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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권 예지력을 얻다
크린베른 숲에서 불도 피우지 않고 나무 위에서 야영을 하던 무리는 이른 아침에 깨어나 물과 육포로 식사를 끝마치고는 출발했다.
햇볕이 비추기 전이라 기온도 그리 높지 않았기에 이동하는 속도가 제법 빨랐으며 정오가 되자 목적지에 도달했다.
골드 드래곤 칼리드란의 레어 입구는 거대했다.
무리의 수장인 마드라실이 손짓하자 1백 명의 수하들 중에서 10명이 먼저 레어 입구를 향해 뛰어갔다.
손에는 각자 칼을 들고 있었지만 무척 긴장했는지 이마에서는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10명이 레어 안으로 사라진 후 다시 10명이 돌격했다.
그들이 레어 안으로 사라지자 이번에는 30명이 들어갔고 그 뒤에는 나머지 50명과 10명의 마법사들이 뒤따랐다.
골드 드래곤 칼리드란의 레어로 들어간 그들은 채 20미터도 들어가지 못하고 멈추었다.
침입자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강력한 결계가 쳐져 있었는데 마드라실의 눈짓에 타사스트라가 앞으로 나서면서 기이한 주문을 외우더니 손을 앞으로 내뻗었다.
파지지직!
결계에 스파크가 일어나면서 투명한 막이 출렁거렸지만 결계가 파손되지는 않았다.
두 번이나 더 타사스트라가 마법을 시전했지만 소용없었다.
“죄, 죄송합니다.”
타사스트라가 고개를 숙이자 그제야 수장인 마드라실이 앞으로 나섰고 양손을 앞으로 내뻗었다.
파지지지직!
타사스트라보다 훨씬 강력한 스파크가 일어났지만 결계는 심하게 요동칠 뿐 파괴되지는 않았다.
그제야 마드라실도 조금 당황한 표정이다.
“으음… 모두 뒤로 물러나라.”
마드라실의 말에 모두들 뒤로 물러나자 눈썹을 꿈틀거리던 그는 품속에서 무언가 꺼냈다.
둘레가 5센티미터 정도는 될 것 같은 검은색 구슬이었는데 다크 블루의 띠가 있었다.
“흐흐… 이것만은 사용하고 싶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군.”
스윽.
손을 앞으로 내뻗은 뒤 손바닥을 펼치자 손바닥에 놓여 있던 구슬이 스르르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공명음이 일어났다.
그러자 마드라실도 한참 뒤로 물러나더니 외쳤다.
“너희 모두 실드를 펼쳐 위험에 대비하거라. 어서.”
마드라실의 경고에 나머지 9명의 마법사들은 실드를 이중으로 펼쳤고 그 뒤에 무장한 1백 명이 섰다.
검은 구슬에서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강력한 기운이 일어나면서 결계와 충돌했다.
파지지직… 콰쾅!
스파크가 일어나더니 그대로 폭발해버리자 레어는 지진을 만난 듯 심하게 요동쳤다.
통로 천장과 흙벽이 파손되면서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잠시 후 먼지가 가라앉자 결계와 검은 구슬이 충돌한 것이 얼마나 위력적이었는지 천장과 벽면이 심하게 파괴되어 있었다.
타사스트라는 마드라실의 옆에 다가와서는 중얼거렸다.
“마드라실 님, 결계가 깨어진 것 같습니다.”
“그거야 당연한 결과다. 어둠의 마나가 충만한 다크 볼을 사용했는데 이 정도 결계를 파괴하지 못한대서야 말이 안 되지.”
“저도 말로만 들었지 다크 볼이 이 정도의 위력일 줄은 몰랐습니다.”
“자… 다크 울프 대원 대장, 어서 대원들을 앞으로 보내게.”
“예. 2조가 앞장서라.”
10명의 다크 울프 대원이 앞으로 먼저 달려 나가자 그 뒤를 20명의 대원이 뒤따랐고 나머지도 뒤를 따라 이동했다.
얼마 후 그들은 레어의 중앙에 도착했고 6개의 홀을 살펴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으아아아! 어느 놈이 벌써 이곳을 쓸어갔어?”
분노에 부르르 몸을 떨던 마드라실은 파이어 볼을 날려 분풀이를 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스윽.
