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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권 예지력을 얻다
“으음… 글쎄요. 베이든 마을은 주민이 9천 명인 중급 도시가 된 지 5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베이든 마을이라고 하니 이상해서요.”
“그렇습니까? 지도를 보니까 베이든 마을이라 되어 있어서요.”
“그렇군요. 생각보다 지도가 오래된 것인가 봅니다.”
“듀란 씨의 말을 듣고 보니 나도 몰랐는데 정말 그렇군요. 그런데 여자 분도 용병입니까?”
“예, 비록 3서클 유저 마법사이지만 어엿한 용병입니다.”
“아… 대단하십니다. 여자 분께서 거친 용병 일을 하시다니.”
“괜찮습니다.”
“그런데 오크를 사냥하면 돈벌이가 되긴 됩니까?”
“그럼요. 오크 1마리를 사냥하면 2실버를 받을 수 있습니다.”
“2실버요? 숲에서만 살다보니 2실버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는데 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그럼요. 얼마든지 알려드리죠. 먼저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구리로 제조된 코인입니다. 코인 백 개가 모이면 1실버가 되는데 은화입니다. 그리고 1실버가 다시 백 개 모이면 골드가 되는데 황금으로 만든 금화입니다. 보통 빵 한 개의 가격이 2코인이며 4인 가족에게 한 달에 들어가는 생활비가 3실버 정도 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 잘 알겠습니다만, 한 가지만 더 물어보겠습니다.”
“예, 얼마든지요. 말해보세요.”
“크린베른 숲과 베이든 도시는 지도를 보니 아비린 왕국이라 되어 있는데 지금은 어느 왕국령입니까?”
“으음… 크린베른 숲에서 오랫동안 살고 계셨다면 모를 수도 있겠군요. 크린베른 숲과 도시 베이든은 모두 아비린 왕국령이 맞습니다. 그리고 현재 헤이즌 2세께서 국왕으로 계십니다.”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 아닙니다. 저희들의 목숨을 구해주셨는데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벨 님 도시 베이든까지 가신다고 하셨으니 같이 움직여도 되겠습니까?”
“저야 상관없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럼 같이 움직이겠습니다.”
“나무 위에서 잠을 자다가 잘못하면 떨어질 수도 있는데, 마침 제가 그물 침대를 몇 개 가지고 있으니 빌려드리겠습니다. 쓰세요.”
“저, 정말 고맙습니다, 하벨 님.”
현빈에게서 그물 침대와 밧줄을 건네받은 그들은 서둘러 끝을 잘 묶은 다음 몸도 잘 묶고는 누웠다.
그러자 아주 편안했다.
“하벨 님, 생각했던 것보다 정말 편하군요.”
“그럴 겁니다. 숲에서는 그냥 잠을 자면 위험한데 이렇게 나무 위에서 그물 침대에서 잠을 자면 몬스터로부터 공격을 받지 않으니까 일단 안심이 될 것이고 무기를 옆에 두면 언제든 신속하게 대처를 할 수 있으니 아주 유용하더군요.”
“하벨 님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렇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세 사람은 오크에게서 도망치느라 무척 피곤했는지 금세 곯아떨어졌는데 듀란은 코까지 골았다.
현빈도 잠을 청하기 위해서 눈을 감았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러간 후 피냄새를 맡은 늑대 무리가 어슬렁거리면서 다가왔다.
바스락!
그리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조용한 숲 속의 밤이라서 그런지 아님 현빈의 귀가 밝은 것인지 바스락거리는 소음을 듣고는 감았던 눈을 떴다.
불빛 한 점 없는 캄캄한 밤이었지만 현빈에게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이계로 넘어와 신장이 조금 더 커지면서 눈도 덩달아 몇 배나 밝아졌던 것이다.
어둠 속에서 늑대 무리가 가까이 다가오자 옆에 놓아두었던 석궁을 조준하고는 쏘았다.
피윳… 퍽!
털썩.
이마에 화살을 맞은 늑대 1마리는 위력적인 석궁에 의해 3미터를 날아가 떨어졌다.
몇 초간 부르르 떨던 늑대가 잠잠해졌다. 즉사한 것이다.
투투퉁… 퍼퍼퍽!
연속으로 발사된 석궁에 맞은 늑대들은 튕기듯 나가떨어졌다.
그제야 늑대들도 위험을 감지하고는 흩어졌지만 현빈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계속 1마리씩 조준하여 쏜 석궁에 맞은 늑대들은 제대로 피하지도 못한 채 그렇게 순식간에 20여 마리가 넘게 쓰러졌다. 늑대의 우두머리가 먼저 겁을 집어 먹고는 뒤돌아 달아나자 나머지 늑대들도 재빨리 달아났다.
