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3회차! 재벌빌런-121화 (121/175)

#121화

로펠드가 내민 서류의 제목은 이랬다.

Bank of America in east. co.

BOA의 동부 계열사란 뜻이다.

“브라이언 CEO는 지난 모기지 사태 때 골드만삭스의 경우를 보고는 BOA를 둘로 나눴습니다. BOA EAST와 WAST로요. 여기 보시면 문제가 되는 CDS는 EAST에서 체결한 계약입니다.”

“…이걸 보여주시는 이유가 전체가 힘들면 WAST라도 인수해달라는 거 같은데. 제가 이해한 게 맞습니까?”

“예, 수천 명의 직원이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반이라도 살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로펠드가 새롭게 보였다.

브라이언을 보아 이놈도 사기꾼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나 정상 일 줄이야.

“WAST만 인수할 때 조건은 어떻게 됩니까?”

“가지고 있는 부채만 해결해주시면 됩니다.”

곧바로 페이지를 넘겨 부채를 확인했다.

“1500억 달러가 약간 넘는군요.”

“네, 대신 늘어날 부채는 없습니다. 계약서에 명시도 가능합니다.”

“그래 주시라면야….”

첸이 무언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별안간 협상에 끼어들었다.

“BOA 전체라면 몰라도 절반만 인수하는데 그 정도 돈을 쓸 수는 없습니다.”

딱 봐도 더 좋은 조건으로 인수하기 위한 거짓말이다.

BOA의 절반 규모인 JP모건에 3000억 달러에 달하는 돈이 들어갔는데 BOA WAST에 그의 절반인 1500억 달러를 쓰지 못할 이유는 없다.

하물며, 월가 전체가 무너지냐 마냥 할 이 시기에 말이다.

하지만, 그런 첸의 배짱이 통했는지.

“원하는 게 있으면 드리겠습니다.”

로펠드가 벌벌 기었다.

“우리는 BOA가 가진 영업망 전체를 원합니다. 해외를 포함해서요.”

은행의 영업망이라는 게 별것 아니다.

길 가다 보이는 지점들을 뜻하는 거니 말이다.

대신 ‘해외’라는 말이 들어가면 상황이 달라지는데 이는 은행업 허가와 관련이 있다.

세계 어느 국가도 자국에 투기자본이 들어오는 걸 반기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은행업은 해외 진출 시 신고와 허가에 많은 수고와 돈이 들어간다.

첸은 이 모든 것을 공짜로 얻겠다는 거다.

“그건….”

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챘는지 로펠드가 머뭇거렸다.

‘난감하겠군.’

영업망을 넘겨주자니 EAST의 매각은 물 건너간다.

지점 하나 없는 은행을 인수할 사람은 없으니까.

그렇다고 WAST 매각을 포기하자니 이것 역시 말이 되지 않는다.

나는 로펠드의 선택을 도와주려 말했다.

“방금 로펠드가 말했듯이 전부를 살릴 수 없다면 절반이라도 살리는 게 맞지 않습니까?”

영업망을 넘기지 않으면 자리에서 일어나겠다는 뜻이다.

틀린 말이 아니기에 로펠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엘의 말이 맞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신, 영업망에 대한 매각 대금은 조금이라도 지급하셔야 합니다.”

“그거야 당연하죠. 그냥 넘겨받으면 저나 로펠드나 둘 중 하나는 배임으로 감옥에 가는 일인데요.”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BOA의 절반을 인수하는 데 성공했지만,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전미 10위권의 규모를 자랑하는 은행이자 멜런가의 가업인 BONY (뱅크오브뉴욕 멜런) 가 파산한 것이다.

“이건 생각 못 했는데?”

멜런가의 가주를 죽인 건 사태 수습을 늦추기 위함이지.

이렇게 파산을 원하는 건 아니었기에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파산 소식에 백악관 역시 난리였다.

아직 약속 날짜까지 10일이란 시간이 남아있었지만, 트럼프는 하루가 멀다고 닦달했고.

쏟아지는 악재 속에 JP모건과 BOA의 주가는 연일 하락세를 보였다.

심지어, 도박사이트에 접속하면 다음번 파산 은행이 어딘지 맞추는 게임이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우리가 인수하지 않은 BOA EAST의 파산은 확정이다.

그 전에 최소 두 군데 이상의 충격을 흡수해야 했다.

‘10일 이내로.’

그렇게 고민에 빠져 있던 차.

“이렇게는 어떨까 합니다.”

첸이 인베스트먼트의 직원들을 닦달하여 만든 보고서를 가져왔다.

“USB (U.S BANK)?”

