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리커창 중국 국무부 총리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와인을 마시며 한쪽 벽에 걸려 있는 그림을 감상하고 있었다.
보는 이를 주눅 들게 만드는 압도적인 화폭.
바로 1990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1억 5천만 달러에 낙찰된 반 고흐의 닥터 가셰의 초상이란 작품이었다.
한국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는 대가로 그가 로스차일드에게서 ‘개인적인 선물’로 받은 것이었다.
“몇 번을 봐도 훌륭하군.”
물론, 이것뿐만이 아니다.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깨끗한 자금 역시 들어올 예정이었다.
“푸흐흐.”
생각만 해도 든든한 기분에 리커창이 웃음을 지었다.
어차피, 이번 일은 언제가 되었든 한번은 일어날 예정이었다.
한 번의 내전과 두 번의 외환위기로 빠르게 떨어진 중국과 지진으로 인해 현재 진행형으로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일본과는 다르게 한국은 성장을 거듭했다. 중화의 입장에서 긴장할 수밖에 없는 게 당연했다.
게다가 엘의 행보는 또 어떠했나?
리비아라는 산유국을 자신의 소유로 만드는가 하면, 이제는 월가의 거대은행을 두 곳이나 소유했다.
가만히 두기엔 지은 죄가 있는 후진타오와 리커창의 뒤통수가 너무나도 가려웠다.
그 때문에 그들은 이런 한국과 엘을 언젠가 한 번은 밟아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로스차일드에서 엘의 견제를 의뢰해왔다.
엄청난 돈과 지원을 약속하며 말이다.
거절할 이유가 없다. 아니, 오히려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안 그래도 해야 할 일을 돈과 지원까지 받게 되었으니까.
그렇게 일을 승낙한 리커창의 곳간을 가득 차게 되었고 그의 비밀계좌들은 가득 차다 못해 터지기 일보 직전까지 차올랐다.
좋은 일은 또 있었다.
후진타오가 리커창을 다음 대의 주석으로 삼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이다.
“흐흐흐.”
가만히 있어도 배부르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인생이 이렇게 보상받는 건가 싶었다.
그렇게 잠시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리커창은 보고를 위해 주석궁으로 향했다.
그렇게 후진타오의 집무실에 도착해 최근 한국에 부과한 관세에 대해 몇 가지 사안을 보고하던 차.
“주석, 급보입니다.”
예상했던 소식이 들어왔다.
바로 한국 정부의 대응이었다.
똑같이 관세를 부과하고 몇몇 물품에 대해 수출을 금지한 것.
충분히 예상했던 바였기에 리커창과 후진타오는 당황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안심했다.
생각했던 최고 수준의 강경 대응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충분히 예상했던 바입니다. 아니, 오히려 부족한 감도 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좋은 마음이 들지는 않는군. 감히 대 중화의 결정에 반격하다니.”
후진타오가 리커창에게 의견을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나?”
“소국(小國)이 대국(大國)을 어찌 이기겠습니까? 곧 한국 정부에서 항복의 뜻을 전할 것이라고 봅니다.”
“항복한다면?”
“우리 쪽에서 조건을 거는 것이지요. 엘을 내놓으라고. 그것이 힘들다면 최소한 구속하라고요.”
“…그렇게만 되면 좋겠지만, 변수가 있을 수 있으니 후속 조치도 준비해 보게나.”
“미리 준비한 것들이 있습니다.”
“호오. 벌써? 뭔가?”
“북한을 이용하는 겁니다. 무력 도발 몇 번이면 안 그래도 먹구름이 드리운 한국에 비를 쏟아지게 만들 수 있습니다.”
“괜찮군.”
마음에 들었는지 후진타오가 조용히 웃음을 흘렸다.
그러다가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방심하지 말게. 상대는 그 엘이니 말이야.”
“명심하겠습니다. 주석!”
그렇게 두 사람은 다시 한번 전의를 다졌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리커창은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엘과 한국이 조용해도 너무 조용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 같은 경우 항복의 뜻을 밝혀도 진즉 밝혔어야 했고.
엘의 경우 무언가 움직임이 있어야 했다.
조용히 참고 기다린다?
부하들과 함께 상하이에 직접 뛰어들어 문주를 죽여버린 그가?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불안해진 리커창이 정보원들을 시켜 조사에 나섰고 그는 곧 이상함을 감지했다.
“찾을 수가 없다고?”
