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8화
꾸우웅.
서해, 상해 앞바다.
리비아의 중소 해운 회사의 마크를 단 화물선이 바다 한가운데 정박해 있었다.
컨테이너가 잔뜩 실려 있는 전형적인 화물선.
그리고, 그곳에는.
“도착까지 십 분 남았답니다.”
“대원들 전부 준비시켜.”
시큐리티와 MARS, 에쉬드가 병합하여 탄생한 SC 데저트의 대원들이 타고 있었다.
그 수가 무려 이백.
천 명의 데저트 대원 중에서 최효석이 직접 고른 정예들이었다.
“꺼내 와!”
철컹. 철컹.
최효석의 지시를 받은 대원들이 짐칸에서 철제 상자를 꺼내기 시작했다.
상자 안에는 소총과 권총을 비롯한 총기류와 도검류, 방탄복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텅. 텅.
검은 천에 뒤덮여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꺼내어졌다.
대원들이 하나둘 무장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휴….”
그런 모습을 보는 최효석이 긴장되는지 깊은숨을 몰아쉬었다.
십 분 뒤.
멀리서 두 사람이 타고 있는 모터보트가 다가왔다.
이신후와 리우였다.
“참….”
반가운 마음과 걱정되는 마음이 교차된 최효석이 혀를 찼다.
***
줄 사다리를 타고 화물선에 올랐다.
내 만류에도 불구하고 리비아에서 날아온 최효석이 보였다.
나는 그가 이번 작전에 참여하지 않고 리비아에 남아 있기를 원했지만, 최효석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끝까지 내 안위와 대원들을 책임지겠다며 원래 오기로 했던 윤현수 팀장에게 리비아 유전 지대를 맡기고 직접 찾아온 것이다.
그가 나를 보더니 반가운 기색을 보였다.
“잘 있었냐?”
“네, 형님은요?”
“말도 마라. 무슨 할 일이 그렇게 많은지 온종일 서류만 쳐다보다 시간 다 보낸다.”
“흐흐, 거기서부터 시작입니다. 곧 있으면 총 쏘는 법도 잊어버릴걸요?”
“짜식이 악담은….”
간단한 농담을 주고받고 주위 대원들을 둘러봤다.
그런 나를 향해 최효석이 우려가 가득 섞인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얼마나 죽어?”
“…운이 좋으면 열의 두셋 정도요.”
“나쁘면?”
“절반.”
실패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건 앞선 회차에 충분히 겪었으니까.
이번 회차에서는 반드시 놈들을 뿌리 뽑을 거다.
그렇기에 전멸이란 단어는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돌아가라고 해도 안 들을 거지?”
“이번 작전에 실패하면 평생 암살 위협에 시달려야 합니다. 차라리 내 손으로 끝내는 게 나아요.”
최효석이 이제는 포기했다는 듯이 웃었다.
“운이 좋을지는 어떻게 알고?”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비고르가 우리의 운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그래.”
간단히 대답한 최효석이 리우에게로 다가갔다.
오랜만에 만났기에 회포를 푸는지 둘이 얼싸안고 난리였다.
그 모습을 뒤로하고 상하이가 있는 쪽을 바라봤다.
거의 다 왔다.
모조리 죽여 주마.
그렇게 상하이를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은 지 한 시간.
지이잉.
위성 전화기에서 진동이 울렸다.
[상하이에서 헝샤섬으로 백문 측 병력으로 보이는 무장 세력이 이동. 약 90명.]
기다렸던 연락이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반가운.
***
이백의 데저트 대원들을 데리고 헝샤섬 해변 근처에 도착했다.
앞서서 침투한 대원들이.
피슉. 피슉.
“키룩.”
해변을 지키고 있는 적들의 목을 갈랐다.
매우 은밀하게 말이다.
뒤쪽에서 우리가 나타날지 몰랐던지 적들이 별다른 저항도 못 해 보고 쉽게 쓰러졌다.
척.
최효석이 손을 들어 신호를 보내자 팀장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자신들의 팀원들을 데리고 재빨리 섬으로 상륙했다.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섬 안쪽으로 다가가자.
타아앙! 타탕.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총성이 울려 퍼졌다.
“리우, 가자.”
나와 리우 역시 적들을 죽이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헝샤섬의 동쪽은 민가가 존재했고 중앙과 서쪽은 숲으로만 이뤄져 있었다.
덕분에.
타아앙!
민간인을 신경 쓰지 않고 앞에 있는 적들 중 한 놈의 뒤통수를 향해 총을 쏴 수박처럼 깨뜨렸다.
