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무슨 소리야?”
최효석의 목소리에 칼날 같은 날카로움이 서렸다.
“종전을 막자는 이유는 알겠어. SC의 앞날에 해가 되니까. 그런데 아예 전쟁을 벌이자고? 얼마나 죽을지도 모르는데?”
“정확하십니다.”
“하!”
그가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대체 왜 그런 결론이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이곳 책임자로 있는 한 절대 따를 수가 없다. 그게 싫다면 나를 자르고 네가 직접 해.”
“형님이 빠지면 불가능한 계획입니다.”
“어째서.”
“데저트의 요원들, 이곳 난민들, 모두 형님만 바라보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와서 제가 전면에 나서봤자 그들이 저를 따를 리가 없죠.”
“그럼 답 나왔네. 종전은 막는 대신 전쟁은 하지 않는다. 이게 최선이자 정답 아니야?”
최효석이 고집을 피워대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저도 한 대만 주십쇼.”
탁.
나는 그가 던진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치익. 후우.
우리 둘이 내뿜는 담배 연기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최소한의 희생과 시간으로 전쟁을 끝낼 수 있다면요?”
“어떻게?”
“무기를 수입할 겁니다. 전차나 공격 헬기, 전투기 같은 것들요.”
영문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는 최효석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줬다.
“곧 있으면 이지석 총리가 대통령이 됩니다.”
“알고 있어.”
“그를 지원하는 대신 약속을 받았습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자 다음 나올 내용을 짐작했는지 최효석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너, 설마?”
“네, 이지석 총리를 청와대로 보내고 그 대가로 무기를 받아올 겁니다. 처음에는 오래된 퇴역 무기를 수입하는 형태가 되겠지만요.”
“그게 가능한 거냐? 규모가 크다고 하더라도 데저트는 일개 PMC일 뿐이다. PMC가 전차를 운용하고 공격헬기를 타고 다닌다? 리비아 정부가 허락할 리가 없다.”
“허락받을 필요는 없을 겁니다.”
“어째서?”
“이곳 니푸라 기지에서 리비아의 신정부가 탄생할 테니까요.”
***
힘든 설득 끝에 최효석은 내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가 자신의 손으로 직접 리비아 땅에 평화를 이룩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전쟁이 왜 평화로 이루어지냐고 할 수 있는데 SC가 리비아를 통째로 잡아먹으면 이 땅엔 내전이 그칠 거고 리비아 국민들은 편안히 살 수 있을 거다. 그게 평화가 아니면 뭐겠는가.
덕분에 최효석은 다음날부터 난민들의 리더들을 만나는가 하면 데저트의 체계를 전쟁 수행이 가능한 형태로 바꾸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
트럼프와 연락해 폭탄 제조, 아니 실버스타의 경영에 대해 조언을 하거나 첸에게 연락해 SC인베스트먼트의 투자 방향을 설정해줬다.
그리고.
국제적인 여론 조성을 위해 모스크바로 이동.
푸틴을 찾아가 항구 몇 곳을 할양하기로 약속하고 러시아와 동유럽 몇 개국의 지지를 약속받았다.
졸지에 부동항이 생겨 기뻐하던 푸틴이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던졌다.
“빨리 끝낼 수 있게 아예 군대를 파견해줄까?”
엄청나게 끌렸지만 받을 수 없는 제안이다.
잘못하면 내전이 일어나기 전, 리비아의 유전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었던 영국이나 프랑스가 참전할 수 있는 빌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중히 제안을 거절한 뒤 다시 리비아로 돌아온 지 한 달여.
[대한민국 제18대 대선, 기호 1번 이지석 후보 당선 확정. 득표율 49.9%.]
기다리던 소식이 들려왔다.
몇 시간 후, 이지석에게 전화가 들어왔다.
“축하드립니다.”
-회장님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보다야 이강진 회장께서 힘을 쓰셨죠.”
-이 통화가 ‘끝나는 대로’ 인사를 드릴 생각입니다.
이지석이 내게 먼저 전화를 했다는 걸 강조했다.
그의 당선에 상현보다 SC의 역할이 크다는 걸 안다는 뜻일 터.
아니나 다를까 그가 첫 행보로 나와 한 약속을 이행한다며 알려줬다.
-곧바로 이행될 겁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뚝.
전화를 끊고 상황을 정리했다.
‘이제 시간만 끌면 된다.’
정부군과 반군이 휴전 서류에 서명하는 건 확실하다.
문제는 시간이다.
우리가 일어나는 시간보다 휴전이 빠르다면 봉기의 당위성을 잃기 때문.
‘리우가 잘해줘야 할 텐데.’
