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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권 황금해골단
커튼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었다.
호화로운 방 가운데 거대한 침대가 놓여 있으며 그곳에 한 사람이 누워 있었다.
하벨은 눈을 뜨고 좌우로 눈동자를 굴려 상황을 살피고는 상체를 일으켰다.
“여, 여긴? 그렇구나. 왕궁의 별관이었지.”
지난밤 연회가 늦게 끝이 났기에 평소보다 늦게 일어난 하벨은 주위를 두리번거리곤 여기가 어디인지 생각했던 것이다.
간단하게 아침을 먹은 하벨은 말을 타고 도심으로 나왔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한곳으로 말을 몰아간 그는 한 골목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퍽퍽퍽… 크으!
“이 자식, 밟아버려.”
“우리를 우습게 봐서 그래. 이런 놈은 초장에 확실하게 잡아야 되는 거야.”
30명의 남자들이 한 남자를 가운데 놓고 집단 구타를 하고 있었다.
하벨이 보기에는 30명의 남자들은 질이 좋지 않은 뒷골목 건달들로 보였으며 구타를 당하고 있는 자는 얼마 전에 퍼거슨 상점에서 보았던 거구의 사내였다.
신장이 220센티미터에 몸무게가 2백 킬로미터나 나가는 거구라고는 보기 힘들게 선한 눈빛을 가진 자였다.
거구의 사내가 주먹 한방만 날려도 맥없이 날아가 버릴 것 같은 건달들이 몽둥이로 사정없이 내리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거구의 사내는 전혀 반항하지 않았다.
“잠깐!”
“뭐, 뭐야?”
“네놈은 뭔데 나서느냐?”
건달들은 살짝 놀란 얼굴로 하벨을 쳐다보고 한마디씩 말했다.
그러나 하벨은 겁을 집어먹기는커녕 오히려 입가에 미소가 한층 더 짙어지기만 했다.
“후후후… 네놈들이 귀족인 나에게 무례하게 굴다니 죽고 싶으냐?”
“뭐, 뭣 귀족…이라고?”
“으음… 귀족이시라니 몰랐습니다. 우리 같은 천민의 일에 참견하시지 마시고 그냥 가십시오.”
건달 중의 대장으로 보이는 자는 꼭 쥐 상을 하고 있었는데 주위를 재빨리 살펴보면서 하벨의 모습도 살폈다.
‘으음… 척 보니 세상 물정 모르는 귀족의 자제로 보이긴 하지만 우리 일에 참견하는 것은 안 좋은데 어쩌지? 괜히 귀족을 건드려서 좋을 게 없으니 그냥 말로 잘 타일러서 돌려보내야겠어.’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사람을 그렇게까지 구타한 이유를 말해봐라.”
“뭐, 그러지요.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자가 우리의 돈을 빌려가서 쓰고는 안 갚았기에 돈을 회수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몇 대 때리게 된 겁니다요.”
“그래? 얼마나 빌려갔는데?”
“37골드입니다요.”
“아, 아닙니다. 3골드입니다.”
“왜 말이 다르지? 저자는 3골드를 빌려갔다고 하는데?”
“음… 처음에 돈을 빌려갈 때에는 3골드가 맞습니다. 그러나 만약 6개월 내에 갚지 않을 시에는 그 11배인 33골드를 갚겠다고 계약서에 사인했으며 한 달 이후부터는 하루에 1골드씩 이자가 붙게 되는데, 오늘이 4일째이니 정확하게 37골드가 맞습니다.”
“너는 왜 돈을 갚지 않았느냐?”
“제가 빌린 돈 3골드와 그 이자로 6실버를 준비해 갚으러 가던 중에 소매치기를 당해 돈을 전부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돈을 갚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돈을 못 갚았다고 집단으로 그렇게 구타하면 되느냐?”
“저희들도 처음부터 이렇게 하려던 것은 아닙니다. 저놈이 도망치다가 붙잡혔는데도 불구하고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우리를 공격하기에 어쩔 수 없이 우리가 폭행하게 된 것입니다.”
“으음… 그럼 내가 한 가지 제안을 하지. 어떠냐?”
“어떤 제안이신지 말씀해보십시오.”
“내가 저자가 빌려간 돈 37골드를 주면 이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하겠느냐?”
“뭐, 저놈의 돈을 대신 갚아주시겠다면야 저희들로서도 더 이상 상관할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알았다. 여기 있으니 받거라.”