“네. 그 곳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됩니다.”

나쁜 선택은 아니다.

둘 다 덩치로 보면 JP모건과 비슷한 규모의 대형 금융 기관이며 빌더버그의 소유가 아닌 몇 안 되는 곳이다.

문제는.

“USB는 서부에 있지 않습니까?”

월가의 은행이 아니라는 점과 연준의 지분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은행이다.

“우리 목적이 무엇인지 상기해보십시오.”

“그거야….”

목적? 월가의 붕괴를…. 아니구나!

“이런, 제가 가장 중요한 걸 잊고 있었습니다.”

“우리 목적은 월가를 수호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금융 시장을 장악하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오히려 USB가 가장 나은 선택이 될 겁니다.”

과정에 빠져 목적을 잃어버리다니.

시야가 좁아져 있었다.

월가의 붕괴는 막아야 하는 게 맞지만 그게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

다만 한 가지.

“그렇다면 연준 지분은 어떻게 하실 작정입니까?”

연준의 지분이 마음에 걸렸다.

“지분만 따로 매입하려 합니다.”

“그게 가능합니까?”

내 반문에 첸이 펜과 종이를 들고 설명을 시작했다.

“현재 연준의 지분은 우리가 14%, 씨티가 15%, 체이스가 9%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케미칼이 8%, 하노버가 7%죠. 아시다시피 이 두 곳은….”

“충분히 자구책이 있는 곳이군요. 우리가 인수하지 않아도요.”

“맞습니다. 그래서 판을 새로 짠 겁니다. 이곳을 인수하기보다는 씨티가 파산하길 기다리는 거죠. 그렇게 되면 그곳이 가지고 있던 연준의 지분은 정부에서 거둬갈 게 분명합니다. 괜히 엄한 놈이 가져가게 둘 리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정부 역시도 소유하지는 못합니다.”

“연방법에 걸리니까요.”

“네,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매각해야 하는데 아시다시피 그 결정권은 백악관에 있습니다.”

천잰가?

순간 그의 머리 뒤에서 눈부신 후광이 비치는 것만 같았다.

“그렇기에 USB를 선택한 겁니다. 여길 앞세워서 연준 지분을 매수하기 위해서요. 다만 한 가지 선결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의 직접 인수가 아닌 제삼자를 통해 인수해야 하겠군요. 백악관이 싫어할 테니까요.”

백악관은 분명 연준의 지분을 사방으로 찢어놓으려 할 것이다.

지금까지야 운영에 실패한 탓에 로스차일드를 비롯한 빌더버그의 가문들이 연준의 주도권을 가졌지만.

새로운 판이 깔렸는데도 같은 실수를 반복할 리가 없다.

“어디를 내세워야 할지가 고민이겠군요.”

“맞습니다.”

아무한테나 돈을 들이밀고 부탁하면 될 것 같지만 생각보다 조건이 까다로웠다.

일단, 미국의 기업이어야 한다.

나야 트럼프와의 관계가 있기에 은행을 인수하는데 별다른 제동을 받지 않았지만.

타국의 자본이 미국의 대형은행과 연준의 지분을 매수하는 게 가능할 리 없다.

또한, 자금력이 어느 정도는 뒷받침되어야 한다.

반반 투자까지는 하지 못하더라도 7:3까지는 자본이 들어가야 나중에 미 정부에 들키더라도 뒷말이 나오지 않는다.

신뢰야 말할 것도 없다.

동업자한테 맞는 뒤통수만큼 아픈 게 없으니까.

‘이 사람을 제외하면 후보가 없다.’

신뢰와 돈이 많은 미국의 기업.

당연히 많을 리가 없다.

나는 하나의 사람을 떠올리며 첸에게 말했다.

“하나가 떠오르긴 하지만 만나봐야 알 거 같습니다. 쉬운 인물은 아니라서요.”

첸이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

“누굽니까?”

“워런 버핏입니다.”

***

“범인이 오셨군.”

워런 버핏이 인사 대신 내뱉은 첫마디다.

“범인이요?”

“범인이 아니면 뭐겠나? 자네 하나 때문에 권총으로 자살한 사람이 한둘이 아닐 텐데. 브라이언 모이니핸을 포함해서.”

말속에서 뼈가 잔뜩 느껴졌다.

그렇다면 나 역시 똑같이 대해주는 게 인지상정.

“그래서, 영감님은 브라이언에게 조의금이라도 내셨습니까?”

“허!”

그가 기가 차는지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런 그를 향해 독설을 이어나갔다.

“돈 얘기하러 온 거 아닙니까? 나 때문에 죽었는지 확실하지도 않은 사람 걸고넘어질 거면 그만 일어나죠.”

