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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권 예지력을 얻다
“이봐, 투벨! 투벨!”
“으응? 뭐, 뭐야?”
“그만 일어나!”
“아우… 머리야! 어제는 맥주를 너무 많이 마셨어.”
침대에 누워서 어렵게 눈을 뜬 투벨이 상체를 일으켰다.
“속 쓰리지? 여기 수프 가져왔으니 좀 먹어봐!”
“어, 그래. 고마워, 하벨!”
후루룩!
수프를 마신 투벨은 그제야 좀 나아졌는지 침대에서 일어나 상체를 옆으로 움직이면서 몸을 풀고는 세수를 하러 갔다.
“이렇게 헤어지긴 아쉽지만 언제 또 만날 수 있겠지, 하벨?”
“글쎄, 장담은 못하겠어.”
“그동안 많이 정들었는데 이렇게 헤어지는구나. 하벨은 어떻게 할 거지?”
“글쎄, 당분간은 수도에 머물 거야. 그런 다음에는 잘 모르겠어.”
“그럼 도시 헤이야로 와.”
“투벨은 헤이야에 있을 거야?”
“그래. 내일 킬파브 상단이 도시 베이든으로 상행을 떠나는데 난 도시 헤이야까지만 갈 거거든. 헤이야에서 한 달간은 용병 일을 하지 않을 거야.”
“알았다. 투벨, 이것 받아!”
“이, 이건?”
하벨이 내민 것은 하트 브로치였는데 황금으로 장식된 테두리 가운데에 다이아몬드 1개가 박혀 있는 물건으로 보석에 대해서 잘 모르는 투벨이 보기에도 명품 주얼리로 보였다.
“우연한 기회에 얻은 물건이야. 어려울 때 팔아서 써!”
“저, 정말 고맙다, 하벨!”
하벨과 투벨은 한번 안으면서 사나이들의 뜨거운 우정을 느끼고는 떨어졌고, 헤어진다는 아쉬움이 묻어나는 얼굴로 투벨은 룸을 걸어 나갔다.
하벨은 바람의 요정 정문까지 따라 나가 투벨을 배웅해주었고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뒤돌아섰다.
‘잘 가, 투벨!’
룸으로 다시 돌아온 그는 문을 걸어 잠그고 명상에 들었다.
주변의 소음 때문에 정신을 집중하기가 힘들었지만 계속 명상을 하면서 정신 집중을 시도하자 주변의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기에 예지력을 끌어올렸다.
하벨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지면서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가 서서히 풀리면서 밝아졌다.
번쩍!
기이한 안광이 룸 안에 퍼져나가더니 눈을 몇 번 껌뻑거리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사라져버렸다.
“후후후… 그나마 다행이었어!”
눈을 뜬 하벨의 얼굴은 고민을 해결한 듯한 밝은 표정이었다.
퍼거슨 상점의 뒤쪽에서 킬바브 상단의 물건을 가득 실은 짐마차가 드디어 출발했다.
짐마차는 16대나 되었기에 제법 길게 이어졌고 일꾼들과 상단을 호위하게 될 용병들도 상당했다.
짐마차의 후미에서 말을 타고 움직이던 용병 중에는 투벨도 끼어 있었다.
“투벨, 투벨!”
갑자기 뒤쪽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리자 투벨이 뒤를 돌아다 봤다.
“어? 하벨이 무슨 일이지?”
“잠깐만… 잠깐만, 투벨!”
투벨이 말에서 내려 달려오던 하벨을 맞이하자 하벨은 귓속말로 무엇인가 한참을 말하고는 녹색 천으로 된 주머니를 하나 내밀더니 길 저편으로 사라졌다.
눈만 깜빡거리던 투벨은 어깨를 한번 으쓱거리고는 다시 말에 올라타 상단을 따라갔다.
멀어지는 투벨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하벨은 뒤돌아 거리로 사라졌다.
하벨이 다시 나타난 곳은 잡화점이었다.
그곳에서 한 달 치 식량과 야영에서 필요한 각종 물건을 구입한 하벨은 마법 자루 속에 모두 집어넣고 이번에는 말 시장에 들렀다.
주요 교통수단이 말이다 보니 말 시장에는 각종 말들이 모여 있었다.
하벨은 돌아다니면서 말들을 살펴보았는데 군마도 있었고 달리는 것에 적합한 우수한 품종의 명마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가 구입한 것은 한눈에 보기에도 좀 질이 떨어지는 잡종 말이었다.
