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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권 예지력을 얻다
쇠고기로 만든 스테이크는 여러 번 먹어본 현빈이었지만 돼지고기로 만든 스테이크 요리는 처음이었다.
그런데 살이 연하고 부드러워 생각보다 맛있었다.
“쩝쩝… 듀란, 제법 맛있는데요?”
“이 집에는 이게 맛있어서 여기만 오면 이것만 찾는다니까. 안 그래, 립톤?”
“맞습니다, 듀란.”
특별하게 말이 없는 글로리아는 식사하는 것에만 신경 썼다.
현빈도 특별히 할 말이 많은 것이 아니었기에 듀란과 립톤이 나누는 대화를 주로 듣고 간혹 대답하는 정도였다.
식사를 하면서 글로리아와 현빈의 눈이 서로 마주쳤다.
“……!”
약간 어색해진 두 사람은 얼른 고개를 숙이고 칼질을 하면서 고기를 입에 넣고 씹었다.
식사를 모두 마친 그들에게 리브슨은 갈리아주를 두 통 가져왔고 삶은 소시지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쪼르르!
듀란은 현빈의 앞에 있는 나무잔에 먼저 한 잔 부었고 자신의 잔에도 붓더니 글로리아와 립톤에게도 직접 부어주었다.
“자, 이게 갈리아주인데 한잔 마셔봐. 끝내줘.”
“이게 말로만 듣던 그 갈리아주네요.”
듀란과 글로리아의 너스레에 립톤은 잔을 들어 바로 마셨지만 현빈은 와인 마시는 법을 상식으로 알고 있었다.
이 갈리아주는 와인은 아니지만 와인 마시는 것처럼 먼저 색을 바라본 후에 코끝에 가까이 대서 잔에서 올라오는 향을 한번 맡아보았다.
그리고 한 모금 입 안에 넣어 혀끝의 맛과 입 안에서 느껴지는 맛 그리고 목으로 넘어갈 때 느껴지는 맛을 모두 음미하면서 마셨다.
‘음… 복분자주와 비슷하지만 향이 좀 더 진하면서도 깊은 맛이 있네.’
현빈이 독특하게 갈리아주를 마시자 그것을 멍한 표정으로 듀란과 글로리아, 립톤이 쳐다보고 있었다.
“하벨, 갈리아주를 감별하는 건가?”
“감별까지는 아니고 처음 마시는 갈리아주라 맛과 향, 색깔이 어던가 살펴본 겁니다.”
“이야… 대단한데? 그래, 어떻던가?”
“생각했던 것보다 갈리아주가 색깔과 맛, 향이 상급이던데요.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런 나무잔이 아닌 투명한 잔에 마셨더라면 더욱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으음… 그렇구만. 하벨도 제법 술을 아는군. 그런 의미에서 한잔 더 하지.”
그렇게 해서 그들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갈리아주 두 통을 전부 비우고 방으로 들어갔다.
현빈은 잠자기 전에 목욕을 하고 자려고 씻는 곳으로 들어갔더니 사람이 들어갈 정도로 큰 나무로 만든 통이 가운데에 있었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다. 온도를 재려고 손을 집어넣어보았더니 딱이었다.
그래서 통 안으로 들어갔는데 비누 같은 것은 없었다.
‘따뜻한 물통에 몸을 담그는 것만 해도 어딘데, 뭘 더 바래?’
현대에서 살던 현빈에게는 모든 것이 낙후되어 있었기에 이제는 포기하고 살기로 마음먹었다.
때를 벗기지는 못했지만 수건으로 대충 닦고는 밖으로 나왔는데 듀란과 립톤은 벌써 꿈나라에 가 있었기에 현빈도 자신의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나무 창문 틈 사이로 햇빛이 스며들어 와 현빈의 얼굴에 닿자 잠에서 깨어났고 상체를 일으켰다.
간단하게 세수를 하고는 갓 구운 빵과 수프로 아침을 먹고는 밖으로 나왔는데 숙식비는 모두 듀란이 먼저 계산한 후였다.
위급할 때 받은 도움에 비하면 아주 적은 것이지만 그렇게 나마 감사를 표하고 싶었던 듀란의 마음을 현빈은 잘 알고 있었기에 가만히 있었던 것이다.
술집 뒤쪽으로는 마구간이 붙어 있었으며 듀란이 이곳에다가 말을 맡겨두었기에 그들은 말을 찾아 그걸 타고 가기로 했다.