품속에서 수정구를 꺼내 든 마드라실이 기이한 주문을 한참이나 외우자 수정구 속에서 영상 같은 것이 나타나는 듯했지만 무언가 강력한 힘에 의해 흐릿해졌고 곧 사라져버렸다.
“으음… 역시 드래곤의 레어라는 건가? 철수한다.”
마드라실의 말에 그들은 골드 드래곤 칼리드란의 레어에서 벗어났다.
그런 후 다시 수정구를 꺼내 들고는 주문을 외웠다.
츠으… 츠츠츠!
수정구에서는 역시나 아무런 영상이 나오지 않았지만 마드라실이 움직이는 대로 수정구에서 더욱 기이한 빛이 흘러나왔다.
“흐흐흐… 무엇 때문인지 강력한 방해를 받아서 레어를 털어간 자의 정체를 파악할 수 없군.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물건에서 흘러나오는 힘을 추격할 수는 있지. 저곳이다. 가자!”
마드라실이 가리킨 쪽으로 먼저 다크 울프 대원들이 튀어나가자 그와 9명의 마법사들이 뒤따랐다.
마드라실이 가리킨 곳은 현빈이 갔던 방향이었다.
그 물건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현빈이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다음 날 현빈은 듀란 일행과 함께 용병 길드를 찾았다.
현빈은 아직 신분증이 없기에 왕국을 자유롭게 여행하기 위해서 복잡한 절차 없이 가장 간편한 방법을 선택했다.
그건 바로 용병 길드에 정식으로 용병으로 등록하는 길이었다.
듀란 일행은 현빈이 크린베른 숲에서만 살아왔기에 세상물정이 어둡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일행이 생명의 은혜를 입었기에 이 정도의 사소한 일은 도와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적극적으로 도와주게 된 것이다.
듀란을 따라 들어간 용병 길드는 생각보다는 실내가 작았다.
실내에는 십대 후반의 여자와 사십대로 보이는, 수염을 기르고 덩치가 좋은 중년인이 앉아 있었다.
그는 듀란을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어, 듀란. 오랜만이군.”
“알리든, 여기는 여전하군.”
“어쩐 일로 여기를 다 왔나? 이번 파티에는 일행을 많이 잃었다면서?”
“크흠… 그렇게 되었네. 그건 그렇고 용병에 가입할 사람이 있어서 왔네.”
“용병 가입? 누군데?”
“이번에 우리를 도와준 사람이네. 하벨, 인사하게. 이쪽은 용병 길드의 길드장을 맡고 있는 알리든 길드장이네.”
“처음 뵙겠습니다. 하벨이라 합니다.”
“하하하… 반갑소. 알리든이라 하오.”
용병 길드장인 알리든의 첫인상은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었다.
“용병 시험을 보기에 앞서, 하벨은 무엇을 잘 다룹니까?”
“석궁을 조금 다룰 줄 압니다.”
“흠… 석궁이라? 원거리 무기이니 만큼 상단 호위나 몬스터 사냥에도 제법 쓸모가 있겠는데? 날 따라오시오.”
용병 길드 뒤편에 마련되어 있는 곳에서 현빈은 자신의 석궁을 가지고 과녁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10발을 쏘았는데 10발 다 과녁 안에 맞았고 알리든 길드장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 해도 되겠소. 그 정도 실력이면 C급 용병이오.”
그들은 간단하게 용병 시험을 마치고 사무실로 다시 들어왔고 깜찍한 소녀 메린에게서 서류를 건네받았다.
서류에는 대륙 공용어인 에슬론어로 쓰여 있었지만 이미 글을 알고 있는 현빈은 쉽게 그 서류를 작성했다.
“에슬론어를 알고 계시네요?”
“아, 예. 그렇습니다.”
“호호… 보통은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조금 의외네요.”
“그렇습니까?”
“그럼요. 보통 10명 중에 1명 있을까 말까 하거든요.”
스윽, 슥슥!
펜촉에 잉크를 찍어 서류를 써내려간 하벨은 메린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이름은 하벨, 나이는 25세, 출신지는 크린베른 숲이세요?”
“예, 얼마 전까지 그곳에서 살았거든요.”
“어머… 정말 대단하시네요. 크린베른 숲에는 몬스터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매우 위험하다 알려진 곳인데 가족은 없나요?”
