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 / 0156 ----------------------------------------------
제1권 예지력을 얻다
현빈과 소현은 서로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소현이 현빈의 곁으로 바짝 붙더니 팔짱을 꼈다.
두근두근.
현빈과 소현 두 사람은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지만 행복했다.
두 사람은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다만 지금 이 시간이 너무 좋고 행복하다 느꼈다.
아파트 주위라고는 하지만 넝쿨식물과 나무들이 공원처럼 조성되어 있었는데 의자가 놓여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소현과 현빈은 나란히 한 의자에 앉았고, 살며시 소현이 현빈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현빈아, 나 너 좋아하는 것 같아. 우리 사귈래?”
“…….”
“나… 싫어?”
“아… 아냐, 그런 거… 나도 너 좋아해.”
“정말? 고… 고마워.”
여자가 먼저 사귀자고 말하는 것은 극히 드문 경우였다.
그걸 알고는 잇었지만 소현이 용기를 내어 먼저 사귀자고 말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현빈이 거절하지 않고 허락하자 소현이는 너무 행복했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소현의 얼굴이 조용히 현빈에게로 다가오더니 서로 입술이 부딪쳤다.
소현은 눈을 감았다.
그러나 현빈은 눈을 크게 뜨며 그 기분에 취해버렸다.
소현의 입술은 사과처럼 향기롭고 달콤했던 것이다.
두 사람의 첫 키스가 이렇게 이루어졌다.
‘아… 현빈이에 대해서 호감만 조금 가지고 있었는데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어. 너무 빠른 것 아닐까?’
너무 빠르게 가까워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두 사람의 마음이 짧은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한마음이 되었기에 첫 키스까지 하게 된 것이다.
만족스럽게 제법 긴 키스를 나눈 두 사람의 입술은 떨어졌지만 이번에는 서로의 몸을 힘껏 껴안았다.
서로의 따스한 체온과 쿵쾅거리는 심장소리가 요란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두 사람만의 꿈만 같은 행복한 시간이 지나갔다.
둘은 서로 몸을 떨어트렸다.
잠시 서로의 눈을 바라보던 그들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걸었지만 손은 꼭 잡고 있었다.
“그만 들어가.”
“응. 잘 가, 현빈아.”
“너도 잘 자.”
현빈이 소현의 집 앞에까지 바래다주고는 지나가는 택시를 불렀다.
“택시!”
끼이익.
택시가 멈추자 그걸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침대에 누운 현빈은 소현과의 첫 키스를 떠올렸다.
아무 일 없이 그저 생각만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실없이 그냥 웃음이 났다.
“후후… 너무 좋았어!”
약간 쑥스럽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런 행복한 기분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그만큼 소현과의 첫 키스는 강렬하게 뇌리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한참 동안이나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공부는 해야 했기에, 현빈은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고 미루어두었던 책을 다시 펴고는 공부를 시작했다.
한편 소현도 자신의 침대에 누워서 현빈과의 첫 키스를 떠올리고 있었다.
소현의 입가에 환한 웃음이 피어났다.
“호호… 현빈은 너무 귀여우면서도 멋져. 노래도 잘 부르고… 키스도 너무 좋았어.”
소현은 혼자 중얼거렸다.
행복한 기분에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던 소현은 자신도 모르게 스르르 잠들었다.
짹짹짹.
소현의 아파트 베란다에 이름 모를 작은 새 2마리가 날아와 앉더니 곧 저편으로 날아가 버렸다.
새소리에 잠을 깬 소현은 침대에서 일어나 씻고 아침밥을 먹고는 등교했다.
현빈도 등교시간에 맞추어 집을 나섰다.
반에서 만난 소현과 현빈은 조금 어색했다.
친구들의 이목이 두려워서 서로 대화를 하지는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벨은 소현에게 눈빛을 보냈다.
소현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둘만의 무언의 대화를 나누던 그들은 토요일 저녁에 번화가인 남포동에서 다시 만났다.
“저 집으로 가자!”
“그래, 맛있겠어.”
둘은 예쁜 돈가스 집에서 맛있는 돈가스를 먹으며 둘만의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으로 들어갔다.
어두운 영화관에서 둘은 손을 잡았다.
서로의 손에서는 따스한 기운이 느껴졌고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어느덧 저녁 8시가 되었다.
더 늦기 전에 집에 가야 했다.
현빈은 택시를 타고 소현의 집으로 향했다.
소현의 아파트에 도착하자, 현빈은 소현의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동안 주위를 살피던 소현이 현빈의 손을 끌어 2층으로 가는 계단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소현은 눈을 감고 입술을 내밀었다.
쪼오옥.
현빈은 소현의 촉촉한 입술에 입 맞추고 소현을 잠시 껴안고 있었다.
그러나 헤어져야만 했다.
소현은 아쉬운 듯 다시 한 번 더 현빈을 껴안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현빈이 소현의 이마에다 뽀뽀를 해주었다.
“너무 늦기 전에 들어가야지.”
“응, 알았어. 그럴게.”
다시 소현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혔다.
현빈은 아파트 앞으로 나와 7층 창문을 쳐다보았다.
7층에서 내린 소현이 계단 창문으로 현빈을 내려다보고는 손을 흔들었다.
현빈도 소현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현빈은 하루 일과가 늘 일정했지만 학교에서 소현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 모든 일이 행복하다 느꼈고 공부를 하는 것도 한없이 즐거웠다.
