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화
MARS.
총원, 30명으로 전원 SAS 출신으로 침투와 사살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중소 규모의 PMC답지 않게 야전도 능숙하다는 게 이들에 대한 세간의 평가다.
당연히, 이런 평가에 MARS의 인원들은 자신들의 능력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났고.
“아무리 그쪽이 새로운 오너라고 하더라도 작전에 대한 지휘권은 넘겨줄 수 없소.”
그건 곧 우리에 대한 불만으로 나타났다.
아무리 불만이 있어도 인사도 하기 전에 통보식으로 말하는 건 좀 너무하지 않나 싶은데.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
PMC라고 하면, 반군대나 다름없는 단체니 지휘권이 곧 생명과도 같다.
최효석이 경직된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어 보기 위해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했다.
“너무 딱딱하게 굴지 마시고 어디 가서 커피라도 한잔….”
“처음 보는 사람과 수다를 떨 만큼 한가하지 않소.”
차가운 거절에 최효석이 무안한 얼굴을 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앞으로 나섰다.
“지휘권을 못 넘긴다고 하셨는데, 이 자리에 있는 모두의 생각이 동일합니까?”
“그렇소. 여기 있는 모두가 같은 생각이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요.”
“잘 생각….”
“20분 드리겠습니다. 여기 이분과 같은 생각이신 분은 모두 짐 싸서 나가세요.”
일방적인 통보.
사무실에 남아 있던 10명의 MARS의 인원들이 자신들의 대표인 윈스턴의 눈치를 보며 주춤했다.
나는 그런 이들을 재촉했다.
“짐 안 싸십니까? 20분 지나서 남아 있는 것들은 모두 폐기할 예정이니 빨리 싸세요.”
윈스턴이 나를 보며 눈을 부라렸다.
아마, 내가 이렇게까지 강경하게 나올지는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
“여기 있는 모두가 떠나면 MARS는 폐업해야 할 텐데?”
그의 협박이 같잖게 느껴졌다.
폐업은 무슨.
사무실에 있는 그 누구도 움직이지 않고 있는데.
떠날 생각이 없다는 방증이다.
100년 넘게 살아오면서 깨달은 진리 중 하나가 오는 거만큼 간다는 거다.
상대가 나를 적대시했으니 나 역시 마찬가지일 수밖에.
“그건 제가 걱정할 문제고 내일부터 실업자가 될 부하들의 생활비부터 걱정하시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전쟁터를 함께 전전하면 형제 같은 전우애가 싹트기 마련이다.
나는 그 점을 노리고 그의 부하들을 언급해 일부러 그의 속을 긁었다.
이런 내 도발이 먹혔는지 그가 분노한 눈으로 내게 다가왔다.
“뭐라고?”
그리고 그때.
콱.
“이 새끼가 어디서 눈을 부라려?”
리우가 단숨에 뛰쳐나와 그의 목을 잡아채 높이 들어 올렸다.
“……!!!”
갑작스러운 습격에 윈스턴이 놀란 눈을 했다.
퍽.
윈스턴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손가락을 곧게 펴서 리우의 눈을 찔렀다.
반격을 어느 정도 예상했는지, 리우가 고개만 살짝 돌려 윈스턴의 일격을 이마로 받았고.
윈스턴이 무릎을 리우의 턱을 향해 올려 쳐 거리를 벌렸다.
“당신 뭐야?!”
MARS의 인원들이 자신들의 대표와 리우가 전투를 시작하자 책상을 넘어 뛰어 들어왔다.
뻐어억!
최효석이 번개같이 튀어 나가 가장 앞에 나선 인원의 턱을 돌려 쓰러뜨렸다.
그리고 투지 넘치는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들어와! 이 새끼들아!”
“저 새끼 죽여!”
그 모습에 모두가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한편,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이마에 손이 올라갔다.
어느 정도의 긴장감은 의도했지만, 이 정도의 난장판을 원하던 건 아니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시큐리티 요원들을 데려왔지.
“에휴, 시팔. 리우 새끼 데리고 오는 게 아니었는데.”
물론, 그가 나를 위한 마음에 나선 건 알지만 말이다.
어쩔 수 없이 그 난장판에 나까지 참전하자 사무실은 한 폭의 전쟁터가 되었다.
리우는 시종일관 윈스턴을 몰아붙였다.
아무리 윈스턴이 백전노장의 경험이 있다 하더라도.
동물과도 같은 리우의 신체 능력과 전투 감각은 따라잡기 힘든 모양이다.
최효석과 나는 사무실에 남아 있는 나머지 열 명의 요원들을 상대했다.
잠시 후.
“흐으, 흐으.”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체력이 소진되었다.