“예, 얼마 전에 가족이 몬스터에게 습격 받아서 모두 죽고 저만 남아서…….”
“아, 미안해요. 아픈 곳을 찔렀네요. 용병 등급은 C급인 거 아시죠?”
“예, 알고 있습니다.”
“용병 가입비는 1실버예요. 그리고 용병패는 바로 만들어드릴 테니, 차 한 잔 마시면서 기다리세요.”
“예, 알겠습니다.”
현빈, 아니 이제는 하벨이라 불러야 될 것이다.
에슬론 대륙에 공식적으로 용병 신분패를 받을 것이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현빈이 아닌 하벨이 된 것이다.
하벨이 1실버를 메린에게 내밀자 그것을 받아 든 그녀는 즉시 서랍 속에서 동으로 만든 작은 사각패를 꺼냈는데 끝에 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목에 걸고 다니는 모양이다.
그것과 작성해두었던 서류를 같이 보석함 같은 상자 속에 집어넣고는 뚜껑을 닫았다.
번쩍!
보석함 속에서 기이한 빛이 번뜩인 후 메린은 뚜껑을 열고는 그 속에서 용병패와 서류를 꺼내었다.
그리고는 용병패를 하벨에게 내밀었다.
“여기 용병패가 나왔으니 받으세요.”
“예, 고맙습니다.”
하벨은 용병패를 받아 들고는 살펴보았는데 앞면에는 에슬론어로 하벨이라는 이름과 그 밑에는 용병 등급으로 C급이라 새겨져 있었다.
뒷면에는 출신지인 크린베른 숲과 도시 베이든 용병 길드와 대륙력이 새겨져 있었다.
이로써 하벨은 정식 C급 용병이 된 것이다.
용병 길드에서 나온 하벨과 듀란 일행은 악수를 했다. 이제 헤어질 때가 된 것이다.
“듀란 씨, 정말 고마웠습니다. 립톤과 글로리아도요.”
“하벨, 앞으로 용병 일을 하다보면 다시 만날 수 있을 테지만 이렇게 헤어진다니 섭섭합니다.”
“잘 가세요, 하벨.”
“다음에 봅시다, 하벨.”
“그래요.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안녕.”
하벨이 뒤돌아 걸어가자 듀란과 립톤, 글로리아는 멀어지는 하벨을 잠시 바라보다가 그들도 곧 저편으로 사라졌다.
듀란 일행과 헤어진 하벨은 도시를 걸어가면서 거지들과 낙후된 사람들의 실생활을 보면서 안타까워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으음… 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하니 이곳보다는 왕국의 수도에 살고 있다는 현자를 찾아가 보는 게 좋겠군. 오늘은 이곳을 구경하고 내일 용병 길드에 들러 수도로 가는 상단이 있는지 알아봐야겠어.”
하벨이 도시 베이든을 돌아다녀보았지만 백작령의 도시라고 해도 너무 낙후되어 있어서 구경할 만한 것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풍경은 볼만했기에 산책 겸 풍경을 잠깐 보면서 걷다가 숙소로 일찍 돌아와 식사를 하고는 침대에 누웠다.
다음 날 오전 숙소를 나선 하벨은 즉시 용병 길드로 들어섰다.
“메린, 혹시 수도 크라운으로 가는 상단이 있습니까?”
“아… 마침 수도로 가는 킬파브 상단이 있어요. 이틀 뒤에 떠나는데 지금 용병을 모집 중이에요. 하벨 씨도 참여하면 되겠네요.”
“예, 그럼 저도 가겠습니다.”
“알았어요. 숙식에 하루 50코인이에요. 단 야영할 때에는 개인이 물품을 준비해서 가야 하는 거 알죠? 알아서 준비해 가세요. 그리고 이동 중에 몬스터를 만나면 위험수당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예. 고마워요, 메린.”
“그럼 이틀 뒤 오전 8시까지 길드로 나오세요.”
“예. 그럴게요, 메린.”
용병 길드를 나온 하벨은 근처 상점에 들어가 야영할 때 쓸 담요 2개와 야영할 때 먹을 육포 한 달분을 넉넉하게 구입하고 인근에 있는 빵집에도 들러 열흘 치 빵도 구입했다.
숙소로 돌아온 하벨은 물주머니에 마실 물을 충분하게 담아서 마법 주머니에 집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