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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3회차! 재벌빌런-154화 (154/175)

#154화

데이사르의 소식에 다시 한번 정보의 아쉬움이 느껴졌다.

사실, SC의 정보 조직은 일 년 전부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문제는 그 능력이 내가 요구하는 수준에 비해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대표적인 걸 꼽아 보자면 사람과 장비의 부족 때문인데.

이건 아무리 돈이 많아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뛰어난 인재들은 국가가 관리하고 있었고 정찰 위성 같은 필수 장비들은 돈으로 살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런 아쉬움을 느끼던 차에 트럼프에게서 소식을 전달받았으니 아쉬움이 더 커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방법을 찾아야겠어.’

일단, 당면한 과제부터 해결하는 게 급선무.

“자세한 이야기가 듣고 싶습니다. 만나 뵐 수 있을까요?”

나는 트럼프를 만나기로 마음먹었다.

-당연하죠. 마침, 캠프 데이비드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으니 편한 시간에 찾아오시면 됩니다.

여름도 아닌 늦가을에 대통령이 휴가를 갈 리가 없다.

이건 내 일정에 트럼프가 맞춘 거다.

“그럼, 내일 저녁에 찾아뵙는 거로 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으니 제니가 볼을 잔뜩 부풀리고 있는 게 보였다.

아마, 여기까지 와서 일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

“…미안.”

“괜찮아요. 일 빼면 시체인 사람하고 결혼했으니 어느 정도 각오하고 있었어요. 그래도.”

그녀가 토라진 얼굴을 풀며 말을 이었다.

“오늘만큼은 저한테 집중해 주세요.”

“당연하지. 어디 맛있는 거라도 먹을까? 아니면, 저번에 가 보고 싶어 했던 미술관?”

“아뇨. 오늘은 다른 일정이 있어요.”

“일정?”

제니가 내 손을 잡아끌고 침실로 향했다.

오늘은 좀 피곤한데….

다음 날 오후.

트럼프와의 약속대로 저녁 시간에 맞춰 캠프 데이비드에 도착했다.

백악관에서 영부인 역할을 하는 그의 딸, 이방카가 우리를 맞이했다.

“축하드려요. 엘이 이렇게 결혼할 줄 알았으면 내가 먼저 찔러 보는 건데.”

그녀의 인사말에 제니가 이 여자와 어떤 과거가 있었냐는 눈빛으로 나를 돌아봤다.

“이방카가 그렇게 얘기하면 제 아내가 오해합니다. 게다가 아방카는 진즉 결혼하지 않았습니까.”

“이혼하면 되죠, 뭐.”

누가 트럼프 친딸 아니랄까 봐 한마디를 지지 않네.

이방카가 방긋 웃으며 제니의 손을 잡았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뉴욕에서 엘은 완전 수도사였어요. 모든 여자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거든요.”

“어머, 그래요?”

그녀의 말을 들은 제니가 한층 밝아진 얼굴로 대답했다.

“가시죠. 엘이 아버지와 얘기하는 동안 캠프 데이비드를 구경시켜 드릴게요.”

“고마워요.”

그렇게 두 여자가 밖으로 나가고 나는 백악관 경호원들의 안내로 트럼프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오오! 결혼 축하합니다. 엘, 드디어 남자 인생의 내리막에 도달하셨군요. 으흐흐.”

“…고맙습니다.”

세 번이나 결혼한 트럼프까지 이러다니.

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앉으시죠. 할 얘기가 많습니다.”

트럼프의 맞은편에 앉아 그의 설명을 들었다.

데이사르가 반으로 나뉘어 세력 싸움을 시작했고.

만약 싸움이 장기화하여 EU가 쪼개진다면, 경제 구조가 취약한 몇몇 국가들은 디폴트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예상과.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게 분명한 러시아에 대한 우려.

그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 경제는 하나다.

유럽이 분열되고 몇몇 국가가 디폴트를 선언한다?

혹은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킨다면?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기업들에 있어 재앙이나 다름없으니 트럼프가 이런 우려를 내뱉는 것도 이해된다.

“그래서 말인데, 푸틴과 저를 연결해 주실 수 있습니까?”

트럼프는 그런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내 도움을 요청했다.