동료의 죽음에 같이 있던 놈들이 놀라서 펄쩍 뛰어오르더니 엄폐물을 찾기 위해 몸을 날렸다.
하지만.
콰직. 푸욱! 탕!
권총과 칼을 든 리우가 동물과도 같은 움직임으로 그들 사이를 침투.
한 놈의 목에 칼을 꽂아 넣고는 곧바로 다른 놈의 머리로 방아쇠를 당겼다.
적들의 몸에서 흐른 피가 리우의 신발을 적셨다.
“흐흐흐.”
오랜만인 살인이 즐거웠던지 리우가 어둠 속에서 새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그런 리우에게 핀잔을 날렸다.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는 과격한 움직임이었던 탓이다.
“함부로 뛰쳐나가지 마. 만약 상대가 일반 군인이 아니라 백문의 암살단이었으면 넌 죽었어.”
“옛썰.”
알아들었는지, 아니면 무시하기로 했는지 그가 장난스러운 태도로 대답했다.
그런 리우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섬의 안쪽으로 전진했다.
슬슬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는지 곳곳에서 총성이 울려 퍼졌고.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
척.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살기가 느껴졌다.
탁.
불안감에 곧바로 물러났다.
타앙! 퍽!
방금까지 내가 있던 곳으로 총알이 날아왔다.
소름 끼칠 정도로 정밀한 사격.
만약 살기를 느끼지 못했다면 내 머리에 놈들의 총알이 박혔을 거다.
이대로 멈춰 서면 죽여 달라는 것밖에 안 된다.
곧바로 다리를 움직여 주변에 있던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타탕! 타타탕.
총알이 계속 날아와 나와 리우가 숨어 있는 바위에 박혔다.
“내가 나가서 처리한다.”
리우가 호기롭게 나서려 하는 걸 말렸다.
“그대로 나가면 죽어. 놈들 사격 솜씨 못 봤어? 세 걸음도 가기 전에 머리통이 터질걸?”
“가만히 기다릴 수는 없잖아.”
“잠깐 기다려 봐. 준비한 게 있으니까.”
이럴 때 써먹으려고 가져온 비장의 카드를 꺼내기로 마음먹었다.
미리 준비한 지도를 펴 적들이 있다고 의심되는 곳의 좌표를 확인.
무전기를 들어 해당 좌표를 불러 줬다.
잠시 후.
쾅! 콰앙!
리비아에서 직접 가져온 60mm 박격포에서 발사된 포탄이 불러 준 곳을 정확히 타격했다.
대원들을 하나라도 더 살리겠다는 의지가 담긴 최효석의 아이디어였다.
특수전과 야전이 결합한 부대가 어떤 위력을 가지는지 보여 주는 모습이기도 했다.
“가자.”
틈이 생겼으니 파고드는 게 인지상정.
리우와 함께 재빠르게 달려 나갔다.
콰직. 탕!
바짝 엎드려 있는 놈들의 머리통에 총알을 박아 넣으면서 말이다.
다른 쪽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는지.
데저트의 대원들이 암살단의 후미를 뚫고 나아가는 게 보였다.
그리고.
타아앙!
약 한 시간의 전투 끝에 저항하는 암살단 모두를 사살하는 데 성공했다.
“흐으, 흐으.”
체력 소모가 심했는지 대원들이 호흡을 가다듬지 못했다.
다행히도 사상자가 거의 없었는지 숫자가 별로 줄어들지 않았다.
대원들의 상태를 확인한 후, 시체들을 모아 놓은 장소로 걸어갔다.
‘이놈이군.’
시체들의 틈바구니에서 속에서 수장으로 보이는 놈을 들어 올렸다.
저벅. 저벅.
놈의 시체를 어깨에 멘 채로 백랑대가 숨어 있는 지역으로 걸어갔다.
궁지에 몰린 백랑대가 살기를 내뿜으며 나를 경계했다.
놈을 멘 반대 손을 들어 전투 의사가 없음을 표시함과 동시에 그들의 앞에 시체를 던져 놨다.
백랑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장삼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크게 놀랐다.
“백문주 모가지 따라가는 길이면 같이 가지?”
***
“엘의 군인들인가?”
“맞다.”
내가 엘 본인이긴 하지만, 뭐 틀린 말은 아니니까.
“우선, 도와줘서 고맙다. 백랑대장 리청풍이라고 한다.”
“고마워할 필요 없다.”
너희들의 위치를 백문 측에 흘린 게 바로 나니까 말이야.
덕분에 가장 까다로운 적인 암살단의 숫자도 꽤 줄일 수 있었고.
