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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 Luck-2화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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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권  예지력을 얻다

예지(豫知, precognition)는 미래의 사건에 대한 비범한 인식. 정신적으로 어떤 사건을 일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보는 사건을 예언하는 데 중점을 둔다.

정신감응이나 투시력과 마찬가지로 예지는 정상적인 감각에 의존하기보다는 초감각 지각(extrasensory perception/ESP)의 한 형태로 나타난다고 한다.

꿈속에서 미래를 예견하거나 새가 날아가는 모습을 관찰하거나 제물이 된 동물의 내장을 검사하는 것과 같은 다양한 방법으로 미래를 예견한 일화들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피험자에게 뒤섞기 전에 카드의 순서를 미리 예언하라고 한다든가, 주사위를 던지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견해보라고 함으로써 예지능력을 검사할 수 있지만 그 통계적 결과는 정신감응이나 투시력 실험보다 신빙성이 낮다.

“으음… 그럼 혹시 내가 그 사고로 인해서 예언가가 된 건가?”

현빈은 미래를 예견하는 것은 맞지만 사전에 있는 것보다는 훨씬 강렬했다.

그래서 현빈은 예지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실험해보기 위해 집에서 나왔다.

그리고 해운대 해수욕장 입구에 있는 도넛 전문점으로 들어갔다.

현빈은 몇 개의 도넛과 얼음을 넣은 오렌지 주스를 가지고 이층 창가로 가 앉았다.

거리에는 아직도 해수욕을 하러 온 피서객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횡단보도에서는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 해수욕장 입구 쪽에서 현빈 쪽으로 건너오려고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 중 선글라스를 끼고 검정색 원피스 형태의 수영복을 멋지게 입은 이십대 초반의 아가씨 2명이 있었다.

그 주변에 있는 남자들은 모두 그녀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아가씨의 가슴 부분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다.

가슴도 크고 몸매와 얼굴이 확연하게 뛰어났기에 많은 남자들이 호감을 보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할 수 있었다.

평소 남자들의 시선을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을 그녀들도 잘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전혀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당당한 것이 더욱 그녀들을 돋보이게 했다.

아가씨들은 부산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

피부가 유난히 창백할 정도로 희고 수영복도 세련된 것이, 서울에서 아마 모르긴 몰라도 패션모델이나 그와 유사한 일을 하는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넘어질까? 정말로 그러면 어쩌지?”

현빈은 두 아가씨 중 우측에 서 있는 아가씨가 횡단보도를 건너다 마주 오는 아줌마와 어깨를 부딪쳐 휘청거리다 자신의 발에 걸려 넘어질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런데 잠시 후 정말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

“허억… 저… 정말로 그렇게 되었잖아! 아… 아냐, 이건 우연일 거야. 맞아, 우연이야.”

현빈은 자신의 예지력을 똑똑히 확인하고서도 그것을 극구 부인하면서 몇 번을 더 실험해보았다.

그러나 그때마다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정확히 들어맞았다.

“우… 이럴 수가, 이런 일이 나에게…….”

갑자기 목이 마른 현빈은 얼음이 들어 있는 오렌지 주스를 단숨에 마셔버렸다.

그러나 한번 흥분된 마음은 진정이 되지 않았다.

“으음… 이걸 행운이라고 해야 하나, 아님 불행이라고 해야 하나?”

현빈은 자신의 예지력이 두렵기까지 했다.

현빈은 집으로 들어와 방문을 걸어 잠그고 침대에 누웠다.

예지력 때문에 얼마나 긴장했는지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집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온몸에서도 식은땀이 솟아나 옷이 젖어 있었다.

이런 상태로는 도저히 낮잠을 잘 수도 없는 상황이다.

콸콸콸.

욕조에 물을 채우고는 옷을 벗고 들어가 누웠다.

8월이라 냉수도 그다지 차갑지 않고 미지근했다.

그래서 냉장고에 들어 있는 얼음을 전부 욕조에 넣었다.

그리고 현빈은 욕조에 다시 들어가 보았는데, 그제야 제법 물이 시원했다.

현빈은 욕조에 앉아 천천히 생각해보았다.

이런 능력이 생긴 것은 역시 그 사건 때문인 것 같았다.

고압 전기와 번개가 어떤 작용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예지력이 생긴 것만은 분명했다.

현빈의 예지력은 3초 정도 집중하면 환영처럼 미래의 어떤 영상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마치 하나의 모니터에 두 화면이 나오는 것 같았다.

쉽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텔레비전 화면에 두 개의 영상이 나오는데, 하나는 현재 것이고 또 하나는 미래의 영상인 것이다.

또한 미래의 영상에 좀 더 정신을 집중해서 바라보면 마치 필름이 흘러가듯 하루, 이틀, 사흘 뒤로 시간이 흘러 점점 먼 미래의 영상이 나왔다.

머리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던 현빈은 예지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려고 대형 서점에 들어가 책을 찾아보았다.

초능력에 대해서 나와 있는 것은 제법 보였지만 예지에 대해서는 거의 없었다.

초능력에 관한 책에 한 장 정도로 예지에 대해 설명한 것이 전부였다.

“음… 하긴 염력이나 다른 초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종종 있었지만 예지능력은 예언자인 노스트라다무스 같은 예언가만 했던 것이다 보니 그럴 거야.”

사고가 일어난 지 어느덧 2주가 넘어갔다.

1도 화상이었던 상처는 완전히 아물었다.

