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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3회차! 재벌빌런-91화 (91/175)

#091화

한국에 돌아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팔에 큰 자상을 입은 최효석을 비롯해 다친 대원들이 강남 상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

정신없이 전투를 치를 땐 흥분해서 몰랐는데 한국에 돌아와서 보니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팔과 다리, 복부에 깊은 자상을 발견했는데.

특히, 복부의 자상은 정말 아슬아슬한 정도였다.

“조금만 더 깊었으면 장기까지 칼이 들어갔습니다.”

의사가 이런 말을 남길 정도로.

“수고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월급 받고 하는 일입니다.”

간단히 인사한 의사가 자리를 떠났다.

“휴우….”

그 고생을 하며 백문을 끝장냈는데도 생각보다 후련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지난한 과정을 몇 번이나 더 거칠 생각을 하니 답답하기만 했다.

허한 마음에 조용히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을 때, 첸이 병문안을 왔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여기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한창 바쁘실 텐데….”

“그래도 이 정도 짬은 낼 수 있습니다.”

첸이 가져온 과일 바구니를 풀더니 사과 하나를 깎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입은 부상에 대해 말해 주지 않은 것 같아 알려 줬다.

“배에 칼을 맞아 당분간 금식을 해야 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오기 전에 제니에게 물어봤거든요. 아! 이건 제가 출출해서 깎는 겁니다.”

“…….”

미친 건가?

첸은 날이 가면 갈수록 사람이 이상해져만 갔다.

나를 신격화해 직원들에게 이상한 신앙을 전파하더니.

급기야는 사무실에 나를 본뜬 작은 동상까지 세워 뒀다는 소문까지 들렸으니 말이다.

분명, 전 회차에서 함께했을 때는 시종일관 진지한 모습만 보였던 사람인데 왜 이번 회차에서는 이러는지.

더는 사적인 대화를 하다간 나도 이상해질 것 같아 그냥 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위안화 풋 옵션 투자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아직 수익이 나질 않고 있습니다.”

대답하는 첸의 표정이 평온해 보였다. 마치,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처럼 말이다.

이상하게 느껴져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는데.

눈동자에 확신이 서려 있는 걸 발견했다.

나에 대한 믿음 치가 MAX를 찍은 것이 분명하다.

근데 어쩌나, 이건 확실한 미래 지식이 아니라 내 감에 의한 투잔데.

지금이라도 사실을 말해 줄까?

이건 찍은 거라고. 위안화가 내 예상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그렇게 첸에게 사실을 털어놓으려고 할 때.

띠리리리.

첸의 전화기에서 벨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 위안화 폭락이 시작돼? 알았어. 바로 갈게. 엘, 저 가 보겠습니다. 들으셔서 아시겠지만, 위안화의 투자 포지션을 조정해야 할 수도 있어서요.”

“그, 그러세요.”

그가 부리나케 달려 나갔다.

“다행이네.”

첸의 신앙을 이어 갈 수 있어서.

물론, 시나리오는 있었다.

백문의 자산을 몰수한 후진타오.

그가 그 엄청난 돈들을 가만히 둘리 없었다.

가만히 두면 국가의 재산이 되는데 미쳤다고 그러겠나.

당연히 꿀꺽하겠지.

나라도 그럴 테고.

문제는, 백문의 자산 규모가 소화할 만한 크기가 아니라는 거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자산들을 최대한 빠르게 현금화시켜서 해외로 숨기는 건데.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엄청난 돈이 한 방에 해외로 나가게 되면 위안화의 가치가 폭락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천천히 옮길 수도 없지.’

만약, 후진타오가 적당히 먹고 국가로 귀속시킨다면 낙폭의 차가 작기에 5:5의 확률 투자라고 생각했지만.

역시나 전부 먹기로 한 듯 보였다.

이렇게 첸에게 연락이 바로 올 정도면 적은 낙폭은 아닐 테니 말이다.

“일단 하나는 건졌고.”

수천억 달러가 빠져나간 탓에 하락 폭은 작지 않을 거다.

그리고 그건 곧 인베스트먼트의 수익으로 돌아올 거다.

‘상하이까지 움직인 품삯은 벌었네.’

그건 그렇고, 정말 중국 놈들에게 질렸다. 신뢰와 신의란 존재하지 않는 놈들 아닌가.

명색이 주석이란 놈만 봐도 그렇다.

자신의 손으로 국민을 갈아 넣어 IMF를 극복하고 그걸 치적으로 삼은 놈이 또다시 환란을 불러일으키다니.

‘나랑은 관계없지만.’

이제 문제는, 놈을 어떻게 파멸시키느냐다.

이미 잠정적인 적으로 돌아선 상황.

백문의 자금과 중국이라는 국가 권력을 쥔 후진타오가 쉬운 상대일 리가 없다.

