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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권 예지력을 얻다
1990년 7월 20일, 부산 해운대에 있는 바다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남녀 학생들이 운동장을 가로질러 파도가 백사장으로 밀려오듯 그렇게 마구 쏟아져 나왔다.
하교를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친한 친구들과 같이 걸어 나오지만 유독 한 학생이 혼자서 교문으로 걸어 나오고 있다.
그 학생의 교복 상의에 붙은 노란 이름표에는 박현빈이라 새겨져 있었다.
키는 175센티미터 정도로 또래 고등학생과 비교하면 평균 신장이라 할 수 있었다.
요즘 학생들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박현빈은 바다고등학교 2학년으로 눈썹이 짙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것이 잘생긴 얼굴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평소 기가 죽어서인지 어깨를 움츠리면서 걷고 있었기에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았다.
오늘은 전국적으로 학생들이 방학에 들어가는 날로 현빈의 바다고등학교도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현빈은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집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었다.
“어, 클로버가 피었네?”
현빈의 집 조금 못 미치는 길가에 이웃 할머니의 상추와 풋고추를 심은 텃밭이 있었다.
텃밭 한쪽 경사진 면에 클로버가 조금 피어 있었다.
현빈은 클로버를 보고는 텃밭 안으로 들어갔다.
“네 잎 클로버가 있을까? 한번 찾아봐야지!”
조심조심하면서 클로버를 뒤졌지만 행운을 뜻하는 네 잎 클로버를 그리 쉽게 발견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한참을 살피다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우와… 찾았다, 찾았어!”
환희에 찬 현빈은 세상을 다 가진 듯한 얼굴이었다.
네 잎 클로버를 조심히 뜯어 손에 들고는 한참을 바라보던 현빈은 갑자기 그걸 입에 넣었다.
그리고는 꿀꺽 삼켜버렸다.
“우히히… 이럼 행운을 내가 먹은 거지?”
단순한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현빈은 모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집을 향해 뛰어갔다.
현빈은 40평 정도 되는 단층 단독주택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다.
석 달 전 봄, 부모님이 여행길에서 관광버스와 덤프트럭이 서로 충돌하는 대형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날 이후 현빈은 하루아침에 고아가 되었다.
현빈의 아버지는 남동생과 여동생이 1명씩 있는데, 형제간의 우애가 남달라 사고 전에도 자주 집에 놀러 오곤 했다.
반면 엄마는 일가친척이나 형제가 전혀 없는 고아셨다.
혼자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니 생활도 어렵고 힘드셨지만, 아버지께서 엄마에게 첫눈에 반해 2년간이나 뒤를 따라 다니다가 결혼하셨다고 한다.
현빈의 삼촌은 작년에 대한은행 여의도 지점의 지점장으로 발령을 받아 이사를 가셨기 때문에 현재는 서울에서 살고 계신다.
며칠에 한 번씩 안부 전화를 하는데 집이 서울이라 부산까지 자주 내려오기 힘들었다.
그래서 명절 때와 여름휴가 때만 부산으로 내려오기 때문에 일 년에 세 번 정도 볼 수 있다.
8월 초에 여름휴가라니까 아마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빈의 고모는 같은 해운대에 살고 계신다.
고모에게는 딸이 하나 있는데 현빈과 같은 고등학생이지만 여고에 다니기 때문에 얼굴은 몇 달에 한 번 정도 겨우 본다.
고모부는 중소기업을 경영하고 계시기에 집안이 부유하다 할 수 있었다.
몇 달 전에 일어났던 부모님의 교통사고 뒷수습을 고모가 나서서 모두 해결해주었고 사고 보상금도 수령해주었다.
아직 고등학생으로 미성년자인 현빈이지만 대한은행 통장을 하나 가지고 있었다.
고모가 그곳에 보상금을 입금해주었고 지금은 그 통장을 현빈이 직접 관리하고 있다.
부모님의 통장에 들어 있던 돈도 모두 현빈의 통장으로 이체했기에 통장에는 6억 원이 넘는 큰돈이 들어 있다.
현빈의 삼촌과 고모는 좋은 분들이라 그 돈에 전혀 욕심을 부리시지 않았다.
욕심을 부리기는커녕, 오히려 현빈의 삼촌은 보살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면서 용돈이라는 명목으로 매월 50만 원씩 통장에 송금해주었다.
그 돈은 고등학생의 용돈으로는 많은 돈이라 남는 돈은 생활비에 보태고 있다.
현빈의 고모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일주일에 한 번씩 현빈의 집에 들러 밀린 빨래와 밑반찬을 해주고는 용돈도 주고 간다.
