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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권 예지력을 얻다
스으… 츠츠츳!
허공에 30센티미터 정도 되는 거대한 외눈이 하나 생겨났다.
그 외눈과 눈동자는 모두 황금색이었으며 흩어지지 않는 연기 같은 것이었다.
-이제 나 델리안은 그대를 주인으로 섬길 것을 맹약한다. 그런데 주인의 이름이 뭐지?
“나? 박현빈!”
-이제부터 나 델리안은 박현빈을 주인으로 섬길 것을 맹약한다.
“델리안, 너는 주인에게도 말을 높이지 않는 거냐?”
-나 델리안과 주인인 박현빈은 서로 동등하다. 주인의 맹약조건으로 나에게 준 피는 박현빈 주인이 죽어 소멸될 때까지 유지된다.
“그럼 내가 죽으면 다른 자와 다시 맹약할 수 있는 건가?”
-그렇다, 박현빈 주인!
“좋아, 그건 그렇고 델리안은 어떤 능력이 있지?”
-나에 대해서 모르고 맹약한 것인가?
“음… 그렇다. 그러니 알려다오.”
-나는 마법으로 자아를 가지고 태어났으며 나만의 공간을 가진 존재이다.
“너만의 공간?”
-그렇다. 나는 1만6천 년 전에 골드 드래곤 칼드론 님께서 막대한 양의 물건을 보관하기 위해서 나를 창조하셨지.
“그럼, 델리안이 가지고 있는 공간은 얼마나 큰가?”
-처음 칼드론 님께서 나를 창조할 때에는 가로와 세로가 약 10킬로미터 정도였지만 자아를 가진 나는 마나를 계속 흡수해 공간을 넓혔는데 80킬로미터 정도 되었을 때 칼드론 님께서 마나의 품으로 돌아가 버리셔서 나도 깊은 잠에 빠지게 되었지만, 그래도 나는 계속 마나를 흡수할 수 있었고 지금은 나만의 공간이 120킬로미터 정도 된다.
“우와… 그럼 너의 공간이 120킬로미터나 되니까 그 속에 가득 찰 정도로 물건을 집어넣을 수도 있다는 말이잖아?”
-뭐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박현빈 주인. 하지만 나의 공간은 마법의 공간이기 때문에 살아 있는 생명은 들어오지 못한다.
“그렇군. 델리안, 너 혹시 지금도 너의 공간 속에 칼드론인가 하는 드래곤이 넣어둔 물건이 있냐?”
-당연하게 있다, 박현빈 주인!
“그래? 그럼 혹시 그 물건의 주인이 누구냐? 그 칼드론인가 하는 드래곤은 마나의 품으로 돌아갔다면서?”
-지금 나의 공간 속에 들어 있는 것은 모두 박현빈 주인 거다.
“정말?”
-그렇다. 맹약기간 동안에 사용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만약 그 맹약기간이 끝나 재맹약을 하지 않으면 그 물건의 소유는 다음 주인에게로 넘어간다. 그러니까 지금 나의 공간에 들어 있는 물건의 주인은 박현빈 주인이 되는 거다.
“하하하… 델리안은 정말 내 마음에 들어. 그런데 말이야, 너의 공간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어떻게 볼 수 있어?”
-그건 특별한 물건이 있어야만 볼 수 있으니 이걸 받아라, 박현빈 주인.
츠으… 츠츠츳!
현빈의 앞 허공에 황금으로 된 팔찌 하나가 생성되었다.
“이, 이건 뭐지?”
-그 팔찌가 있어야만 나의 공간 속에 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니 지금 착용해라.
철컥!
데리안의 말대로 현빈이 팔찌를 착용하자 순식간에 그의 눈에 어떤 공간이 보였다.
그 공간은 하늘도 없고 땅도 없지만 바닥은 평평하면서 마치 대리석으로 깔려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생명력이 없는 공간이라서 그런지 가상현실 속의 그런 공간처럼 느껴졌다.
또한 이곳은 망망대해 위에 자신 혼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 공간 속에는 각종 보물이 가득했으며 그 보물이 내뿜는 빛으로 휘황찬란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산처럼 쌓여 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현빈은 마치 가상현실을 보는 듯했고 어떻게 움직이는지 몰라 당황했지만 곧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눈동자가 움직이는 대로 자유롭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금화와 은화를 비롯해 각종 보석류가 따로따로 산처럼 쌓여 있었으며, 그것들을 살펴보면서 계속 앞으로 나아가자 이번에는 각종 칼들이 나타났고 그 다음에는 전투도끼, 활, 창 등 각종 무구가 나오더니 이제는 갑옷이 진열된 곳이었다.