말에 올라 도시 베이든을 향해 이동했는데 말이 10마리나 되었다.
코리슨 마을부터 도시 베이든까지는 말이 달릴 수 있도록 길이 잘 닦여 있어 이동하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이히힝… 푸르르!
그러나 말을 처음 타보는 현빈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라 고생이 되었지만 달리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이동하는 수준이라서 적응하는 게 빨랐다.
아침에 출발하여 석양이 질 시간이 되자 카러 마을에 당도했다.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고는 다시 말을 타고 이동해 드디어 도시 베이든에 당도했다.
슈가각… 우수수!
울창한 원시림인 크린베른 숲에 110명의 무리가 넝쿨식물과 앞을 가로막는 나뭇가지를 칼로 내리치면서 제법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검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100명은 상의 겉에 검은 칠을 한 가죽갑옷을 입고 검을 차고 있었고 나머지 10명은 마법사인 듯 검은 로브를 입고 있었다.
그중에 나이가 많아 보이는 백미를 가진 자의 목에는 은 십자 목걸이를 걸고 있었다.
은 십자하니까 예수가 떠오르고 기독교의 상징이라 생각되지만 여기 에슬론 대륙은 지구와는 다른 세상이기에 예수라는 존재가 없으므로 은 십자가는 어떤 비밀스러운 집단의 상징물이었다.
1백 명이 앞으로 나아가다가 그중 대장이 로브를 입은 자들 중 1명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말하자 그자는 다시 은 십자가 목걸이를 한 사람에게 말했다.
“마드라실 님, 날이 저물 시각인데 이곳에서 야영을 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으음… 어쩔 수 없지. 타사스트라, 그러도록 해라. 이제 우리의 목적지가 반나절 거리밖에 남지 않았으니 모두들 긴장을 늦추지 말도록.”
“예, 알겠습니다, 마드라실 님. 그런데 드래곤과 상대가 되겠습니까?”
“크크크… 우린 드래곤과 싸우려는 게 아니다.”
“마드라실 님, 골드 드래곤의 레어로 들어가는데 어떻게 싸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회장님께서 말씀하셨지. 골드 드래곤 칼리드란은 얼마 전에 마나의 품으로 돌아갔다고.”
“그, 그게 정말이십니까?”
“그렇다, 타사스트라. 너는 회장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것이냐?”
“제, 제가 어찌… 다만 너무 엄청난 일이라 실감이 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크크… 나도 사실 처음 그 말을 듣고는 무척 놀랐지. 하지만 사실이다. 우리 실버 크로스 클럽에서 반드시 획득해야만 하는 물건이 골드 드래곤 레어에 있었지만 그동안은 드래곤을 상대할 방법이 없어서 미루어왔지. 이제는 아니야.”
“드래곤이 마나의 품으로 돌아갔다면 그건 거저먹는 거와 다름없군요.”
“그렇다. 그러니까 내가 직접 이곳까지 온 것이 아니냐?”
“이렇게 손쉽게 성공해도 그 공은 엄청나겠는데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회장님께서는 이번 임무가 그리 쉽지 않을 거라 하시는구나.”
“울창한 크린베른 숲을 통과하는 게 조금 힘들지만 다른 임무에 비하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번 임무가 어렵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크크크… 그건 나도 마찬가지 생각이지만, 회장님께서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이다. 우린 그저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된다. 알겠느냐?”
“예. 명심하고 있습니다, 마드라실 님.”
타사스트라가 손짓하자 병풍처럼 흩어져 있던 수하들이 순식간에 모여 들었다.
“오늘은 이곳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 아침 일찍 이동할 테니 모두들 쉬어라.”
“예, 타사스트라 님.”
사사삭!
100명의 인영들이 각자 주변에 있는 나무를 택해서 위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품속에서 말린 고기를 꺼내 씹으면서 휴식에 들어갔다. 로브를 입은 자들은 마법사들이라서 그런지 스르르 허공으로 떠올라 가볍게 나무 위 높은 곳으로 올라왔다.
그리고는 그들 10명도 말린 고기를 씹으면서 휴식을 취했으며 그렇게 밤을 보냈다. 불도 피우지 않고 확실히 주위를 경계했다. 모든 것이 이렇게 조심스러운 그들이었다.
다각다각!
말을 타고 이동하던 현빈과 듀란 일행은 도시 베이든의 외성 남문 앞에 도착했다.