아주 고마운 분들이기에 현빈도 삼촌과 고모를 부모님같이 생각하고 있다.
며칠 후.
우르르… 콰쾅!
천둥과 번개가 요란스럽게 내리치고 있다.
3일째 호우가 쏟아지고 있는데, 엘니뇨 영향으로 북태평양에 고기압이 강하게 발달하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중국 양쯔강 부근에서 발생한 저기압이 동진해 오면서 우리나라 서해상에 유입되는 따뜻하고 습한 대기와 만나 강한 비구름대를 형성하였다.
제주를 제외한 전국에 연강수량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약 9백 밀리미터가 넘는 집중호우가 내리고 있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피해가 많이 발생하고 있었다.
피해액은 무려 수천억 원이나 된다고 연일 뉴스에서 떠들고 있기 때문에 현빈이 이젠 아예 외울 정도가 되었다.
현빈은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정말 뉴스에서 방송한 것처럼 호우가 심각하게 느껴지기는 했다.
“어어… 이게 왜 이래?”
거실 소파에 앉아 방송을 보고 있던 현빈은 갑자기 방송 화면이 나오지 않자 당황했다.
아마도 호우와 바람의 영향인가 보다.
“에이, 이거 왜 이래? 옥상에 있는 안테나에 이상이 생겼나?”
비가 내려 그냥 나가면 옷이 전부 젖을 것이었다.
그러나 어차피 5일이 넘도록 입었던 옷이라 이참에 아예 빨자는 생각에 그냥 옥상으로 올라갔다.
이미 비가 많이 온 상태인 데다가 계속해서 비가 내리고 있어 옥상에는 물이 제법 많이 고여 있었다.
물웅덩이를 가로질러 안테나를 살펴보았다.
평소 튼튼하게 잘 묶여져 있었기 때문인가, 안테나는 별다른 이상이 없어 보였다.
“뭐야? 이상은 없는 것 같은데…….”
그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고가 일어났다.
현빈의 집 옥상으로는 전선이 가로질러 있었다.
그 양쪽에 전봇대가 세워져 있었는데 그중 한곳에 있는 변압기에서 스파크가 일어난 것이다.
퍼엉!
굉음이 터지면서 변압기에서 불꽃이 일어났다.
그때 이어져 있던 전선이 끊어졌다.
전선은 현빈의 집 옥상에 걸쳐졌고 웅덩이에 전기가 흘렀다.
파지지직.
현빈은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물에 젖어 있는 상황에 전기까지 흐르자 현빈은 감전이 되고 말았다.
“아아악… 끄으으!”
모르긴 몰라도 전기는 수만 볼트는 될 것이므로 현빈은 감전사 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 번개까지 내리쳤다.
우르르… 콰쾅, 파지지직!
전기와 번개가 한꺼번에 현빈에게 작렬되었다.
현빈의 몸에서 김이 피어올랐다.
“끄으으으……!”
현빈은 그대로 뒤로 넘어가버렸다.
그 일대는 정전이 되어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눈에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부르르 몸을 떨던 현빈의 머리 쪽에는 보라색 빛이 몇 초 정도 일어나다가 사라졌다.
그때 마침 건너편의 집 옥상에서도 사람이 올라와 있었다.
그 사람은 현빈이 사고를 당한 것을 목격했고 즉시 119에 신고해주었다.
삐뽀… 삐뽀.
119 구급대가 도착해 현빈을 실었다.
현빈은 해운대 병원으로 후송했다.
응급실에 도착한 현빈을 살펴보던 의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굳은 표정을 지었다.
응급상황이라 즉시 정밀 진단을 실시했다.
현빈은 무사했다.
의사들은 얼마 후 결과를 보고 기적이라고 했다.
보통 전기에 감전되거나 번개를 맞은 사람은 즉사하는 게 대부분이다.
천운으로 살아나더라도 심한 화상의 후유증으로 병상에서 오랫동안 고생하게 된다.
그러나 현빈은 놀랍게도 전신에 가벼운 1도 화상일 입었을 뿐이었다.
허리 쪽에는 일부 2도 화상을 입는 것으로 그쳤기에 정말이지 천운이었다.
다만 현빈은 사고로 인한 충격으로 정신을 잃고 있었다.
일주일간 입원해 회복해야 할 것이라는 것이 의사의 진단이었다.
“현빈아, 현빈아!”
현빈의 사고 소식을 들은 현빈의 고모는 즉시 해운대 병원 응급실로 달려와 의사에게 상태를 알아보았다.
