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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3회차! 재벌빌런-122화 (122/175)

#122화

혜성처럼 일어난 로팅실드란 이름의 자본은 미국 금융 산업을 아귀처럼 쓸어 담기 시작했다.

그 속도가 굉장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이곳저곳에 로팅실드란 이름의 간판이 달렸는데.

첸은 다른 부분에 놀라워했다.

“마치 원주인이 찾아간 것처럼 내부가 조용합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요.”

JP모건과 BOA WAST를 안정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는 첸은 그들의 장악력을 놀라워했다.

“합병된 은행들의 시선에서 보면 반쯤은 원래 주인 아니겠습니까. 당연히 장악이 쉬울 수밖에요.”

첸에게 짐작한 사실을 말해줬다.

그제야 이해가 된 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이번에는 절반의 성공밖에 거두지 못했군요.”

“어쩔 수 없습니다. 세상 누구도 그들이 씨티와 골드만삭스를 포기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놈들의 행보는 충격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놈들은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 금융산업 전체의 크기를 줄어버렸다.

1000의 넓이를 가진 시장을 500으로 축소시켜 200이 넘는 파이를 로팅실드의 이름으로 가져갔다고 보면 된다.

이런 이유로 미국의 금융 시장을 장악하려 한 우리의 계획은 절반의 성공으로 그쳤다.

점유율로 따져 보자면.

JP모건과 BOA WAST, USB를 가진 우리 쪽이 30%.

체이스 은행을 살린 록펠러가 5%.

월가의 금융 기관들을 마구잡이로 쓸어 담은 로팅실드가 40%를 장악했고 나머지 여타 중소 기관들이 15%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첸이 아쉬워하는 거다.

최소한 절반은 장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내가 정말 아쉽게 느껴지는 건.

“놈들의 저력이 이 정도일 줄 몰랐습니다.”

놈들의 역량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거다.

첸과 인베스트먼트의 직원들이 조사하길 로팅실드가 이번에 사용한 자금은 1조 5천억 달러가 조금 넘는다.

분명 바닥을 치게 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디서 이런 자금이 튀어나오는지….

그런 내 심정을 짐작하는지 첸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래도 놈들을 양지로 끌어내지 않았습니까.”

“…그렇긴 하죠.”

그래, 이 정도만 해도 어디냐.

놈들의 저력이 내 예상보다 대단하긴 했지만 이제 로팅실드만 무너뜨리면 더 이상의 여력을 없을 터.

‘끝이 보이기 시작한 건 맞다.’

월가에서의 일은 일단 여기서 마무리 짓기로 했다.

자금도 떨어졌을뿐더러 더 움직여봤자 얻을 게 없으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여기서 마무리 짓죠.”

“네. 인베스트먼트에도 전달하겠습니다.”

“그나저나, 할 만하십니까?”

나는 첸에게 JP모건과 BOA의 경영에 관해 물었다.

“…솔직히, 힘듭니다. 만약 월가에서 일한 경험이 없었다면 많이 휘둘렸을 겁니다.”

“하긴, 전통 있는 두 은행이니까요. 직원들이 보기에는 어디서 굴러온 동양인 하나가 자신들의 꼭대기에 군림하는 꼴 아닙니까?”

“맞습니다만, 어떻게든 해봐야죠.”

“차라리, 이런 방법은 어떨까 합니다.”

“어떤 방법요?”

“미국은 해고가 쉬운 나라 아닙니까? 말 안 듣는 놈들 깡그리 잘라버리고 인베스트먼트의 직원들로 채워 넣으세요.”

“네? 그럼 당장 인베스트먼트에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돈 떨어진 투자회사 직원들이 할 일이 있습니까? 어차피, 노는 직원들 불러 일 시키는 거죠.”

“아!”

첸이 깨달음을 얻었는지 손뼉을 마주쳤다.

그런 그를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가십니까?”

“명색이 장관이 만나자는데 늦으면 안 되죠.”

***

호텔 근처 어느 카페.

나는 그곳에서 국무장관 렉스 틸러슨을 만났다.

“처음 뵙겠습니다. 엘입니다.”

“렉스 틸러슨입니다.”

