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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3회차! 재벌빌런-137화 (137/175)

#137화

이토 이사쿠.

유럽과 일본을 오가는 미쓰이 상선 소속 선장이다.

선장 경력 9년, 그동안 단 한 번의 사고 없이 바다를 누빈 그는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로 안전한 항해를 자신했다.

경력과 실력에 자신이 있었고 무엇보다 항로 자체가 안전했다.

영국에서 출발하여 유럽 각국에 들른 후 리비아를 거쳐 수에즈 운하를 빠져나가는 매우 안전한 항로.

예전 리비아에 반군이 득세할 때는 몇 번인가 해적이 나타난 적이 있었지만, 리비아가 안정된 지금은 그런 위험조차도 없었다.

그렇게 차분히 항해를 계속하여 리비아 근처 해역을 지나던 이사쿠는 무언가 변고를 느꼈다.

빠아앙.

리비아 해군의 경비정들이 그의 배를 따라붙었다.

이사쿠가 자리에서 일어나 항해사를 찾았다.

“토시!”

“예!”

“무슨 일인지 알아봐.”

“하이!”

일등 항해사, 토시가 따라오는 경비정에 무전을 쳤다.

잠시 후.

무전을 마친 토시가 이사쿠에게 알려 왔다.

“해적이 출몰했답니다. 소탕 중이긴 하지만 언제 끝날지 모른다고 경고를 하기 위해 왔답니다.”

“해적? 여기가 무슨 소말리아도 아니고….”

“어떻게 할까요? 배를 멈추고 기다릴까요?”

잠시 고민하던 이사쿠가 대답했다.

“계속 간다. 해경에게 멈추지 않을 거라고 알려.”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해적이라는데….”

토시가 염려를 나타냈지만, 이사쿠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해적들도 상대를 보고 덤비지 않겠나?”

이사쿠의 대답을 들은 토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선장의 말이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운행하는 이 선박은 길이만 500m에 가까운 수에즈맥스급의 컨테이너선이다.

그만큼 타고 있는 인원도 많고 배를 올라오는 것도 힘들었다.

게다가, 만약을 위해 준비한 총기류도 있으니 여차하면 맞서 싸우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대답한 토시가 곧바로 무전을 보냈다.

내용은 방금 나눈 대화처럼 항해를 강행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리비아 경비정에서 염려의 무전을 보냈지만, 그들은 상관하지 않았다.

몇 시간 뒤, 안전한 이집트 영해 근처까지 도달한 이사쿠와 토시는 그제야 긴장을 풀었다.

“것 봐라, 내 말이 맞지?”

“예, 역시, 선장님 말씀이 맞았습니다. 겁을 집어먹고 기다렸으면 시간이 지체됐다고 본사에서 한 소리 들었을 겁니다.”

“크흐흐, 책상물림 깍쟁이들이야 뻔하지. 하루 쉬면 얼마가 손해고, 그 손해를 메우려면 뭐가 어쩌고. 해적들을 뚫고 나가는 바다 사나이의 세계를 알긴 알아?”

이사쿠가 너스레를 떨기 시작했고 평소 그와 죽이 잘 맞는 토시가 맞장구를 쳐 줬다.

그리고 그때.

꽈아아아앙!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배가 흔들렸다.

***

화르륵.

“잘 타네.”

“그러게.”

내 혼잣말에 리우가 맞장구를 쳐 줬다.

동시에 뒤에 있는 데저트의 대원들이 다시 한번 박격포를 발사했고.

콰와왕!

컨테이너선에서 또다시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다시 봐도 잘 타네.”

이번에는 리우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몇 분이나 지났지?”

내 물음에 뒤에 있던 데저트의 대원 하나가 대답했다.

“14분입니다.”

철수하기 적당한 시간.

더 시간을 지체하다간 꼬리가 잡히기 딱 좋았다.

“철수한다.”

“네.”

데저트의 대원들이 서둘러 철수 준비를 시작했고 나는 일본의 선박이 불타오르는 광경을 바라봤다.

삐용. 삐용.

저 멀리 다가오는 리비아 경비정들의 사이렌 소리를 들으면서.

그 뒤로부터 나는 하루도 쉬지 않고 일본의 컨테이너선에 공격을 가했고.

아닌 밤중에 날벼락을 맞은 일본의 선박들은 수리를 위해 그리스로 방향을 틀어야만 했다.

장기간 운행을 해야 하는 선박의 특성상 작은 고장이라도 그냥 지나칠 수 없으니 말이다.

또한, 포격으로 인한 물류의 손실은 덤이었다.

그렇게 일본으로 향하는 물류를 틀어막은 지 한 달.

‘슬슬 그만할 때가 되었군.’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이미 일본이 자위대를 지중해로 파견하기로 결정했고.

