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화
벵가지시.
아름다운 지중해에 위치한 리비아 제2의 도시이자 리비아 민주화 운동의 발원지로 유명한 지역이다.
그런 벵가지시 교외에 있는 국민군 본부에 사령관 하프타르를 비롯한 장성들이 모여 있었다.
“다들 얼굴이 좋아 보이는군. 군의 기강은 개판이 되었는데 말이야.”
국민군의 이탈을 막지 못한 장성들에게 보내는 질책이었다.
사실, 이탈의 원인인 무리한 징집을 명령한 건 하프타르였지만, 그걸 지적할 만한 용자는 이곳에 없었다.
“타치, 어떻게 되었나?”
그가 왼편에 있던 장성의 이름을 불렀다.
국민군의 중장이자 하프타르의 오른팔 역할을 하는 자였다.
“국민군 전반에 걸쳐 정신 무장을 마쳤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정신 무장이라고 말했지만.
군을 이탈한 부족들을 잡아 와 모두가 보이는 앞에서 총살해 본보기를 보였다는 뜻이다.
그가 즐겨 쓰는 가장 확실하면서도 빠른 방법이었다.
하프타르가 그런 타치를 믿음직스럽게 바라봤다.
“수고했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사령관.”
하프타르가 자리에서 일어나 옆에 있는 리비아 전도 앞에 섰다.
탁.
그가 지휘봉을 들어 니푸라 유전 지대를 찍었다.
“이곳을 최대한 빠르게 탈환해야 하는 건 모두 알고 있을 거다.”
이견이 없는 장성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야 국민군이 정부군과 비등한 전력을 갖췄지만, 니푸라 지역의 원유가 생산되기 시작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최신식 무기로 무장을 마친 정부군이 국민군을 압도할 게 너무나도 뻔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보통 놈들이 아닙니다.”
그곳을 차지하고 있는 놈들의 전력이 강하다는 데 있다.
“한국에서 왔다고 했나?”
하프타르가 묻자 타치가 재빨리 사전에 조사한 바를 대답했다.
“네, 한국의 SC 중공업이라고 하는 기업입니다.”
“처음 들어 본 곳이군.”
“선박 제조와 해상 운송, 플랜트 제조 등 한국의 중공업 기업 중 가장 큰 기업입니다.”
“일개 기업이 그 정도의 전력을 갖췄다고?”
“아마, PMC를 고용한 것 같습니다.”
“어딘지 알 수 있나?”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만, 정보국 요원들이 나가 있으니 금방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빠르게 움직이도록.”
“예!”
하프타르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돈에 팔린 용병들이라면 더 많은 돈을 제시해서 배신을 종용하면 되니까.
“다른 의견 있는 사람 있나?”
그렇게 회의는 밤늦게까지 계속되었다.
그날 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한 하프타르는 누군가가 찾아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서둘러 응접실로 향했다.
평소라면 바로 쫓아냈을 테지만 이번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찾아온 이들의 신분이 범상치 않았기 때문.
덜컹.
문을 연 하프타르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두 사람에게 양팔을 벌려 환영의 뜻을 표했다.
“처음 뵙겠소, 시 의원. 모렐 국장도 오랜만이오.”
찾아온 이의 정체는 중국의 정치국 상무위원인 시진핑과 이스라엘 모사드의 국장 모렐이었다.
간단한 인사말을 교환한 후, 시진핑과 모렐이 본론을 꺼냈다.
“요새, 니푸라 유전 때문에 고민이 많으시다 들었습니다.”
모렐의 말이 틀리지 않았지만, 국민군의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던 하프타르가 허세를 부렸다.
“누가 그런 소리를! 우리 군은 잠시 숨 고르기를 하는 것뿐이오!”
하프타르의 반응을 본 모렐이 입가에 비웃음을 띠었다.
명색이 모사드의 국장인 그가 국민군의 사정을 모를 리가 없었다.
다만, 협상을 위한 자리이니만큼 그는 하프타르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맞췄다.
“그거야 당연하지만, 여기 있는 시진핑 상무위원께서 사령관을 돕겠다 해서 이렇게 함께 방문했습니다.”
시진핑이 가져온 서류 가방에서 CD와 숫자가 적힌 쪽지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10억 달러가 들어 있는 동남아 계좝니다. 건네드린 CD와 비밀번호만 맞으면 누구든 찾을 수 있습니다.”
“……!!!”
“그 돈으로 국민군을 무장시켜 한국의 SC를 몰살시켜 주시면 됩니다.”
