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엘리자베스 홈즈를 만날 수 있었던 건 일주일 뒤였다.
‘사기꾼 하나 만나기가 이렇게 힘들어서 영.’
테라노스 로비에서 잠시 기다리자.
엔론 이후 미국 최대의 기업 사기의 주인공인 홈즈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엘리자베스 홈즈예요. 세계 최고의 부호를 만나게 돼서 영광이에요.”
“엘입니다.”
홈즈가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네, 테라노스에 투자하고 싶으시다고 들었어요. 맞나요?”
“맞습니다. 시간이 많이 없으니 빠르게 진행할 수 있을까요?”
재촉하자 홈즈가 자신 있는 웃음을 보였다.
아마 안달 난 호구 하나 물었다 싶겠지.
그런데 어쩌나?
네 앞에 나타난 건 호구가 아닌 타짠데.
“이쪽으로 오시죠. 투자 조건에 관해 설명해 드릴게요.”
“알겠습니다.”
그녀의 뒤를 따라간 곳은 방음이 완벽한 밀실에 가까운 사무실이었다.
주로 투자자를 만나는 데 사용되는지 벽면과 화이트보드에 테라노스의 기사들과 자료들이 붙어 있었다.
“이쪽으로 앉으시죠.”
드륵.
자리에 앉자 홈즈의 비서로 보이는 여자가 들어와 테이블에 서류 한 장을 올려놓았다.
“한번 읽어 보세요.”
서약서다.
이곳에서 나눈 대화는 그 어디에도 발설하지 않는다는.
내가 서류를 유심히 보고 있자 홈즈가 찔렸는지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요새 우리 회사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돌아서요. 읽어 보시면 아시겠지만 별 내용은 아니에요.”
“뭐, 그런 거 같네요.”
별 내용이 아니긴.
간단한 투자 설명에도 비밀 유지 서약서를 내미는 것 자체가 구린 구석이 있다는 건데.
서약서에 서명하자 홈즈가 투자에 관한 설명을 시작했다.
“우선, 구매할 수 있는 최대 지분은 5%예요. 액수로는 6억 달러예요.”
“생각보다 적군요.”
“대신, 나중에라도 증자를 통해 기회를 만들어 드릴 순 있어요.”
“다른 조건은요?”
“경영에 대한 간섭과 기술에 대한 질문은 불가합니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내 질문에 홈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화이트보드 앞에서 한 기사를 가리켰다.
[테라노스, 피 한 방울로 세상을 바꾸다.]
탁.
“우리는 세상을 바꾸고 있으니까요. 투자자들은 저희 테라노스와 함께 세상을 바꿀 기회를 얻는 거죠.”
뭐라는 거야?
이유를 말하라니까 뭔 헛소리를 늘어놓고 있어.
내가 뭔 개소리냐는 듯이 쳐다보니 홈즈가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설명 시간은 길었지만 간단하게 줄이자면.
투자자의 경영 간섭을 차단하는 이유는 세상을 바꾸기 위함이고 기술 공개를 하지 않는 이유는 보안 때문이란다.
설명을 마친 그녀가 특유의 커다란 눈으로 나를 또렷이 바라보며 다시 한번 손을 내밀었다.
“어때요? 저와 함께 세상을 바꿔 보지 않으실래요?”
나는 그런 그녀의 손을 맞잡으며 대답했다.
“세상을 바꾸는 건 모르겠고 당신의 사기에 동참해 주지.”
홈즈가 이해하지 못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그녀를 향해 찾아온 진짜 이유를 말했다.
“에디슨 키트라고 했나? 피 한 방울로 이백 가지 병을 알아낼 수 있다는 그 기술 말이야. 사기잖아?”
“그게 무슨!”
“거짓말할 생각하지 마. 다 알고 찾아왔으니까. 못 믿겠으면 월스트리트 저널의 존에게 전화해 볼까? 사긴지 아닌지?”
반 협박을 들은 홈즈가 침을 꿀꺽 삼키더니 변명을 늘어놓았다.
“사기가 아니야! 우리는 실제로 기술을 가지고 있어! 다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을 뿐이야. 약간의 시간만 지나면….”
툭.
변명하는 그녀의 앞에 존이 보내 준 자료를 던졌다.
200여 가지의 질병을 검사한다는 에디슨 키트가 실제로는 16가지 질병밖에 확인하지 못하며 정확도 역시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내부 자료였다.
자료를 확인한 홈즈가 당황하는 건 당연했다.