그래도.

‘기회는 있지.’

몇 년 뒤에 터질 전염병도 있고 그 뒤에 생기는 사건 사고가 많이 있으니 말이다.

털썩.

일단, 뭐가 되었든 컨디션 회복이 우선이다.

몸이 정상으로 돌아와야 움직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대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

며칠이 지나자 치료를 마친 최효석과 대원들이 리비아로 돌아갔다.

좀 더 쉬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을 내봤지만.

“알잖아? 반군 놈들이 언제 말 바꿀지 모르는 거.”

최효석이 기지의 사람들이 걱정되었는지 고집을 피웠다.

대원들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제대로 된 회식 한번 하지 못한 채로 그들을 보내 줄 수밖에 없었다.

또다시 며칠이 지나고 배에 난 구멍이 슬슬 붙어 갈 때쯤.

“엘 삼촌! 히히.”

“…또 왔어? 아침에도 와 놓고선.”

여자아이 하나가 환한 웃음꽃을 피우며 병실에 찾아왔다.

밝은 금발을 가졌고 또래보다 작은 키를 가진, 크면 남자 여럿 울리게 생긴 외모.

리우의 딸 줄리아였다.

저번에 심장 이식 수술을 받고 완치 단계에 있다더니 이젠 돌아다니는 것쯤은 거뜬한가 보다. 아니.

우당탕.

병실이 좁다고 뛰어다니는 걸 보니 필시 완치 단계가 아니라 이미 완치된 게 확실해 보였다.

이렇게 줄리아가 찾아왔다는 말은.

“줄리아!”

SC의 로트와일러, 리우도 온다는 뜻이다.

외상은 없었지만, 혈청 부작용 때문에 입원한 그는 줄리아와 행복한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내가 행복하지 않아서 문제지만.

콰당, 우당탕.

둘이 술래잡기하며 내 평온한 일상을 망가뜨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파악!

줄리아가 돌진했다.

그것도 구멍 뚫린 배를 향해.

“끄어억!”

화끈한 고통이 올라왔다.

리우가 곧바로 줄리아의 옆구리를 잡았다.

“잡았다. 크크.”

“히히히, 간지러워.”

리우가 줄리아를 들어 올렸다.

줄리아가 리우를 돌아보며 싫은 표정을 지었다.

“으으, 주사 맞기 싫단 말이야. 그냥 여기서 엘 삼촌하고 놀면 안 돼?”

“주사는 맞아야지. 돌아가면 아빠가 놀아 줄게.”

“앙 대, 아빠는 엘 삼촌보다 못생겼잖아.”

역시, 어린애는 거짓말을 못 한다더니 사실인가 보다.

그건 그렇고 언제 이렇게 한국말이 늘었지?

저번에 봤을 때만 하더라도 영어로만 대화했는데.

리우가 충격받았는지 목석처럼 굳어 버렸다.

줄리아가 그런 제 아빠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침대에 있는 내 스마트폰을 집었다. 상현 전자의 은하수 시리즈였다.

“삼촌, 이거 풀어 줘.”

“...스마트폰은 애들한테 좋지 않은데.”

“그럼 나랑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 하자.”

“이리 줘 봐, 당장 풀어 줄 테니까.”

패턴을 그려 휴대전화의 보안을 풀었다.

줄리아가 휴대전화를 내 손에서 빼앗아 들고는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역시, 스마트폰은 어린이들에게 마성의 아이템이 확실하다.

손에 쥐여 주자마자 망아지 같던 줄리아가 삽시간에 조용해졌으니 말이다.

그렇게 잠시간의 평화의 시간이 지나고.

덜컹.

“줄리아 여기 있었구나. 치료받으러 가야지.”

담당 의사가 병실의 문을 열어젖히고 리우와 줄리아를 데려갔다.

줄리아가 가기 싫다고 울고불고 떼를 썼지만 역시 프로는 프로다.

사탕과 간식거리로 줄리아를 꾀어 내는 걸 보니 절로 탄성이 자아졌다.

은인이다.

퇴원하기 전 선물이라도 하나 해야겠다.

한차례 폭풍이 몰아치고 나니 적막이 느껴졌다.

그래, 이거야.

이번 회차에서 숨 쉴 틈 없이 움직였던 탓에 이런 적막감이 반가웠다.

후룩.

믹스커피를 타서 한 입 마시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후후.”

아직 완치되려면 열흘 정도 시간이 있기에 당분간 이런 평화를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세상사 모든 일이 마음대로 되는 경우가 없다는 말처럼.

덜컹.

“오, 칼을 맞았다고 들었는데 멀쩡하군. 역시 젊음이 좋긴 좋아.”

이강진 회장이 찾아와 내 사색을 방해했다.

