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작은 틈이 둑을 무너뜨린다는 말처럼 테라노스 사태의 시작은 더 뉴요커에서 진행한 홈즈의 인터뷰로부터 시작되었다.
에디슨 키트가 어떻게 작동되냐는 기자의 질문에 홈즈는 고등학생이 화학 수업에서나 할 법한 애매하고 우스꽝스러운 얼버무림에 가까운 대답을 했다.
이에 존 케라이루는 의구심을 품고 테라노스의 퇴사자들을 따라다니며 조사하기 시작했다.
수개월의 시간이 지나고 그는 마침내 알아냈다. 테라노스가 주장하는 모든 게 사기라는 것을 말이다.
***
존은 약속된 날짜에 취재한 기사를 내보내려 했지만, 임원진들의 반대에 부딪혀 보도는 무산되고 말았다.
원 역사에서는 없었던 일.
월스트리트 저널의 임원진들이 새로이 테라노스의 주인이 된 월가의 세력들의 눈치를 보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이 보도할 수 없다면 남의 손을 빌려서라도 세상에 알리겠다는 듯이 취재한 기사를 내게 보내왔다.
그리고 나는 존의 기사에 그동안 모아온 내부 증거들을 보태 극비리에 백악관으로 보냈다.
자료를 받아든 트럼프는 이때다 싶었는지 매우 기뻐하며 백악관 브리핑실에 기자들을 모아 대대적으로 이 사건을 터뜨렸다.
“이게 바로 월가의 탐욕입니다. 그들은 미국 시민들에게 사기를 쳐서 자신들의 배를 불렀습니다.”
사실, 진정한 피해자는 빌더버그와 그들에게 속한 월가의 은행들이었지만 시민들이 그것을 알 리 만무했다.
그들은 트럼프가 주장한 대로 테라노스 사기를 주도한 게 월가의 은행들이라고 믿었다.
빌더버그가 소유한 은행들이 뒤늦게나마 반박기사와 자신들이 진정한 피해자라며 주장했으나.
이미 트럼프에 의해 선동된 그의 지지자들의 목소리로 인해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덕분에.
“Occupy Wall Street! (월가를 점령하라!)”
두 번째 월가 점령시위가 일어났다.
시위에 참여하는 일반 시민들과 트럼프의 지지자들은 연일 월가를 비난하며 거리를 행진했고 노숙을 하거나 하며 방송에 출연했다.
덕분에 시위운동이 더욱 불타올랐음은 물론이다.
여론이 형성되고 무르익자 트럼프는 미 금융 기관들을 움직여 더욱 극단적인 조치를 취했다.
[재무부, 테라노스, 주식시장에서 퇴출 결정.]
[미국 증권거래 위원회, 엘리자베스 홈즈의 의결권 박탈.]
이 같은 조치에 미 전역에서 트럼프의 지지도가 상승했다.
그는 이제 서민들을 대표해 부자들과 대신 싸우는 정의로운 대통령의 이미지까지 장착하게 되었다.
한편, 이 같은 조치는 빌더버그에 있어 매우 뼈아팠다.
홈즈의 의결권 박탈 따위는 상관없었으나 테라노스의 주식시장 퇴출은 폭탄이나 다름없었다.
폭탄 던지기를 통한 원금의 일부 회수조차도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다급해진 빌더버그는 테라노스 본사에 사람을 파견.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모든 정보를 확인한 그들은 깨달았다.
이건 처음부터 사기였다는 것을.
수천억 달러를 들여 사들인 기업의 가치가 0에 수렴한다는 것을 말이다.
아마 이때 의심하기 시작했을 거다.
이 일련의 과정에 내가 개입되어 있을 거라는 걸 말이다.
그렇다고 나를 원흉으로 지목할 수는 없었다.
증거는 하나도 없었고 지분 매각 과정도 내가 권유한 것도 아니기 때문.
그렇다고 쉽게 포기하지도 않았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고 놈들은 내게 계속해서 연락을 취했지만 나는 한결같은 대답으로 응수했다.