“당신 말대로 사기가 아니라면 이 자료가 FDA로 들어가도 상관없겠네?”
내 협박에 홈즈가 분한 얼굴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더니 이내 공손한 태도를 보이며 내게 물었다.
“…원하는 게 뭐죠?”
“별거 없어. 그냥 당신이 가진 테라노스의 지분을 사고 싶을 뿐이야.”
“거절한다면요?”
“당신이 여태 한 일이 허공으로 증발하는 거지. 감옥에 갇혀서 수십 년 썩는 건 옵션이고.”
***
엘리자베스 홈즈와의 협상은 내 뜻대로 진행되었다.
나는 30억 달러를 주고 그녀가 가지고 있는 테라노스의 전체 지분 35%를 인수.
테라노스의 최대 주주가 되었다.
한 가지 의외인 건.
“이봐, 정말 회사에 남아 있을 거야? 나머지 지분도 팔지 않고?”
“이왕 걸린 거 크게 해 먹고 미국 뜰 생각이에요.”
자신이 친 사기가 모두 들통났음에도 홈즈가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35%만 인수할 수 있었고 말이다.
짜악.
홈즈가 다짜고짜 내 앞에서 손뼉을 마주쳤다.
“자! 이제 뭐부터 하면 될까요?”
“무슨 소리야?”
“사기라는 걸 알고 회사 지분을 샀다는 건 더 큰 사기를 칠 생각이라는 거 아녜요?”
어떻게 알았지?
내가 황당한 얼굴로 바라보자 홈즈가 생긋 웃었다.
“저한테만 말해 봐요. 판을 키우시려는 거죠?”
“…그래.”
“어떻게 판을 키우실 건데요?”
원래 계획은 그녀를 쫓아내고 난 뒤 적당한 허수아비를 세워 놓고 내가 직접 일을 주관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렇게나 적극적으로 나오는 홈즈를 보니 허수아비 대신 그녀를 앞세워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능력이 뛰어나지 않은가. 사기꾼으로서의.
“리비아에서 대규모 실험을 할 생각이야.”
“……???”
그녀가 이해가 되지 않는지 의문이 가득 찬 얼굴을 했다.
나는 그녀를 이해시키기 위해 부연 설명을 해 줬다.
“잘 들어. 지금 에디슨 키트가 의심받는 이유가 뭐야?”
“의학적인 근거 부족과 정확도의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거죠.”
“그런데 만약 한 국가에서 수만 건을 실험해서 100%에 가까운 정확도가 나온다면?”
여기까지 말하자 홈즈의 얼굴이 환해졌다.
“모든 의심이 사라지겠군요!”
“그렇지.”
“그럼 더욱 투자금을 끌어모을 수 있겠네요! 아니, 그전에 주가부터 뛰겠어요!”
역시, 훗날 희대의 사기꾼으로 기록되는 만큼 머리 회전이 빠르다.
자꾸 사기 사기 하니까 왠지 모르게 트럼프가 보고 싶네.
대선 준비는 잘하고 있는지 몰라.
어찌 됐든, 내 설명을 들은 홈즈가 빨리 준비해야 한다며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실행력 하나는 X 되네.”
자! 테라노스라는 재료를 준비했고 홈즈라는 요리사까지 준비했으니 빌더버그 놈들에게 먹여만 주면 되시겠다.
***
일주일이 지난 날의 밤.
CNN 뉴스에서 내가 기다리던 소식이 들려왔다.
[테라노스사가 자사의 신뢰성을 입증하기 위해 리비아에서 벌인 대규모 실험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는 소식입니다.]
곧 화면이 전화되더니 엘리자베스 홈즈가 테라노스의 기자 회견장에 서 있는 장면이 보였다.
찰칵. 찰칵.
[홈즈 CEO, 리비아에서의 어떻게 됩니까?]
그녀가 기자의 물음에 화면에 자료를 띄웠다. 성별별로, 연령대별로 실험한 횟수가 보였다.
[보다시피, 실험 횟수는 10만 회가 넘습니다.]
[정확도는요?!]
그녀가 결과를 말해 주지 않고 영상 하나를 재생했다.
영상 속에는 수많은 리비아 국민이 에디슨 키트에 피를 넣는 모습이 보였다.
기자들이 놀란 건 그다음 장면이다.
한 소년의 피에서 몇 가지 질병이 검출되었고 직원들이 곧바로 트리폴리 종합병원에 데려가 종합 검사를 했다.
그리고, 에디슨 키트와 같은 결과가 나왔다.