하벨이 주머니 하나를 던지자 쥐 상의 건달 대장이 받아서는 확인해보니 40골드였다.
“3골드가 많습니다.”
“그걸로 술이나 한잔씩 하면 될 거다.”
“하하… 고맙습니다, 기사님.”
건달들은 하벨을 향해 인사를 꾸벅하고는 재빨리 저쪽으로 사라졌고 옷에 흙이 많이 묻은 거구의 사내가 일어나 하벨에게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기사님.”
“으음…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루팽이라 하옵니다, 기사님.”
“루팽, 나를 따라가겠느냐?”
“예에? 저를요?”
“그래. 내가 보기에 힘 좀 쓸 것 같고 보아하니 일가친척도 없을 것 같은데?”
“그, 그건 그렇습니다만, 제가 어찌?”
“왜 싫으냐?”
“그, 그건 아니옵니다, 기사님. 큰 은혜를 입었는데… 따르겠습니다.”
“후후후… 루팽이라고 했지?”
“예, 기사님.”
“하하하… 나는 기사가 아니라 클로버 폰 하벨 백작이라고 한다.”
“허억… 백작님이시라구요?”
“그래. 앞으로 너는 날 따라 스너비 영지로 갈 것이니 따라 오거라.”
“예. 알겠습니다, 백작님.”
왕궁의 별관으로 돌아온 하벨은 시녀들에게 루팽을 깨끗하게 목욕시키고 덥수룩했던 수염과 머리카락을 깎고 새 옷으로 갈아입히도록 지시했다.
한나절 동안이나 시녀들에게 휘둘린 루팽은 새 옷으로 갈아입고 가죽 갑옷까지 착용한 후에 하벨 앞에 섰는데 상 거지꼴에서 이제는 백작의 당당한 호위병이 되었다.
“흐음… 이제야 사람 구실 좀 하겠어.”
“백작님, 앞으로 저는 어떤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까?”
“너는 나의 호위병이 되어 날 따라다니게 될 것이니 오늘부터 훈련을 받게 될 것인데, 너는 어떤 무기를 잘 다루느냐?”
“퍼거슨 상점에서 일하기 전에는 용병 일을 1년 정도 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풀 액스(Pole axe)를 주로 사용했습니다.”
“풀 액스라고 하면 손잡이가 긴 도끼를 말하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도끼의 손잡이가 1미터 정도 되지요.”
“흐음… 힘이 좋으니까 그런 무기가 적격이었겠구나.”
“예, 제가 사용하기에는 적합했습니다. 그리고 손도끼 2개도 허리에 차고 다녔는데 위급할 때에는 그만이었습니다.”
루팽의 말을 듣던 하벨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소리 없이 웃었다.
“후후후… 마침 너에게 적당한 무기가 있는데, 받거라.”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상자를 열자 그 속에는 루팽이 평소 사용했다던 풀 액스와 손도끼 두 자루가 들어 있었다.
“이, 이게 정말 저의 무기이옵니까, 백작님?”
“그렇다. 살펴보거라.”
“예, 백작님.”
루팽은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상자 속에 들어 있는 풀 액스를 들어보았다.
은빛이 번뜩이는 그것은 미스릴로 주조되어 있었기에 강도 면에서는 최상급이었지만, 거기에 더해 마법적인 금속이라 그런지 어지간한 마법 공격에도 끄떡없는 무기였다.
“백작님, 생각보다 너무 가볍습니다.”
“그럴 것이다. 40킬로그램 정도 나가는 무기였지만 경량화 마법이 걸려 있기 때문에 가벼운 것이지.”
“아, 어쩐지 중병인데도 불구하고 가볍다 했습니다.”
휭휭!
휘두를 때마다 바람 소리가 묵직하게 들렸으며 몇 번 휘둘러보던 루팽은 풀 액스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도끼의 날도 무척 날카롭게 보였다.
풀 액스를 내려놓고 이번에는 손도끼 두 자루를 집어 들었는데 이것도 풀 액스와 한 쌍인 모양이었다. 손에 착 붙는 느낌이었다.
“마음에 드느냐?”
“너무 마음에 듭니다, 백작님.”
“그렇다면 오늘부터 그걸 가지고 1천 번씩 휘두르면서 연습하거라.”