“단순히 몰살만 시키면 되오? 이걸 빌미로 니푸라 유전 이권에 개입하려는 게 아니라?”
“대중화는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리비아의 보물인 니푸라 유전을 하찮게 취급하는 시진핑의 발언에 하프타르가 눈살을 찌푸렸으나.
“고맙소. 당신의 요청, 꼭 이뤄 드리리다.”
감히 표현하지 못했다.
돈은 항상 옳은 법이니 말이니 말이다.
둘의 대화가 끝나자 이번에는 모렐이 본론을 꺼내 들었다.
“단순히 돈만으로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 않습니까?”
“맞소. 무기가 있어야지.”
“그 무기, 저희가 공급해 드리겠습니다. 돈과 무기가 있다면 니푸라 유전을 되찾는 것뿐만 아니라….”
“리비아 전체를 차지하는 것도 가능하지.”
하프타르가 짙게 웃었다.
***
SS-3 혈청의 부작용 때문에 한 달이나 앓아누워 있었다.
이제야 몸 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와서 철제 관제탑 위에서 본부를 내려다봤다.
높은 철책과 조립식으로 지어진 막사들, 그리고 방어 포인트까지.
모두 러시아 공병대가 만들어 준 것들이다.
천막과 엄폐물 몇 개만이 놓여 있던 진지가 이제는 누가 봐도 군사 기지라고 할 수 있을 만큼의 시설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일주일 전, 이번에 인수한 에쉬드와 영국의 MARS, 그리고 장갑차와 헬기 같은 무장들도 속속히 도착했다.
마지막으로, 비고르와 러시아에서 제공한 히든카드 역시 도착했다는 소식을 알렸다.
에쉬드 900명에 MARS와 시큐리티의 요원들 60, 장갑차 250대와 헬기 5대.
이로써 니푸라 군사 기지는 국민군 전체가 밀고 들어와도 해볼 만한 전력을 갖추게 되었다.
‘뭐, 잡음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PMC를 인수했을 때에 발생하는 전형적인 지휘권 싸움은 이번에도 역시 발생했다.
능력이 없는 놈에게 지휘권이 넘어간다면 죽어 나가는 것은 현장 요원들이니 어느 정도 이해는 되는 일이다.
지휘권의 절대 사수를 외치는 에쉬드의 사령관 아미르와 최효석에게 지휘권을 귀속시켜야 한다는 나의 대립 끝에 우리는 한 가지 내기를 하게 되었다.
바로 모의 전투.
아미르가 포함된 에쉬드 한 개 소대와 최효석이 포함된 시큐리티 한 개 소대가 겨뤄 지휘권을 가져가는 내기였다.
결과는 보다시피, 시큐리티의 승리였다.
“PT 8번 동작 50회 실시한다! 몇 회?”
“50회!”
어디서 구해 왔는지 시큐리티 요원들이 빨간색 조교모를 쓰고 에쉬드의 대원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심지어, 훈련받고 있는 집단에는 나이가 50에 가까운 아미르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가장 놀라운 건, 지금 하는 훈련이 자발적 참여라는 데 있다.
‘아슬아슬하게 졌다면 저렇게까지는 않았겠지만.’
시큐리티는 10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에쉬드를 깨부수는 데 성공했다.
그야말로 압승이었다.
이에 아미르는 충격을 받았는지 최효석에게 자신과 에쉬드의 대원들을 훈련해 달라고 요청했고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광경의 원인이 되었다.
뭐, 결과적으로 잘된 일이다.
장기적으로 에쉬드든, MARS든 전부 시큐리티와 하나로 합쳐져야 했으니까.
그리고.
오늘은 내가 꽤 기다리는 날이다.
“회장님!”
바로 신종민이 SC 오션의 중공업 부문 직원들을 데리고 방문하는 날이기 때문.
“오지 말라니깐.”
“회장님께서 계신데 어떻게 찾아오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위험해요. 얘기 못 들었어요?”
“그래서 더 일부러 찾아온 겁니다. 회장님에게 위해를 가하는 놈을 가만두지 않으려구요.”
피식.
신종민의 얼굴이 진지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나를 걱정하는 그의 마음이 느껴졌다.
“회장님, 저 못 믿으십니까? 제가 이래 봬도 칠성 부대 출신입니다.”
“어라? 군필이셨습니까?”
내 물음에 신종민이 충격받은 얼굴을 했다.
그가 믿기지 않는다는 어투로 입을 열었다.
