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SC를 중심으로 상현을 붙였고 GL과 한국 정부를 끌어들였다.
그렇게 다 함께 인고의 시간을 버텨 과실을 취하려 할 때, 반격이 들어왔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다.
세계 최고의 인재들을 돈으로 산 놈들이기에 얼마든지 반격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나 치밀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나는 제리가 준 정보를 토대로 처음부터 모든 걸 다시 조사했다.
로스차일드의 자금을 추적했고.
미츠미시가 갑자기 소프트뱅크를 인수한 이유를 조사했으며.
일본의 내각 조사실이 데저트의 요원들을 꾀어낸 방법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핀치에 몰린 일본 정부.
그들은 자신들의 국가 정보 조직인 내각 조사실을 움직여 소홍을 납치했다.
목적은 첸을 협박하여 SC인베스트먼트가 마이크론으로부터 사들인 엄청난 수의 반도체를 넘겨받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그런 계획은 생각지도 못한 조력자에 의해 무산되었다.
다름 아닌 로스차일드가.
정확히는 가문의 적장자인 에드먼드 로스차일드였고 이는 CIA의 도움을 받아 밝혀낸 사실이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조력자가 우리를 돕는 이유를 짐작할 수 없어 답답했지만.
마침 소홍의 안전을 위해 한국으로 들어온 첸이 그 이유를 밝혀냈다.
“로스차일드에서 나온 걸로 추정되는 자금이 우리를 뒤쫓아 투자되어 있었습니다.”
‘미친 새끼들.’
자신들이 부추겨 이 사단을 만들어 놓고 뒤통수를 치다니.
놀라워하는 내게 첸이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일입니다.”
“어째서죠?”
“여태까지의 결과로 볼 때, 엘과 부딪친 쪽은 큰 피해를 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부로 충돌을 조장했다?”
“맞습니다. 엘과 일본이 부딪친다면 저 역시 엘의 승리를 100% 장담할 겁니다. 그런 확신만 있다면 돈 버는 건 쉽죠. 엔화와 국채 풋 옵션만 잔뜩 사놔도 떼돈을 벌 수 있을 테니까요.”
“…자존심도 없나.”
말은 이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감탄했다.
적을 이용하면서까지 수익을 좇다니.
어찌 보면 내 방식과도 비슷하다고 보여졌다.
“저는 오히려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적을 도우면서까지 이익을 좇는 그들의 모습이요.”
“그 덕분에 소홍의 일이 해결되었으니 잘됐다고 볼 수도 있을 거고요.”
“그렇게 생각하면, 제게는 은인이 되는 셈이군요.”
원한은 원한이고 은혜는 은혜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우리를 돕긴 했어도 로스차일드가 큰 도움을 줬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꽃다발이라도 보내야 하나?”
“그건 엘이 아니라 제가 보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생각해 보니 그렇네요. 미국으로 돌아가는 대로 보내는 걸로 하시죠. 주소는 제가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잠시간 농담을 하던 우리는 곧 본론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할까요? 지금이라도 수를 쓰면 놈들이 더는 수익을 얻지 못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대신 우리 수익 역시 줄어들 테고요.”
“맞습니다.”
“그냥 놔두시죠. 놈들이 우리를 이용해서 이익을 얻는 건 불쾌하지만, 우리 몫을 줄이면서까지 무리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알겠습니다.”
이렇게 한 가지 사안이 결정 났고.
“그럼 이제 일본을 어떻게 할지 결정할 차례군요.”
일본에 내려질 지옥의 난이도를 결정할 시간이 되었다.
***
한참 동안 상의한 결과, 첸의 결정은 확고했다.
“불지옥을 선사해야 합니다.”
아내는 물론이고 배 속 아이까지 모두 잃을 뻔한 첸이다.
그걸 생각해 봤을 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결정이지만 나는 쉽사리 동의할 수 없었다.
그 지옥은 이번 일을 획책한 놈들뿐 아니라 대다수의 일본 국민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는 훨씬 강하게 영향을 미친다.
아무리 먹고살기 힘든 시대여도 소수의 상류층은 잘 먹고 잘사는 법이다.
이번에 내전으로 갈라진 중국만 봐도 그렇다.