‘후후후… 역시 이 석궁은 아주 위력적이니 마음에 쏙 들어. 총이 없는 이곳에서는 아주 유용한 무기야.’
짹짹짹!
이름 모를 산새소리가 들려오자 현빈이 제일 먼저 잠에서 깨어났고 그 다음으로 글로리아가 깨어났다.
듀란과 립톤은 코까지 고는 것을 보니 아직 한밤중인 모양이었다.
현빈은 밤사이 굳었던 몸을 스트레칭으로 풀어주었고 수건에 물을 적셔 얼굴을 닦았다.
그 모습을 글로리아가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뭐 필요한 것 있습니까?”
“아, 아니… 저… 그게.”
글로리아는 말을 더듬거렸지만 현빈은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깨끗한 수건에 물을 적셔 그녀에게 건넸다.
“고, 고맙습니다.”
뒤돌아선 글로리아가 젖은 수건을 가지고 얼굴을 닦기 시작하자 현빈은 마법 화로를 놓고는 냄비를 올려 수프를 끓이기 시작했다.
얼굴을 다 닦은 글로리아는 현빈이 하는 것을 쳐다보고 있었다.
숲에서 살았다는 사람이 자신들보다 더 좋은 물건을 사용하자 부럽기도 하면서도 신기했다.
글로리아는 마법사라 현빈이 지금 수프를 끓이고 있는 마법 화로가 무척 비싼 마법 물품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글로리아가 현빈을 계속 쳐다보자 조금 부담스러웠는지 입을 열었다.
“수프가 다 끓여졌는데 한 그릇 들어보세요.”
“아, 고… 고맙습니다.”
현빈이 건넨 그릇을 받아든 글로리아는 따끈한 수프를 떠먹었고 굳었던 몸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향긋한 수프 냄새에 듀란과 립톤이 잠에서 깨어났다.
현빈은 수프를 먹다가 그들을 발견하고는 그릇에 수프를 덜어 건넸다.
“안 그래도 배가 고팠는데, 잘 먹겠습니다, 하벨 님.”
“저도 그렇습니다.”
듀란과 립톤이 허겁지겁 수프를 먹기 시작했고 곧 빈 그릇이 되었기에 현빈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번지면서 냄비를 내밀었다.
“수프가 더 있으니 마저 드세요.”
“오우… 수프가 정말 맛있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듀란과 립톤은 며칠 굶은 사람들처럼 수프를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퍼먹었고 냄비는 얼마 후 텅 비었다. 두 사람 다 먹성 하나는 알아줬다.
그물 침대를 걷은 그들은 얼마 후 나무 밑으로 내려왔고 듀란은 쓰러져 있는 페이든의 곁으로 걸어가 그의 소지품을 모두 수거하고는 땅을 파기 시작했다.
얼마 후 페이든을 땅속에다가 잘 묻은 그들은 눈을 감고 잠시 기도하고는 뒤돌아섰다.
숲을 벗어나려고 몇 걸음 걸어가다가 비릿한 냄새가 느껴졌는데 사방에 쓰러져 있는 늑대들이 보였다.
“어머… 늑대들이 쓰러져 있어요.”
“으음… 밤사이에 나타난 것 같은데?”
“혹시 이 늑대들, 하벨 님의 석궁으로 잡은 겁니까?”
“예, 맞습니다. 밤에 부스럭거려 몇 마리 잡았습니다.”
“하하… 대단하십니다.”
“이 늑대들을 메고 가면 좋겠지만 무리겠지요?”
“쩝… 정말 아까워!”
‘아직 화살이 많은데 굳이 몇 발 수거하고자 죽어 있는 것들에게서 화살을 뽑는다는 게 영 찝찝해. 그냥 가는 게 좋겠어.’
현빈이 죽은 오크와 늑대들의 몸에 박혀 있는 화살을 뽑지 않고 그냥 지나가 버리자 세 사람은 왜 화살을 수거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화살이 아깝지도 않은가?’
‘하긴 화살보다 먼저 이곳을 벗어나는 게 상책이겠어.’
현빈과 듀란 일행은 이틀은 더 우거진 숲 속을 나아가면서 작은 동물을 사냥했으며 가끔 하급 몬스터 무리를 만났지만 석궁으로 무난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도시 베이든.
자이론 백작령으로 영주성이 이곳에 있으며 인근에는 파코 남작의 하이른 성과 제른 남작의 실드란 성이 있다.
