는 하나 상대는 겨우 스너비 영주일 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먼저 도발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뭔가 있는 것 같으니, 당분간은 첩자를 보내 상황을 알아본 뒤에 처리해도 늦지 않아. 두고 보자.’

짹짹짹!

새소리가 들리자 잠에서 깨어난 하벨은 세수를 하고 간단하게 아침을 먹은 후에 영지병을 데리고 바람의 향기를 나섰다.

길이 제법 잘 닦여 있었기에 이동하기에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얼마 후 로이테 마을을 벗어난 일행은 오후가 되어서야 스너비 영지의 첫 마을인 월리슨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도달 했다.

전방이 온통 밀밭으로, 밀이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전형적인 한적한 농촌 풍경이었다.

“스탈 경, 여기가 스너비 영지의 첫 마을인 월리슨 마을인가?”

“그렇습니다, 영주님.”

“영주성은 어디에 있나? 먼가?”

“여기에서는 하루 정도는 더 가야만 영주성이 나옵니다. 스너비 영지에서도 서쪽 해안에 위치해 있기 때문입니다. 영주님.”

“해안에 영주성이 있었는가? 그럼 오늘은 월리슨 마을에서 지내야 하는가?”

“그렇습니다, 영주님. 제가 먼저 가서 준비하겠습니다.”

“아냐, 그럴 것 없어. 그냥 가지.”

“그래도 어떻게 그런…….”

“스탈 경, 되었다고 해도 그러는구만. 영지민들과 첫 대면인데 있는 대로 느끼고 싶어서 그래.”

“그럼… 아, 알겠습니다, 영주님.”

영지 병사들과 짐수레를 앞세우고 가자 월리슨 마을 입구에 설치되어 있는 검문소를 지키던 병사들이 먼저 스탈을 알아보고는 달려왔다.

“스탈 님, 이제야 오십니까?”

“아, 베스 백부장.”

“예, 스탈 님. 뒤에 계시는 분이 영주님이십니까?”

“그렇다네. 오늘은 여기에서 하루 지내고 영주성으로 가실 거니 촌장에게 말해주게나.”

“알겠습니다, 스탈 님.”

검무병 중 하나가 촌장에게 달려갔고, 얼마 후 급하게 촌장이 뛰어와 엎드렸다.

흰머리와 주름살이 있는 시골의 평범한 노인이었다.

“영주님, 납시셨습니까?”

“자네가 촌장인가?”

“그렇습니다, 영주님.”

“오늘 하루 이곳에서 보내고 성으로 가야 하는데 괜찮겠나?”

“그러믄입쇼, 영주님.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촌장이 안내한 곳은 월리슨 마을의 회관으로 1백 평은 될 정도로 넓었다.

한쪽에는 벽난로가 있었는데 지금 장작을 지펴서인지 불이 활활 타올라 제법 훈훈했다.

스너비 영지의 날씨는 여름이 8개월이고 나머지 4개월은 늦가을 날씨였는데, 영지가 속해 있는 아비린 왕국도 대체적으로는 이런 날씨지만 왕국의 북부 날씨는 여름이 5개월, 가을이 4개월, 나머지 3개월은 겨울이었다.

‘마을 회관으로 걸어오면서 본 집들은 약 1백 채 정도로 보였는데, 그중에서 십여 집만 통나무집이었고 나머지는 흙으로 지은 집이었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낙후되었어.’

“영주님,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십니까?”

“아, 스탈 경… 월리슨 마을 주민은 몇 명이나 되지?”

“약 650명에 집이 1백 채는 될 것입니다, 영주님.”

“그런가? 하면 스너비 영지에는 이런 마을이 몇 개나 되나?”

“여기보다 큰 곳도 있고 작은 곳도 있습니다만, 96개 마을입니다, 영주님.”

“그럼 영지민은 어떻게 되지?”

“3년 전에 파악한 바로는 약 6만2천 명입니다.”

“그것은 노예와 유민들을 전부 포함한 건가?”

