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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3회차! 재벌빌런-119화 (119/175)

#119화

BOA의 브라이언이 땀을 뻘뻘 흘리며 들어왔다.

여기가 미국이라서 그렇지 아마 한국이었다면 엎드려 절할 기세로 애절한 태도를 보이며 말했다.

“오전에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어디서 배웠는지 고개를 움푹 숙이는 브라이언.

“지나간 이야기는 됐습니다. 조건이나 맞춰 보시죠.”

“알겠습니다.”

그가 몇 가지 서류를 꺼내 내 앞에 올려 두었다.

BOA의 재무제표와 이번 사태로 지게 된 손실과 메워야 할 부채였다.

나는 한 번 쓱 훑어보고 첸에게 넘겼다.

나보다야 평생 숫자에 파묻혀 산 그가 더 정확하게 볼 거란 생각이었다.

잠시 기다리자.

첸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나쁘지는 않다는 뜻이다.

“대충 보니 부채가 2,800억 달러가 약간 넘는군요.”

“저희 BOA가 가진 자산에 비하면 크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 자산, 고객이 맡긴 돈 아닙니까? 자기 돈도 아닌데 함부로 빛을 메우는 데 쓸 생각이셨습니까?”

“아, 아닙니다. 그저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해 드리려고 한 겁니다.”

옆에 있던 첸이 브라이언의 반응이 재밌었는지 피식거리며 웃으며 말했다.

“지금 BIS 비율이 7%가 안 되시지요?”

“…네. 정확히는 6.7%가 됩니다.”

역시 자본주의의 친국인 미국이다.

한국 같았으면 바로 영업 정지가 떨어졌을 텐데.

“원인은 투자 손실 때문이고요.”

“인정합니다.”

“다시 계산해 봅시다. 부채가 2,800억 달러, BIS 비율을 계산해 봤을 때 고객의 돈을 제외한 BOA의 자산은 700억 달러, 맞습니까?”

“정확합니다.”

“0원에 인수해도 마이너스 2,100억 달러가 되는군요.”

첸의 말에 브라이언이 다급하게 대답했다.

“그래서 이렇게 찾아온 겁니다. 살려 달라고요.”

“살려 달라?”

“네, BOA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은행입니다. 한순간의 실수로 사라질 수는 없습니다.”

첸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

무언가 이상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분명, 오전까지만 하더라도 간교한 술수를 쓴 놈이 대의를 부르짖는다고?

거기다 부채의 규모도 수상했다.

2900억 달러라는 부채는 결코 작은 규모는 아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많이 작았다.

이건 둘 중 하나다.

절박함이 만들어 낸 솔직함이거나.

‘무언가를 숨기기 위한 연막이거나.’

물론, 늑대들이 즐비한 월가의 정점에 오른 브라이언이라면 후자일 가능성이 컸다.

“숨기는 게 있군.”

“네?”

짝.

손뼉을 치니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윤현수가 요원들과 함께 방으로 들어왔다.

“치워.”

“네.”

요원들이 브라이언의 양팔을 잡아끌었다.

“자, 잠깐만!”

질질.

그가 당황했는지 소리를 질렀지만, 요원들은 봐주지 않고 그를 끌고 나갔다.

“누가 수작을 부린 건지 짐작하십니까?”

“누구겠습니까?”

“…빌더버그군요.”

“아마도요.”

BOA는 월가에서 유일하게 주인이 다수인 은행이다.

그 때문에 그곳을 가장 먼저 노렸지만, 무언가를 숨기는 듯한 브라이언을 보니 뭔가 놈들의 노림수가 느껴졌다.

“제 생각엔 경영권을 미끼로 사기를 치려 하는 것 같습니다.”

“흐음….”

보통 완전 자본 잠식 상태에 빠진 기업을 인수한다는 건 곧 신주 발행으로 이어진다.

부채 금액을 해결함과 동시에 같은 액수만큼의 신주를 발행하여 경영권을 취득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놈들이 차명으로 발행하는 신주 숫자만큼 지분을 확대한다면?

남 좋은 일만 시켜 주고 돈은 돈대로 묶이며 경영권을 취득하지 못하는 최악의 결과를 마주하게 된다.

첸의 조사에 따르자면, 빌더버그에서 들고 있는 BOA의 지분은 약 30%.

만약, 놈들이 지분을 확 늘렸다면 첸의 말대로 일이 흐를 가능성이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 BOA의 지분을 더 취득하지는 않을 텐데.’

나 하나 곤란하게 하겠다고 이런 하수를 선택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일단, 사태를 지켜보죠.”

