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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3회차! 재벌빌런-171화 (171/175)

#171화

“쿠데타요?”

“쿠데타?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

두 사람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럴 수밖에.

내가 여기까지 가져온 계획이 바로 모스크바의 장악이니까.

“제대로 들으셨습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살다 살다 이런 개소리는 오랜만에 들어보는군.”

바실이 황당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미안하네. 자네에게 한 소리는 아니야. 그냥 당황해서 한 소리지.”

“충분히 이해합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내 대답에 비고르가 이해되지 않는 얼굴로 나섰다.

“사실, 우리는 엘을 통해서 이 자료를 해외로 보낼 생각이었습니다.”

“미국이 참전할 명분을 주기 위해서요?”

“맞습니다.”

예상했던 바였다.

푸틴의 자료.

사실 이건 단순한 비리의 개념이 담긴 자료가 아니었다.

물론 그의 개인적인 비리가 담겨 있기도 했지만, 정말 중요한 내용은 따로 있었다.

제노사이드.

2차 체첸전쟁에서의 러시아군이 저지른 학살의 배후에 푸틴이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바실과 비고르는 이 자료를 나를 통해 공개해 반 푸틴 여론을 만들어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의 참전을 유도할 생각이었던 것 같지만.

“그 어떤 명분을 준다고 하더라도 유럽이 참전하지 않으면 미국은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홀로 전쟁을 치르는 건 너무 많은 돈이 드는 걸 알거든요. 더군다나, 상대가 러시아 같은 강국이면 기를 쓰고 전쟁을 피할 겁니다.”

세상은 그렇게 따스하지 않다.

당장 턱밑에 칼날이 다가오지 않는 이상 나서줄 리는 없다.

그것도 수천억, 어쩌면 수조 달러가 들어가는 전쟁이면 더더욱 말이다.

“결국, 우리의 손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는 말이군요.”

현실을 깨달은 비고르가 말했고 옆에 있던 바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EU는 나서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미국은 지금도 충분히 이바지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죠.”

용병부터 전차까지.

우크라이나에 많은 지출을 하는 미국이다.

그것도 내 부탁인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으니 언제 중단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쿠데타는 너무 무모하네. 우리 전력으로는 모스크바에 진입하기도 전에 전멸당할 가능성이 커.”

맞는 말이다.

내가 러시아로 데려온 데저트의 전력은 6백여 명.

거기다 바실이 부리는 GRU 대원들이라고 해봤자 2백 명이 채 안 된다.

또한, 전차나 헬기 같은 무기를 동원할 수도 없는 상황.

아무리 훈련을 받은 특수 요원들이라고 해도 모스크바를 지키는 수호 사단의 경비를 뚫을 수는 없을 게 분명했다.

물론, 나는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요원들을 밀어 넣을 만큼 어리석진 않다.

“강제적으로 틈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한순간일 테지만, 잘만 활용하면 모스크바에 충분히 파고들 수 있을 테지요. 그렇게만 되면….”

“방송국을 장악해서 러시아 국민이 일어나게 만들어야지.”

“정답입니다.”

푸틴을 잡고 국민에게 처단을 맡긴다.

이게 바로 내 계획이었다.

“그러자면, 여론이 푸틴에게 적대적으로 흘러가야 할 겁니다.”

이건 비고르의 지적이었고.

나는 그의 지적에 빙그레 웃어주었다.

“바로 그걸 위해서 첸이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을 겁니다.”

***

영국 런던, 선더랜드가.

첸이 가주인 비더러를 만나고 있었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분위기 속에서 첸이 담담하게 말했다.

“엘의 부탁으로 빚을 받으러 왔습니다.”

“…가장 힘들 때 왔군.”

“더 힘들 때 엘이 선더랜드가를 도왔죠.”

당당한 첸의 말에 비더러가 쓰게 웃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비더러를 바라보던 첸이 다시금 말했다.