“글쎄요?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저를 윽박질러 안 판다는 주식을 억지로 산 건 당신들 아닙니까?”
라고 말이다.
놈들 관점에서야 복장이 터질 노릇일 거다.
사기를 당해 수천억 달러를 날린 것은 물론, 그 주체인 내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으니 말이다.
놈들이 노릴 건 하나.
남은 건 엘리자베스 홈즈의 증언뿐이지만.
[처리 완료.]
조금 전, 리우의 손에 놈들이 마지막 희망이 사라졌다.
씨익.
완벽 범죄…. 는 아니구나. 심증이 넘쳐나니까.
그래도 이 정도면 훌륭하다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그렇다면 놈들의 다음 움직임은 뻔했다.
‘무력을 동원하겠지.’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방법을 찾지 못하면 불법적인 방법을 찾는 게 인지상정.
하물며 수천억 달러의 돈이 걸렸으니 더하면 더했지 못할 리는 없다.
아니나 다를까.
콰창!
호텔의 창문을 뚫고 총알이 날아 들어와 방금까지 내가 누워있던 침구를 꿰뚫었다.
“!!!”
경호 요원들이 깜짝 놀라며 사주경계를 하며 내 주위를 감쌌다.
나는 그런 요원들을 안심시켰다.
“괜찮습니다. 그냥 경고일 뿐입니다.”
죽이고 싶어도 죽이지 못한다.
이게 내 현재 포지션이다.
놈들이 원하는 건 내가 가지고 있는 테라노스의 매각 대금이지 내 목숨이 아니다.
그래도, 이렇게 과감하게 경고를 해올 줄을 예상하지 못했다.
‘첫수에 총질이라….’
저쪽이 진심으로 나왔으니 나도 거기에 맞추는 게 인지상정.
‘본격적으로 움직여야겠군.’
속도를 올리기로 마음먹었다.
‘둘은 충분하고 셋은 무리겠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제거할 수 있는 가주 들의 숫자를 세었다.
“섹터로 이동해야겠습니다.”
내 지시에 경호 요원들의 눈빛이 결연해졌다.
***
“사라졌다고?”
질리언이 앞에 있는 남자에게 반문했다.
“네, 호텔 CCTV를 아무리 돌려봐도 그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지끈.
마치 머리 한쪽이 송곳으로 찔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나 경고했건만.
빌어먹을 늙은이들이 기어이 그를 건드려 숨게 만들었다.
아니, 가장 큰 피해자는 로스차일드인데 왜 다른 가문들이 나서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드냔 말인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앞에 있는 가문의 정보팀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찾으세요.”
“네, 최대한….”
“최대한이란 말은 필요 없습니다. 이틀 드릴 테니 반드시 찾으세요. 알아들었습니까?”
“아, 알겠습니다.”
정보팀장이 황급히 서재를 빠져나갔다.
그의 뒷모습을 보는 질리언이 얼굴이 심각해졌다.
정보팀장을 닦달하긴 했지만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엘이 마음먹고 숨었다면 세상 그 누구도 찾지 못할 테니 말이다.
홈즈가 실종된 지금 그가 이대로 사라져 버린다면?
테라노스에 투자한 2천억 달러가 허공으로 증발하는 거다.
물론, 그가 사라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지금 당장 무슨 방법이 있는 건 아니다.
그래도 눈이 닿는 곳에 두어야 증거를 찾든 아니면, 협상해 일부 금액이라도 회수하든 할 것 아닌가.
“빌어먹을 늙은이들….”
속이 쓰렸다.
가주 자리에 오른 지 몇 년 되지 않아 이렇게나 큰 손실을 입히다니.
“할아버님을 뵈어야겠군.”
덜컹.
질리언이 자신의 조부인 프랭크를 만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날 때 서재의 문이 열리며 어려 보이는 남자가 들어왔다.
질리언의 아들 에드먼드 로스차일드였다.
“에드? 여긴 어쩐 일이냐.”
질리언이 차갑게 에드먼드를 맞았다.
“소식을 들었습니다.”
“네가 참견할 일이 아니다.”
“저도 로스차일드가의 일원입니다.”