“알겠습니다.”

브라이언이 몇 번이나 들이댄 협상이 파투 난 다음 날 오전.

우리는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걸 확인했다.

[BOA의 CEO인 브라이언 모이니핸 씨가 어젯밤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최근 들어 자신이 경영하는 은행의 경영이 악화하자….]

“자살이라니?”

깜짝 놀라는 첸에게 말했다.

“자살이 아닙니다.”

“그러면요?”

“누군가의 의도가 들어간 살인입니다. 무언가를 숨기기 위해서요.”

“허!”

첸이 믿기지 않는 듯이 TV를 쳐다봤다.

“알아볼까요?”

“아뇨. 어차피 밝혀질 겁니다. 괜한 힘쓰지 말고 다음으로 넘어가죠.”

“JP모건 말이죠?”

“맞습니다.”

핵폭탄이 떨어진 월가에서 가장 안 좋은 곳은 단연 JP모건이다.

내가 1,700억에 달하는 대출을 고의로 미납하면서 현금이 씨가 말랐고.

대신 가져간 담보 물건들은 현금화하려면 수년이 걸려도 모자랐기 때문.

거기다, 우연히도 우리가 CDS를 가장 많이 체결한 곳도 이곳이다.

나중에 첸에게 들어서 알게 된 사실로 여타 은행의 경우 CDS 금액에 상한선이 있던 반면, JP모건만 상한선을 두지 않았다고 했다.

즉, 자기 무덤을 알아서 판 것이다.

나는 첸과 함께 그런 JP모건으로 이동했다.

이번에는 입구가 조용한 걸 보니 어제와 같은 쇼는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들어갑시다.”

그렇게 JP모건으로 들어가자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풍기는 로비 가운데 모건가의 가주인 존 모건이 홀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이군요.”

“그렇군.”

나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 없다. 아니, 당장이라도 죽이고 싶은 심정이겠지.

가문의 가업 중 가장 큰 파이를 차지하는 JP모건을 망하게 만든 주범임은 물론이고 테라노스로 인한 피해를 가장 많이 본 모건가니까.

하지만.

“올라가세나.”

지금 본 존 모건은 꽤 평온하게 우리를 맞았다.

평소 그의 급한 성격을 떠올린다면 쉽게 이해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잠시 후.

나와 첸은 문밖에 요원들을 두고 존 모건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미쳤군.’

호랑이 털로 만든 카펫에 벽 한쪽엔 금괴가 쌓여 있었고 벽면 한쪽에는 집 한채 값의 명품 시계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어디 그뿐이랴. 듣도 보도 못한 그림들까지 장식되어 있었는데 예술에 대해 까막눈이 내가 보더라도 가치가 절대 작지 않아 보였다.

알라딘이 턴 도적들의 보물 창고가 실존한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었다.

내가 입을 쩍 벌리고 주위를 훑어보자 존 모건이 불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중에 구경시켜 줄 테니 일 얘기부터 하세나.”

“아…. 그러시죠.”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이거 하나만 확실히 하지.”

“말씀하십시오.”

“내가 자네에게 결코 감정이 좋을 수 없는 건 이해하지?”

“이해합니다.”

“내 말투가 공격적일 수도 있네. 하지만, 그게 오늘 비즈니스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면 하네.”

단순히 말투 정도야.

“그러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존 모건이 본격적으로 JP모건의 정보들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확인하던 우리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부채가 2,900억 달러라니.”

물론, 저 중 700억 달러는 우리가 체결한 CDS에서 나온 부채다.

하지만, 규모가 2배나 차이 나는 BOA와 비슷한 수준이라는 건 뭔가 이상했다.

그냥 파산시키는 게 이득일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나는 JP모건을 비롯해 월가의 은행들을 인수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달러를 찍어 내는 연방준비은행의 지분 때문이다.

이 계획의 최종 목적인 그것만 내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수천억 달러쯤은 감당할 수 있다.

그래도 따질 건 따져야 하는 법.

나는 존 모건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어봤다.

“예상했던 것보다 부채가 많습니다. 다른 요인이 있습니까?”

내 질문에 존 모건이 쓰게 웃으며 답했다.

“자네 작품이지. 우리에게 CDO를 팔아먹고 그걸 또 부숴 버린 게 자네 아닌가.”

“그걸 감안하더라도 너무 많기에 질문을 드리는 겁니다.”

“자네 쪽이 아닌 누군가가 대량으로 CDS를 체결했네. 그것도 막바지에.”

존 모건의 설명에 첸이 나섰다.

