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6화
언론을 통한 공격은 꽤 매서웠다.
[SC 오션, 이번에는 비자금 조성 의혹?]
같은 추측성 기사들과.
[SC 오션의 오너, 이 모 씨는 누구?]
나를 겨냥한 기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것 봐라….”
보통 언론에서 기업에 관한 기사를 쓸 때는 오너까지는 파고들지 않는 게 일종의 관례였다.
해당 기업의 광고를 먹고 사는 처지니 적당한 선을 지키는 것이다.
만약, 언론이 오너에 대한 기사를 쓰게 된다면 긍정적인 면을 쓸 뿐이다.
하지만, 지금 언론은 누가 봐도 명백히 나를 건드리고 있었다.
즉, SC와 완전히 척을 질 만큼 커다란 돈을 약속받았다는 뜻이다.
“똑똑한데?”
장호철은 나를 양지로 끌어내기 위해 언론을 이용한 것 같았다.
신종민이 상대한다고 했지만, 상대가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양손 놓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
나는 장호철이 가장 아파할 약점과 그 약점을 후벼 팔 한 사람을 떠올렸다.
러시아에서 데려온 빅터였다.
“잘 지냈어?”
빅터는 이전 숙소와는 달리 보안이 확실한 펜트하우스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동안 내 일을 도와준 대가로 받은 돈으로 그가 직접 구입한 집이다.
“엘, 오랜만이에요.”
인사에 그동안 자주 찾아오지 않은 것에 대한 서운함이 느껴졌다.
“미안, 그동안 바빴어.”
“괜찮아요.”
괜찮을 리 없다.
말도 통하지 않는 이역만리 타국에서 가족도 없이 홀로 지내는 게 외롭지 않을 리 없지 않은가.
전생에서도 조직에서 가장 외로움을 많이 타던 놈인데.
“친구라도 만들어 보지 그래?”
“한국말도 못 하는데요. 뭘.”
“어학당이라도 끊어 줄까? 거기 가면 외국인들도 많을 텐데.”
“됐어요. 온라인 친구들만으로 충분해요.”
빅터가 피식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래도, 걱정되는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오늘은 뭘 도와드리면 될까요?”
그의 질문에 알아볼 리스트가 적힌 종이를 빼 들었다.
“…자동차 회사네요?”
“맞아. 거기에 적힌 회사의 자금 이동을 알아봐 줘.”
“이동한 루트만 따면 되죠? 아시다시피 회계는 몰라서.”
“그래.”
“알았어요. 일주일 정도 걸릴 거예요.”
“항상 고맙다.”
용건을 마치고 일어나려던 차에 빅터가 우물쭈물하는 게 보였다.
“무슨 일 있어?”
“저도 일을 하고 싶어요.”
“일?”
“네, 제니 누나한테 들었는데 실력만 있으면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면서요?”
“그렇긴 하지. 스타트업이라는 게 큰돈이 드는 건 아니니까.”
“그럼 저도 할래요.”
사업이 뭔지 모르는 19살의 치기 어린 말에 미소가 지어졌다.
‘하긴, 외롭게 홀로 지내는 것보다야 낫겠다.’
어린 나이에 시작하는 거니 잘될 확률보다야 망할 확률이 높지만.
그것도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경험일 것이다.
“그래, 무슨 사업을 할 건데?”
“게임이요. 뼈대는 벌써 세워 뒀어요.”
빅터가 컴퓨터를 켜고 자신이 만든 게임을 시연했다.
그리고.
“대단한데?”
상상 이상의 퀄리티에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재능 있는데?’
“이 정도면 할 수 있어요?”
빅터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했다.
“제니에게 말해 두마. 대신, 제니에게 사업에 대해 배워야 한다.”
“네!”
***
신종민은 언론에서 뭐라 떠들든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언론의 입을 막을 방법도 없을뿐더러 차라리, 이번 기회에 대한민국이 SC에 대해 알아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SC 오션, 울산 조선소에서 대규모의 원유 유출이 이뤄졌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물론, 저따위 허위 사실을 빼고 말이다.