“모른 척하셔도 괜찮습니다. 대신, 모든 일이 끝나고서 엘의 보복은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머리에 총알이 박히지 않는 이상 그럴 일은 없을 거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원하는 걸 말해보게.”

첸이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간단합니다. 선더랜드와 관련된 모든 기업이 러시아와의 거래를 끊는 것입니다.”

비더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네,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 하는 소린가?”

“명색이 SCBA의 총수인 제가 그 정도도 모르고 말씀드렸을까요?”

“그렇다면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겠지?”

“알고 있습니다.”

첸의 당당한 태도에 비더러가 침음성을 흘렸다.

러시아는 자원 강국이다.

어디 그것뿐인가?

유럽의 모든 국가 중 2차 산업의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기도 했다.

그 말인즉슨, 유럽에서 이름난 기업들은 대부분 러시아로부터 원자재를 수입한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러시아와의 거래를 끊게 만든다?

반년, 어쩌면 일 년까지는 버틸 수 있다.

하지만, 만약 그 기간이 길어진다면?

작정하고 기업들을 망하게 만들라는 소리밖에 되지 않는다.

혹은, 기업 측에서 지시를 거부할 수도 있다.

아무리 선더랜드가 대주주라곤 하더라도 나머지 주주들의 권익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들에 고민이 깊어진 비더러의 귀에 첸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민하실 이유가 있습니까? 우리는 선더랜드가 식솔들의 ‘목숨’을 지켜줬는데요.”

첸이 일부로 목숨이란 단어를 입에 담았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목숨값을 갚으라는 뜻이었고.

나머지는 거절했을 때의 보복으로 식솔들의 목숨까지 빼앗을 수 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런 위협은 꽤나 잘 먹혔다.

“그렇게 하지.”

한참을 고민하던 비더러가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한 것이다.

그제야 첸의 표정이 풀어졌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생각보다 금방 끝날 테니까요.”

“믿겠네.”

그 말을 끝으로 비더러가 지쳤다는 듯이 손짓했고 첸이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는 저택을 나섰다.

그를 발견한 수행 비서가 재빨리 다가왔다.

“다음 목적지는 어디로 잡을까요?”

“스웨덴, 살네만 가문으로 갑시다.”

첸이 차에 타자마자 몸을 뉘었다.

빌려준 목숨값으로 원하는 걸 받긴 했지만.

영국을 손에 움켜쥔 선더랜드의 가주를 상대하는 일은 많은 심력을 소모 시켰기 때문.

그런 와중에 첸은 계속해서 머리를 굴려 앞으로의 일을 예측했다.

‘엘의 말대로 데이사르의 가문들을 움직이긴 하겠지만….’

과연 기대만큼 효과가 있을까?

아니, 그 전에 데이사르의 가문들이 배신하지는 않을까?

첸이 걱정거리를 연속해서 떠올리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지금은 엘을 믿자. 다른 방법도 없잖아?’

데이사르의 가문들을 모르겠지만, 이미 있는 돈 없는 돈을 탈탈 털어서 콜옵션을 사들인 참이다.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망할 판이니 방법이 없다.

그만큼 상황이 좋지 않았다.

원유에 호되게 당한 EU는 절대 중립을 유지하고 있었다. 러시아에서 들어오는 자원을 포기하지 못한 탓이다.

당연히 러시아와의 교역은 그대로 이루어졌고 미국이 아무리 제제에 협조를 요청해도 요지부동이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이 바로 데이사르의 가문들을 움직이는 것이었다.

국가적으로 러시아를 고립시키지 못했다면 민간을 움직여서라도 고립시켜야 했으니 말이다.

‘잊지 마세요. 중요한 건 러시아의 민심을 푸틴에게서 돌아서게 만드는 겁니다.’

데이사르의 가문들을 움직여서 러시아인들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것.

그리고 그 원인이 전쟁 때문이라는 여론을 형성하는 게 바로 엘의 지시였다.

‘해볼 때까지 해본다.’

첸이 굳은 눈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

“공장들이 멈추고 있다고?”

