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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권 예지력을 얻다
스윽.
대주교의 양손이 올라가자 하이스 주신을 연호하던 신도들이 조용해졌다.
“오늘 이 뜻 깊은 장소에 클라이스 현자님이 방문해주셨습니다. 환영의 박수를 부탁합니다.”
짝짝짝짝!
홀이 떠나갈 정도로 큰 박수가 터져 나오자 상단으로 흰 옷을 입고 구레나룻을 기른 중년인이 걸어 나왔다.
그 중년인의 모습은 평범해 보였지만 그 눈빛만큼은 지혜로 가득 차 있었기에 안광이 조금 흘러 나와 예사롭지 않았다.
“아… 클라이스 현자님은 척 보기에도 무척 대단해 보이는걸!”
“그, 그렇지? 나도 오늘로 두 번째 뵈었는데 대단하시지.”
연단에 선 클라이스 현자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는 연설을 시작했다.
“오, 선하신 하이스 주신. 나는 날마다 주신을 찾을 수밖에 없나이다. 그런데 주신께서 내가 찾을 때마다 나에게 나타나주셨나이다. 가정에서나 들에서나 예배당에서나 또는 길거리 어디서나 주신을 찾을 때마다 주신은 나타나주셨나이다. 무엇을 할 때나 주신은 나와 함께하셨나이다. 먹을 때나 마실 때, 글을 쓸 때, 어디를 가거나 책을 읽거나 또는 명상을 하거나 기도할 때 주신은 늘 나와 함께하시나이다. 내가 무엇을 하거나 내가 어디 있거나, 나는 주신의 자비와 사랑을 느끼나이다. 오, 주신이신 하이스 님, 이 고마운 친절함을 영원히 계속하여 베풀어주시옵소서. 세상 사람이 다 주신의 무한하신 능력과 자비와 사랑을 깨닫고, 나의 원수들까지도 주신의 자비는 영원한 것임을 알게 되기까지 계속하여주시옵소서. 하이스!”
“하이스!”
“하이스!”
역시나 현자라서 그런지 설교도 아주 유창했고 그런 설교를 들은 신도들은 연신 주신의 이름인 하이스를 연호했다.
대주교와 현자의 이어진 연설로 홀 안은 온통 주신인 하이스를 연호하는 소리로 후끈 달아올랐다.
하벨의 옆에 있던 투벨도 연신 하이스 주신의 명호를 외치자 하벨의 표정은 멍해졌다.
‘후우… 이곳의 신은 잘 모르지만 아무튼 정말 대단하군. 클라이스 현자의 모습은 보았지만 어떻게 만나지?’
이번에는 성가대가 상단으로 도열하더니 합창을 시작했고 신도들도 따라 불렀다.
그렇게 30분이 흘러가자 집회는 끝이 났다.
“투벨, 이렇게 끝난 거야?”
“집회는 끝이 났지만 이제부터 특별한 것이 있지.”
하벨은 갸웃거렸지만 투벨은 웃음으로 대신했다.
홀의 상단 좌우측에는 각각 테이블이 마련되었고 한쪽에는 대주교가 나머지 한쪽에는 현자인 클라이스가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작은 모금함이 놓였고 주위로는 반월형의 막이 생겨났다.
또한 홀의 중앙에는 대모금함이 놓였다.
2층에 있던 귀족들이 먼저 앞으로 나서더니 대모금함에 은화를 집어넣고는 대주교가 앉아 있는 테이블로 걸어가 의자에 앉았다.
뭔가 질문하고 대답하는 것 같은데, 저 반월형 막 때문인지 전혀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투벨, 소리가 들리지 않아?”
“저기 투명한 막 보이지? 그게 바로 마법으로 결계를 쳐서 그래.”
“아… 그렇군. 어쩐지 소리가 안 들린다 했어.”
“하벨, 평소에는 집회가 끝이 나면 대모금함에 코인이나 은화 등을 성의껏 집어넣고 나가면 되지만 저렇게 대주교나 아님 특별한 분을 모시게 되면 테이블이 신설되지. 단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물어볼 수 있는데 은화 하나에 한 가지를 물어볼 수 있어.”
그제야 궁금증이 해소된 듯 하벨이 고개를 끄덕였다.
홀에 있는 신도들은 빠르게 줄어들었는데, 대주교의 테이블 줄에는 5명이나 서 있었지만 현자의 테이블 줄에는 1명만 서 있었다.