이런 식으로 각종 물건들이 끝없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마치 바둑판처럼 잘 정리되어 있었다.
현빈은 델리안의 공간 속을 한참 둘러보았으나 각종 물건들이 얼마나 많은지 지금 살고 있는 곳보다 약 다섯 배는 많아 보였다.
“히유… 델리안, 정말 엄청나구나. 그런데 이 공간을 어떻게 나가지?”
-박현빈 주인은 이 공간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마법으로 볼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그만 보고 싶으면 ‘델리안, 그만 보고 싶다.’라고만 외치면 된다.
“그래? 델리안, 그만 보고 싶다.”
스으… 츠츠츳!
순식간에 현빈이 보던 공간이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리면서 차고 있던 팔찌도 사라져버렸다.
“휴우… 델리안, 정말 대단해. 그런데 그 공간 속에 들어 있는 것을 내가 꺼내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지?”
-박현빈 주인, 그건 간단하다. 그냥 눈으로 보던 것을 ‘델리안, 꺼내줘’ 하면 되는데 만약 금화라면 ‘얼마를 꺼내줘’ 하는 식으로 말하면 된다.
“음… 어렵지 않구나. 그런데 델리안, 너는 크기가 커서 들고 다니기 힘든데 어떻게 해?”
-박현빈 주인, 그것도 걱정할 필요 없다. 나 델리안은 박현빈 주인과 피로 맺어진 맹약관계이기 때문에 주인이 죽지 않는 이상은 나를 부르기만 하면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 ‘델리안, 나와라’ 하면 나타나고, 사라지게 하려면 ‘델리안, 들어가’라고 말하면 된다.
“뭐 별로 어렵지는 않구나. 잘 알았다. 델리안, 들어가!”
스으… 스슷!
현빈의 말대로 델리안이 사라져버리자 그제야 실감이 나는 듯 현빈의 얼굴은 밝아졌다.
꼬르륵!
“후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일단은 먹고 시작해야지.”
현빈은 음식 재료가 있는 홀로 뛰어 들어가 요리를 만들었고 얼마 후 그 요리를 배불리 먹고 와인을 마셨다.
현빈은 부른 배를 손으로 만져보고는 마법 물품이 들어 있는 홀로 다시 들어가더니 검은색 천으로 된 작은 마법 주머니 한 개와 역시 한쪽 어깨에 멜 수 있는 끈이 달린 마법 주머니를 하나 집어 들었다.
그리고 물건을 자루 속에 마구 집어넣고 그곳을 나오더니 이번에는 여행할 때 입을 옷과 각종 물건들을 마법 주머니에 집어넣었으며 마지막으로 가죽 갑옷을 입고 나왔다.
이번에는 무구가 있는 홀에 들어가 몇 개의 검과 무기를 골라 마법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연속 발사가 가능한 마법 기능이 걸려 있는 석궁과 대검 한 자루를 허리에 꽂고는 걸어 나왔다.
또한 보석이 가득한 홀에 들어가 은화와 금화를 비롯해 각종 보석류를 마법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는데 크기에 비해서 말도 안 되게 들어가는 것을 보니 밀 두 포대 정도의 양은 들어간 것 같다.
그런데도 무게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역시 마법 주머니는 대단한 물건이었다.
이렇게 현빈은 이곳을 떠나기 위해서 준비를 했는데 당분간 먹을 식량과 건량을 비롯해 물도 충분하게 담아서 마법 주머니 속에다가 집어넣었다.
이렇게 준비하는 것만 한나절이 지나갔기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다시 날이 밝아왔다.
“델리안, 나와라!”
스으… 츠츠츳!
현빈의 전방에 델리안의 눈동자가 나타났다.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현빈은 델리안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델리안, 이 홀의 바닥에 깔려 있는 황금을 전부 너의 공간에 집어넣을 수 있어?”
-얼마든지 가능하다, 박현빈 주인. 지금 넣을까?
“그래, 델리안. 부탁한다.”
츠으… 츠츠츠!
