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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권 예지력을 얻다
이렇게 되자 학교에서도 인정하여 조기 졸업이 되었으며 바로 사법연수 과정을 신청했다.
사법연수 과정은 특별한 것이 없었는데 그곳의 규칙대로 열심히 공부하면서 책을 읽으면서 시간이 흘러갔고 틈틈이 소현을 만나서 데이트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현빈의 사법연수원 시절 소현도 4학년이 되어 사법 시험에 응시해 단번에 3차까지 합격해 주위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다들 미모를 겸비한 재원이라며 칭찬 일색이었다.
특히 언론이나 방송에서도 관심이 집중되어 방송 출연이 잦아졌다.
현빈의 사법연수원 2년의 소정 과정을 몇 달 앞두고서 이렇게 소현이 큰일을 했던 것이다.
소현이 졸업해서 사법연수원에 들어올 때에는 현빈은 그곳을 졸업하게 되었고 군법무관을 지원해 3개월간 군사 훈련을 받고는 군검찰관으로 복무를 해야만 했다.
현빈은 군검찰관으로 장교이기 때문에 출퇴근이 가능하고, 관사 및 사택에서 생활이 가능하기에 사택을 하나 얻어서 생활하게 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저녁에는 소현과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이미 소현의 부모님들도 현빈과의 관계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현빈이 군검찰관을 제대하면 두 사람을 결혼시킬 예정이었다. 소현과 현빈도 당연히 그렇게 알고 있었다.
현빈이 군검찰관 생활을 하는 것에는 특별히 힘든 일은 없었기에 소현을 만나지 않는 저녁 시간에는 주로 책을 읽으면서 보내었다.
그런데 어느 날 현빈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강렬한 떨림이 느껴졌다.
그래서 명상을 통하여 예지력을 펼쳐보았더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이었다.
뭔가 운명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알겠는데 그게 무엇인지 나오지 않아 처음으로 당황했다.
현빈이 예지력을 일으키면 일반인들 것은 한 달 정도는 쉽게 미래가 보이지만, 자신의 미래와 일반인의 한 달 후의 일은 명상을 통해서만 볼 수 있었다.
6개월 정도의 미래를 넘어서면 머릿속이 아파왔기에 더 이상은 펼치지 않았다. 또한 정신을 집중해서 예지를 살피게 되면 며칠간은 기운이 없었다.
“으음… 왜 나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 걸까?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단순하고 간단한 일 같으면 바로 처리를 할 수 있었지만 이건 그게 아니었다.
점점 목을 조여 오듯이 그렇게 어둠이 보였다.
“으음… 아무리 내가 예지 능력이 탁월해도 이런 상황에서는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지 못하는데.”
불길한 예감에 현빈은 안절부절못했다.
하지만 군검찰관 신분이기에 소임을 안 할 수도 없었는데 운명적인 그날이 닥쳤다.
법원으로 향하는 길에 차들이 평소보다 훨씬 심하게 밀렸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재판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현빈은 서류 가방을 들고 차에서 내려 빨리 걸었다.
“아… 이렇게 되면 피할 수 없게 되는데… 아닐 거야!”
애써 고개를 흔들어 잡생각을 떨쳐버리고는 인도를 뛰었으며 현빈의 20미터 앞에 있는 인도의 오른쪽으로 꺾인 길이 점점 다가왔다.
지금 인도를 뛰어가는 사람은 현빈이 유일했다.
우우웅… 파츠츠츠!
갑자기 공명음이 터지면서 공간이 이지러지더니 순식간에 지상에서 1미터 정도 뜬 허공에 속을 알 수 없는 칠흑같이 어두운 구멍이 생겨났다.
마치 블랙홀을 보는 듯했다.
둘레가 약 3미터 정도로 넓어진 구멍은 주위에 있는 공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했고 마침 꺾인 인도에 현빈이 나타났다.
“어엇, 이… 이건?”
빠르게 뛰어가던 현빈은 바로 멈출 수 없었는데 갑자기 앞에 검은 구멍이 떡하니 나타나 있는 상황이다 보니 너무 놀랐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이럴 수는 없어. 아, 안 돼!”