홀의 신도들이 거의 다 빠져나가자 하벨도 대모금함에 은화를 하나를 집어넣고 현자의 테이블로 걸어갔다.
하벨이 현자의 줄에 서자 그는 두 번째였다.
투벨은 대모금함에 은화를 하나 집어넣고는 홀을 나가 밖에서 하벨을 기다리기로 했다.
얼마 후 하벨의 차례가 되자 현자의 테이블로 들어가 의자에 앉았다.
클라이스 현자는 하벨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고는 안광이 번뜩였다.
“무엇을 물어보고 싶습니까?”
“예, 저는 다름이 아니라 이 세상 말고 다른 세상이 존재하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다른 세상을요?”
“그렇습니다, 현자님.”
“흐음… 대답해드리지요. 이 세상 말고도 다른 세상은 존재합니다.”
“그럼 그 세상에는 어떻게 갈 수 있습니까?”
“허허… 쉽지 않은 질문이군요. 대마법사라고 해도 그건 쉽지 않습니다. 다만 고룡 급의 드래곤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고룡 급의 드래곤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신께서 직접 왕림하지는 않으시니 말입니다.”
“아… 그럼 고룡 급의 드래곤은 어디로 가면 만날 수 있을까요?”
“흐음… 정말 대답하기 힘든 것만 질문하시는군요. 허허, 좋습니다. 말씀드리죠. 옛 문헌이나 그리고 제가 알기로는 고룡 급의 드래곤 레어가 있다고 알려진 곳은 두 곳입니다. 첫 번째로는 크린베른 숲에 있다고 알려진 골드 드래곤 칼리드란의 레어이며 또 한곳은 드래곤 산맥에 있다는 레드 드래곤 드로이얀의 레어입니다. 원하던 대답이 되었는지 모르겠군요.”
“예, 감사합니다, 현자님.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럼.”
하벨은 모금함에 10골드를 집어넣고는 그곳을 나왔다.
멀어지는 하벨의 모습을 바라보던 클라이스 현자는 하벨이 사라지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사제를 불러 그의 귀에다가 무엇인가 말했고 그 사제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즉시 홀의 한쪽에 있는 비상문으로 사라졌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 아닙니다.”
“그만 안으로 들어가셔서 차라도 한잔 하시죠.”
“예, 감사합니다, 대주교님.”
클라이스 현자와 대주교가 홀을 벗어나자 홀에 남아 있던 20명의 신도들은 즉시 빗자루와 걸레를 들고서는 홀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하이스 신전을 걸어 나온 하벨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음… 내가 온 곳이 크린베른 숲이었으니 그럼 그곳이?’
클라이스 현자의 대답으로 하벨은 그동안 궁금했던 것이 일시에 해소되었다.
자신이 처음 깨어난 곳이 바로 크린베른 숲에 있는 골드 드래곤 칼리드란의 레어였다는 것을 말이다.
“후후후… 그랬어. 그랬던 거야!”
혼자서 중얼거리는 것을 쳐다보던 투벨은 귀 옆으로 손가락을 휘휘 저었다.
“신전에 다녀오더니 하벨이 맛이 갔어!”
“뭐, 뭐야?”
“아, 아냐. 농담이야, 농담!”
투벨이 후다닥 뛰어가자 그 뒤를 하벨이 뒤쫓았다.
두 사람이 길 저편으로 사라지자 녹색의 망토를 겉에 입은 자가 뒤쫓아 갔다.
그는 바로 하이스 신전에서 나온 사제였다.
도시 헤이야에 조금 못 미치는 야산에 일단의 무리가 나타났다.
그들은 체인 갑옷을 입은 자 130명에 검은 로브를 입은 자가 31명으로 모두 161명이었다. 그중에는 목에 십자가 목걸이를 한 자도 보였다.
“이 근처에 있다. 흩어져 찾아봐라. 어서!”
“예, 서바리안 님.”
슈슈슈슉!
그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무엇인가 찾기 시작했다.
얼마 후 한 인영이 나는 듯 다가와 서바리안이라는 자 앞에 엎드렸다.
“찾았습니다, 서바리안 님.”
“좋아. 앞장서라!”
161명이 모인 곳에는 산짐승에게 살점이 뜯겨 나간 뼈만 남은 시신이 있었는데, 다크 울프 대원이었다.
서바리안은 잠시 그 시신을 바라보고는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푸스스슷!
살점이 조금 남아 있던 시신이 가루가 되면서 흩어져버렸다.