검문을 받는 사람들이 1백 명은 넘어 보였기에 듀란이 줄을 벗어나 움직이자 나머지 사람들도 따라 이동했다.
듀란은 한 경비병들에게 다가가 그 경비병도 자신에게 다가오는 듀란을 쳐다보았다.
“어이, 듀란. 오랜만인데?”
“케슨, 오랜만이야.”
두 사람은 서로 안부를 물었고 듀란의 말이 케슨의 옆에 서서는 손을 내밀자 그는 듀란의 손에 있는 20코인을 걷어가면서 말했다.
“다음에 보자고, 듀란. 통과!”
“그래, 언제 술이라도 한잔하자고.”
듀란의 재치로 도시 안으로 쉽게 들어설 수 있었던 일행은 식사할 곳으로 향했는데 그곳도 듀란이 잘 알고 있는 집이었다.
“하하하… 도시 베이든에 오면 반드시 그 집으로 가서 식사를 해야 돼. 안 그래?”
“맞아요, 듀란. 난 벌써 그 집 요리가 먹고 싶습니다.”
립톤의 대답에 글로리아도 고개를 끄덕이자, 현빈은 듀란이 맛집을 알고 있나 보다 했다.
달의 행복이라는 곳에 도착해 말에서 내리자 소년이 뛰어와 말고삐를 잡으면서 말했다.
“듀란 아저씨, 오랜만이네요.”
“아… 코비, 오랜만이구나. 말들에게 좋은 먹이를 먹이고 잘 관리해다오. 부탁한다.”
“예, 걱정 마세요.”
“그래, 코비. 널 믿으마.”
“예, 듀란 아저씨.”
코비라는 소년은 능숙하게 말고삐를 잡고는 10마리나 되는 말을 모두 마구간 쪽으로 끌면서 사라졌다.
문을 밀면서 듀란이 먼저 안으로 들어서자 그 뒤를 현빈과 일행이 들어갔다.
달의 행복은 요리가 맛있기로 소문난 집이었기에 제법 사람들이 많아서 빈 테이블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은 주인이 서 있는 긴 나무 테이블 앞에 앉았다.
“시원한 맥주 한잔씩 먼저 하시죠. 빈 테이블이 나오는 대로 옮겨드리겠습니다.”
“그러죠.”
그렇게 해서 현빈과 일행이 맥주를 먼저 한잔씩 마시면서 기다리자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두 곳이나 일어났기에 창가 쪽으로 가서 앉았다.
“모두 달의 행복으로 먹을 거니 그것으로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곧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직원이 주방으로 사라지자 궁금증에 현빈이 듀란에게 물었다.
“달의 행복이라는 요리가 뭡니까?”
“아… 그거요? 달의 행복이라는 요리는 3년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이집에서 인기 있는 요리가 5가지나 되었는데 그걸 한꺼번에 모두 시켜서 먹기는 사실 부담스러웠죠. 그런 손님들의 반응을 알게 된 주인은 개별적으로 시키는 각 요리보다는 조금 적게 접시에 담아서 5가지 요리를 전부 먹을 수 있는 코스 요리를 개발해 판매했는데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게 된 겁니다.”
“아… 괜찮겠네요.”
“또한 5가지 요리를 모두 먹고 난 후에는 후식으로 알리메 꽃차를 한 잔씩 주는데, 그러고도 가격은 요리 두 개 시킨 정도밖에 안 됩니다.”
“음… 그럼 여기에 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달의 행복을 먹겠는데요?”
“그럼요. 맛있는 것을 5가지나 먹고도 부담이 안 되니까 술손님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은 그럴 겁니다.”
“음… 정말 기대되는데요?”
“한번 먹어보세요, 하벨. 정말 맛있어요.”
“하하… 글로리아 님도 그렇게 말하시니 기대하겠습니다.”
얼마 후 요리가 나왔는데 역시나 기대한 만큼 만족이었다.
‘이야… 정말 맛있구나. 손님이 많은 것도 이해가 돼!’
맛있는 요리를 먹은 후 2층에 있는 룸으로 이동했는데 평소처럼 두 개의 룸을 잡지 않고 오늘은 특별히 현빈이 2인실을 하나 더 잡았다.
혼자서 생각할 것이 있다면서 그렇게 한 것인데, 현빈은 룸 안으로 들어오더니 문을 걸어 잠근 후에 가부좌를 틀고는 명상을 시작한 후 예지력을 끌어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