수에즈 운하의 수익이 급감한 이집트는 리비아 정부에 해적을 소탕하라고 항의 서한을 매일같이 보내왔다.

게다가.

‘대원들도 지쳤으니까.’

가장 큰 문제는 일본의 선박을 공격하는 대원들의 피로도였다.

교체 없이 한 달이란 시간 동안 사막에서 버틴 그들의 체력이 한계를 보인 것이다.

습격 방법 역시 문제였다.

처음 몇 번은 해협 근처에서 박격포로 포격을 가한 것으로 충분했지만.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 해협 바깥으로 항해하는 일본 선박들이 생겨났다.

때문에, 우리는 방법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바로, 본격적인 해적질로.

부아아아. 타타탕. 타탕.

터번으로 얼굴을 완전히 가린 대원들이 연속해서 총격을 가했다.

일종의 경고 사격이었다.

선장이 겁이 많고 초짜라면 배를 멈춰 세울 것이고 노련한 자라면 그대로 강행할 것이다.

‘그냥 서라. 곱게 보내 주마.’

하지만, 그런 내 바람과는 다르게 노련한 선장이었는지 물대포를 쏘며 배를 전진시켰다.

아마, 조금만 더 가면 이집트 해역이라는 것에 희망을 품고 있는 듯 보였다.

옳은 선택이다. 나라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문제는.

“탑승 준비!”

내 뒤에서 완전히 해적의 몰골을 하고 대원들을 지휘하는 리우 놈이다.

본격적인 해적질에 나선 게 겨우 다섯 번.

그 적은 경험에도 리우는 각성했다.

“뭐든 원하는 것은 가지고 아무것도 되돌려 주지 마라!”

완벽한 해적으로 말이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의 명대사를 내뱉은 리우가 대원들과 함께 컨테이너선 측면에 노끈을 묶은 갈고리를 던졌고.

팽팽하게 걸린 것을 확인한 그들은 그대로 점프했다.

쿵. 쿵 쿵.

대원 중 절반이 그런 식으로 배를 오르기 시작하자.

타타탕. 타탕.

나머지 대원들이 위협 사격을 가했다.

줄을 끊어 보려던 선원들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덕분에 리우를 비롯한 침투 조가 안전하게 선박의 경계를 넘어갔다.

“다 빼앗고 불태워 버려! 반항하는 놈들은 죽여도 좋다!”

아니야.

그냥 배만 살짝 망가뜨릴 거야.

아무것도 안 뺐을 것이고 아무도 안 죽일 거야.

함께 들은 대원들이 황당한 눈으로 선박을 올려다봤다.

나 역시 마찬가지인 눈빛으로 대원들을 바라봤다.

“저 새끼 왜 저러는지 아는 사람 있습니까?”

“…리우 부장이 최근 해적 흉내에 너무 심취한 거 같습니다. 밤마다 너튜브에서 소말리아 해적이 나오는 영상을 찾아보고 있습니다.”

“어휴.”

놈이 본격적으로 해적질을 하는 모습을 보니 어쩌면, 내가 바다 위에 무법자를 풀어놓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혹시나 민간인 사상자가 나올 수도 있으니 올라가서 살펴보겠습니다.”

쿵.

컨테이너선을 향해 점프해 줄을 잡고 올라갔다.

갑판 쪽 인원들은 정리가 끝났는지 선원들이 한쪽 구석에 팔다리가 묶여 제압되어 있었다.

핏자국이 없는 것으로 보아 다행히도 부상자는 없어 보였다.

척.

내가 손짓으로 리우가 어딨는지 묻자 그들을 지키던 대원이 항해실 쪽을 가리켰다.

곧바로 이동하여 살펴보니 리우 놈이 소총을 들고 선장으로 보이는 이를 위협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쉬어졌다.

잠시 후.

선박 구동계에 C4 설치를 마친 대원이 무전을 보내왔다.

이제 빠져나갈 시간.

그렇게 하나둘 컨테이너선을 빠져나가는데.

리우 놈이 아련한 눈으로 배를 보더니 내게 물었다.

“저 배 뺏으면 안 돼?”

***

한 달여의 해적질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트리폴리로 돌아왔다.

“고생했다.”

“형님이 고생했죠.”

사실, 이번 일의 최대 피해자는 최효석이다.

하루가 멀다고 들어오는 항의 서한에 답장을 쓴 것도 그였고.

실제로 해군을 움직여 해적으로 위장한 우리를 잡는 것처럼 꾸민 것도 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 건 나뿐이었나 보다.

“다음에는 나도 끼워 주면 안 되냐? 리우 녀석 하는 거 보니까 나도 잘할 거 같은데.”

“…이제 안 할 겁니다.”