“그, 그건 아닙니다, 영주님. 제가 말한 것은 농노와 평민을 포함한 수입니다.”

“그럼 노예와 유민들은 얼마인가?”

“그건 파악해보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만, 노예가 약 1만7천 명에 유민이 1만 명 정도 될 것입니다.”

“그럼 대략적으로 9~10만 명 정도 되는군.”

“그렇습니다, 영주님.”

마을 회관의 문이 열리면서 촌장을 비롯해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들어왔는데, 그들의 손에는 뚜껑을 덮은 접시가 들려 있었다.

정성스럽게 음식을 준비한 모양이다.

“영주님, 미천하지만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그런가. 잘 먹겠네.”

“그럼 저희들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뚜껑을 열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수프와 빵, 과일, 삶은 닭고기가 보였다.

3명은 먹어도 될 정도로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다.

“이거 혼자 먹기엔 너무 많은 것 같은데 스탈 경도 같이 들지 그래.”

“아, 아닙니다, 영주님.”

“괜찮아, 같이 들어. 어서.”

“예,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영주님.”

식사를 마치자 특별하게 할 일이 없었던 하벨은 마법 주머니 속에서 마법서를 꺼내 펼쳤다.

스탈은 방해하지 않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하벨은 몰랐지만 드래곤 하트의 영향으로 하루가 다르게 마나가 쌓이면서 얼마 전 마법 고리가 형성되면서 5서클에 접어들었다.

이미 5클래스까지의 마법서를 모두 독파한 하벨이었기에 지금은 6클래스 마법서를 읽고 있는 것이다.

한참을 들여다보던 하벨은 갑자기 마법서를 내려놓고는 생각했다.

‘얼마 전 클라이스 현자에게서 들었던 말이 떠오르는군. 내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드래곤의 도움이 필요한데, 정황으로는 내가 처음 깨어났던 곳이 틀림없이 크린베른 숲이었고 골드 드래곤 칼리드란의 레어였어. 그런데 그가 없는 것으로 보아서는 자연의 품으로 되돌아간 것 같으니, 이제 유일한 희망은 드래곤 산맥에 있다는 레드 드래곤 드로이얀뿐인 것 같은데 어떻게 도움을 받을까?’

하벨이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자존심이 강하고 제멋대로인 드래곤들이 한낱 인간의 말을 들어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되돌아가는 방법을 꼭 알고 있다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언젠가는 돌아가야겠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예지력의 도움으로 왕자를 위기에서 구해 귀족 작위도 받고 영지도 받게 된 것이다.

‘일단 내가 아는 것들은 칼리드란의 레어에 있던 마법서와 책들에서 얻은 지식뿐이다. 이것으로는 이 세계를 완전하게 알고 있다고 할 순 없으니 영지를 다스리면서 좀 더 파악한 후에 드로이얀 레어로 가는 수밖에 없겠지.’

생각에서 깨어난 하벨은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들어갔다.

몇 시간 후 명상에서 깨어났더니 몸이 훨씬 가벼웠고 새벽이었다.

잠시 눈을 붙이니 어느덧 아침이 밝아왔다.

아침에도 어제 저녁처럼 그렇게 촌장과 마을 사람 몇 명이 음식을 가져와 내려놓고 나가려는데, 하벨이 말했다.

“촌장!”

“부르셨습니까, 영주님?”

“한 시간쯤 뒤에 마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회관 앞에 모아줬으면 해.”

“아, 알겠습니다, 영주님.”

“촌장, 그만 나가봐도 되네.”

“그럼 나가보겠습니다요, 영주님.”

영주가 명령하니 어쩔 수 없다 생각한 촌장은 즉시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혹시라도 늦었다가는 어떤 불호령이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영주가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이유를 모르는 기사 스탈은 궁금증이 일어 물어보았다.

“영주님께서 무슨 일로 마을 사람들을 모이게 하신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뭐 별것 없어. 내가 보기엔 그리 넉넉하게 보이지 않았는데 이렇게 음식을 준비한 걸 보니 기특해서 말이야.”