에드먼드가 도전적인 눈을 하며 주장했지만 질리언은 그저 비웃음으로 답할 뿐이었다.
“그 말은 학업이나 마치고 와서 해라.”
“아버지.”
질리언이 따지고 드는 자기 아들을 바라봤다.
천재.
그 누구보다 이 말이 어울리는 자신의 혈육이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달았고 무엇을 보던 한 번 보면 잊는 법이 없었다.
그런 천재성에 하버드에 조기 입학하여 지금은 경제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아들이다.
보통의 아버지라면 이런 아들을 자랑스러워했겠지만 질리언은 아니었다.
부러웠고 두려웠다.
자신을 능가하는 저 천재성이 겨우 앉은 가주 자리를 빼앗아 갈까 봐.
그렇기에 더욱 차갑게 자기 아들을 대했다.
“가주는 나다. 따르기 싫으면 가문을 나가거라.”
“…제가 주제넘었습니다.”
경고를 날린 질리언이 서재를 빠져나갔다.
홀로 남은 에드먼드가 무언가를 결심했는지 굳은 눈빛으로 방금까지 질리언이 앉아있었던 자리를 바라봤다.
***
미국 서부, 링컨 시티.
부와왕!
제트 스키 열 대가 굉음을 내며 바다를 질주했다.
남들이 보면 따스한 바다를 즐기는 관광객으로 보이겠지만.
지금 우리는 목표물을 제거하기 위해 움직이는 중이다.
드르릉. 풍덩.
그렇게 목적지 근처에 도착해 제트 스키를 멈춰 세운 후 모두 바닷속으로 몸을 던졌다.
나를 포함해 열 명의 인원이 수중 스쿠터를 꺼내 장치를 작동시켰다.
그렇게 물살을 헤쳐 나가기를 이십여 분.
깎아지른 절벽에 도착했다.
바로 이 절벽 위에 오늘의 목표물인 헤리엇 벤더벨트가 존재했다.
아직 해가 지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남은 상황.
나를 포함한 모두는 바다를 나와 절벽에 매달렸다.
후두둑.
몸에 나온 물방울이 사정없이 떨어졌다.
‘10분.’
지평선 너머의 태양이 바다 완전히 가라앉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면 곧바로 작전은 개시된다.
문득 리우가 없는 게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친놈이긴 해도 그는 이런 작전에서 가장 확실한 카드였다.
10분 후.
끄덕.
경호 팀장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요원들에게 수신호로 전파했다.
작전 개시라고.
‘흐읍.’
손을 뻗고 다리를 올려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최대한 소음을 줄이기 위해 아무 장비 없이 오르다 보니 꽤 난이도가 높았지만, 다행히 떨어지는 이들은 없었다.
그렇게 20여 분.
마침내 절벽의 끝에 다다랐다.
고개를 슬쩍 내밀어 주위를 둘러보니 경비를 서는 이들은 없어 보였다.
척.
내 손짓에 경호 팀장 및 휘하 요원들이 절벽 너머에 있는 저택의 담벼락에 붙었다.
철컥. 철컥.
나를 포함한 모두가 잠수복을 벗고 방수팩에 넣어 곱게 챙겨 온 무기들과 장비들을 꺼내 무장하기 시작했다.
소음기를 단 MP5와 보위 나이프, 방탄복과 방독면이었다.
끄덕.
준비를 마쳤는지 경호 팀장이 신호를 보내왔다.
그런 그에게 고개를 끄덕였고 곧바로 담을 뛰어넘었다.
마침 담벼락 너머를 순찰하던 경비와 눈을 마주쳤고.
‘치잇.’
턱. 푸확!
재빨리 나이프를 꺼내 목에 박아 넣었다.
“시팔.”
어떻게 시작부터 걸리냐.
경호 팀장이 의중을 묻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어쩌긴.
강행이지.
“예상 안에 일입니다.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고 물러납니다.”
“알겠습니다.”
경호 팀장이 요원에게 무언가를 지시했고 해당 요원이 등에 메고 있던 장치를 작동시켰다.