문제는.
재계가 SC를 적대시한다는 점에 있다.
SC 울산 조선소에는 며칠째 부품이 들어오지 않아 공정이 멈췄고.
인천항을 떠나는 상선 사업부의 화물선은 화주를 찾지 못해 텅텅 비었다.
중공업은 어디서 사보타주가 들어왔는지, 총파업을 결의한 상태다. 업계 최고 수준의 급여와 복지를 제공하는데도 말이다.
평소라면 부랴부랴 해결하느라고 골머리를 앓겠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어차피, 송양만 눌러 주면 해결된다.”
신종민이 혼잣말로 중얼거리다 시계를 힐끔 바라봤다.
그가 결연한 눈빛으로 창문을 통해 지상을 바라봤다.
빌딩의 가장 위에서 내려다보니 지상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자그맣게 보였다.
똑. 똑.
때마침, 회장실의 문을 열고 이현준이 들어왔다.
“바쁜 사람 불렀으면 무게 잡지 마시고 빨리 가시죠?”
그 말에 뻘쭘해진 신종민이 이현준과 함께 사옥 1층 로비로 내려가자 서른에 가까운 무리가 그들의 뒤를 따랐다.
이현준이 이끄는 감사팀이었다.
그들이 무리 지어 걷기를 10분.
근처에 사옥이 있는 송양 산업개발에 도착했다.
그들이 도착하자 보안 직원들이 나와 길을 막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신종민이 안주머니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 그들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4.9%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찍혀 있는 지분 취득 확인서였다.
아무리 보안 직원들이라고 해도 그 숫자가 의미하는 걸 모를 리가 없었다.
“주주시군요. 어쩐 일로….”
신종민이 조용히 웃으며 그들에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사장 나오라고 하세요.”
잠시 후.
대주주가 왔다는 소식과 대주주의 정체가 신종민이란 소리에 송양 산업개발 사장 채영수가 직접 내려왔다.
SC와 송양과의 관계는 알고 있지만, 찾아온 대주주를 어찌 홀대할 수 있으랴.
그가 얼른 달려가 파리처럼 양손을 비볐다.
“아이고! 신 회장님께서 여긴 어쩐 일로!”
“오랜만입니다, 채 사장님.”
인사를 나눈 채영수가 그제야 신종민의 뒤에 있는 무리에 의문을 가졌다.
비서진이라고 하기엔 숫자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누구….”
그의 의문에 신종민의 옆에 있는 이현준이 나섰다.
“대주주의 권한으로 회계 자료 열람을 신청합니다.”
“무, 무슨!”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까? 입 닥치고 장부 내놓으란 소리 아닙니까.”
***
송양 흔들기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갔다.
괜히 국세청과 검찰에서 탈세와 비리를 조사할 때면 건설 기업을 먼저 터는 게 아닌 것처럼.
인수한 23개 기업의 감사를 진행하며 실무 능력이 물오를 대로 올라 버린 SC 감사팀은 그날 하루만 해도 40개가 넘는 횡령 사실을 포착해 내는 데 성공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500만 원짜리 인테리어 장식을 사용한 것처럼 서류를 꾸미고 실제로는 50만 원도 하지 않는 물건을 달아 놓는다든지.
해외 공사에서 벌어들인 수익은 손실 처리하여 아예 한국으로 들여오지도 않았다.
가장 크게 놀란 것은 공사 기간의 단축이다.
하루 이틀도 아닌 3달이라니.
빨리 끝낼수록 마진이 많이 남는 건설이라지만, 너무하다 싶었다. 그렇게 지은 건물이 과연 멀쩡한지도 의문이 들었다.
물론, 서류상에는 단축된 공기가 아닌 꽉 찬 공기를 적어 놓았다.
사방에 약을 쳐 놓은 탓에 곧바로 조사가 시작되었다.
검찰과 국세청에서 압수 수색을 시작했고 지난 십 년 치 자료를 전부 훑었다.
그렇게 일이 일단락되는가 싶었지만.
장호철은 만만치 않았다.