현빈의 상체는 순식간에 검은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이내 두 다리마저 삼켜지듯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와중에 손에 들고 있었던 서류 가방은 그만 놓쳐버렸다.
츠파파파팟!
믿을 수 없게도 검은 구멍은 순식간에 현빈을 집어삼키고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사라져버렸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도 눈만 깜빡거리다가 ‘잘못 봤나?’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대한 몸체를 가진 골드 드래곤 칼리드란은 8천2백 살의 고룡 급으로 자신의 황금 바닥에 엎드려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 심심해!”
칼리드란은 하품을 연신 해대면서 입을 쩝쩝거렸다.
그는 다른 드래곤들보다 호기심과 욕심이 더 많아서 무엇이든지 지고는 못 사는 특이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유아기를 지나 당당한 드래곤의 성체가 되면서 다른 드래곤들보다 더 열심히 마법 수련을 했기에 같은 나이 때의 드래곤보다 몇백 년은 빠른 성취를 이루면서 드래곤 사회에서 나름대로 수재라고 인정도 받았다.
또한 다른 드래곤보다 유희도 배나 많이 해보았으며 대륙에 안 다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이 돌아다녔었다.
성격 자체가 다른 드래곤보다 강해서인지 드워프의 마을에 자주 나타나 겁을 주고 공포심을 자극해 드워프들에게서 각종 보석들과 진귀한 물건들도 많이 수집했다.
때문에 그의 레어 창고는 각종 보석들과 무구들로 가득 찼다.
칼리드란은 무료함에 좀이 쑤실 것 같았는데 갑자기 머릿속에서 번뜩이는 영감이 생겨났다.
“그… 그래,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으하하하.”
흐리멍덩했던 칼리드란의 눈이 갑자기 안광이 번뜩이고 환희에 차오르더니 벌떡 일어나 인간으로 폴리모프했다.
그리고선 자신의 실험실로 쪼르르 달려갔다.
그때부터였다.
미친 듯이 마법서를 뒤지더니 실험에 필요한 각종 재료들도 수없이 동원되었다.
그렇게 칼리드란은 자신의 레어에서 두문불출하길 150년 만의 결실이었다.
“우하하하! 드, 드디어 준비가 끝났구나.”
레어가 떠나갈 정도로 떠들던 칼리드란은 고개를 연신 끄덕이면서 얼굴이 환해졌다. 그는 지난 150년간의 세월을 회상하면서 감회에 젖어 있었다.
아무도 생각해보지 않았고 감히 시도해보지 않았던 것을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노력하길 150년이었다.
드래곤 사회에서 수재라 평가되는 칼리드란이 지식을 총동원해 연구한 것이 오늘에야 모든 준비가 끝이 났고 마지막으로 그 실험이 실행하는 일만 남게 된 것이다.
칼리드란이 사상 최초로 시행할 실험을 위해 마련해둔 곳은 별실로 사방이 온통 두꺼운 화강암으로 된 곳이었는데 허공에 약 3미터 정도 되는 크기를 가진 그림이 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림이 아니라 정체를 알 수 없는 마법진이었다.
마법진은 세로로 그려져 있었는데 3미터 정도 크기의 원 안에 다시 별모양의 거대한 도형이 그려져 있었으며 그 주위에 온통 룬문자가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 다른 마법진과 조금 다른 점은, 이 마법진은 드래곤의 귀한 피로 그려졌기에 온통 황금빛이 돈다는 것이다.
스윽.
칼리드란의 품속에서 나온 것은 지름 15센티미터 정도 되는 은빛 구였다.
역시 은빛이 나는 구의 겉면에도 룬문자가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후후후… 차원이동 마법진도 대단하지만 이 은빛 구도 중요한 것이지.”
은빛 구의 재료는 미스릴이고 구의 속에는 가장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는 드래곤 하트 조각이 들어 있었다.
“자, 준비는 모두 끝이 났으니 이제 시작해볼까. 차원이동 마법진이여, 나의 의지로 말하노니 이루어져라!”
우우웅!