자이론 백작은 크고 작은 27개 마을과 노예, 병사, 기사단을 전부 포함해 3만6천 명의 영지민을 통치하는 아비린 왕국의 남부 귀족이다.
터벅터벅!
먼지를 제법 뒤집어쓴 4명은 크린베른 숲을 벗어나 숲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코리슨 마을에 접어들었다.
크린베른 숲 초입에 있는 마을이다 보니 가끔씩 몬스터가 출몰해서 목책과 감시탑이 세워져 있다.
마을에는 약 8백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70명의 무장한 병사들이 감시탑과 목책 위에서 경비를 서고 있었다.
최근 2년간은 몬스터가 출몰하지 않아서 그나마 한가로웠다.
목책 앞에서 5명의 창을 든 병사들이 잡담을 하다가 그들 앞으로 다가오는 현빈과 듀란 일행을 발견하고는 잠시 흠칫거렸지만 곧 그들이 누구인지 알고는 얼굴에 웃음이 피어났다.
“여어, 듀란. 오크는 많이 잡았나?”
“척 보면 모르겠나, 빌? 백 마리의 오크 무리를 만나 파티가 박살나버렸고 겨우 우리만 살아남았어.”
“허… 그런 일이? 그런데 처음 보는 저 남자는 누군가?”
“우리를 구해준 사람인데 하벨이라고 하네.”
“하벨?”
“크린베른 숲에서 살던 사람인데 용병에 가입하려고 가는 길이네. 우리를 많이 도와주었거든.”
“하하… 그런가? 좋은 결과 있기 바라네.”
“고맙습니다.”
현빈은 빌이라는 병사에게 대답하고는 듀란을 따라 목책 안으로 들어섰다. 일행은 크리슨 마을의 술집으로 향했다.
마을 안에는 숙식이 되는 술집이 한 집뿐이었다. 그래서 선택할 여지도 없이 그곳으로 향할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기에 일행은 그곳을 향해 걸었다.
와글와글!
석양이 지는 시간이라 술집 안에는 제법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술을 마시면서 잡담을 하고 있다.
덜컹!
듀란이 술집의 문을 거칠게 밀고 들어서자 제법 시끄러웠던 술집 분위기가 일시에 찬물을 끼얹은 듯 싸해졌다.
그리고 그들을 쳐다보던 사람들이 일시에 잡담을 멈추었기에 조용해졌다.
그러다가 들어선 사람이 용병계에서 제법 얼굴이 알려진 듀란이었기에 곧 그들은 고개를 돌리고 다시 잡담을 하면서 술을 들이켰다.
“리브슨, 여기 맥주 한 통하고 식사 좀 줘!”
“하하하… 누군가 했더니 듀란이군.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
긴 테이블 안쪽에 들어가 있던 술집의 주인인 리브슨이 듀란의 주문에 대답하면서 뒤쪽에 있는 주방에 듀란이 주문한 것을 말했다.
“하벨, 여기에 앉아서 먹읍시다.”
“예, 그러죠, 듀란.”
4인용 테이블에 앉은 그들은 리브슨이 가져온 맥주를 듀란이 건네받아 나무잔에 붓고는 먼저 한 모금 들이켰다.
“아… 이제야 살 것 같아. 리브슨, 빈방 있어?”
“저번처럼 방 두 개면 되겠어?”
“그래, 글로리아가 하나 쓰고 나머지는 우리가 써야 하니까 조금 큰방이면 좋겠어.”
“준비해둘 테니, 맥주나 마시라구.”
“모처럼 마시는 술인데 맥주로 되겠어? 갈리아주 있지?”
“두 통 남았어.”
“좋아, 그건 우리 거야. 알지?”
“알았어. 일단 식사 후에 줄게.”
“하하하… 기분 좋군.”
듀란은 애주가이기 때문에 아무 술이나 좋아하지만 특히 갈리아주를 제일 좋아한다. 그래서 리브슨에게 갈리아주가 있는지 물었던 것이다.
갈리아는 크린베른 숲에서 많이 자라는 열매다.
야생 산딸기와 비슷한 종으로 향이 뛰어나고 달아서 술을 담으면 다른 술보다 배는 비싸게 팔 수 있었다.
나중에 현빈이 알게 된 사실인데 에슬론 대륙에는 양조기술이 그다지 뛰어나지 못해서 발효주만 있었지 술을 증류하는 증류주는 아직 개발되어 있지 않았다.
일행은 맥주를 마시면서 얘기를 나누다 나이를 알게 되어 말을 놓게 되었다. 조금 기다리자 드디어 저녁이 나왔는데 돼지고기로 만든 스테이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