혹시나 해서 챙겨온 것인데 이렇게나 유용하게 쓰일 줄은 몰랐다.
“요환, 시우, 너희들은 전기선을 끊어.”
“네.”
“네.”
“지후와 선태, 그리고 용호는 회장님을 보조하고 나머지는 나를 따라서 저택 외부의 적들을 제거한다.”
끄덕.
절그럭. 절그럭.
팀장의 지시에 요원들이 재빨리 달려나갔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
열려 있는 2층 창문에 몸을 던져 창틀을 붙잡았다.
탁. 취이이익!
등 뒤에서 날아온 연막탄이 창문 안으로 들어가 연기를 내뿜었고 곧 해당 공간을 가득 채웠다.
턱.
저택으로 몸을 밀어 넣고 주변을 살폈다.
“Fuck!”
욕지거리와 함께 연막탄이 터진 쪽으로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티트르륵.
MP5를 가로로 그었다.
소음기를 통해 나아간 총알이 놈의 몸을 꿰뚫었다.
“컥.”
해당 방향으로 몸을 움직이니 배를 부여잡고 쓰러져 있는 게 보였다.
퉁.
총알 하나를 쏘아내 놈의 머리를 꿰뚫고 뒤를 돌아보자 뒤따라 온 요원들이 뒤에 있는 적을 향해 총알을 쏘아냈다.
잠시 후.
척.
2층 내 적들을 모두 사살한 요원들이 방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꺄아악!”
“당신들 뭐야!”
방에 피신해있던 벤더벨트의 식솔들, 그리고 사용인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없습니다!”
수색을 마친 이들이 알려왔다.
젠장.
좀 편하게 가나 했네.
어쩔 수 없다.
전부 뒤져보는 수밖에.
그렇게 3층으로 오르려던 찰나.
‘어?’
동아줄이 내려와 있는 걸 발견했다. 목표물인 헤리엇이 내뺀 흔적이다.
“전부 따라와!”
“네!”
탁. 탁. 턱!
재빨리 달려나가 2층 창문을 딛고 점프했다.
정원 잔디밭에 안착하니 요원들이 적들과 교전하는 게 보였다.
‘저기다!’
헤리엇이 적들 너머 저택의 정문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아마 우리 쪽 요원들이 교전으로 인해 정신없는 틈을 타 빠져나가는 데 성공한 거로 보였다.
“김 팀장!”
호출과 동시에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재빨리 튀어 나갔다.
몸을 굴려 집중되는 총알을 피해냈다.
서걱.
일어나며 적 하나의 발목을 베어냈다.
투투투툭.
적의 한 가운데에서 총알을 마구잡이로 쏘아내니 몇 명이 바닥을 굴렀다.
나머지 적들이 내 존재를 인식하고 권총의 총구를 돌릴 때,
텅. 텅. 취이이익!
타이밍 좋게 뒤쪽에서 날아온 연막탄들이 자욱한 연기를 내뿜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재빨리 몸을 숙였다.
타아앙! 탕! 탕.
머리 위로 총알이 지나가는 열기가 느껴졌다.
그렇게 내 쪽으로 적들의 시선이 집중 되자.
투툭. 투투툭.
뒤에 있던 요원들이 다가와 적들을 몸에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재빨리 저택의 문으로 달려가 헤리엇을 뒤쫓았다.
‘저기다!’
놈들이 주차되어 있던 차에 시동을 거는 게 보였다.
철컥. 투투툭. 투툭.
언제 따라왔는지 요원들이 자동차를 사격했다.
차 안 경호원들이 벼락 맞은 듯 몸을 흔들어댔다. 총알이 사정없이 몸을 관통한 것이다.
“허억. 허억.”
저벅. 저벅.
숨을 몰아쉬며 차에 다가가자.
“흐허. 흐어.”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헤리엇을 찾을 수 있었다.
어딘가 총을 맞았는지 몸을 떨어대고 있었다.
“누, 누.”
내 정체가 궁금했는지 의문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향해 고개를 올렸다.
그런 그를 향해.
투툭. 툭.
무심하게 방아쇠를 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