그런 속마음과 다르게 입 밖으로 위로의 대사를 내뱉었다.
“정보가 새어 나갔나 보군.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다. 덕분에 중국 최고 전력이라 불리는 백랑대의 삼분지 이가 죽었지.”
“조금 더 빨리 오지 못해 미안하다.”
이건 진심이다.
조금 더 빨리 와서 100명 정도 살렸다면 총알받이가 많아지는 건데….
“아니다. 이 정도만 하더라도 당신은 할 일을 다 했다. 상하이로 곧장 갈 수 있는 걸 우리를 구하기 위해 방향을 튼 것 아닌가.”
별말씀을.
처음부터 이곳을 향해 오고 있었는데.
나야 좋게 생각해 주면야 편하니 가만히 들어만 줬다.
“그나저나 놈들이 우리가 이곳에 있는 걸 알아차렸군. 침투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리청풍의 우려는 정확했다.
다만, 우리 쪽이 아니라 백랑대에게만 말이다.
“그래도 해내야지 않겠어?”
“목숨을 걸겠다는 말이군.”
“그래야 당신네 주석과 우리 회장의 안전이 보장되겠지.”
피식!
내 말을 들은 그가 얼굴 가득 웃음을 품었다.
“소국(小國)의 남자가 참으로 충성심이 깊군!”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이들이라면 당연히 그래야지.”
“당신은 내가 대중화에서도 보지 못한 무인이다.”
그렇게 리청풍의 대국 드립을 잠시 들어 주니.
“나 리청풍! 당신의 충성심에 깊이 감읍했다! 만약, 이번 작전에서 살아남으면 그대를 기꺼이 형제로 삼고 싶은데 받아 주겠는가?”
마치 무협지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대사를 쳤다.
슥슥.
온몸의 털이 곤두서며 닭살이 돋았다.
솔직히, 그냥 뒤돌아서서 다른 곳으로 가고 싶었지만.
그래도 대답은 해 줘야지. 나 대신 죽을 자리로 가는 놈인데.
“기꺼이.”
단답형의 대답을 들은 리청풍이 크게 만족했다.
“으하하하, 꼭 살아서 만나자, 형제여.”
우린 몰라도 너희는 살기 힘들 거 같은데….
내 속마음을 알 리 없는 리청풍이 백랑대에게 침투 지시를 내렸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
데저트의 대원들을 챙겨 상해항으로 향할 준비를 시켰다. 그저 준비만 말이다.
철컥. 철컥.
준비를 마쳤는지 리청풍이 상하이가 그려진 지도를 들고 왔다.
“우린 이곳 상해항 남쪽을 통해서 잠입할 생각이다. 그쪽의 계획을 말해 주면 참고하겠다.”
“우린 북쪽으로 가지.”
“양동 작전을 쓰자는 거군! 역시 보통의 지략가가 아니야. 제갈무후의 현신이로군.”
이제는, 머릿속이 어떻게 됐는지 리청풍이 아무 생각 없이 거짓말인지도 모르고 엄지를 치켜들었다.
침투 준비를 마친 백랑대와 데저트의 대원들이 고무보트에 올라탔다.
“그럼 무운을 빌겠다.”
끄덕.
첨벙. 첨벙.
백랑대가 상해항 남쪽을 향해 출발했고 우리는.
부아앙.
타고 왔던 화물선으로 돌아갔다.
보트를 타고 화물선 근처에 다가가자 줄사다리가 내려왔고 그걸 타고 올라가니.
“오랜만입니다, 회장님.”
예전 호주 항구 작전에 함께했던 송동익 선장이 서 있었다.
“미안합니다. 선장님 말고는 대안이 없었습니다.”
“…알면 됐습니다.”
그가 몇 번이나 이번 작전 참여를 거절했다는 걸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
걸리면 몰살이 확실한데 한 번이라도 경험이 있는 사람이 하는 게 안전하지 않겠는가.
리비아 현지 선원들과 송동익 선장이 우리를 빈 컨테이너로 안내했다.
“편안히 모시겠습니다.”
마치 호텔리어 같은 발언에 리우가 끌끌 웃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여느 말씀이라고. 그저 잘만 챙겨 주십시오.”
“서울에 집 한 채 사놨습니다. 선장님 명의로요. 선원들도 섭섭지 않게 챙겨 줄 예정입니다.”
내 말에 송동익 선장이 짙은 웃음을 지었다.
고생에 대비한 보상만큼 달콤한 건 없으니 말이다.
“감사합니다.”
그가 대답과 동시에 컨테이너의 문을 닫았다.
드륵.
곧 화물선이 다시 움직였고 상해항을 향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