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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3회차! 재벌빌런-104화 (104/175)

#104화

뉴욕으로 돌아오자마자 트럼프가 운영하는 부동산 개발회사로 향했다.

와글 와글.

요새 사업이 잘된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인력을 충원했는지 유리문 너머로 직원들이 활력 넘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안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렀다.

뭐지? 경호원들을 너무 많이 데리고 왔나?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뒤를 돌아보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김 팀장님, 모두를 데리고 빌딩 밖으로 나가 계시는 게 좋겠습니다.”

전쟁터에서 일 년 동안 살다 와서인지 온몸에 살기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나조차도 날카롭게 느껴지는데 이들은 숨이 막혔을 것이다.

그렇게 경호 요원들을 내려보내고 나서 안내데스크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저 아시죠?”

“딸꾹! 네, 넵!”

“트럼프 씨를 만나러 왔는데요. 약속이 되어있을 겁니다.”

“아, 안 그래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감사합니다.”

데스크 직원의 안내대로 회장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트럼프가 기름을 바른 올백 머리를 하고 시가를 물고 있었다.

모기지론의 문턱을 크게 낮춰 미국 서민들의 희망이라고 불리는 실버 스타의 CEO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모습.

말문이 막혀 입을 다물고 있자 그가 양팔을 훤히 벌리고 반가움을 표시했다.

“오오! 이게 누군가! 내 구세주가 아닌가.”

“…오랜만입니다.”

일 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안 그래도 큰 풍채가 엄청나게 커져 있었다.

별로 좋은 느낌은 아닌데….

내 떨떠름한 표정을 무시한 트럼프가 나를 붙들고 지나간 이야기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엘이 떠나고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실버 스타의 무지막지한 성장세를 자랑하기 시작했다.

설명은 길었지만, 간략하게 추리자면 미국 시민 중 실버 스타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만큼 잘나가고 있다는 것과 월가에서 그 채권을 전량 인수해가고 있다는 것.

그로 인해 많은 매출을 올렸고 순이익 역시 우상향을 그리고 있다는 좋은 소식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것 보라니까요. 제가 엘을 부자로 만들어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간단한 공치사를 던지자 그가 특유의 싼 티 나는 멘트를 내뱉었다.

아니, 자기가 뭘 했다고.

HS의 자금을 끌어온 건 나고 빌더버그와의 협업을 만든 것도 난데….

그래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 그냥 넘어가자.

나는 기뻐하는 그를 향해 찾아온 본론을 꺼내 들었다.

“백악관에 가실 준비는 어떻게 돼가고 있습니까?”

“그게….”

역시나, 생각처럼 풀리지 않아 보였다.

당연한 일이다. 여태까지의 그의 이미지는 정치인보다는 경영자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그나마 미국 서민들의 친구라고 불리는 실버 스타의 CEO라는 명함이 있으니 경영자 정도지 원 역사대로라면 이시기엔 돈 많은 이슈메이커 정도로 취급받았다.

‘혹은 광대 취급이거나.’

“공화당에 경선 출마 의지는 밝히셨고요?”

“네. 말은 해놨지만….”

“무시당했습니까?”

내 말에 트럼프가 어떻게 알았냐는 듯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더니 이내 분하다는 얼굴로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공화당 관계자들을 욕했다.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앞으로는 그들이 도널드를 원하게 될 테니까요.”

***

다음 날, 나는 워싱턴 D.C에 위치한 공화당 당사에 찾아갔다.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안내데스크의 여직원이 나를 반겨줬다.

“어떤 일로 오셨을까요?”

“후원을 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로비가 합법인 국가답게 안내데스크 직원이 서랍에서 후원 양식을 꺼내 건네줬다.

서류를 슬쩍 내려보니 이름과 연락처, 후원 금액, 앞으로 공화당에 바라는 점을 적는 곳이 보였다.

“쓰고 주시면 돼요. 후원금은 계좌이체로 주셔도 되고 수표도 상관없어요.”

“네.”

서류를 가지고 로비 한쪽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작성을 마쳤다.

이제 남은 건 후원 금액.

‘어디 보자….’

얼마를 써야 우리 사기꾼이 공화당에서 대우를 받을 수 있을까.