현빈과 소현은 수시로 만나 둘만의 시간을 가졌는데 혹시 친구들을 만날까봐 조심했다.
그래서 현빈은 학교를 하교하면 남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현빈의 집에서 소현과 만났다.
두 사람은 현빈의 집에서 만나 라면도 끓여먹고 공부도 같이 했다.
그런 사소한 일상이 두 사람에게는 보석처럼 너무 행복한 나날이었다.
그런데 사소한 문제가 있었다.
현빈은 상관없었지만 소현은 요즘 현빈과 사귀느라 성적이 걱정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현빈은, 이런 일에는 쓰지 않기로 스스로 생각해왔었지만, 오랜만에 예지력을 사용하기로 했다.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예지력을 일으켜 살펴보았더니 반에서 1등, 전교 2등 하던 소현의 실력이 10월 시험에서는 반에서는 3등, 전교에서는 5등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현빈은 이렇게 해서는 안 될 것 같아 예지력으로 10월에 나올 문제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집중적으로 그 문제에 대해서 연구한 뒤에 소현과 함께 공부했다.
원래 머리가 좋았던 소현은 현빈이 제시해주는 예상 문제들에 대해서 금방 파악했다.
최근 현빈과 연애하느라 공부에 집중을 못하고 있었지만 현빈이 예상 문제를 들고 나와 같이 공부하자 자연스럽게 공부하게 된 것이다.
아직까지 소현은 그것을 모르고 있었지만 시험을 칠 때는 알게 될 것이다.
현빈은 이런 일에 예지력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렇지만 이번만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한 것이다.
현빈은 그 사고 이후 머리가 총명해지면서 공부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에 그런 일에 예지력을 사용할 일이 없었다.
게다가 그는 예지력을 거의 의식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별로 쓸 일도 없었지만 말이다.
아니다.
생각해보니까 최근에 한 번 사용한 적이 있었다.
그건 바로 소현의 생일을 앞두고 소현이 좋아할 선물과 노래를 준비해 간 것이다.
그래서 그날 소현과 첫 키스를 했고 이렇게 사귀기까지 한 것이다.
“현빈아, 무슨 생각해?”
“아… 아냐, 아무것도… 공부하자.”
“현빈아, 출출한데 우리 라면 끓여먹고 하자.”
“내가 끓여줄까?”
“응… 현빈이가 끓여주는 라면이 제일 맛있어.”
“알았어. 맛있게 끓여줄게.”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라면을 식탁에 내려놓자 소현의 얼굴이 활짝 피어났다.
“아… 맛있겠다. 현빈이도 먹어.”
후루룩.
“그래, 알았어.”
두 사람은 두 개 끓인 라면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아… 정말 맛있었어. 배부르다.”
“그렇게 맛있었어?”
“응, 현빈의 라면 끓이는 솜씨는 제일이야… 제일!”
“라면도 먹었으니 이젠 녹차 끓여줄게.”
“고마워.”
쪼옥.
소현은 현빈의 뺨에 뽀뽀를 해주었다.
현빈이 만들어준 맛있는 라면과 녹차에 대한 소현만의 보답인 모양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녹차를 한 잔씩 마시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어머…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늦기 전에 집에 가자. 내가 데려다 줄게.”
“고마워, 현빈아.”
집에서 나온 현빈과 소현은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두 사람이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까지 걸어갔을 때 엘리베이터 앞에서 중년의 신사를 만났다.
“아… 아빠, 이제 퇴근하신 거예요?”
“어, 그래. 귀여운 내 딸 소현이구나.”
“호호… 아빠는… 참, 우리 반 친구인 박현빈이야.”
소현의 아빠는 소현의 발랄한 말에 의외라는 듯 눈이 약간 커졌다.
그리고 현빈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안녕하세요? 박현빈이라 합니다.”
“그래? 난 소현이 애비 되는데, 아참, 소현아. 너 어디 갔다가 오는 것이냐?”
“응, 현빈이 집에서 공부하고 와요.”
“우리 딸이 집에서 공부하지 않고 친구 집에서 공부를 다 하네?”
“아빠는 잘 몰라서 그렇지 현빈이가 나보다 더 공부를 잘한다고요.”
“뭐? 우리딸보다 더 공부를 잘해?”
“예, 아빠. 전교에서 1등이라니까요.”
신사는 소현의 말에 깜짝 놀라면서 다시 한 번 현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호오… 그것 참… 이럴 게 아니라 집에 들어가 놀다가 가지?”
“아… 아닙니다. 오늘은 너무 늦었어요.”
“그래? 그럼 자주 놀러 와라.”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그래, 잘 가거라.”
“현빈아, 잘 가. 내일 학교에서 봐.”
“그래, 내일 보자.”
현빈은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현빈이 떠나가는 것을 7층 계단 창문에서 내려다보던 소현이 아쉬워했다.
“허허… 우리 딸이 그 아이를 좋아하는가 보구나.”
“아, 아니에요.”
“아니긴, 척 보니 알겠는데?”
“그, 그렇게 보여요?”
“그래, 인상이 좋은 아이더구나. 잘 사귀어봐.”
“고마워요, 아빠.”
“허허허… 우리 공주님, 그만 집으로 들어갈까요?”
“예, 아빠.”
아버지와 딸은 그렇게 집 안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