초장에 리우에게 잡힌 MARS의 대표, 윈스턴이 어찌 살아남았는지 시퍼렇게 멍이 든 눈으로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부하들, MARS의 요원들이 최효석과 나를 상대로 절반이나 서 있는 걸 보니 그들의 훈련 수준을 짐작게 했다.
‘역시, 제대로 골랐어.’
이들은 지금이야 그저 그런 PMC지만, 20년 뒤에는 미국 최대의 PMC인 블랙워터와 같은 급으로 성장한다.
그리고, 그 성장에는 불멸의 야전 사령관이라는 이명을 얻게 되는 윈스턴의 노력과 능력이 있었다.
그건 바로 내가 이들을 고른 이유기도 했다.
그런 윈스턴이 피식 웃으면서 내게 물었다.
“하나만 묻지.”
“말해.”
“왜 하필, 우리를 골랐지? HS 그룹의 투자를 받은 PMC가 스무 개도 넘을 텐데 그중에서 고르면 되지 않나?”
“그걸 몰라서 물어? 너희가 그중 제일 나으니까 고른 거지. 같은 조건인데 나쁜 거 고를 이유가 있어?”
“그럼, 아까 짐 싸서 나가라고 한 이유는?”
“너희가 나갈 리가 없잖아? 새로 차리자니 당장 후원자도 구할 수도 없고 무엇보다 전우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걸 네가 견딜 수 있겠어?”
“그렇군.”
그가 한발 물러서는 제스처를 보였다.
나는 그의 발치에 앞으로의 계획과 요원들의 대우가 적혀 있는 서류를 던졌다.
발치에서 그것을 주워 읽은 윈스턴이 마음에 든다는 얼굴로 뒤를 돌아보며 연설을 시작했다.
“다들 들었냐? 우리가 최고라서 골랐단다.”
그중 제일 낫다고 했지, 최고라고 한 적은 없는데….
그리고, 당연히 내 마음속의 최고는 SC 시큐리티의 요원들 아니겠는가.
실제로, 그동안 실행한 작전에서 쌓은 경험치로 인해 실전 능력 역시 최고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했고 말이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한바탕 연설을 마친 윈스턴은 굉장히 만족한 얼굴로 우리 쪽을 바라봤다.
“당신들을 인정하겠다. 아니, 인정하겠습니다.”
역시, 자본주의의 세상에선 돈이 최고 존엄이 맞다.
그 자존심 강한 이들이 단박에 수긍했으니 말이다.
대신, 지휘권 문제는 확실히 해야 할 것 같아서 그 부분에 관해 이야기를 꺼냈다.
“현장 지휘권은 그대로 당신이 가져. 대신, 전체적인 작전은 여기 있는….”
내가 최효석의 이름을 말하려던 찰나, 그가 살짝 앞으로 나서며 나를 향해 찡그렸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일단.”
꼬르르륵.
“밥 좀 먹고 합시다. 다들 배고프지 않습니까?”
***
“으으….”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져 왔다.
남자는 주먹질을 하며 친해진다고 했던가?
밥을 먹자는 최효석의 말에 윈스턴이 술이나 한잔하자며 직접 술과 음식을 파는 곳으로 안내했다.
물론, 영국 요리답게 맛은 없었지만 말이다.
대신, 드라이 진과 스카치위스키는 굉장히 맛있었다.
안 그래도 주먹으로 찐한 우정을 만든 차에 그들이 과음하게 된 건 당연했다.
처음에는 술을 피했지만, 계속되는 권유에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니 나도 모르게 과음을 해 버렸다.
덜컹.
“싸장. 아침밥 먹으러 가자.”
영국에 와서 한국말로 밥 먹으러 가자고 하는 미국놈은 리우가 세계 최초이자 유일할 것이다.
“넌 괜찮냐?”
“응? 뭐가?”
멀쩡한 눈, 전혀 나지 않는 술 냄새에 이놈이 전날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니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런던의 5성급 호텔답게 조식이 굉장히 훌륭했다.
뭐, 그만큼 돈을 지급했으니 당연한 거겠지만.
우걱우걱.
내 앞에 앉아 4접시째 가져다 먹고 있는 두 사람을 보고 있으니 만약 호텔을 인수하게 되면 뷔페 식당은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에서의 볼일은 끝난 거야?”
“네. 당분간 올 일은 없을 겁니다.”
“다행이네, 맨날 햄버거 같은 거만 먹으니까 속이 느글거렸거든.”
가만히 듣고 있던 리우가 자신도 질 수 없다는 듯이 끼어들었다.
“그래, 맞아. 뿌대찌개 먹고 싶다, 캡틴.”