엘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증폭되는 불안감 속에 리커창은 정보 요원들을 닦달했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뭐?!!”
헝다 그룹이 파산 위기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게 무슨 소리야?!”
재정부의 부장 류쿤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동안 헝다에서 발급했던 채권이 일시에 밀려들었습니다.”
“엄연히 만기일자라는 게 있는 채권인데 어떻게 일시에 청구될 수 있다는 건가?”
“그, 그게….”
짜악.
류쿤이 눈알을 굴리며 머뭇거리자 리커창이 그의 뺨을 후려쳤다.
“빨리 말하지 못하겠는가?!”
서슬 퍼런 리커창의 윽박에 류쿤이 눈을 질끈 감더니 설명을 시작했다.
“재정부 ‘몰래’ 무기명 채권을 발행한 것 같습니다. 그 채권들이 일시에 몰려들어 문제가 되었습니다.”
“대체 얼만데?”
“치, 칠천억 위안이 넘습니다.”
류쿤의 설명을 들은 리커창은 순간 아찔함이 느껴졌다.
칠천억 위안이라니.
달러로 치면 천억 달러가 넘는 돈이 아닌가.
나라 살림을 책임지는 재정부에서 몰랐을 리가 없다. 뒷돈을 받고 눈감아준 거다.
“대책은?”
“수, 수립 중입니다.”
뻐억!
참지 못한 리커창이 류쿤의 머리통을 향해 기어이 재떨이를 던졌다.
“크허!”
류쿤이 피가 흐르는 머리를 붙잡으며 뒤로 넘어졌다.
“이 버러지 같은 인간! 당신이 그러고도 재정부 부장인가!”
“그, 그게 민간의 일은 재정부의 소관이 아니기에….”
“허! 그래? 과연 후 주석도 그리 생각하실까?”
리커창이 후진타오를 언급하자 류쿤의 안색이 핼쑥해졌다.
잘못하면 단순히 자신만 숙청당하는 거로 끝나지 않는다.
가족과 친지까지 온갖 트집을 잡아 모조리 죽이는 게 당의 방식이 아닌가.
정신이 번쩍 든 류쿤이 재빨리 일어나 소리쳤다.
“당장 가서 대책을 세우겠습니다!”
류쿤이 나가는 모습을 본 리커창이 크게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봐도 범인은 엘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많은 채권이 한 번에 몰려들 리가 없었다.
경제적인 약점을 노린 꽤나 뼈아픈 일격.
하지만, 한편으론 이만하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천억 위안?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액수다.
헝다의 파산?
나라 경제에 작지 않은 파문을 일으키겠지만 이것 역시 감당할 만하다.
하지만, 사흘이 채 지나지 않아 리커창의 이런 안일한 생각은 바뀔 수밖에 없었다.
바로 완커와 비구이위완 역시 헝다와 마찬가지로 천억 달러의 거액의 채권이 청구되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곧바로 재정부의 절망적인 보고가 이어졌다.
“막을 수 없다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대 중화가 그깟 돈이 없단 말인가!”
“…지난 두 번의 외환위기 때문에 당의 재정의 큰 구멍이 난 상태입니다. 헝다 하나뿐이라면 모를까. 전부를 살릴 수는 없습니다.”
류쿤의 설명을 들은 리커창이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수천억 달러 정도는 우습게 생각하던 대 중화가 아니구나.
몇 번의 위기가 이렇게나 중화의 힘을 떨어뜨려 놨을지는 생각지 못했다.
“방법은?”
“셋 중 하나만 살리는 겁니다.”
“미친 소리! 두 곳이 무너지면 은행 역시 무너지는 걸 모르는가!”
“하지만, 예산이 없습니다.”
“은행은? 나랏돈이 부족하면 은행의 돈을 사용하면 되지 않나.”
“IMF 이후로 시중은행의 지분은 거의 해외로 매각된 상태입니다. 그들이 무너져 가는 셋에게 돈을 내놓을 리가 없습니다.”
“공산 은행을 비롯한 국영 은행들이 있지 않은가!”
국영 은행이란 말이 나오자 류쿤의 눈알이 마구 돌아갔다.
리커창은 그런 류쿤의 반응을 보고 무언가 잘못됨을 느꼈다.
“그, 그게….”
“또 뭔가! 이번에 또 뭐냔 말이야!”
“국영 은행들은 그만한 여력이 없습니다.”