“서바리안 님, 이쪽에도 다크 울프 대원들이 있습니다.”
“알았다. 안내하거라!”
“옛, 저를 따라오십시오.”
체인 갑옷을 입은 자를 따라 이동하자, 이번에도 석궁의 화살에 맞아 쓰러진 다크 울프 대원을 발견한 것을 시작으로 모두 5명의 다크 울프 대원의 시신을 찾아냈고 모두 같은 방법으로 마법으로 시신을 소멸시켰다.
“크으… 마드라실!”
서바리안은 주먹을 불끈 쥐면서 부르르 떨었다.
마드라실의 시신은 처참했다.
나무를 뚫고 배와 목, 뒤통수에 각각 한 발씩, 3발의 화살이 박혀 있었다.
“크흐흑… 이, 이게 마드라실이라니 도저히 믿을 수 없구나.”
야산에서 이렇게 처참하게 죽을 마드라실이 아니었는데, 누군지 모르겠지만 무시무시한 마법을 익힌 마드라실을 석궁의 화살로 죽인 것이다.
“으음… 정말 위력적인 석궁이구나.”
“그렇습니다. 서바리안 님, 저도 석궁에 대해서 좀 아는데, 이런 위력을 가진 석궁은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상황을 보니 3발을 연속으로 맞은 것 같다.”
“그, 그 말씀은 석궁이 연속 발사되었다는 말입니까?”
“그렇게 보이는구나.”
“그, 그럴 리가? 3명이 일시에 쏜 것이 아닐까요?”
“아니다. 이 화살들은 한 사람의 석궁에서 발사된 화살이 분명하다. 여기를 보면 화살 3발이 모두 똑같으며 나무를 뚫고 나온 화살을 보거라. 모두 그 위력이 똑같지 않느냐!”
“그, 그렇군요.”
“으음… 흉수의 단서는 오직 이 화살뿐이니 잘 수거해두어라.”
“예, 서바리안 님.”
석궁의 화살을 뽑고 마드라실의 시신을 수습한 서바리안은 가장 중요한 마드라실의 십자가 목걸이가 없어진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목걸이는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서바리안은 2백 미터가 넘는 원거리에서 두 사람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으음… 이런 석궁이 존재했던가? 우… 정말 무섭군, 무서워!”
“정말 이곳에서 석궁을 발사했을까요?”
“보거라, 여기에 있는 발자국이 좀 더 선명하지 않느냐! 그건 이 자리에 서서 조준을 하고 쏘았다는 거다. 틀림없다.”
“그럼 이자를 추격할 때는 반드시 두 겹의 실드를 펼쳐야 되겠습니다.”
“석궁의 위력을 짐작해보면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서바리안 일행은 그곳 주위를 정밀하게 조사하고는 추격을 시작했다.
오후가 되자 퍼거슨 상점 앞으로 다시 모인 용병들은 킬파브 상단주에게서 잔금을 지급 받고 각자 흩어졌다.
투벨은 하벨과 헤어지기가 아쉬워서 마지막으로 술을 한잔 하고 헤어지기로 하고는 바람의 요정이라는 곳으로 들어갔다.
투벨이 수도 크라운에 오면 묵었다 간 곳이라는 이유에서다.
두 사람을 미행하던 자도 조용히 안으로 들어와 한쪽 테이블에 앉아 술을 시켜 천천히 마시면서 지켜보았다.
“자, 마셔, 하벨!”
“그래, 마시자. 마셔!”
꿀꺽꿀꺽!
맥주잔을 들이마시기 시작한 두 사람은 두 시간이 넘도록 맥주를 주고받으면서 사이좋게 마셨다.
20리터의 술통 2개가 비워졌다.
얼큰하게 취한 두 사람은 이미 잡아두었던 룸으로 비틀거리며 들어가 침대에 엎어졌고, 그런 그들을 살펴본 그자는 조용히 바람의 요정 밖으로 사라졌다.
다음 날 아침 하벨은 아무렇지 않게 깨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술에 많이 취한 투벨은 깨어나지 않았다.
“후후… 어제 너무 많이 마시더라니… 난 확실히 체력이 좋아졌군.”
이계로 넘어오면서 체력이 좋아진 하벨은 숙취도 없었기에 머리가 맑았으며 생생했다.
침대에 누워 있는 투벨을 바라보던 하벨은 먼저 씻고는 빵과 수프로 아침식사를 끝마치고는 다시 룸으로 돌아왔는데, 그때까지도 투벨은 꿈나라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