“설마, 여태까지 저를 미필로 보신 겁니까? 제가 그곳에서 얼마나….”
웃자고 던진 농담에 신종민이 죽자고 달려들었다.
이대로 두면 몇 시간이고 군대 얘기를 쏟아 낼 게 뻔했기에.
“제가 또 81mm 박격포를 기가 막히게….”
군 전문가에게 그를 데려가기로 마음먹었다.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최효석에게 이끌었다.
“이게 누구야! 내 동생 아니야!”
“미스터 신!”
최효석과 리우가 신종민에게 달려와 얼싸안았다.
잠시 후.
식당에는 신종민이 가져온 갖가지 한식들로 뷔페가 마련되었다.
외국인들을 위한 갈비찜부터 시큐리티 요원들을 위한 김치 요리까지 없는 게 없는 완벽한 한식이었다.
우리는 회포를 풀기 위해 안줏거리를 챙겨 내 막사로 이동했다.
최효석이 오랜만에 마시는 소주에 잔뜩 흥분했는지 연신 히죽 웃으며 술을 따랐다.
“일단, 한 잔씩 마시자구.”
그의 말에 모두가 술을 들이켰다.
“캬아.”
두 달 만에 마시는 소주에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맛있다.’
젓가락을 들어 김치찜을 한 입 먹으니 그동안의 고생이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술자리를 시작하고 한 시간.
얼굴이 벌게진 신종민이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니푸라뿐만 아니라 리비아 국토에 묻혀 있는 모든 석유를 가질 겁니다.”
“예전부터 느낀 거지만 회장님의 스케일은 정말 감당이 안 됩니다.”
창.
잔을 내밀자 신종민이 두 손으로 마주치고는 한입에 털어 넣었다.
“이번에는 또 얼마나 벌어들이시려고.”
“돈을 벌려 하는 일이 아닙니다.”
“네? 그럼….”
“힘을 가지기 위해 하는 일입니다.”
단순히, 돈을 벌려 했다면 앞으로 100달러가 훌쩍 넘는 석유 선물에 투자하는 것이 더 많이 벌 수 있다.
이 고생을 하면서까지 리비아에 매달리는 이유는 바로.
‘앞으로 에너지 싸움에서 밀리면 답이 없으니까.’
빌더버그, 백문, 데이사르, 그리고 아직은 부딪치지 않은 유대 연합 다위츠와 중동의 살라만까지.
그들의 공통점은 자신들의 영향력 안에 석유나 가스 같은 에너지 공급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이 단합하여 유가를 200달러까지 끌어올린다면 어떻게 될까?
내가 근거지로 삼고 있는 한국은 급속도로 무너질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말이다.
그런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리비아라는 최소한의 석유 공급원을 마련하려는 거다.
잠시 생각하던 신종민이 시원한 얼굴로 술을 따랐다.
“이해하려 하지 않겠습니다. 회장님께선 언제나 옳았으니까요.”
“네?”
첸에 이어서 또 하나의 광신도가 탄생한 듯 보였다.
***
리비아는 내전이 끝나지 않은 국가다.
아무리 배짱이 좋은 직원이라도 목숨을 담보로 하는 곳에 파견되는 게 좋을 리 없었다.
당연히 파견 신청률은 바닥을 기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신종민은 특단의 대책을 세웠다.
바로 돈.
거절하기엔 너무 많고 무거운 돈을 제시했다.
어찌 인원을 추렸으나 이번에는 기간이 걸렸다.
많은 돈을 보수로 제시한 만큼 기간이 길어지면 그만큼 손해를 보기 때문.
이에 신종민은 다시 한번 계책을 세웠다.
모든 자제를 한국에서 준비해 운송한 뒤, 리비아에서 한 번에 조립하는 계획이었다.
항상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비용을 뽑는 신종민다웠다.
덕분에 니푸라 유전 지역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건물과 설비들이 세워졌다.
원유를 퍼 올리는 업스트림 설비가 이미 설치되었고 이제 퍼 올린 원유를 경질유와 중질유로 나누는 다운스트림 설비가 설치될 예정이었다.
이제 남은 문제는 단 하나.
하프타르가 이끄는 리비아 국민군이었다.
“가자.”
최효석이 나를 데리러 막사의 문을 열었고 그의 뒤로 수많은 병력이 늘어서 있는 게 보였다.
잠시 후.
드릉!
150대의 장갑차가 900의 에쉬드 요원들을 태우고 본부를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