서로의 명함을 교환하고 자리에 앉아 그를 살펴봤다.

깔끔한 양복, 곧게 빚은 머리를 한 전형적인 미국 상류층의 백인 남성이었다.

‘하긴, 명색이 엑손모빌의 CEO를 역임한 사람이니.’

후룩.

그가 자신 앞에 있는 컵을 들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본론을 꺼냈다.

“오늘 이렇게 뵙자고 한 이유는 경고하기 위함입니다.”

“경고요?”

“미국은 타국의 인물이 월가를 소유하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미친놈인가?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기네 대통령이 요청한 일인데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안면을 몰수한다고?

“어이가 없군요. 지금 제가 월가의 은행들을 소유한 걸 가지고 문제 삼는 겁니까?”

“당연한 거 아닙니까? 엘의 고국인 한국 역시 시중 은행들의 경영권을 보호하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인수한 겁니다. 막대한 부채를 감당하면서요.”

“그건 그의 요청이지 미국의 요청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말을 끊은 그가 고개를 숙여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이번 사태의 주범이 당신이라고 확신합니다.”

나를 협박한 그가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

이쯤 되니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충 감이 잡혔다.

‘이 새끼, 로스차일드에서 보냈구나.’

딱 맞아떨어진다.

미국의 이인자라 불리는 국무장관을 움직일만한 놈이 얼마나 될까.

나는 비열하게 웃고 있는 그를 향해 당황한 듯한 연기를 펼쳤다.

그러자 주도권을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렉스 국무장관이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며 말했다.

“미국에서 획득한 건 미국에 두셔야 합니다.”

“미국에 두라는 건?”

“매각하라는 겁니다.”

“현재 이 두 곳을 인수할만한 여력이 있는 곳은 없는 거로 알고 있는데요?”

“지금 당장 진행하라는 게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 여력이 생겼을 때 진행하라는 겁니다. 그때가 되면 매각할 대상은 저희가 정해드리겠습니다.”

뻔뻔하기 그지없는 요구다.

매각을 강제하고 그 시기와 주체를 자기들이 정하겠다는 말도 안 되는 요구에.

“알겠습니다.”

굴복하는 척했다.

***

백악관에서 머무는 트럼프는 최근 들어 머리가 빠지는 속도가 줄어들었다.

치익. 치익.

“아주 좋군.”

거울을 보며 머리에 영양제를 뿌리던 그가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 이렇게만 가자.

저번 월가에서 일어난 사태 때문에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가.

물론, 미국의 금융산업의 역량은 절반 이하로 줄어들어 버렸지만.

‘아주 완벽히 망하지 않은 게 어디야.’

이 정도면 선방한 거다.

게다가. 맨입으로 선방한 것도 아니다.

원래 같았으면 월가에 수조 달러에 달하는 지원을 했겠지만, 이번에는 단 한 푼도 지원하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월가는 수렁에 빠졌지만, 미 정부의 재정에는 여유가 있다는 뜻이다.

‘다들 절절매겠지.’

자고로 돈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이 형이 되는 법.

트럼프의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힘이 빠진 금융산업?

지원금을 쏟아부어 다시 키우면 된다.

오히려 임기 중 월가를 정상화하게 되면 대단한 업적 아니겠는가.

게다가, 언론 역시 호의적이었다.

사태의 초중반에는 금융산업을 말아먹은 최악의 대통령이라는 말이 있었지만.

어느 정도 진정된 지금은 ‘국민의 혈세를 아낄 줄 아는 냉정한 대통령’이라고 불렸다.

“룰룰루….”

기분 좋아진 그가 콧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집무실로 이동해 업무를 시작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좋은 아침이에요.”

“별일 없지?”

“그럼요. 여기 오늘 일정하고 오늘 처리할 안건들이에요.”

“고마워.”

“그리고 렉스 국무장관이 한 시간 뒤 면담을 신청했어요.”

“렉스가? 알았어.”

몇 시간 후, 백악관에 찾아온 렉스를 트럼프가 반갑게 맞이했다.

“바쁠 텐데 여기까진 웬일인가? 전화로 해도 되는데.”