대다수의 인민들, 특히 농민공들은 하루가 다르게 피가 말라 가는데도 당의 상류층은 잘 먹고 잘산다.
오죽하면 JP모건과 BOA의 VIP 계좌 중 10%가 넘는 계좌의 소유주가 중국인이겠는가.
이번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아무리 불지옥을 선사한다고 해도 이번 일을 저지른 놈들이 불편함을 겪을지언정 먹고사는 덴 전혀 지장을 받지 않을 게 분명하다.
이런 내 의견을 말하자 첸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니까 더욱 하자는 겁니다. 자신들이 부리던 국민들에게 맞아 죽게요.”
일을 저질러 놓고 여론을 선동하자는 방법이다.
“그렇게 극단적으로 나가면 일본 정부가 전쟁이라는 최후의 카드를 꺼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북한 역시 어떻게 나올지 모르죠.”
이게 첸의 의견에 반대하는 두 번째 이유다.
파국을 맞이한 일본 정부는 최후의 수단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바로 무력이라는 방법 말이다.
물론, 한국은 군사 강국이다.
그리고 이지석 역시 여간 강심장이 아니기에 우리를 끝까지 지키려 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전면전이 펼쳐진다면?
그리고 그 순간 북한이 도발을 한다면?
포기할 가능성이 생긴다.
SC를 지키자고 나라 전체를 망하게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내 기우를 첸은 여유롭게 받아쳤다.
“그러지 못할 겁니다.”
“어떻게 단언할 수 있습니까?”
“우리에겐 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요?”
“네, 최근에 했던 일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러면 제 말뜻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최근에 했던 일이면 대만에서 중국의 내전을 획책했던 일이다.
잠시 그 일에 대해 생각해 보던 나는 곧 첸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상하이방을 이용해 북한을 움직이자는 거군요.”
“맞습니다.”
현 중국은 동북과 서남으로 쪼개져 있었다.
동북은 공청단의 영역이고 서남은 상하이방의 영역이다.
처음에는 서로를 향해 열심히 총과 포를 쏘아 대던 둘의 전쟁은 현재 소강상태다.
서로를 압도할 전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한 가지 문제가 생겼는데 그게 바로 북한이었다.
그동안 북한은 정치적, 경제적으로 중국에 종속되어져만 갔다.
하지만, 중국이 둘로 쪼개졌을 때부터 북한의 태도가 바뀌었다. 자신들이 끌려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들은 중국 국영 기업들에게 자신들의 땅에서 채굴하는 자원과 인민들의 노동력에 대한 대가를 높여 요구했다.
하지만, 그동안 공짜나 다름없이 이를 이용한 기업들은 북한의 요구를 무시하기 일쑤였다.
평소라면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았을 북한이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참다못한 북한이 칼을 빼어 든 것이다.
그들이 파견한 인원들을 감금하는 한편, 설비와 생산물을 압수한 건 물론이고 심양에 있는 그들의 본사를 향해 포를 조준했다.
이에 자존심이 상한 공청단은 북한에 대해 강력한 비판을 쏟아 냈다.
그리고 심양군구로 하여금 압록강을 넘을 수 있음과 핵무기의 버튼을 누를 수 있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상하이방은 이런 공청단에 행보에 동참하지 않았다.
오히려, 힘든 살림에도 북한을 도왔다.
그들은 북한에 대해 경제적, 정치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유는 하나였다.
북한이 가지고 있는 군사력 때문이었다.
백만의 군대와 수백 발의 미사일.
이것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공청단의 턱 끝에 비수를 들이대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제야 이 사실을 깨달았는지 공청단이 상황을 부랴부랴 수습하려 했지만, 이미 버스는 떠나 버렸다.
북한이 공청단에 단교를 선언하고 상하이방과 동맹을 맺은 것이다.
둘이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된 건 당연했다.
첸은 바로 이걸 노렸다.
상하이방을 움직여 북한과 일본이 대립하게 만드는 것을 말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나는 첸에게 전권을 위임하기로 결정했다.
“한번 해 보시죠. 좋은 결과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회장실을 나가는 첸의 뒷모습에서 전의가 느껴졌다.