웅성웅성.
기자 회견장이 기자들로 인해 소란스러워졌다.
그 모습을 미소를 지으며 바라본 홈즈가 실험 결과를 설명했다.
[10만 회가 넘는 실험의 정확도는 97%였습니다. 실험 과정은….]
기자들이 그녀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인 지 십여 분.
[실험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에 올려놓을 테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다운로드 후 확인하시면 됩니다.]
홈즈가 기자 회견장을 빠져나갔다.
그 장면을 본 나는 손뼉을 마주치지 않을 수 없었다.
분위기, 어투, 표정, 행동까지 신뢰를 절로 불러일으켰다.
이렇게나 잘해 주다니.
만약 상태 창이 있었다면 그녀의 사기 능력치는 분명 MAX를 찍었으리라.
기자 회견이 끝난 후 뉴스에서는 계속해서 테라노스에 관한 특집 기사를 내보냈다.
다른 채널을 돌려도, 또 다른 채널에서도 모두 같은 내용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자 주식 시장은 난리였다.
엄청난 양의 돈이 테라노스의 주식을 사기 위해 모여들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테라노스의 주식을 살 수 없었다.
‘내가 모두 매입했으니까.’
나는 테라노스를 방문한 다음 날부터 테라노스의 주식을 매입했다.
유통 주식이 바닥날 때까지 말이다.
왜냐고?
그래야지 빌더버그 놈들이 안달 날 거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시장이 열리고 몇 시간이 지나자 휴대전화가 사정없이 울리기 시작했다.
빌더버그 놈들이 소유한 월가의 은행들에서 연락이 들어온 것이다.
각기 다른 곳에서 연락이 들어왔지만, 내용은 같았다.
테라노스에 투자하고 싶다고.
가지고 있는 주식을 팔아 달라고.
좋은 금액으로 쳐주겠다고.
‘지금은 아니지.’
아직은 때가 아니다.
발효시키면 시킬수록 맛이 올라오는 김치처럼 시간이 지나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으리라.
그렇게 사흘이 지났다.
시일이 흘렀음에도 각종 매체에서는 테라노스에 관한 기사가 꾸역꾸역 올라왔다.
마지막 결정타는 그동안 에디슨 키트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여 왔던 의학계에서 입장을 번복한 일이다.
조작된 실험 결과에 넘어간 모양.
‘하긴, 국가가 나서서 조작에 협력했을 줄은 생각도 못 했을 테니까.’
의학계는 결코 멍청한 집단이 아니다.
명색이 의사들의 모임이 멍청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그들이 넘어간 이유는 실험 조작에 리비아 정부가 가담했기 때문이다.
트릭은 간단했다.
테라노스가 리비아에서 실험을 진행하기 전 트리폴리 시민 중 10만 명을 선별, 건강 증진이라는 명목으로 무료 검진을 받게 했다.
그리고 그 결과지는 곧 에디슨 키트의 실험 결과지가 되었다.
또한, 실험이 끝나자마자 리비아로 들어오는 모든 항공편을 막았다.
덕분에 10만 명이라는 숫자의 피시험자가 있음에도 정보가 새 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의학계의 인정을 받은 테라노스의 평가는 더없이 뛰어오르기 시작했고.
“증자 신청해.”
계획의 다음 단계를 지시했다.
“네? 그렇게 되면 엘의 지분이 낮아지게 되는데요?”
“괜찮아. 증자한 주식은 모두 내가 매입할 테니까.”
“그러죠, 뭐.”
내 지시 사항을 들은 홈즈가 뚱한 표정을 지었다.
무언가 불만이 있는 모양.
“왜? 뭐가 마음에 안 들어?”
내 물음에 홈즈가 조심스레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저도 이번 증자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뭐?”
무슨 미친 소리지?
“아니, 그렇잖아요. 잡히면 감옥에 가는 건 전데 얻는 게 있어야 할 거 아니에요.”
“돈은 있고?”
“네, 일전에 엘에게서 받은 주식 대금 30억 달러가 그대로 남아 있어요.”
“해외로 옮긴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려고 했는데 상황 돌아가는 거 보니까 돈 냄새가 풀풀 나는 거 있죠? 그래서 일단 보류시켰어요.”
참 대단한 여자다.
“걱정하지 마세요. 가족들은 이미 해외로 보내 놨으니까요.”
그녀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증자가 이뤄지고 며칠이 지나자.
지이잉.
[만나고 싶습니다. -질리언]
놈들이 미끼를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