비아냥거리는 그를 쫓아내고 싶었지만, 이곳이 상현 병원이라는 걸 떠올리고 입을 다물었다.

“시간이 많으신가 봅니다. 이곳까지 찾아오시고.”

“그거야 당연히 와야지. 예비 사, 아니, 사업 동반자가 입원했는데. 그것도 내 병원에.”

“뭐, 감사합니다.”

“반응이 그게 뭔가? 어른이 찾아왔는데 과일 있으면 몇 개 꺼내 오지 그러나.”

이강진 회장의 요청에 냉장고에 들어 있는 사과를 꺼냈다.

“보통 이런 건 병문안 오는 쪽에서 사 오는 거 아닙니까? 요새 보니까 아이스크림 같은 것도 가져오던데.”

“공짜로 남의 병원에서 먹고 자는 자네가 할 말은 아니지 않나?”

“돈 준다니까 안 받아 놓고선 인제 와서 딴소립니까? 지금이라도 입금해요?”

“어찌 한마디를 안 지는군. 이래서야 누가 데려가려는지….”

이강진 회장이 은근슬쩍 내 눈치를 봤다. 매우 불순한 눈빛으로.

곁에 있는 최우현 실장이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십니까? 아무 용건도 없이 찾아올 분은 아니시잖아요?”

“크흠….”

이강진 회장이 정곡을 찔렸다는 얼굴을 했다.

저 사람이 저러면 부탁이 있는 거다. 그것도 매우 어려운.

“이지석 총리 말일세.”

“대선 말입니까?”

“자네에게 먼저 찾아갔었군.”

“네, 러시아 전승 기념식에서 만났습니다. 거기서 대선에 나갈 것이라는 뜻을 밝히더군요.”

“그렇군. 자네는 어쩌고 싶은가?”

이강진 회장이 내 눈치를 봤다.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였다.

“능력 있는 사람 아닙니까? 여론 조사 수치도 좋고요. 밀어줄 생각입니다.”

“그건 맞지만….”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까?”

내 질문에 이강진 회장이 잠시 고민하다 자기 뜻을 밝혔다.

“너무 깨끗해.”

“네??”

“깨끗한 물에는 물고기가 살지 않는다는 소리 못 들어 봤나?”

“그게 왜….”

“자네를 보면 알 수 있지. 처음 자네가 SC를 만들었을 때 뭐를 제일 먼저 했나? 해먹은 놈들부터 쳐내지 않았나.”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이강진 회장은 이지석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가져올 혼란이 우려스러웠던 거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 가장 먼저 적폐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쳐낼 것 아닌가. 그럼 당연히 우리 사람이 쓸려 나갈 수밖에 없지. 정치인을 후원하는 게 불법인 나라니까.”

“타격이 큽니까?”

“최 실장 말로는 10년 치 노력이 물거품이 될 거라는군.”

“문제군요.”

“작은 문제는 아니지.”

이강진 회장과 대화에서 한 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이지석도 정치인인데 후원 없이 대선을 치를 수 있나 하는 의문이었다.

“이지석 총리가 후원 없이 대선을 치를 수 있을까요? 그 역시 후원을 받게 되면 회장님의 고민처럼 사람들을 쳐내지는 않을 거 아닙니까? 본인도 깨끗하지 않으니까요.”

“모르는구먼?”

이강진 회장의 반문.

곧바로 최우현 실장이 끼어들어 내 질문에 대신 대답을 했다.

“지한이라고 아십니까?”

“네, 생활용품을 만드는 상장 회사로 알고 있습니다.”

“이지석 총리의 부친 되시는 분이 그곳을 창립하셨습니다. 공식적인 재산이 삼천억이 넘는 사람한테 뇌물 준다고 찾아오는 사람은 없지요.”

“아….”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갑자기 이현준이 떠올랐다.

똑같은 옷만 입고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게 절약이 아니라 서민 체험이었다니.

비정상인 리스트에 추가시켜야겠다.

“만나서 한번 얘기해 보겠습니다.”

“그가 과연 굽힐까?”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야 어쩔 수 없을 겁니다. 회장님과 제가 다른 후보를 밀면 경선도 통과하지 못하는 걸 알 테니까요.”

“그럼 부탁하지. 고맙네.”

“알겠습니다.”

“이만 일어나겠네. 나오지 말게나.”

나갈 생각이 없었지만.

그가 민망해할까 봐 액션만 취했다.

“아닙니다. 그래도….”

“괜찮네.”

“알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그렇게 이강진 회장이 돌아갔다.

“이제 겨우 쉴 수 있겠군.”

겨우 찾은 평온함에 몸을 뉘었다.

할 일이 산더미 같아 쌓여 있지만, 지금은 왠지 쉬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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