내 대답에 최효석이 크게 실망한 얼굴을 했고 나는 그런 그에게 한국 소식을 물었다.

“특별한 일은 없답니까?”

“내가 봐서 뭐 알겠어? 저기 모아 놓은 거 있으니까 한번 살펴봐.”

최효석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보고서 뭉치를 가리켰다.

SC 오션의 기획 조정실에서 올린 보고서들이다.

‘어디 보자.’

[일본 내 생산량 사상 최저치.]

[단기 물가 상승률 4%.]

거의 한 달이나 원자재의 이동을 틀어막았다.

당연히 생산량이 줄고 물가가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별 내용 아니고. 저건 예상했던 거고. 어라?’

중요치 않은 내용을 넘기니 내가 기다리던 소식들이 보였다.

[TSMC, 한 달간 전 직원 유급 휴가.]

[상현 전자, 메모리 반도체 생산 중지.]

[GL 카이닉스, 메모리 반도체 생산 중지.]

그리고.

[한국 정부, 자국 철강, 일본으로 수출 금지.]

본격적인 싸움의 서막을 알리는 소식이었다.

***

일본의 수상 관저.

그곳 회의실에 아베 신조와 내각 대신들이 모여 있었다.

“대사관을 통해 한국 정부에 항의 서한은 보냈지만, 아직 별다른 답은 받지 못했습니다.”

외무 대신, 모태기 도시미쓰의 말을 들은 아베가 눈살을 찌푸렸다.

“외무 대신이나 되어서는 너무 안일한 대처가 아니오?”

“우리가 먼저 시작한 일입니다. 한국은 받아치기만 한 거고요.”

도시미쓰가 담담하게 말했다.

원래의 내각 대회의라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하지만 오늘의 도시미쓰는 달랐다.

‘잃은 자기들이 벌여 놓고 내가 해결하라고? 개 같은 소리.’

먼저 공격한 쪽은 이쪽이고 참지 못한 한국이 반격한 것뿐이다.

뭔가를 해 보려고 해도 아무 명분이 없지 않은가. 명분이.

그런 도시미쓰의 뜻을 짐작했는지 아베가 헛기침했다.

“그래도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소?”

“맞습니다. 외무 대신은 책임을 회피하시는 겁니까?”

“외교를 맡은 자가 이리도 무책임하다니!”

문무과학성과 경제산업성의 대신들이 도시미쓰를 비판했다.

둘 다 아베의 오른팔 왼팔로 불리는 자들이었다.

평소라면, 유한 성격의 도시미쓰가 한 수 접어 주던 상대들이었지만.

쾅!

도시미쓰는 되레 화를 내며 그들의 말을 받았다.

“내가 그렇게 말리지 않았소?! 그런 내 말을 개똥으로 알아듣더니 인제 와서 대책을 세우라는 게 무슨 개소리요!”

“뭐요?! 지금 책임 소재를 찾자는 겁니까?”

“맞소. 당신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말을 하는 거요!”

회의실이 대신들의 고성으로 가득 찼다.

그 모습을 보던 아베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리쳤다.

“다들 그만!”

회의장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일은 이미 벌어졌소! 책임 소재는 추후 분명히 할 테니 지금은 대책이 우선이오!”

그의 말에 내각 대신이 손을 들었다.

“말해 보시오.”

“어젯밤, 미츠미시 회장님을 만나 의견을 물었습니다.”

그가 최근 특사로 풀려난 미츠미시 그룹의 전 회장, 미츠미시 히데오를 언급했다.

그러자 회의실 내부에 어떠한 기대감이 차올랐다.

비록, 미츠미시 은행을 빼앗기고 몇 년 동안 감옥에 갇히었지만 그가 일본 재계의 큰 어른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지금, 그가 돕는다면 당연히 환영이다.

“제가 이번 사태를 어찌 해결하면 되냐 물었더니 딱 한마디를 해 주셨습니다.”

“그게 뭡니까?”

“아무리 차가운 돌도 3년간 앉아 있으면 따뜻해진다고 하셨습니다.”

어려운 일도 버티고 버티다 보면 이겨 낼 수 있다는 뜻.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속담 중 하나다.

그 속담을 들은 아베가 감격한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현명하시고 강한 분이시군요. 어르신은.”

“맞습니다. 또한, 어르신께서 재계의 중론을 모으고 있으니 강경하게 대처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베가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한국이 백기를 드는 그 날까지 강력하게 두들길 생각이니 강력한 제재 방안을 마련해 오시오.”

그의 말에 회의실에 비장함이 감돌았다.

내각 대신들이 마치 가미카제를 위해 출격하는 황군의 눈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미츠미시 히데오라는 인물은 로스차일드에 포섭된 지 오래고.

그들의 결정이 일본의 파멸을 가져올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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