잡종 말이라고는 하지만 길이 잘 들었기에 타고 다니기엔 그리 불편해 보이지는 않았다.
두두두!
말고삐를 잡고 가볍게 달린 하벨은 이윽고 북문에 도착해 말에서 내렸다.
북문의 경비를 담당하고 있는 병사들은 20명 정도였는데, 들어오는 게 아니라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기에 검문이 그리 까다롭지는 않았다.
허리에 검을 찬 경비병은 하벨이 내민 용병패를 잠시 바라보고 그의 몸을 훑어보더니 말했다.
“통과!”
간단하게 검문을 마친 하벨은 북문을 벗어나자 말에 다시 올라 타고 달려 나갔다.
한참을 달리자 역시 잡종 말이라 그런지 금방 지쳤다.
급할 게 없었던 그는 말에서 내려 잠시 쉬었고 다시 말을 타고 달리는 식으로 해서 수도인 크라운에서 하루 정도 거리의 이름 모를 야산에 도착했다.
해발 2백 미터 정도인 낮은 야산 속으로 성큼 들어온 하벨은 주위를 살펴 적당한 곳을 찾았다.
“음… 당분간 보내기 적당한 장소겠어.”
개울이 있어서 물이 흐르고 50평 정도의 공터가 있는 곳에 마침 깊이가 3미터 정도 되는 천연 동굴이 하나 있었다.
그래서 그곳을 임시 거처로 정한 하벨은 말의 고삐를 공터의 한 나무에 잘 묶어두고는 동굴의 바닥에 널려 있는 돌을 치우고 천막을 잘 깔았다.
그런 후 인근에서 도끼로 죽은 나무를 쪼개어 장작을 만들어 동굴로 가져왔다.
그렇게 당분간 지낼 거처를 준비하느라 한나절이 다 지나가 버렸고 말에게 먹일 물과 건초를 주자 말은 배가 고팠던지 아주 잘 먹었다.
“후후… 녀석, 배가 많이 고팠구나. 내일은 잡곡과 맛있는 당근도 주마.”
말을 한번 쓰다듬어준 그는 동굴로 들어가 저녁준비를 했고 얼마 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수프와 빵을 먹었다.
또한 후식으로 과일과 차를 마셨다.
산속이라 약간 쌀쌀한 날씨였지만 장작을 피웠기에 동굴 안은 제법 훈훈했다.
“자, 저녁도 든든하게 먹었으니 이제 수련에 임해볼까!”
매일같이 수련해서 검술은 실력이 제법 늘었지만 마법은 아직도 제자리걸음이었다.
“후우… 마나를 느끼는 게 그리 쉽지 않지만 오늘은 성공해야 하는데…….”
왠지 자신감이 떨어졌지만 가부좌를 틀고 앉은 하벨은 눈을 감고는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면서 마나를 느끼려고 시도했다.
형체가 없는 마나를 느낀다는 것이 쉽지 않아서 번번이 실패를 거듭한 하벨인데 오늘도 역시나 실패한 것 같다 생각하고는 마음을 비웠다.
그런데 갑자기 무엇인가 기이한 느낌이 전해졌다.
그것은 아주 미세하여 잘 느끼지 못했는데 정신을 집중하자 점점 명확하게 느껴졌다.
“아… 이게 마나로구나. 하하하! 성공이야, 성공!”
스승이라도 있었으면 금방 마나를 느낄 수 있었을 텐데 스승도 없고 단지 책에 나와 있는 막연한 말만 보고 마나를 느끼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그토록 어려웠던 마나를 이제는 확실하게 느끼기 시작한 하벨은 그동안 읽어두었던 마법서에 나와 있는 대로 심장에 서클을 형성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서클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마나를 심장으로 끌어 모은다고 했는데, 보통은 이 작업만 며칠에서 몇 달이 걸릴 수도 있다니, 잘될까?”
역시나 마나는 전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하벨은 자신의 의지로 마음을 집중해 계속 시도해보았다.
스으… 츠츠츠!
그러자 거짓말같이 마나가 심장의 옆 한곳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되… 된다, 돼! 하하하! 이번에는 모여든 마나를 압축하면 된다고 했지? 해보자!”
서클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충분하게 마나를 끌어 모아서 압축해야 하는데, 보통 마법의 초보자들은 이 과정에서 적게는 한 달에서 많게는 세 달이 걸린다.