차원이동 마법진에서 황금빛이 ‘확’ 하고 번지면서 공명음이 터졌고 별관 안의 공간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파지지직!
이제는 작은 스파크까지 튀기 시작했는데 칼리드란의 눈빛은 아직 고요하기만 했다.
공간이 더욱 심하게 요동치면서 막대한 마나가 느껴지기 시작했고 공간에 심한 떨림 현상이 느껴지면서 거센 바람이 일어났다.
마치 폭풍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그만큼 압력이 상상을 초월했는데 칼리드란은 그제야 은빛 구를 움켜쥐고 있던 손을 펼쳤다.
은빛의 미스릴 구는 허공을 가로질러 날아가 차원이동 마법진의 가운데에 박히더니 스르르 빨려 들어가 버렸다.
번쩍!
제대로 쳐다보기도 힘들 정도로 환한 빛이 일어나더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 그렇게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별관은 다시 고요해졌고 차원이동 마법진은 소멸되어버렸다.
“우하하하! 내, 내가 최초로 이걸 성공시켰어.”
골드 드래곤 칼리드란은 혼자서 희희낙락했다.
이제 차원이동 마법진이 성공했다는 결과물만 도착하면 이번 연구는 완벽하게 성공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예상했던 열흘이 지나자 ‘조금 늦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애써 위로했지만 한 달이 지나도 결과물이 도착하지 않아 당황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 어느덧 세월은 흘러 1백 년이 지나가자 결과물을 기다리던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자신의 연구가 실패로 끝났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차원이동 마법을 실행한 지 2백 년이 지나자 흥미를 완전히 잃어 이제는 그것을 떠올리는 것조차 하지 않았고 그는 기나긴 수면기에 들어갔다.
5백 년간의 긴 잠에서 깨어난 칼리드란은 평소와 다름없이 시간을 보냈다.
세월은 흘러 흘러 9824살이 되어 마나의 품으로 돌아갈 시간이 며칠 남지 않았기에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가디언들도 모두 정신계 마법에서 해제하여 종족에게로 돌려보냈으며 골렘들까지도 해체했다.
레어에 설치되어 있는 기본적인 마법들까지 모두 해제해 이제는 그냥 평범하지만 좀 큰 동굴이 되어버렸지만 레어 입구 결계만은 남겨두었다.
“허허허… 이제 모든 것들을 정리했군. 돌이켜보면 나름대로 즐거운 생이었다. 이제는 마나의 품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은 것인가?”
골드 드래곤 칼리드란은 평소 인간으로 폴리모프하던 것을 풀고 본체로 돌아와 마나의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 마법진을 손수 그리기 시작했다.
고룡 급이면 보통은 용언 마법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지만 마나의 품으로 돌아가는 작업이기에 이렇게 세심하면서도 성스러운 의식이라 생각되어 마지막 작업을 손수 하는 것이다.
마법진이 완성되어 그것을 향해 손가락을 까닥거리자 마법진이 바닥에서 스르르 떠올라 2미터 정도의 허공에 머물렀다.
잠시 마법진을 바라보던 그는 허공을 가로질러 마법진 위에 앉았다.
우우우웅!
마법진에서 공명음이 일어나면서 빛도 함께 일어났다.
골드 드래곤 칼리드란의 몸은 그 빛에 휩싸이더니 서서히 부서지면서 가루가 휘날렸다.
마치 황금 가루가 휘날리는 듯한 모습이다.
그때 별관에서 대기가 요동치면서 공간이 이지러지기 시작했다.
“응, 별관 쪽에서 무슨 일이지?”
마나의 품으로 돌아가고 있던 그는 예상하지 못한 일을 접하자 궁금증이 일어났다.
“아, 오래전에 내가 시도했던 차원이동 마법진의 결과물이 돌아오는 모양이구나. 허허허… 하필 이럴 때에… 시간이 너무 아쉽구나, 아쉬워!”
그랬다. 자신이 마나의 품으로 돌아가기 전이었다면 좋았을 것을, 지금 자신은 마나의 품으로 돌아가고 있었기에 이젠 돌이킬 수가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