중앙 홀에 깔려 있던 엄청난 양의 황금이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는데 현빈이 눈동자를 몇 번 깜빡거릴 정도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버, 벌써 끝난 거야?”
-이 정도를 나의 공간에 집어넣는 것은 순간이다.
“후후후… 델리안, 정말 대단해. 그런데 저기 보이는 6개의 홀 속에 막대한 물건들이 가득한데 그걸 직접 가지 않고도 집어넣을 수 있어?”
-안 그래도 그 물건들이 전부 보였는데 그 정도야 얼마든지 가능하다, 박현빈 주인.
“그래? 델리안, 그럼 지금 당장 너의 공간 속에 모두 집어 넣어줘.”
-알았다, 박현빈 주인.
스으… 츠츠츠!
약 1분 정도를 기다리던 현빈은 델리안에게 말했다.
“델리안, 다 집어넣었어?”
-그렇다, 박현빈 주인.
“그럼 내가 저 홀에 들어가서 다 집어넣었는지 확인해보고 올게.”
후다닥!
현빈이 먼저 보석이 가득했던 홀로 들어가 보았더니 금화 하나 남기지 않고 깨끗했다.
두 번째 홀에 들어가 보아도 마찬가지였으며 6개 홀 전부 텅텅 빈 것을 확인한 현빈은 기분 좋은 얼굴로 중앙홀로 걸어 나왔다.
“하하하… 델리안, 너 정말 대단하구나. 델리안, 들어가!”
-알았다, 박현빈 주인!
츠파파팟!
델리안이 사라지자 골드 드래곤 칼리드란의 레어를 한차례 둘러보던 현빈은 뒤돌아 레어의 입구로 걸어 나가며 중얼거렸다.
“잘 있어라, 보금자리야. 다시는 여기에 못 올 거야. 내가 여기를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앞으로 열흘 뒤면 이곳에 누군가 들어오기 때문이야. 난 분명히 예지력으로 보았거든. 그자들은 날 죽이고 이곳의 보물을 모두 가져가더라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내가 먼저 이곳을 떠나는 거야. 난 아직 죽고 싶지 않거든. 간다, 안녕!”
골드 드래곤 칼리드란의 레어 입구로 걸어 나온 현빈의 눈앞에는 끝없이 펼쳐진 숲이 들어왔다.
“아, 정말 푸르고 아름답게 보이는 숲이지만 너무 울창한 게 힘들겠어!”
현빈은 상의 주머니에서 지도를 꺼내 펼친 후 지도와 숲을 번갈아 가면서 살펴보았다.
“음… 이 지도에 그려진 봉우리를 보니까 내가 여기쯤 있는 것 같고 이 엄청나게 넓은 숲은 크리베른 숲이라 하는군. 어쨌든 가장 가까운 인간의 마을은 남쪽으로 7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베이든이라는 마을이네? 걸어서 가야 하니까 며칠은 걸리겠어.”
저벅저벅!
현빈은 골드 드래곤 칼리드란의 레어를 싹쓸이하고는 크린베른 숲으로 들어갔다.
이것으로 이계의 인간들이 살고 있다는 베이든 마을을 향해서 첫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크린베른 숲의 울창한 원시림으로 들어선 현빈은 따가울 정도의 햇볕과 후덥지근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한나절이나 걷었는데도 그렇게 땀이 많이 나오지 않았으며 지치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벌써 쓰러져도 쓰러졌을 텐데, 이상하게도 체력이 좋아진 건지, 아직은 팔팔했다.
“후욱, 후욱!”
숨을 고르면서 걷던 현빈은 혼자 중얼거렸다.
“이상하긴 이상해. 예전에는 이렇게 체력이 좋지는 않았는데? 키가 좀 더 커져서 그런지 생각보다 체력도 많이 좋아진 것 같아. 뭐 나에게는 좋은 현상이니 따지기는 그렇군.”
방수처리가 되어 있는 가죽 물통의 입구를 열고는 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아, 물맛 한번 끝내주는구나.”
질겅, 질겅!
현빈은 상의 주머니에서 육포를 입에 넣고는 다시 걸음을 재촉했고 그렇게 베이든 마을을 향해 나아갔다.
한참을 앞으로 나가던 현빈은 하늘을 한번 쳐다보았다.
숲이 너무 울창해 하늘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날이 저물고 있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