의사는 현빈의 고모에게 천운이라는 말을 전해주었다.
상태가 양호하니 일주일 정도 입원하면 퇴원할 수 있다고 하자 현빈의 고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현빈은 하루 만에 깨어났다.
그러나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에도 비는 계속 내렸는데 정말 징그러울 정도로 호우가 계속됐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일주일간 병실에 있던 현빈은 드디어 퇴원을 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고모가 현빈을 부축해 집 안으로 들어왔다.
이미 고모가 청소를 해놓았는지 집은 깨끗했다.
“당분간은 집에서 쉬고, 옥상에 올라가고 하는 그런 위험한 일은 두 번 다시 하지 마라!”
“예, 알았어요, 고모.”
“그럼 나는 가보마.”
“예, 안녕히 가세요, 고모.”
“그래, 공부 열심히 해야 된다.”
“예. 열심히 할게요.”
“무슨 일 있으면 꼭 전화하고.”
“예, 알았어요. 내가 어린아이인가요, 뭐!”
고모는 혼자 있는 현빈이 걱정되어 자꾸만 뒤돌아보았다.
그러나 현빈이 환하게 웃어주자 안심하고 돌아갔다.
현빈은 그 후로 며칠간 집 안에서만 생활하면서 방학 숙제나 하면서 지냈다.
그토록 지겹게 내리던 비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그쳤다.
자외선을 많이 함유한 햇볕이 강렬하게 비추자 피서객들이 해운대 해수욕장에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호우로 인한 재해로 예전보다는 피서객들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수십만 인파가 몰렸다.
사고를 당한 이후 현빈은 이상한 환영 같은 것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느낌에 대해서 딱히 뭐라고 말하기는 애매모호했다.
그러나 어쨌든 이상한 느낌이 머릿속에서 일어났고 간혹 두통에 시달렸다.
처음에는 사고를 당한 후유증이겠거니 생각했지만 증상이 계속되자 이제는 은근히 불안하기까지 했다.
집 안에만 있다 보니 갑갑함을 느낀 현빈은 집 앞에 있는 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이라도 하나 사서 먹고 싶었다.
집 앞 슈퍼에 들어간 현빈이 아이스크림 냉동고 안을 들여다보니 각종 아이스크림이 가득했다.
그래서 500원짜리 딸기맛바 하나와 3천 원짜리 바닐라맛 최고급 아이스크림을 하나 샀다.
날이 더워서 딸기맛바는 먼저 먹으면서 슈퍼를 나섰다.
8월의 한낮이라서 그런지 길에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저쪽에서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가 한 명 걸어오는 게 보일 뿐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걸어가던 현빈은 갑자기 고개를 홱 돌리더니 대학생을 한 번 더 쳐다보았다.
대학생 형은 잘 걸어가다가 길가에 조금 패인 곳에 신발 앞쪽이 약간 걸리면서 휘청거리더니 넘어졌다.
별다른 상처는 없어 보였다.
그러나 대학생은 창피했던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주위에 사람이 없었기에 다행이라는 듯 그 형은 바로 일어나 바지에 약간 묻어 있는 흙을 털고 다시 걸어 현빈을 지나쳤다.
그냥 일상의 한 장면이었지만 현빈에게는 아주 남다르게 다가왔다.
믿을 수 없게도 현빈은 그 대학생 형이 걸어오다가 넘어지리라는 것을 예견했던 것이다.
‘허억… 저… 정말 저 형이 넘어졌어.’
현빈은 일순간 멍한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멀어지는 대학생 형을 한 번 더 쳐다보고는 고개를 옆으로 흔들더니 집으로 뛰어왔다.
현빈은 처음에는 그냥 우연이겠지 생각하면서 넘겼다.
그러나 다음 날에도 길거리에서 마음속으로 예견한 일이 벌어졌다.
이번에 일어난 일은 어떤 사십대 아주머니가 길을 걸어가다가 차에 치일 뻔했던 것이다.
그쯤 되자 현빈은 두려움에 떨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자신의 예견은 그냥 느낌에 가까운 것이라 누구에게 얘기를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설사 그런 얘기를 한다고 해도 누가 그것을 믿어주겠는가?
오히려 미친놈으로 볼 것이다.
그러니 벙어리 냉가슴을 앓듯 하던 현빈은 백과사전을 뒤져 예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 작품 후기 ============================
*** 이 작품은 환상미디어 출판사에서 "네잎 클로버" 필명 "추장"으로
출판되었던 작품입니다.
이번에 기회가 되어 연재를 하게 되었습니다.
독자님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