“막바지라고 하셨는데 정확히 언제입니까?”

“…자네 쪽에서 ‘일부러’ 대출을 미납해 대량의 부동산이 경매에 풀린 이후부터네.”

“이상하군요. 그쯤 되면 임원 중 누군가는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눈치챘을 법한데요? 천재들을 모아 놓은 곳이 이곳 JP모건 아닙니까? 그런데도 CDS를 체결한 게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존 모건이 쓰게 웃었다.

“당했네. 누군가 내부에서 공작을 펼쳤지. 위로 올라오는 보고서만 보면 JP모건의 앞날은 창창하기 그지없었고 가업에 무지한 나는 거기에 속아서 도장을 찍었네.”

배신 때문인가.

가문의 가장 큰 가업을 날린 그가 초탈한 듯 보였던 게.

다소 성급한 면이 없잖아 있지만, 존 모건 하나만 놓고 보면 그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애초에 멍청했으면 가주 자리에 오르지도 못할 테니 말이다.

그런 그가 이렇게나 완벽하게 속을 정도면 내부의 적은 그가 가장 믿는 사람일 터.

‘동생이로군.’

범인은 JP모건의 회장직을 맡은 존 모건의 동생 화이트 모건일 가능성이 커 보였다.

하지만, 존 모건에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구멍 뚫린 가슴 후벼 판다고 일 원짜리 한 장 나오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게 협상은 진행되었다.

“부채 중에 얼마를 안고 가시겠습니까?”

“그러고 싶지만, 돈이 별로 없네.”

약한 척을 하는 존 모건이지만.

나는 그의 말을 100% 신뢰하지 않았다.

그건 첸도 마찬가지였는지 그가 끼어들어 몇 가지 사실을 말해 주었다.

“제가 조사한 바로는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소유한 곳들이 몇 군데 되는 거로 아는데요? 버지니아은행과 커클랜드 같은 곳 말입니다.”

“…내가 길바닥에 나앉는 꼴을 보고 싶은 거로군.”

그럴 리가.

이 방에 있는 것들만 팔아도 최소 5억 달러는 나올 텐데.

적어도 10대가 먹고살 돈이 아닌가.

내가 주위를 돌아보며 눈치를 주자 존 모건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100억.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세.”

“너무 적습니다. 저희는 900억을 생각합니다.”

존과 첸이 기 싸움을 시작했다.

누가 봐도 중간쯤에서 만날 거라고 생각한 이 기 싸움은 존 모건의 말 한마디에 종료되었다.

“대신 가문이 가지고 있는 연준의 주식을 넘겨주지.”

“그거야 JP모건만 인수하면 따라오는 거 아닙니까?”

“모건가를 우습게 보는군. 가문의 탄생 이래로 로스차일드를 견제하기 위해 움직인 세월이 얼만데 어디 그거만 가지고 있겠나?”

이건 놀랐다.

JP모건이 가진 지분이 9% 이외에 또 존재한다니.

“얼마나 됩니까?”

“가문의 신탁에서 5%를 더 가지고 있네.”

5%라, 절대 작지 않은 수치.

꽤 구미가 당겼다.

“조건은요?”

“부채 전액을 그쪽에서 처리하는 것과 현금 500억 달러.”

JP모건의 값으로 부채를 처리하고 5%의 연준 지분은 500억 달러로 계산한 거다.

첸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게 느껴진다는 뜻이다.

“그렇게 하시죠.”

“고맙네.”

그렇게 그날의 협상이 마무리되었다.

나는 JP모건의 부채 2,900억 달러 전액을 일시불로 변제하는 대신 모건가의 지분 29%와 신주를 발행하여 취득하기로 했다.

그로 인해 얻는 지분은 60%.

JP모건의 주가가 바닥까지 떨어졌기에 생각보다 많은 지분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생각보다 많은 현금이 들어가진 않았다.

부채가 2,900억 달러라고 했으나 900억 달러에 가까운 금액은 우리 쪽에서 매수한 CDS로 발생한 액수기에 실제로 들어간 돈은 2,000억 달러에다 연준 주식에 500억 달러.

이 정도면 싸게 먹혔다.

‘9% 정도를 얻을 거로 생각한 연준 은행의 지분을 14%나 얻었으니까.’

그렇게 만족할 만한 거래를 끝마친 우리는 호텔 근처에 있는 바를 찾아 술을 마셨고.

몇 시간 후 우리는 생각지도 않은 손님을 맞았다.

“각하께서 긴히 보고 싶다고 하십니다.”

트럼프가 보낸 전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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