“그게 말이나 되나?! 15억 인민이야! 그 인민들이 모은 돈이 모여 있는 곳이 국영 은행들이고. 그런 은행에 돈이 없다는 게 말이 되나?”
“지난번 사태 이후로 인민들은 국영 은행에 돈을 맡기지 않습니다.”
“대체 무슨 소리야!”
재정부가 끝까지 감추고 싶던 비밀이 드러났다.
외환위기 이후로 공산당은 몇 번이나 환율 정책에 실패했다.
고정 환율제를 고집했다가 IMF를 맞이했고 변동 환율제로 바꾸고 나서 후진타오의 의한 대규모의 자금 이탈로 환율이 폭등했다.
그로 인해 위안화의 가치가 한없이 추락했고 좀 배웠다 싶은 인민들은 공산은행을 비롯한 국영은행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시중은행들의 영업방식 역시 문제였다.
그들은 인민들이 위안화를 맡기면 곧장 달러로 환전, 연결된 해외계좌로 송금해줬다.
덕분에 인민들은 안전하게 자산을 지킬 수 있는 시중은행에 계좌를 트기 바빴지 국영 은행을 이용하지 않았다.
재정부가 이런 사실을 숨겨왔기에 리커창을 비롯한 당의 수뇌부들은 전혀 알지 못한 것도 크게 한몫했다.
만약, 당에서 미리 알았더라면 무슨 수라도 썼겠지만, 전혀 몰랐기에 상황은 점점 나빠지기만 했다.
모든 사실을 전해 들은 리커창은 화가 나기보단 오한이 들었다.
‘큰일 날 수도 있다.’
옛날 같았다면 위안화라도 찍어서 막았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도 없기 때문이다.
만약 그랬다간 그놈의 환율조작국으로 찍혀 미국과 무역 분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
더군다나 현 미국 대통령은 트럼프다. 선거 시작부터 중화를 경계하고 견제해야 한다고 공약을 내건 작자였다.
잠시 생각하던 리커창은 곧 돌파구를 찾아냈다.
‘주석의 자금이 있다.’
백문의 멸문 이후 그들이 가지고 있던 자금을 빼돌린 후진타오다.
그깟 2천억 달러? 적어도 새 배 넘게 가지고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리커창은 곧바로 주석궁으로 향했다.
하지만, 후진타오를 만난 그는 곧 절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자네의 중화가 아닌가?”
후진타오가 책임을 회피해버린 것이다.
“주석!”
당황한 리커창이 그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
“나야 물러나면 그만인 늙은이지.”
리커창은 믿을 수 없었다.
중화를 가장 우선시하며 대의가 있던 주석이었다.
그런 사람이 어찌 이렇게 바뀌었단 말인가.
“주석,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중화가 위험합니다.”
“내 손을 떠난 문제네.”
단호한 후진타오의 말에 리커창이 무릎을 꿇었다.
“제발,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전부도 아닙니다. 절반만 주시면 어떻게든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리커창의 부탁에도 후진타오는 냉정하기만 했다.
사실, 후진타오는 리커창을 진정한 후계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은 멸문당한 백문, 그리고 그들을 따랐던 정치 세력인 상하이방을 견제하기 위해 그와 손을 잡았을 뿐.
그의 진심은 자기 아들인 후하이펑에게 있었다.
리커창은 단순히 권력을 물려줄 수단에 불과했다.
문제는.
후진타오 자신이 엄청난 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리커창이 알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자신에게 존경심을 보이는 리커창이지만.
그가 주석이 되고 자신의 돈을 노리고 어떻게 나올지 없는 노릇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만약 주석이란 타이틀이 리커창에게 넘어간 상태라면 숙청을 빌미로 자신을 협박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후진타오는 중국의 위기를 외면하기로 마음먹었다.
필요하다면 잠시 해외로 나갈 생각까지 하면서 말이다.
‘돈만 제대로 물려주면 어떻게든 승산은 있다.’
한편, 리커창은 절망스러웠다.
이 사태를 해결한 단 하나뿐인 방법이 사라졌기 때문.
또한, 그는 배신감까지 느끼고 있었다.
‘어떻게 주석이란 작자가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당장이라도 인민의 배신자를 처단하고 싶은 마음뿐이었지만 지금의 주석은 그였기에 방법은 없었다.
속으로 화를 삭이는 수밖에.
그렇게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그들에게 또 하나의 비보가 날아들었다.
“크, 큰일 났습니다. 대만에서 독립 성명을 발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