“예, 백작님. 열심히 연습하겠습니다.”
“아참, 너에게 줄 것이 하나 더 있다.”
스윽!
이번에 내민 것은 손목 아대였다.
“이것은 손목 아대가 아닙니까?”
“그렇다. 보기엔 금속으로 된 손목 아대지만 마법 물품이다.”
“이게 마법 물품이었습니까?”
“그래. 손목 아대 한 쌍은 미스릴로 되어 있으며 좌측 것에는 너의 몸을 보호해줄 실드 마법이, 우측 것에는 치료 마법인 힐 마법 걸려 있다. 각각 5번 사용하고 나면 내장된 마나가 모두 소비된다. 소비된 마나가 충전되려면 하루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지.”
“풀 액스와 손목 아대만 있으면 걱정 없겠습니다, 백작님.”
“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워에 보호 마법과 치료 마법이라면 무엇이 두렵겠느냐? 앞으로 너는 열심히 훈련해서 나의 호위병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알겠느냐?”
“예, 백작님. 미천한 저에게 기회를 주신 은혜를 저의 목숨으로 갚겠습니다.”
“하하하… 루팽, 너의 말을 믿어볼 테니 열심히 하거라.”
며칠 후.
왕궁에서 하벨에게 입궐하라는 연락이 와 입궐했더니 국왕을 비롯해 국왕의 장인인 베다 후작과 국왕파의 고위 귀족들이 홀에 모여 있었다.
“하하하… 하벨 백작, 어서 오시게.”
“폐하, 하벨이 인사 올립니다.”
하벨을 반갑게 맞이해준 스왈브리 폰 파에이슨 국왕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면서 말했다.
“하벨 백작에게 좀 더 좋은 영지를 하사해야 했지만 여의치 않아서 스너비 영지를 하사한 것이며 앞으로 3년 동안 세금도 면제하고 1천 골드를 정착금으로 내리노라.”
“감사하옵니다, 폐하.”
“하벨 경은 앞으로 영지를 잘 다스려 나의 힘이 되어주시오.”
“예, 폐하.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이제 그만 나가도 좋네.”
“예, 폐하. 저는 그만 나가보겠습니다.”
국왕과 귀족들을 뒤로하고 홀을 나오자 시종장이 홀 밖에서 서 있었다.
“하벨 백작님, 잠시 옆에 있는 홀로 가시지요. 전해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래요? 앞장서세요.”
홀 안으로 들어가자 테이블에 몇 가지 물건을 놓여 있었다.
시종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하벨 백작님, 여기에 있는 물건들은 모두 백작님의 것이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제가 하나하나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두 개의 양피지 중 첫 번째 이 양피지는 하벨 백작님께서 정식으로 아비린 왕국의 백작이라는 작위 증명서이며, 마탑에서 특별 제작된 이 반지와 도장에는 백작가의 문장이 새겨져 있습니다. 또 두 번째 이 양피지는 스너비 영지를 하사한다는 국왕폐하의 영지 증명서이며 이 상자에는 정착금으로 1천 골드가 들어 있습니다.”
하벨이 반지와 도장의 문장을 살펴보니 네 잎 클로버였다. 앞으로 하벨은 백작가로 문장은 네 잎 클로버가 된 것이다.
시종장은 그리 크지 않은 상자 속에 1천 골드나 들어 있는 게 미심쩍어하는 것 같은 백작에게 설명해주었다.
“하벨 백작님께서 보시기에는 작은 상자이지만 이 속에는 분명 1천 골드가 들어 있습니다. 마탑에서 만든 마법 상자이니까 믿으셔도 됩니다.”
“아, 그럼요. 잠시 딴생각하느라, 미안합니다.”
“스너비 영지에서 기사 3명과 영지병 50명이 별관에 도착해 있으니 내일이라도 영지로 내려가셔도 됩니다.”
“그렇습니까? 세세하게 신경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시종장.”
“아, 아닙니다, 하벨 백작님. 이게 제가 할 일이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왕궁을 나와 루팽을 대동하고 영지병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어간 하벨은 한숨이 나왔다.
수도 크라운에 있는 귀족들의 사병들을 보아온 하벨이었기에 자신의 영지병들이 평균에서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또한 입고 있는 가죽 갑옷과 무기인 검이나 창도 무척 낡았다.
그나마 3명의 기사들은 체인 메일을 착용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