“그렇습니까? 최근 2년간은 흉년이라 더욱 살림이 어려워졌지만 올해는 그나마 평년작은 될 것 같습니다, 영주님.”

“그럼 안 봐도 얼마나 어려운지 알겠는걸.”

“영지민들이 거의 대부분 식량이 떨어질 때가 되었지만 한 달 정도면 밀을 수확할 수 있기에 그 정도는 버틸 것입니다.”

“그럼 더 잘되었군.”

“더 잘되었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영주님?”

“마을 사람들이 모이면 식량을 좀 나누어 주려고 해.”

“식량을요?”

“식사도 대접받았는데 짐마차에 실려 있는 밀 자루를 나누어 주고 가면 될 것 같아.”

“제가 생각하기에는 영주님께서 마을 주민들에게 너무 많은 은혜를 내리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내가 영주이니까 이들을 돌봐줘야 하지 않겠어?”

“그, 그건 그렇습니다만…….”

식사를 마치고 하벨이 밖으로 나오자 이미 마을 회관 밖에는 마을 주민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제대로 씻지도 않았고 입고 있는 옷도 낡아 난민보다도 못한 생활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으음… 역시나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군. 내가 다스리는 동안만이라도 잘 먹게 해줘야겠어.’

“영주님, 모두 모였습니다.”

“모두들 잘 들어라. 난 클로버 폰 하벨 백작이며 앞으로 이 마을을 포함해 스너비 영지를 다스릴 영주다. 내 얼굴을 잘 기억해둬라. 이상이다!”

마을 주민들은 혹시라도 잘못한 것이 있나 하고 겁을 집어먹고 있었는데, 그냥 자기가 영주이니 얼굴을 잘 기억하라고 말한 게 전부였기에 당황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벨은 촌장에게 말했다.

“촌장, 월리슨 마을에는 주민과 집이 얼마나 되나?”

“주민은 734명에 집은 107채입니다, 영주님.”

“734명의 주민 중에는 노예나 유민은 없나?”

“여기 월리슨 마을에는 노예나 유민은 없습니다, 영주님.”

“그렇군. 밀은 언제 수확하나?”

“약 한 달 정도면 수확이 가능할 것입니다, 영주님.”

“그런가? 그때까지 식량은 충분한가?”

“그때까지는 버틸 수 있습니다, 영주님.”

“그리 넉넉하지도 못한 살림인데 내가 저녁과 아침을 얻어먹었으니 그냥 갈 수는 없고 해서 가지고 있는 밀을 좀 나누어줄 테니 마을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게나, 촌장.”

“밀을 저희들에게 나누어 주신단 말입니까, 영주님?”

“그래, 뭐 잘못된 거 있나?”

“그, 그건 아니지만… 너무 뜻밖이라서 그렇습니다, 영주님.”

“촌장, 날 그렇게 어려워할 필요 없네. 스탈 경, 짐마차는 떠날 준비가 되었는가?”

“예, 영주님. 모든 준비가 끝났으니 언제든 출발하시기만 하면 됩니다.”

“좋아, 그럼 짐마차 10대에 실려 있는 밀 자루 중 2백 자루만 내려서 한 집당 한 자루씩 나누어 주고 남는 것은 촌장이 보관했다가 나중에라도 빵을 만들어 마을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게.”

“정말 그렇게 해도 되겠습니까, 영주님?”

“내가 주는 것이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가져가.”

“고, 고맙습니다, 영주님.”

촌장의 지시에 따라 마을 주민들은 차례대로 짐마차 앞에 섰다.

병사가 밀 자루를 건네자 주민은 주춤거리면서 눈치를 보았고 촌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밀 자루를 받고는 환해진 얼굴로 말했다.

“영주님, 감사합니다.”

그가 밀 자루를 어깨에 메고 집으로 걸어가는데 어린아이들이 신이 나서 뒤를 따라 뛰어갔다.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생활이었는데 밀 한 자루가 갑자기 생겼으니 밀을 수확할 때까지는 하루에 두 끼씩 먹어도 충분한 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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