잠시 고민하다 결정한 나는 서류의 빈칸을 채워 넣고선 수표와 함께 데스크 직원에게 건넸다.

“여기 있습니다.”

“우리 공화당은 지지자분들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직원이 서류를 받으며 사무적인 말투로 감사를 표했다.

잠시 후 안에 있는 수표 금액을 보고 눈을 휘둥그레 뜨며 손을 떨어댔다.

그럴 수밖에.

십억 달러나 써넣었으니까.

아마 공화당 후원 역사상 역대는 물론, 앞으로도 이런 금액은 나오지 않을 거다.

“시, 시, 시, 십억!”

여직원이 허둥대더니 가까스레 내선 전화를 들고 안쪽에 연락을 넣었다.

그 모습을 보며 잠시 기다리자 당사 2층에서 남자가 내려왔다.

“안녕하십니까. 빌리 그레이엄이라고 합니다.”

“아, 네.”

일부러 보인 시큰둥한 반응에 빌리라는 남자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입을 열었다.

“우선 후원금 정말 감사드립니다. 일단 위층으로 올라가시죠. 혹시 좋아하시는 차 종류가 있을까요?”

“물 한 잔이면 됩니다.”

잠시 후.

당사 어느 곳으로 이동하자 빌리가 물과 뜨거운 커피를 가져왔다.

평소 믹스커피 이외의 커피는 커피가 아니라는 생각하는 나는 물만 마시고 커피는 입에 대지 않았다.

“십억 달러의 후원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만….”

“네.”

“혹시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훅 들어오는 신원 조사.

당연한 일이다. 명색이 미국의 거대 정당이니만큼 후원자도 가려 받는 게 맞다.

혹시라도 검은돈일 경우 곤란한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말이다.

“투자 기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빌리에게 평소 가지고 다니는 명함을 내밀었다.

인베스트먼트 대표라고 적혀 있는 명함이었다.

명함을 받아 본 빌리가 놀란 눈초리로 나를 바라봤다.

“이런, 제가 몰라뵈었군요.”

“괜찮습니다.”

“혹시 우리 공화당에 거액을 후원하려는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도널드 트럼프요.”

“네?”

빌리가 황당한 얼굴로 되물었다.

“못 들으셨습니까? 도널드 트럼프 때문에 공화당을 후원한다고 했습니다.”

“그…. 제가 알고 있는 그 도널드가 맞습니까?”

“TV쇼에서 ‘당신은 해고야’라고 주문을 외우는 사람을 생각했다면, 맞습니다.”

“허어….”

빌리가 고심하는 게 보였다.

십억 달러라는 무거운 금액은 절대 조건 없이 나갈 돈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을 테니까.

또한, 그런 막대한 후원금을 투척할 의사를 보이는 이가 도널드 트럼프를 입에 올렸다는 건.

“혹시 이번 경선을 생각하시는지….”

“맞습니다.”

내 말에 빌리가 역시나 싶었는지 눈살을 찌푸렸다.

“죄송하지만 트럼프 씨는 힘듭니다. 그는 아직 정계에 입문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대중들에게 이미지를 각인시키지 못했습니다. 차라리 유력한 테드 크루즈 의원을….”

내 생각대로였다.

이런 공화당에서 그 사기꾼은 어떻게 경선에 나갔으며 무슨 수로 승리했지?

의문이 솟아올랐다.

어쨌거나 나는 빌리에게 최후통첩 비슷한 말을 던졌다.

“어쩔 수 없군요. 후원을 취소하는 수밖에요.”

드륵.

곧바로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빌리 역시 재빠르게 일어났다. 일어났다 뿐일까? 그가 문 앞으로 튀어나와 내가 나가지 못하도록 양팔을 벌려 막았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제가 이 일을 책임질 사람을 데려오겠습니다.”

진즉 그럴 것이지. 괜히 시간만 버렸네.

잠시 기다리자 눈에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린지 그레이엄입니다. 마침 아들 녀석을 보러 당사에 찾았다가 거액의 후원자가 나타났다고 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3선 의원이자 훗날 공화당 내에서 반트럼프 행보를 보이는 하원 의원이었다.