그는 자신의 비리 사실을 채영수에게 뒤집어씌우는 한편, 국세청장을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단순한 세무 신고 ‘오류’로 일을 마무리.
탈세 추징금과 형사 처벌을 피해 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신종민은 여기서 끝내지 않았다.
그는 이미 9.7%의 지분을 확보한 송양 시멘트의 주식을 매수.
본격적인 경영권 확보에 나섰다.
“순환 출자 구조의 취약점을 노리시는 거군요.”
“맞습니다. 시멘트를 가져오면 산업개발이 딸려오고 그렇게 되면.”
“자동차가 흔들리죠.”
공시되어 있는 정보에 따르면 송양 자동차의 지분 구조는 장호철 일가가 7%, 산업개발이 11%, 그리고 유통이 11%, 나머지는 개인과 기관 투자자가 지분을 쥐고 있다.
즉, 산업 개발과 유통을 가져오면 자동차가 딸려 온다는 소리다.
“장호철, 그 양반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겁니다.”
내가 짐작하는 사실을 장호철이 모를 리 없다.
아마, 별의별 수를 다 써서 막을 거다.
“큰 거 한 방이 부족한 건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두들기다 보면 방법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큰 거 한 방이라….
사실, 빅터를 통해 확보해 놓긴 했다.
신종민이 나서서 처리한다기에 가만히 뒀을 뿐이다.
실제로도 잘하고 있었고 말이다.
내가 나서서 터뜨리기엔 신종민의 자존심이 상할 수 있는 문제.
조용히 몰래 터뜨릴 예정이다.
“그럼, 계속해서 수고해 주십시오.”
신종민과의 만남을 마치고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헤리슨, 접니다.”
백문의 눈을 피해 러시아에 잠적한 블루스톤의 전 CEO 헤리슨이었다.
-오랜만이군요.
어느 정도 원한은 잊은 듯 그가 평온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도움을 좀 받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제 평온만 깨지 않으신다면.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그저 IRS 직원 하나만 소개시켜 주시면 되니까요.”
잠시 후, 나는 헤리슨에게 문자로 내용을 보냈고 그가 자필로 쓴 보고서는 그날 저녁 현지 직원에 의해 내게로 배달되었다.
다음 날.
강남에 있는 한정식집에서 장호철을 만났다.
“오랜만이네?”
“크흠.”
그가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불편하면 그냥 가고. 안 그래도 ‘송양 시멘트’ 건으로 바빠서.”
“아닐세. 그냥 가래가 껴서 그런 거네.”
드르륵.
식당의 종업원들이 커다란 상을 들고 와 나와 장호철 사이에 놨다.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린 밥상에 장호철을 무시하고 젓가락질을 시작했다.
“안 먹어?”
“…먹겠다.”
잠시 식사를 마친 후, 본격적으로 본론을 꺼냈다.
“시멘트, 놔줄까?”
“조건은?”
“산업개발과 유통. 아, 계열사가 들고 있는 지분은 싹 걷어 가도 좋아. 내가 원하는 건 알맹이니까.”
“미친놈.”
장호철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를 무시하고 앞에 있는 술병을 입에 가져다 댔다.
“에이 시벌.”
떠나려던 장호철이 욕지거리를 내뱉더니 다시 앉았다.
이제는 최소한의 격식마저 벗어던진 것 같았다.
“방금 네가 말한 게 얼마나 개소린지 모르는 건 아닐 테고.”
“개소린 건 알지. 시총 7천억짜리를 안 뺏기겠다고 두 배 이상 큰 걸 가져다 바치는 셈이니까.”
“시벌 새끼가. 알면서 그 지랄을 해?”
“그래서 준비한 게 하나 있지.”
가지고 온 보고서를 그의 앞에 턱 하니 던졌다.
“읽어 봐.”
보고서를 읽던 장호철의 눈이 대번에 커지며 손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이윽고.
쫘악.
그가 보고서를 찢어 버리고 내게 으르렁거렸다.
“너 이 새끼!”
“정확하지? 나도 이상하더라고. 미국에서 아무리 싸게 판다고 해도 그 많은 차를 팔았는데 어떻게 이익이 하나도 없을 수 있는지.”