삼 년 전이라면 전혀 어렵지 않은 일이었으나 지금은 불가능한 부탁이었다.

“불가능합니다. 과거 푸틴과의 친분이 있었으나 지금은…. 모든 선이 끊어졌습니다.”

“이거 난감하군요. 동부 산업 단지의 주인인 엘이라면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트럼프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산업 단지 역시 이제는 제가 주인이 아닙니다. 소유권을 넘긴 지 오랩니다.”

정확히는 7년이라는 운영 계약이 종료되자마자 소유권을 매각했다.

당시에는 푸틴과의 사이가 나쁘지도 않았고.

당시 월가와의 싸움에 많은 돈이 들어가고 있었던 차에 많은 돈을 제시한 러시아 정부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

다만, 명의만은 SC의 앞으로 두었는데 아마, 푸틴이 비자금 창고로 활용하기 위함으로 보였다.

“공식적인 외교 루트를 통하면 되지 않습니까?”

“푸틴이 일절 대화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러시아로 건너가는 것도 거절할 정도로요.”

‘대화 자체를 거부한다? 무슨 생각이지?’

전 회차에선 없었던 일이다.

그렇다는 말은, 나 때문에 뭔가가 벌어졌다는 거다.

이건 당장 답을 찾을 수는 없는 문제였기에 말을 아꼈다.

“죄송하게 됐군요. 기대하셨을 텐데요.”

“괜찮습니다.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됩니다.”

“그나저나 데이사르의 분열의 원인은 찾지 못한 겁니까?”

“CIA에서 상당한 인원을 파견했음에도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천하의 CIA도 이유를 알아낼 수 없다라….

그렇다면 두 가지 중 하나다.

데이사르에서 철저히 숨겼거나.

“CIA 내부에서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군요.”

트럼프가 CIA에서 영향력을 잃었거나.

물론 가능성은 후자가 압도적으로 높다.

유럽 명문 가문들의 집합체가 데이사르다.

당연히 움직이는 돈과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

그렇다는 말은 흘리는 정보 역시 많을 수밖에 없다는 뜻.

그런데도 CIA가 아무 정보를 얻지 못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최소한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것 때문인 것 같다.’라는 추측이라도 나와야 정상이다.

그리고 지금 CIA에서 트럼프의 영향력을 지울 수 있는 세력은 딱 하나다.

“로스차일드에서 CIA에 공작을 부리는 것 같습니다.”

“…저도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조치하지 않으셨습니까?”

“확신이 서질 않더군요. 한 가문이 국가의 주요 기관을 매수하다니요. 이건 너무 미친 짓이 아닙니까.”

트럼프가 몰라서 그렇지. 지금 놈들은 확실히 미쳐 있을 거다.

일본에서 내게 잃은 돈 때문에 말이다.

“돈 때문입니다.”

“돈이요?”

“네, 시나리오가 딱 그려지는군요. CIA를 매수해 미 정부의 눈을 가리고 유럽을 분열시킨다.”

“그게 돈이랑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제가 여태까지 돈을 번 방법을 떠올려 보십시오.”

트럼프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설마?!”

“예상하는 게 맞습니다. 놈들은 폭락장을 만들어 돈을 쓸어 담기 위해 이런 일을 벌이는 겁니다.”

“이 미친놈들이!”

그가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얼굴로 소리 질렀다.

“진정하세요, 도널드. 흥분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진정? 지금 내가 진정하게 생겼습니까? 미국의 국민이면서 국익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다니요. 당장이라도 국가 반역죄로 이놈들을 잡아넣어야겠습니다.”

“불가능할 겁니다. 일단, 증거가 없지 않습니까.”

“그거야 만들면 됩니다.”

“누가요?”

트럼프가 내 질문에 멈칫했다.

그럴 수밖에.

미국은 소송의 천국이라 불릴 만큼 지독한 법치 국가다.

당연히 재판을 속이려면 완벽하게 조작된 증거를 내밀어야 하는데.

그런 일은 CIA가 전문이다.

보안 역시 확실하고.

문제는, 그런 CIA에 프락치가 잔뜩 숨겨져 있다는 거지.

“CIA는 믿을 수 없고 국토 안보국이나 NSA를 활용해야 하는데, 그들이라고 배신자가 없다는 보장이 없지 않습니까?”