한국도 아닌 미국의 하원 의원의 얼굴을 어떻게 아느냐고?

그거야 간단하다. 자기 집에서 쉬고 있을 사기꾼을 백악관으로 보내기 위해 밤새도록 정계 현황을 공부했으니까.

“도널드 트럼프 ‘씨’를 지지하신다고요?”

“네.”

“왜 그런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사람 좋아하는데 이유 있습니까. 그냥 마음에 든거지.”

“하하, 이해합니다만, 후원 액수가 너무나 큰 탓에….”

그가 말끝을 흐렸다.

아마 정치적 수사로 내 혼을 빼놓기 위한 거 같은데.

‘안 통하지.’

“그냥 가부만 결정해주십시오. 괜히 정치적 언어로 대화하려 하지 마시고요. 한 가지 조언을 드리자면 제 요구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저는 이 수표를 들고 민주당 당사로 향할 겁니다. 힐러리 클린턴도 마음에 들거든요.”

“아, 알겠습니다.”

린지 그레이엄이 생각을 하는지 눈알을 좌우로 굴린다. 그러더니 휴대전화를 들어 보이고는 잠시 전화를 하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누구와 통화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온 대답은 내 예상대로였다.

“받아들이겠습니다.”

“겨우?”

“조건이 도널드 트럼프의 경선 참여 아니었습니까?”

“십억 달러나 투척했습니다. 그에 대한 배네핏이 있어야죠.”

린지 그레이엄이 눈살을 찌푸렸지만 이내 경청할 자세를 취했다.

역시 십억 달러나 쓰니 이런 거물조차 저자세를 보인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돈이 최고시다.

“어떻게 해드리면 되겠습니까?”

의문스러운 얼굴을 한 린지에게 간단하게 대답했다.

“전국 일주 한번 보내주시죠.”

***

공화당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

뉴욕에 도착한 당일 트럼프를 만난 후 공화당 당사에서 쇼부까지 보고 난 터라 머리가 지끈거렸다.

차라리 몸으로 싸우는 게 낫지 이런 정치적 협상은 내 전공은 아닌 거 같다.

공화당은 후원금의 대가로 미국 각 주에서 열리는 당원 모임에 트럼프를 초대하기로 했다.

이미 얼굴이 알려진 유명인사니 여기서 이빨만 잘 털어도 전 회차에서처럼 백악관행은 무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 쓴 보람은 있다.

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사기꾼 녀석이 이 구호와 함께 백악관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많을 테니 말이다.

이제 트럼프를 백악관으로 보내기 위한 마지막 관문은 빌더버그와의 합의다.

그렇게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앞으로의 일을 계획했고.

이틀 뒤.

나는 질리언을 만나기 위해 로스차일드 저택에 도착했다.

끼이익.

커다란 문이 열리며 저택의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엄청난 크기, 마치 중세 동화 속 배경의 성을 보는 것 같다.

저벅. 저벅.

저택을 향해 걷고 있자 저 멀리서 깡마른 노인 하나가 걸어왔다.

조지 소로스다.

내가 알던 그와는 다른 느낌이다. 전 회차를 통틀어서 말이다.

새삼스레.

“들어가시게. 가주께서 기다리고 계시네.”

그가 사무적으로 나를 안내했다.

서재로 들어가자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는 질리언이 보였다.

털썩.

“오랜만입니다.”

인사말을 던지고 소파에 자리 잡자 그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오셨습니까?”

“바쁘신가 봅니다.”

“급하게 처리해야 일이 있어서요. 약속을 잡아놓고서 죄송하게 됐습니다.”

“시간 많으니 편히 일보세요.”

사각. 사각.

나와 그가 입을 다물자 서재에는 만년필이 움직이는 소리만이 가득 찼다.

잠시 기다리자 일을 마쳤는지 질리언이 고개를 들었다.

“리비아에서 활약은 들었습니다.”

“활약이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그냥 유전이 잘 돌아가고 있는지 감시만 하다 온 거니까요.”

“그래요?”

질리언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보였다.

‘이 새끼들 알고 있구나.’

아마 내 움직임을 속속들이 파악한 듯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

“엘을 저지하려는 백악관의 움직임을 누가 막았을 것 같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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