이제 모든 건 벵가지에 나가 있는 리우에게 달렸다.
***
하프타르는 최근 기분이 상당히 좋았다.
수개월 동안 지속한 내전은 반군 측이 우세를 보였고 그로 인해 잘랄에게서 많은 양보를 받아낼 수 있었다.
리비아를 사선으로 갈라 휴전선을 만드는 것은 물론 유전 지역을 더 많이 챙겼다.
이제 남은 것은 영토의 경영과 막대한 오일머니를 챙기는 것뿐.
평소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하프타르의 엉덩이가 들썩거리는 건 당연했다.
“흐흐흐.”
“축하드립니다. 사령관.”
“다 자네들 덕분이야. 다들 한 자리씩 차지할 준비나 하라고.”
하프타르의 말에 반군 지휘관들의 입이 찢어졌다.
하프타르가 얻을 막대할 돈에 숟가락을 얹을 생각에 너도나도 하프타르에게 입에 발린 소리를 해댔다.
연회장엔 즐거운 분위기가 맴돌았다.
하지만 어디에서나 눈치 없는 이는 존재하는 법.
“그런데 샤리르 유전은 어떻게 하실 작정입니까?”
참석한 이들 중 가장 젊고 계급이 낮은 이가 물었다.
싸아.
방금까지 즐거웠던 분위기가 휘발되어 날아가고 적막이 내려앉았다.
그러나 하프타르는 크게 개의치 않아 했다.
“좋은 질문이야.”
하프타르가 앞에 있던 술잔을 들어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잘랄과 합의를 봤다. 그곳에 자리 잡은 놈들을 몰아내도 잘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그쪽의 전력이 만만치 않습니다.”
저번 전투에서 데저트의 막강한 전력을 확인한 장성들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들은 반군 전체를 갈아 넣는다고 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천에 달하는 특수전 병력과 공격헬기의 조합은 그만큼이나 강력했기 때문.
피식.
하프타르가 그런 장성들의 분위기를 읽고서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
명색이 수만에 달하는 병력을 이끄는 사령관이다.
설마, 아무런 계책이 없을까.
“휴전이 이루어지면 토털에서 병력을 파견해주기로 했다.”
오오오.
그의 말에 연회장의 분위기가 다시 살아났다.
“토털이라면 믿을 수 있습니다. 명색이 메이져가 아닙니까. 우리와도 인연이 있고.”
“흐흐흐, 그러니까 지금은 그냥 마시도록. 알라신께서도 오늘은 마시는 걸 이해해줄 거다.”
하프타르가 다시금 잔을 들자 모두가 신나게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렇게 즐거운 분위기가 이어진 지 몇 시간이 지나고.
콰와앙!!!
천지를 뒤흔드는 소음이 들렸다.
쿠르릉.
연회장은 물론 공관 전체가 흔들렸다.
연회장에 있는 모두가 재빨리 손을 머리 위에 얹고 테이블 아래로 숨었다.
“이 새끼들아. 뭐해! 누구 하나 나가봐서 알아봐야 할 거 아니야!”
같이 숨어있던 하프타르가 답답하다는 듯이 외쳤다.
막내에게 궂은일을 미루는 건 동서양이 같은지 모두가 한 사람을 바라봤다.
아까 분위기를 망친 주범이었다.
“제, 제가 나가보겠습니다!”
그가 조심스레 문 쪽으로 다가가 손잡이를 잡고 당겼다.
끼이익. 콱.
그 순간.
커다란 손이 나타나 그의 머리를 움켜쥐더니.
덜컹!
잡아당겨 인형을 뽑듯이 꺼내 갔다.
그리고 곧 끔찍한 소리가 들려왔다.
푸욱! 촤악.
나이 먹은 지금이야 겁쟁이처럼 숨어있지만, 젊었을 적엔 전쟁터에서 한 가닥씩 하던 이들이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는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충분히 예상했다.
그렇게 긴장감이 감돌 때.
“적습이다!”
공관 경비병들이 침입 사실을 알아차렸는지 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총 들어! 경비병들이 올 때까지 시간을 번다.”
하프타르의 외침에 그 부하들이 총을 꺼내 들고 문 쪽으로 겨눴다.
그렇게 영원 같던 찰나가 지나가고 잠시 기다리자.
끼이익.
마침내 문이 열렸다.
연회장 안에 있던 이들이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덜컹! 타타탕! 탕!
문을 열고 들어온 이들이 실 끊어진 인형처럼 순식간에 쓰러졌다.
“사격 중지!”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하프타르가 사격 중지를 명령하고는 가까이 가서 쓰러진 이들을 살피고는 잘못됨을 알아차렸다.