“일 얘기를 하지.”

내 협박이 통했는지 그가 또렷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독설을 주고받았지만 신뢰는 확실한 사람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신뢰가 생명인 보험회사를 운영할 수가 없다. 그것도 미국에서 한 손에 꼽는 규모의 보험회사를 말이다.

“USB를 인수하려 합니다.”

“하면 되지 않나? 돈도 많은 거로 아는데.”

“이름을 빌려주십시오. 대가는 치르겠습니다.”

“미쳤구먼.”

그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버크셔 해서웨이라는 이름을 가볍게 보는군.”

“아닙니다.”

“그런데 이름을 빌려달라니. 당신이 무슨 일을 저지를 줄 알고.”

“못 믿으시면 공동 투자는 어떠십니까?”

투자라는 말이 나오니 그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컨소시엄을 형성해서 USB를 인수하자?”

“정확히는 저희가 버크셔에 투자하는 겁니다. USB를 인수하는 조건으로요.”

“버크셔의 지분을 노리는 건 아니고?”

“줘도 안 가집니다.”

“뭐라?”

워런이 자존심이 상했는지 목소리가 커졌고 나는 그런 그에게 팩트라는 이름의 폭력을 가했다.

“저는 보험회사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버크셔의 진정한 값어치는 거기에 있는 게 아니야. 보험업은 자금을 모으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지.”

“그렇다면 투자를 말씀하시는 거 같은데, 맞습니까?”

“맞네.”

“한 가지만 물어보죠. 저희 SC 인베스트먼트가 돈이 많습니까? 워런의 버크셔 해서웨이가 돈이 많습니까?”

팩트폭행을 맞은 그의 얼굴이 붉어지더니.

“흐…. 흐하하하하.”

미친 사람처럼 웃어 재꼈다.

“맞군. 맞아. 동네 졸부가 재신 앞에서 까분 꼴이 되었군.”

한참 웃던 그가 눈물을 닦았다.

“시간이 없습니다. 하시겠습니까?”

“USB는 큰 은행이지. 평소라면 감히 엄두도 못 낼 정도로 말일세.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않겠나.”

그렇게 협상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총투자금은 2800억 달러.

투자 비율은 우리 쪽이 7이고 버크셔가 3으로 맞추는 대신 인수의 모든 과정과 관리를 워런 버핏이 하는 조건이었다.

또한, 훗날 연준의 지분에 입찰할 기회가 생기게 되면 무조건 참여하기로 한 건 물론이다.

협상을 마무리하고 휴대전화로 계약서를 찍어 첸에게 보내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입금을 완료했다는 답변이 왔다.

“입금되었을 겁니다. 확인해보시죠.”

“알았네.”

잠시 후.

“확인되었네.”

“그럼, 믿고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냥 가나?”

“그럼 바쁜데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 계속 있을까요? 그것도 기분 나쁠 정도로 인종차별이 심한 지역에?”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은 브래스카주의 오마하라는 도신데.

매우 조용하며 인종차별이 심한 도시로 유명한 곳이다.

“아니, 그런 말이 아니라 수천억 달러나 투자했는데 내가 잘하고 있는지 확인하지 않아도 되냐고 묻는 거네.”

“천하의 워런 버핏 아닙니까? 알아서 잘하시겠죠.”

그렇게, 황당해하는 그를 두고 뉴욕으로 돌아갔다.

***

폭풍 같았던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버크셔 해서웨이는 계약대로 USB를 인수하는 데 성공했지만.

딱 하루 만에 씨티의 파산 소식이 들려왔다.

당연하게도 씨티라는 거대 은행의 파산은 연쇄 부도를 일으켰는데.

그 규모가 심상치 않았다.

-이러다가 은행이란 은행은 전부 망하게 생겼습니다!

트럼프의 절규처럼 씨티은행의 파산은 미국 여기저기에 뻗어있는 은행들의 파산을 불러왔다.

오늘은 어디 주에 있는 무선은행이 파산하고 내일은 아무개 은행이 문을 닫는다는 말이 농담처럼 들려왔다.

하지만, 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가지고 온 자금을 거의 모두 써버렸기 때문.

객관적으로 이 사태를 진화하려면 백악관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속이 쓰렸지만, 더는 트럼프를 설득할 근거도, 방법도 없었다.

그렇게 빌더버그 놈들의 부활을 지켜보나 했는데.

혜성처럼 나타난 엄청난 자금이 미 전역에 있는 은행들을 마구잡이고 흡수하기 시작했다.

“로팅실드 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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