***
일주일 뒤, 미국으로 돌아가 모든 준비를 마친 뒤, 첸은 돈을 미끼로 상하이방을 움직였다.
중국의 서남쪽을 지배하고 있는 그들은 센카쿠 열도에 전함을 파견했다.
당연히 일본 역시 전함을 파견했다.
국내 정세가 힘들다 하더라도 타국에 얕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양국의 전함이 대치가 시작했다.
평소라면 약간의 대치를 끝으로 서로의 영역으로 돌아갔을 전함들이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중국 측 전함에서 실제로 포격을 가한 것이다.
그리고 그걸 TV로 지켜본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저게 300억 달러짜리 포탄이구나.”
상하이방과 북한을 움직이기 위해서 약속한 돈이었다.
그렇게 충돌한 상하이방과 일본.
이날의 전투는 승자도 패자도 없이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고 종료되었다.
그렇게 수습되나 싶었는데 다음 날 북한이 성명을 발표했다.
[다시 한번 동맹의 영토를 침범한다면 쪽발이 놈들의 수도, 도쿄에 핵폭탄을 투여할 것이다.]
북한다운 성명이었다.
그렇게 북한과 상하이방을 상대하게 된 일본은 해군력 대부분을 홋카이도와 규슈로 보냈다.
첸의 장담대로 놈들의 전력 대부분이 묶인 것이다.
그렇게 전면전의 위협이 사라지자.
첸이 일본의 국채를 건드리기 시작했다.
그는 2,000억 달러라는 거금을 일본 국채에 대한 풋 옵션을 사들이는 데 썼고 동시에 월가 곳곳에 소문을 냈다.
월가의 오라클, 스티븐 첸이 거액의 돈을 일본이 망하는 데 걸었으니 돈을 벌고 싶은 자 따라 들어가라는 소문이었다.
그러자 월가 전체가 첸의 뒤를 쫓아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기 시작했다.
월가의 오라클이라고 불리는 그의 명성을 믿어서가 아니다.
월가의 마귀들이 어떤 놈들인데 소문만 믿고 따라가겠는가.
다 근거가 있고 확실하니 따라 들어가는 거다.
그리고 그 근거는 그동안 일본이 진행한 양적 완화가 한계에 부딪쳤다는 거다.
양적 완화.
쉽게 말해 금리를 내리고 돈을 찍어 내서 경기를 부양시키는 정책이다.
물론,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용하는 방법이긴 하지만.
일본의 경우 스케일이 다르다.
기축 통화국이기에 더욱 과감하게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문제는.
계속되는 양적 완화 때문에 일어난 엔화의 가치 하락이 극단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에 있었다.
어떻게든 경제를 끌고 가기 위해 아베가 실행한 정책 때문에 벌어진 일.
이는 안 그래도 경제의 펀더멘털이 박살 났다는 평가를 받는 일본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도가 바닥을 치기에 충분한 이유였다.
첸은 바로 이 점을 노린 것이다.
그렇게 월가에서 시작된 풋 옵션은 유럽의 더 시티로 넘어갔고 곧이어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무섭게 떨어지는 국채 선물 가격.
아무리 선물이 현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지만, 해당 가격을 보고 일본 국채를 매입하는 머저리는 없었다.
그렇게 일본의 국채는 사상 최악의 판매치를 달성했고.
일본 정부의 발등에는 불이 떨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빚이 많은 국가였다.
갚아야 할 채권이 수두룩한데 국채가 팔리지 않았다는 건 국가적인 파산을 의미한다.
남은 방법은 몇 가지 없었다.
세수를 더 걷어들이든가.
아니면 돈을 찍어 내서 채권을 막든가.
전자는 정상적인 방법이고 후자는 미친 방법이다.
문제는, 세수를 더 걷어들일 수 없다는 점에 있었다.
실업률이 폭발한 지 오래고 자영업자는 하루가 다르게 폐업을 결정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금을 추가로 걷는다?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흥분한 대중들에 의해 총리 관저와 국회가 불타 없어질 수도 있는 결정이다.
결국, 이도 저도 하지 못한 일본 정부는 최악의 선택을 했다.
바로 돈을 찍어 내서 당장 급한 불을 끄는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