그런데 하벨은 마나를 느낀 첫날에 이렇게 어쩌면 좀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시도하고 있었다.
몸속 어디에 숨어 있었던 건지 하벨의 마나는 엄청나게 많이 모였고 그걸 다시 압축했는데도 불구하고 마나는 끝없이 모여들었다.
조언이나 스승이 없는 하벨에게는 이 작업이 어찌 된 일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원래 이렇게 마나가 모여드는 것이 당연하게 정상인 줄 알고 있었다.
“으음… 이제 이 정도면 서클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마나가 모였을 것 같으니, 시도해봐야지.”
스으… 츠츠츳!
압축된 마나를 서클수식대로 의지로 이끌자 흐릿하지만 고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그것이 느껴진 하벨은 좀 더 의지를 강하게 끌어올렸다.
츠으… 파파팟!
순식간에 선명하게 고리가 형성되어 회전을 시작했다.
그런데 아직도 압축된 마나가 많이 남았기에 중도에서 포기하지 못하고 계속 시도하자 다시 하나의 고리가 형성되었다.
“하하하… 한 번에 2개의 서클을 형성했어. 아직도 마나가 많이 남았는데, 하나 더 만들어도 되겠어. 좋아, 해보는 거야!”
두 개의 고리가 힘차게 휘돌고 있는 상황에서 계속 시도한 하벨은 이번에도 하나의 고리를 더 만들었다.
“뭐야? 원래 이렇게 한 번에 쉽게 서클이 만들어지는 거였어? 이거 어째 불안한데…….”
잠시 휘돌고 있는 세 개의 고리를 관망하던 하벨은 욕심이 일어나 재차 서클을 형성하는 것에 집중했고 다시 하나의 고리가 더 만들어졌다.
4개의 고리가 형성되자 더 이상 고리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쩝… 아쉽긴 하지만 한번에 4개나 만들었으니 이제 난 4서클 마법사가 된 건가?”
한 번에 고리를 4개나 만들어 4서클에 오른 마법사는 하벨이 유일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전혀 그런 것을 모르고 지나갔다. 원래 그런가 보다 생각했으니 기가 막힐 일이었다.
“자… 4서클 마법사가 된 기념으로 1클래스 마법인 라이트 마법을 한번 시전해봐야지. 후후, 라이트(Light)!”
번쩍!
하벨의 심장 옆에 형성된 서클 4개가 힘차게 빛을 내면서 휘돌았고 순간 손바닥 위에 눈부시게 환한 빛의 구가 형성되었다.
“우하하하… 되는구나. 내가 만들었지만 정말 멋있어.”
동굴 속을 대낮같이 밝힌 빛의 구는 하벨의 라이트 마법이 성공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다른 마법사들이 라이트 마법을 시전하는 걸 못 보았으니 이게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잖아? 이번에는 매직 미사일을 한번 만들어보면 알 수 있겠지?”
마법서에서는 1서클 마법사는 매직 미사일을 보통 1개 형성할 수 있으며, 충분하게 연습한 자가 마나까지 충분하다면 3개까지 가능하다고 되어 있었다.
“음… 나는 4서클이니까 매직 미사일을 기본 4개, 마나가 충분하면 그 이상도 가능하지 않겠어? 매직 미사일(Magic missile)!”
우우웅… 츠파파팟!
하벨의 바로 옆 허공에 빛나는 마법 화살이 20개나 형성되었다.
신기했다. 매직 미사일을 자세히 살펴보니 보통 화살의 절반 길이지만 창처럼 둘레가 두꺼웠다.
마치 화살 10개 정도를 뭉쳐놓은 것 같은 두께였다.
“이야… 이거 신기한데? 마법서에 보면 매직 미사일은 눈에 보이는 것은 뭐든지 알아서 찾아가 맞힐 수 있고 쏘기 전까지는 지속 시간 5분이 끝날 때까지 마법사를 따라 움직인다고 했어. 또한 빛과 같기에 손에 잡히지 않으면서 목표를 놓치는 일은 결코 없고 목표물은 어떻게든 타격을 입게 된다고 했으니 한번 실험해보면 알겠지!”
슈아아앙!
20미터 정도 떨어진 나무 하나를 겨냥하자, 매직 미사일은 순식간에 허공을 가로질러 날아가 나무에 격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