상공부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읽던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가 당황했다.

갑자기 공장들이 멈췄다니.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그가 곧바로 전화기를 들고 상공부에 연락을 취했다.

“나야. 지금 올라온 보고서 말인데. 그래, 그거. 자세하게 좀 알아 와.”

그렇게 전화를 끊고 한 시간쯤 지났을까?

바실의 후임자이자 신임 상공부 장관인 이반 장관이 그의 방으로 들어왔다.

“이반 자네가 직접 왔나? 사람을 보내도 충분한데….”

“큰일 났습니다. 총리님.”

평소 냉철하기로 유명한 이반의 호들갑에 메드베데프가 눈살을 찌푸렸다.

“자네답지 않게 왜 그러나? 사람 불안하게 말이야.”

“그, 그게….”

“각하께 보고해야 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빨리 말하게.”

잠시 머뭇거리던 이반이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유럽과 아시아의 기업들이 일방적으로 거래를 끊었습니다.”

“뭐?!”

덜컹.

메드베데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이반에게 소리를 질렀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일이 이렇게 될 때까지 상공부는 뭐 하고 있었어?!”

“이틀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혀 문제가 없어 알아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아침이 되자마자 동시에 거래가 끊겼습니다.”

“이런!”

메드베데프가 이마에 손을 얹었다.

그가 당황하면 나오는 습관이었다.

그 자세로 잠시 생각하던 그가 결론을 지었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안 그래도 미국의 제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조국의 기업들이다.

그런데도 그동안 버틸 수 있던 이유는 미국을 제외한 타국에서의 교역이 자유로웠기 때문인데.

일이 이렇게 된다면 경제적인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젠장.’

메드베데프가 곧바로 달리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크렘린궁이었다.

***

첸이 완벽하게 일 처리를 해준 덕분에 러시아의 상황이 악화 일로를 걷기 시작했다.

공장은 멈춰 섰고 부도가 나는 기업들의 숫자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었다.

어디 거기뿐일까?

길거리엔 실업자들이 넘쳐났다.

비행기 추락.

러시아의 현 상황을 빗대면 이런 표현이 가장 어울리리라.

당연히, 이런 추락을 겪는 러시아인들의 삶은 어려워져만 갔다.

‘저축의 개념도 없으니….’

한국 같았으면 얼마간 버틸 돈이라도 모아놨을 테지만.

화끈한 러시아인들은 그런 개념 자체가 없었다.

들어오는 데로 써재끼기 바빴던 탓이었다.

덕분에 화려했던 경기 지수는 땅밑으로 꺼져만 갔다.

그만큼 러시아인들의 삶은 팍팍해져만 간다는 뜻이다.

반면, 이런 상황을 지켜보던 바실과 비고르의 표정은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이해는 된다.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조국의 영광이 무너지는 꼴을 지켜보고 있는 꼴이었으니까.

“일만 해결되면 금방 살아날 겁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쓰게 웃던 바실이 표정을 바꾸고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가? 자네 뜻대로 시기는 무르익은 거 같은데.”

그의 물음에 나는 러시아 지도에 선을 그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일단, 잠수함을 타고 이곳. 상테페부르크까지 이동할 겁니다.”

“그곳에서 시작하는 건가?”

“아닙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아무도 모르게 모스크바로 이동할 겁니다. 그리고 때를 기다리다 한순간에 모스크바를 장악할 겁니다.”

내 설명에 비고르가 손을 들었다.

“잠수함을 타고 이동하는 것까지는 문제가 없지만, 상테페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이동하는 동안 러시아 정보국의 눈을 피하기가 어려워 보입니다. 그리고.”

비고르가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엘이 말했던 틈이 나오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스크바 군구를 상대로 싸워야 합니다.”

“좋은 지적입니다. 해서, 준비한 것이 있습니다.”

나는 두 사람의 눈빛을 받으며 말을 이었다.

“이곳, 라도가 호수에 핵을 터뜨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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