“빌어먹을!”
죽은 이들이 침입자가 아닌 공관 경비병이었던 것이다.
분노한 표정의 하프타르가 장성들에게 추격을 명령했다.
“당장 잡아 와!”
한편, 공관을 침투해 하프타르 및 휘하 장성들을 위협하는 데 성공한 리우는 공관의 담을 넘어 벵가지 시내로 들어갔다.
“여기!”
데저트의 대원 중 리우와 합을 맞춰왔던 시큐리티 출신 요원들이 봉고차의 문을 열고 손짓했다.
리우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차 안으로 몸을 날렸다.
덜컹.
부르릉.
오래된 봉고차가 벵가지 시내를 가로질렀다.
불끈.
가까스로 자리에 앉은 리우의 피부 위로 핏줄이 퍼렇게 드러났다.
“우욱.”
올라오는 구토감에 리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새로 개발했다던 SS-7혈청의 부작용이다. 효과가 짧은 대신 부작용도 최소화했다나?
한 달을 앓아누웠던 저번과 비교했을 때는 확실히 나아진 것 같았다.
“괜찮아?”
“I’m Okay.”
대원들에게는 괜찮다고 대답했지만.
‘Fuck.’
솔직히 죽을 맛이었다.
수백 미터를 기어가고 경비병 수십을 제거하는 등.
체력의 한계를 뛰어넘었고 혈청의 부작용까지 올라왔기 때문.
파김치가 리우가 눈을 감고 숨을 몰아쉬었다.
“흐으. 흐으.”
씨익!
그러더니 이번 작전을 맡게 된 당시를 떠올리고는 웃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밖에 없다.’
‘무슨 일인데?’
‘벵가지에 가서 하프타르가 있는 공관을 공격하는 일이야.’
‘알았어. 언제 가면 돼?’
다른 이도 아닌 줄리아의 은인이자 자신을 나락에서 구해준 친우가 부탁한 일이다.
죽더라도 무조건 성공해야 하는 작전이다.
물론 작전 내용은 괴이하고 어려웠다.
하프타르가 있는 곳까지 기껏 침투해 위협만 가하고 탈출하라니.
약이 오른 그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의 지휘 아래 반군이 하나 되어 쫓아올 게 너무나도 확실했다.
“흐흐흐.”
죽을 각오는 항상 되어있었다.
문제는.
같이 온 이들은 그런 각오가 되어있는지는 모르겠다는 것이다.
짜악!
이들을 살려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든 리우가 자신의 양 볼을 손바닥으로 찍었다.
큰 소리에 대원들이 뒤돌아봤다.
“갑자기 왜 그래? 괜찮냐?”
“크크, 나만 믿어. 전부 살려서 보내줄 테니까”
“미친놈아. 네가 죽으라고 해도 안 죽으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누워있어.”
정이 들었다. 평생 친구라고는 아무도 없던 자신을 이렇게 따스하게 맞아줬던 사람들이 있었는가.
끼이익.
리우가 감상에 젖어있을 때.
봉고차가 급히 멈췄다. 요원들이 긴장하며 발밑에 뒀던 무기를 잡았다.
“검문이야?”
끄덕.
리우의 질문에 운전을 맡은 요원이 고개를 끄덕인다.
Shit!
속에서 욕이 터져 나왔다.
아직 벵가지도 빠져나가지 못했는데 벌써 걸리다니.
험난한 앞날을 예고하는 것만 같았다.
10분 뒤.
타아앙! 탕. 탕 드르륵. 콰와앙!
벵가지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검문소가 초토화되었다.
그리고.
봉고차 한 대가 검문소를 뚫고 질주했고 곧이어 반군들의 차량이 뒤따랐다.
부르릉. 턱. 팡.
봉고차가 비포장도로를 뒤뚱거리며 질주했다.
타앙. 탕. 쨍그랑.
뒤에서 날아온 총알에 뒷유리가 박살 났다.
“내가 간다!”
리우가 재빨리 봉고차 뒤로 기어들어 갔다. 커다란 덩치 덕에 겨우 도착해서 무언가를 잡고는 발로 봉고차의 뒷문을 걷어찼다.
쾅.
뒷문이 열리자 M60기관총을 잡은 리우가 보였다.
그가 씨익 웃고는 기관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드르륵. 드륵. 드르르륵. 콰앙.
수없이 많은 총알이 날아가 따라오는 반군 처량하나를 터뜨렸다.
“흐흐.”
리우가 흰 이를 드러내며 섬뜩하게 웃었다.
제3차 리비아 내전이 시작된 날의 새벽은 이렇게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