“아닙니다. 중요한 안건이니만큼 만나서 보고를 드리려 찾아왔습니다.”

“그래? 일단 앉지.”

“네.”

자리에 앉은 렉스가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어제 오후에 엘을 만났습니다.”

“엘을?”

엘의 이름이 들리자 트럼프가 호기심이 동했는지 궁금한 얼굴을 했다.

한쪽은 월가의 3분지 1을 순식간에 먹어치운 자본주의 시장의 괴물이고 다른 한쪽은 미 정부의 이인자였다.

단순히 차 한잔하기 위해 만났을 리는 없었다.

“그를 만나서 단단히 일러두었습니다. JP모건과 BOA는 미국의 것이니 반드시 미국에 두어야 한다고요.”

“…단순히 그렇게만 말하고 하고 온 건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감옥 가기 싫으면 적당히 가지고 있다가 저희가 지정한 곳에 넘기라고 했습니다. 말 잘 듣던데요?”

“지, 지금 뭐라고 했나?”

“네? 말을 잘 듣는다고….”

“아니, 그 전에!”

“감옥 가기 싫으면 가지고 있다가 넘기라고 했습니다만.”

“이런!”

트럼프가 기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편, 그런 트럼프를 보는 렉스는 그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국익을 위해 타국의 사업가에게 경고와 제의를 한 것뿐인데 이렇게나 과한 반응을 보이다니.

잠시 당황해하던 트럼프가 렉스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당장 가서 사과하고 와.”

“그게 무슨….”

“내 말 못 들었어! 당장 가서 사과하고 오라고!”

“도널드, 단순한 경곱니다. 타국의 사업가에게 한 경고요.”

“그건 당신 생각이고! 그는 이런 협박을 듣고 결코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니야!”

“돈 많은 타국의 사업가일 뿐입니다. 저는 국익을 위해….”

“하! 국익? 개소리 집어치워. 당신의 이익 때문이겠지.”

두 사람의 감정이 격화되고 있을 때.

똑. 똑.

“도널드, 상무부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들어오라고 해!”

손님이 찾아왔다.

“상무부 차관, 제임스 펄스입니다.”

“무슨 일인가?”

“오늘 오전 JP모건과 BOA에서 대규모의 자금 이동이 일어났습니다.”

“…얼마나 되는데?”

“오전에 집계된 액수만 3천억 달러에 가깝습니다. 지금도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고요.”

“자금이 이 동지는?”

“자세한 건 파악하고 있지만 제3국으로 예상됩니다.”

“Shit!”

단순한 자금의 이동이 아니다.

JP모건과 BOA의 모든 자산을 해외로 빼돌리겠다는 엘의 경고다.

또한, 단순히 경고로만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그동안 봐왔던 그라면 정말로 저지르고도 남는다.

범죄 아니냐고? 잡아서 감방에 처넣으면 되지 않냐고?

된다. 되고말고.

대신, JP모건과 BOA는 확실히 파산한다.

그리고 그 뒤처리는 어마어마할 것이 틀림없다.

트럼프가 두통이 올라왔는지 자신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아니, 가만히 있는 사람을 왜 건드려서 이 사단을 만드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트럼프가 렉스를 보고 다시 한번 으르렁거렸다.

“이 꼴을 보고도 생각이 그대로야?”

“저는 국익을 위해서 한 일입니다.”

“그래?”

트럼프가 어이없는 웃음을 짓더니 전화기를 들었다.

“오늘부로 국무장관을 해임한다고 발표해.”

“도널드!”

트럼프가 손짓으로 경호원들을 불렀다.

“이 새끼 바깥에다 내다 버려.”

***

“그러니까, 백악관의 뜻은 아니고 렉스 국무장관의 독단이라는 겁니까?”

-당연하지 않습니까. 제가 엘과 함께한 시간이 얼만데 이런 섭섭한 일을 벌이겠습니까.

“믿겠습니다.”

-그리고, 렉스 국무장관은 오늘부로 해임 처리될 겁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통화를 끊자 첸이 엄지손가락을 착하고 들어 올리는 게 보였다.

역시, 협상은 벼랑 끝 협상이 제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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