“……”

잠시 고민하던 트럼프가 심각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이제 겨우 나라가 안정됐습니다. 또다시 구렁텅이로 빠뜨릴 수는 없습니다. 방법이 없겠습니까?”

“…지금으로선요.”

방법이 없다.

이게 내 판단이다.

그만큼 로스차일드 삼부자가 완벽하게 판을 짰다는 뜻이다.

미국의 눈을 가림과 동시에 데이사르의 분열을 일으켜 EU를 해체한다.

당연히 유로화가 폭락할 것이고 몇몇 국가는 디폴트를 선언할 것이다.

이 모든 일이 벌어지기 직전에 유로화의 풋 옵션과 디폴트를 선언하는 국가의 CDS를 매입한다면?

노다지가 틀림없다.

어쩌면 지난 2차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 내가 번 돈보다 더욱 많이 벌 수도 있는.

앞에 있는 트럼프의 눈치가 보여서 그렇지 마음 같아선 여길 달려 나가 나도 끼워 달라고 하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지금은 트럼프가 헛손질하지 않게 안정감을 주는 게 먼저다.

“제가 직접 유럽으로 건너가서 알아볼 테니 섣불리 나서지 마세요.”

“정말 그래 주시겠습니까?! 그렇다면 한숨 놓을 수 있을 것 같군요.”

알아봐 준다고 했지 해결해 준다고는 하지 않았는데….

하지만, 이런 내 속마음은 그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마음이 후련해진 트럼프가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

저녁 식사 자리는 즐거운 분위기 속에 진행되었다.

미국 대통령을 만난다는 생각에 긴장한 제니였지만, 트럼프와 이방카가 쉴새 없이 농담을 던져 분위기를 풀어 줬기 때문.

덕분에 제니의 긴장이 풀어졌고 그녀는 쉴새 없이 웃음을 지었다.

좋은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마친 우리는 트럼프의 요구에 술을 한잔 더하기로 했다.

“언제 또 볼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가시면 너무 아쉽죠.”

“저도 좋아요. 미국 대통령과 술을 마셔 볼 기회를 놓칠 수는 없죠.”

“오! 엘, 부인께서 아주 화끈하신데요?”

“그 점에 반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술자리.

“미국 시민권자라고 들었는데요?”

트럼프가 제니에게 질문했고 이방카가 대신 답해 줬다.

“하버드를 졸업하고 JP모건에서 펀드 매니저로 일한 경력이 있대요.”

“별거 아닌데요.”

“제니, 제니 같은 인재는 모든 미국 기업들이 원하는 인재상이에요. 너무 그렇게 겸손할 필요는 없어요.”

“이방카가 훨씬 대단한데요, 뭘.”

이제 보니 두 사람이 꽤 죽이 잘 맞아 보였다.

나이도 비슷하니 꼭 또래의 친구를 만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그런 둘을 바라보는 트럼프가 말했다.

“제니, 엘은 제게 아주 중요한 친굽니다. 만약 엘에게 어려운 일이 생긴다면 전 미국의 힘을 동원해서라도 엘을 도울 겁니다.”

“영광입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제니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트럼프의 말을 받았지만.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저건 제니에게 한 말이 아니라 내게 한 말로 느껴졌다.

번역하자면, 나는 네가 곤경에 처하면 진심으로 도울 건데 너도 그래야 하지 않겠냐는 말.

듣고만 있기엔 뭐해서 나는 곧바로 답을 했다.

“그럴 일은 없을 테니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도널드. 저는 언제나 당신의 후원자로 남을 겁니다.”

네 도움 따위는 필요 없다. 그리고 여태까지 내가 당신을 도왔지 당신이 나를 도운 적이 있겠느냐란 대답이었다.

내 대답을 들은 트럼프가 민망했는지 헛기침을 했고 나는 그가 토라지기 전에 달래 줬다.

“그래도, 친구라면 언젠가 부탁할 일이 생길 수도 있겠죠?”

“하하, 그런 일이 생기면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이 모두 끝나고 나를 마중 나온 트럼프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이번 일을 막기 위해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는지 정해서 알려 주세요. 최선을 다해 막아 보겠습니다.”

트럼프가 나를 믿음직하게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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