그러나 현빈의 허리 일부에는 2도 화상은 상처 흔적이 조금 남았다.

다행히도 겉으로 드러나는 상처가 아니었기에 충분하게 옷으로 가릴 수 있었다.

예지능력이 생긴 이후 가장 특별해진 것은 현빈의 머리가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좋아졌다는 것이다.

그 사고 전까지만 해도 현빈이 생각하기에 암기력이 그렇게 좋지 않았다.

예를 들어 시 한 편을 외운다고 하면 한참을 외워도 잘 외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외운다고 하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잊어버리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한 번만 쓰윽 읽기만 해도 완벽하게 외워졌고 잊어버리지도 않았다.

그러다보니 현빈은 갑자기 공부에 부쩍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스스로 공부에 흠뻑 취해버린 현빈은 신나게 방학 숙제를 하게 되었다.

생전 처음으로 2학기 때 배울 진도를 예습까지 했다.

“예전에는 미처 몰랐는데 공부가 이렇게 재미있는 것이었어?”

놀랍게도 한번 읽은 것이 완벽하게 외워지곤 했다.

공부에 재미를 느낀 현빈은 일단 이해가 안 되더라도 외우기부터 했다.

그리고 현빈은 평상시에 자신이 공부의 기초가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었기에 기초 공부도 해두기로 했다.

책꽂이 한쪽에 꽂아두었던 중학교 1학년 영어 교과서를 차근차근 읽어나갔다.

현빈은 그렇게 공부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일이 되었다.

방학기간 동안 현빈에게는 인생의 전환점이 될 큰 사건이 일어났지만, 같은 반 학우들은 특별한 일 없이 평소와 다름없는 방학을 보내고 개학일을 맞았다.

교단에는 검정 재킷에 무릎까지 내려오는 스커트를 입은 이십대 후반의 미모의 여선생이 서 있었다.

그분이 바로 현빈의 담임선생님인 한미란이었다.

올해 28살로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데 바다고등학교에 교사로 부임한 지 5년 되었다.

“자, 여러분. 드디어 여름 방학이 끝나고 개학일이네요. 2주 후에 9월 고사가 있으니까 공부들 열심히 하세요. 반장.”

“차렷, 경례.”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담임선생님이 교실을 나가자 교실의 이곳저곳에서 친한 학우들끼리 모여 잡담을 시작했다.

방학 동안 오래 만나지 못하다가 만났으니 좀 할 말들이 많을까?

웅성웅성.

교실 안이 아이들이 잡담하는 소리로 제법 시끄러웠다.

그러나 10위권 안에 드는 상위 학생들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 듯 책을 꺼내 보고 있었다.

그리고 하위권인 현빈도 책을 꺼내 조용히 보기 시작했다.

학우들은 현빈의 그런 모습이 무척 신기한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한두 명이 현빈을 바라보았는데, 순식간에 모든 학우의 시선이 집중되었고 그로 인해 교실은 조용해졌다.

“어머, 현빈이가 공부해!”

“호호… 너무 웃긴다.”

“그치, 그치. 방학 동안 머리가 이상해졌나?”

“에이… 말이 된다고 생각해? 저렇게 책을 본다고 하위권이던 현빈이가 상위권이 되겠어.”

“음… 하긴 닭이 날개 있다고 하늘을 날 수 있겠어?”

너무나 신기한 현상에 상위권 학생들까지 한 번씩 현빈을 쳐다보다가 머리를 옆으로 몇 번 흔들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자신들이 펼쳐 놓은 책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현빈의 이런 행동에 개그가 따로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현빈은 학교에서 있는 듯 없는 듯한 조용한 학생이었기에 학우들의 관심 밖 인물이었다.

그런데 개학 첫날에 이렇게 학우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그런 상황인데도 현빈은 전혀 상관없다는 듯 책만 읽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하교 시간이 되었다.

집으로 곧장 돌아온 현빈은 방학 동안의 생활과 다름없이 먼저 배를 든든하게 채우기 위해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에는 음식이 가득 차 있었다.

현빈은 시원한 우유를 꺼낸 뒤에 테이블에 놓여 있는 식빵을 먹었다.

식빵과 우유를 순식간에 먹어치운 그는 공부를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현빈은 벽에 걸린 벽시계를 바라보았다.

저녁 6시 40분이었다.

현빈은 읽던 책을 그대로 놓고 집을 나섰다.

현빈은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한 건물로 들어갔다.

<해운대 단전호흡>

벽면에 그런 간판이 걸린 곳으로 들어간 현빈은 도복 비슷한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고무 매트리스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이곳은 단전호흡 수련장이다.

현빈은 3일 전 이곳에 등록해 단전호흡을 하루에 두 시간씩 배우고 있다.

해운대 단전호흡 수련장은 단전호흡과 요가, 이렇게 두 가지를 가르치고 있었다.

현빈은 각각 1시간씩 그것을 배우게 되었다.

단전호흡은 마음의 안정을 위해 배우는 것이고 요가는 굳어 있는 몸을 풀어보자는 취지에서 배우는 것이다.

단전호흡과 요가를 배우고 그곳을 나서자 밤 9시가 조금 넘었다.

집으로 들어온 현빈은 허기진 배를 채웠다.

그리고 다시 새벽이 될 때까지 책을 읽었다.

“벌써 새벽 3시야?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구나. 이젠 자야겠어.”

자명종을 켜놓고 현빈은 피곤한 몸을 침대에 뉘였고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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