한국말로.
“흐흐, 서울 가면 매일 사 줄게.”
“흐흐흐흐, 고맙다. 캡틴.”
그런 둘을 보니 문득 리우의 딸이 생각났다.
제니와 신종민에게 부탁만 해 놓고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니.
“리우, 네 딸….”
“엘리스?”
“그래, 엘리스, 요새 어때?”
리우가 해맑게 웃었다.
좋은 소식이 있어 보였다.
“심장 기증자 찾았다고 제니가 말해 줬어. 다음 달에 몸 상태 봐서 수술한대.”
“와! 리우! 그동안 왜 말 안 했어?!”
최효석이 깜짝 놀라며 리우를 얼싸안았다.
마치 자기 일인 거처럼 좋아하는 그를 보니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잠깐?
왜 기분이 좋지?
‘아무렴 어떠냐. 좋은 일은 좋은 일이지.’
이놈과 정이 들긴 들었나 보다. 전생보다 더.
***
영국에서의 일을 마무리하고 한국에 돌아왔다.
오자마자 당분간 쉬려 했지만.
“엘!”
그건 내 바람일 뿐이었다.
내가 한국에 돌아온 건 어떻게 알았는지 제니가 오피스텔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제니.”
“네?”
“대체, 비밀번호는 어떻게 안 겁니까? 최효석 사장도 모르는 건데.”
“그건 비밀이에요.”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내 앞에 두꺼운 서류 뭉치를 올려놨다.
보기만 해도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의 양이었다.
“자! 어서 일어나서 아주 자세히 살펴보세요. 엘이 없는 동안 SC 벤처가 한 일들이에요.”
“그냥, 제니가 알아서 하시면 안 됩니까?”
“엘이 오너인 회사에요. 그럴 수야 없죠.”
일하기 싫어 불평을 늘어놨지만, 제니의 단호한 대답만이 들려왔다.
“차라리, 이현준 전무한테….”
“엘.”
최후의 수단으로 그룹의 전반적인 재무를 맡은 이현준의 이름을 팔아 봤지만, 턱도 없었다.
그렇게 제니의 등쌀에 밀려 한 아름 두께의 서류를 하나씩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류를 두세 시간 살펴보니 그동안 제니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었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는 @곳은//(추가 제안) 모조리 조사한 것은 물론.
좋은 조건의 투자까지 이뤄져 있었다.
특히, 그중 하나의 사업군에 눈이 갔다.
“여행 및 숙박업 쪽에 힘을 많이 주셨네요. 이쪽 전망을 밝게 보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엘은 직접 호텔 예약 안 해 보셨죠?”
회귀 전에 몇 번 해 봤지만, 이번 생에는 내가 없는 회장실 앞을 지키는 비서진들이 해 줬기에 직접 한 적은 없다.
“얼마나 불편한지 모르시니까 그런 의문이 드는 거예요.”
“어떤 점이 불편합니까?”
“어느 호텔이 저렴한지 일일이 전화로 알아보기 힘들뿐더러 막상 가 보면 호텔 홈페이지와 완전 딴판인 경우도 있어요.”
그녀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기존 호텔 예약 시스템을 성토했다.
“그렇군요.”
“심지어, 예약을 마치고 돈까지 입금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더 좋은 호텔이 저렴한 경우도 있다고요.”
“그래서, 익스피디아와 에어비앤비에 투자를 결정하신 겁니까?”
“네, 스마트폰으로 휙! 살펴보면 가격 비교부터 후기까지 전부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혁명이나 다름없죠.”
감탄이 절로 나왔다.
어쩌면, 그녀는 내 밑에서 일할 게 아니라 직접 창업을 하는 게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훌륭합니다.”
“고마워요.”
그녀가 내 칭찬에 어쩔 줄 몰라 하며 밝게 웃었다.
“근데, 제니는 계속해서 SC 벤처를 맡을 생각입니까?”
“왜요? 연봉 아까워요?”
그녀가 눈가에 쌍심지를 켜고 반문했다.
“그 실력이면 차라리 창업을 하는 게….”
“됐거든요!”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그녀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툭.
동시에 내 앞으로 작은 초대장 하나를 던졌다.
“이게 뭡니까?”
“보면 몰라요? 초대장이잖아요?”
“그러니까 그걸 왜….”
“오늘 밤 있을 파티에 같이 가 주세요.”
“다른 사람 불러서 가면 안 됩니까?”
“저는 엘 때문에 영국까지 따라갔는데 이러기예요?!”
“아, 알겠습니다.”
잠시 후, 그녀가 오피스텔을 나가자마자 초대장을 확인했다.
‘루덴 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