방금 장호철이 찢어 버린 보고서는 송양 자동차 미국 법인에서 일어난 횡령을 담고 있었다.
장호철은 송양이 미국에 진출할 때부터 자신이 설립한 세일즈 회사에 차량 판매를 독점으로 맡겼다.
처음에는 통행세 수준이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는 과감해지기 시작했다.
송양 자동차가 세일즈 회사에 지급하는 수수료가 차량 판매 마진 대부분을 차지해 버린 것이다.
그 기간이 11년이고 횡령한 돈이 1조 원에 달했다.
한국에서야 전관예우 변호사를 사서 집행 유예와 벌금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미국은 아니다.
횡령 전액을 추징금으로 환수당하는 것은 물론, 잘못하면 미국 감옥에 평생 썩을 수도 있는 일이다.
당연히 분개할 수밖에.
“어쩌자는 거냐.”
“뭘 어째. 네가 졌다는 걸 인정하고 무릎 꿇고 빌라는 거지.”
“미친 새끼가!”
그가 흥분을 참지 못하고 밥상을 넘어 내게 달려들었다.
손을 들어 그의 인중을 후려쳤다.
뻐어억! 후두둑.
그의 앞니가 입 밖으로 떨어져 나갔다.
“으어!”
딸에 이어 아버지까지 임플란트 환자로 만들다니.
그것도 아주 비싼 치료만 받는 VIP 환자들로만 말이다.
‘이 정도면 대한치과협회에서 상이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의 비명이 들리자 밖에 있던 장호철의 경호원들이 진입하려 했다.
하지만.
콱. 퍽. 콰직. 우득.
압축된 실전을 겪은 시큐리티 요원들이 손쉽게 제압했다.
고개를 돌려 장호철을 바라보니 그가 입에서 피를 쏟아 내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흐으, 흐으.”
“장호철.”
“흐으. 이 스브 스끄!”
저 지경이 돼서도 투지를 잃지 않는 그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감탄이 흘러나왔다.
“어떻게 할래? 이거 그대로 미국 쪽에 던져 줄까? 아니면, 납작 엎드려 적절한 ‘피해 보상’을 할래?”
“…….”
“어라? 싫으면 그냥 가고. 아, 그냥 우겨서 넘길 생각이면 포기해. 이미 증거는 차고 넘치니까.”
그 말에 장호철이 포기하려는 마음이 들었는지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 이안하다.” (미안하다.)
“뭐라고? 잘 안 들려서.”
“이안하아고.” (미안하다고.)
“흠, 진심이 안 느껴져서 애매한데?”
장호철은 이를 악물다가 머리를 땅에 박았다. 앞니가 없으니 꼴이 조금 우스웠지만.
“에성하니다.” (죄송합니다.)
“그래, 이제야 좀 진심이 느껴지네.”
다시 고개를 드는 그를 향해 준비한 마지막 선물의 보따리를 풀었다.
“근데, 중요한 게 하나 있어.”
“……???”
“사실, 용서해 준다는 건 구라였어. 이미 증거는 미국 IRS에 들어갔어.”
내 말에 장호철이 크게 분노하다가.
“이 히바너미!”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
그렇게 송양과의 일이 마무리되었다.
미국의 국세청인 IRS는 송양 자동차 미국 법인을 탈탈 털었고.
장호철 개인의 횡령 사실을 확인.
막대한 추징금을 환수했다.
동시에, 청와대의 이창우는 기자 회견을 열어 국민들에게 엄벌을 약속했다.
재벌 회장이라도 용서 없이 처단한 모습이 어필되었는지 이창우의 지지율이 잠시간 수직 상승 했다.
그다음부터야 쉬웠다.
머리를 잃은 송양은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었고.
신종민은 송양 시멘트를 빼앗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2011년 10월 21일.
TV에서 뉴스 속보가 흘러나왔다.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 사망.]
그리고 그 말은.
이너서클들의 세력 기반 중 하나인 석유를 빼앗을 시기가 다가왔다는 뜻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