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8화
모든 게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중국의 외환 보유고는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 같은 현상을 막기 위해 단행한 위안화의 평가 절하는 중국 내부에 커다란 균열을 일으켰다.
수입 물가가 올라 생활 전반에 필수 불가결한 물건들의 값이 하늘 높이 치솟아 올랐던 것이다.
이는 도시공이라 불리는 하층민의 삶에 커다란 재앙이 되었다.
당장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그들로선 치솟는 물가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층민들은 곳곳에서 불만을 토로했고 이는 곧 중국 정부의 부담으로 이어졌다.
인구 대다수를 차지하는 그들의 불만을 잠재우지 못하면 제2의 천안문 사태가 터질 것이 분명했다.
이제 중국 정부가 택할 선택지는 단 하나만 남았다.
‘백문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겠지.’
그리고 그 도움을 막는 것이 이번 계획에서 우리의 역할이다.
백문주 장백의 암살을 통해서 말이다.
사실, 진즉 실행할 수 있는 작전이기도 했다.
‘목숨을 걸어야 하지만.’
그동안 이를 실행하지 않는 이유는 최적의 타이밍을 위함이었다.
장백이 죽는다면 당장은 백문 내에 혼란이 일어나겠지만 그것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문주가 선출될 것이고 혼란은 금방 종식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죽는다면?
문주가 부재중인 백문은 빗장을 걸어 잠글 거다.
당연히 중앙 정부가 요청한 자금 지원은 물 건너가는 것이다.
바로 그걸 위해 요원들을 전부 데리고 카자흐스탄으로 이동했다.
러시아의 영향력이 강한 나라기에 백문의 눈을 피하기에 용이했고 혹시 모를 추격을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비고르를 통해 위조 신분과 여권을 준비한 후 베이징으로의 출발을 하루 남겨 놓고 있었다.
나는 요원들에게 작전 내용을 설명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원래라면 천천히 시간을 두고 설명했겠지만.
“이신후!”
최효석 때문에 바로 전날에 설명했다.
“너, 이게 무슨 짓이야?”
파라락.
그가 내 앞에 작전 계획서를 던졌다.
종이 수십 장이 날았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우리가 입구에서 소란을 벌이는 틈을 타 혼자 들어가서 문주의 모가지를 딴다고? 넌 내가 이걸 허락할 거 같냐?”
“형님.”
“형님 소리 집어치우고!”
쾅!
그가 양손으로 테이블을 내려쳤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는 안 가 봐서 모른다. 하지만, 네 말대로 백문이 중국을 좌우하는 집단이라면 동네 동사무소는 아닐 거 아니야!”
“…….”
그가 이렇게 화내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한다.
나라도 그가 이런 선택을 했다면 뜯어말렸을 테니까.
하지만.
‘백문에 잠입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회귀를 시작하기 전 10년이나 개처럼 일했던 곳이다.
회귀 후, 10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지만 모든 게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그곳의 위치, 지리, 인물까지 말이다.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이 말은 문주인 장백의 모가지를 딸 수 있는 사람도 나밖에 없다는 뜻이다.
쾅!
내가 대답하지 않고 있자 최효석이 다시 한번 책상을 내리쳤다.
그의 얼굴이 붉어진 거로 보아 많이 흥분한 듯 보였다.
“다시 한번 묻자. 진짜 이대로 할 거냐?”
“네.”
“같이 잘 살아 보자고 나 꼬셔서 데리고 온 거 아니었냐. 네가 먼저 죽으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
최효석이 소리를 질렀다.
그가 한참이나 나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젓고 책상에서 손을 내려놨다.
“아무튼, 출발까지 하루 남았으니까. 그동안 잘 생각해 봐라. 알았지?”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방을 나섰다.
“휴우….”
그를 설득할 생각에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잠시 고민했지만 다른 방도가 없어 생각을 멈추고 침대에 누웠다.
그렇게 컨디션 조절을 위해 눈을 감았지만.
덜컹.
“헤이, 브로!”
리우가 들어왔다.
“넌 또 왜?”
내 물음에 리우가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이거 봐 봐. 어때?”
그의 머리에 시선을 올려 보니 갈색 머리가 검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염색했냐?”
“중국으로 간다며? 눈에 안 띄려면 미리 준비해야지.”
한숨이 절로 나온다.
대체 어떤 사고방식을 가졌기에 저러는지….
대충 생각해 봐도 평범한 외국인보단 흑색으로 염색한 그가 더 눈에 더 띄지 않겠는가.
안 그래도 2미터에 가까운 키 탓에 300미터 전방에서도 머리가 보이는 그인데.
대꾸하기도 싫어 무시하고 다시 침대에 누우니 그가 조심스럽게 사진 한 장을 건넸다.
“뭐야?”
“내 딸 줄리아.”
사진을 살펴보니 갈색 머리의 소녀가 밝게 웃고 있었다.
“진짜 네 딸 맞아? 귀엽다고 어디서 납치해 온 거 아니지?”
귀엽다는 표현에 그가 배시시 웃으며 답했다.
“나도 가끔 아닌 거 같아서 헷갈려. 흐흐.”
“넌 오래 살아야겠다. 이렇게 예쁜 딸 두고 죽으면 억울하지 않겠어?”
“그렇긴 한데, 줄리아가 건강하지 않아서 걱정이야.”
“심장병?”
“응.”
리우의 딸, 줄리아는 9년 후에 죽는다.
그리고 그 죽음은 리우의 인간성이 완전히 죽은 계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그동안 나는 리우에게 막대한 돈을 지급했고 리우는 그 돈으로 줄리아를 한국대 병원에 입원시켜 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받게 했다.
또한.
“걱정하지 마라. 그룹 차원에서 열심히 기증자를 찾고 있으니까.”
내가 나섰으니 결과가 달라질 것이다.
“그러면야 고맙지.”
리우가 어색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잠시 이어진 침묵.
그리고 그 침묵 끝에 리우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저기….”
“혹시라도 죽으면 줄리아를 부탁한다는 말을 할 거면 어서 들어가서 잠이나 처자. 전쟁 영화 안 봤어? 그딴 말 네 입으로 지껄이면 진짜 죽는 거야.”
리우가 깜짝 놀라더니 역시 동양의 신비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다시 돌아갔다.
***
다음 날.
비행기를 나눠 타고 베이징 외곽에 있는 모처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어서 오십시오.”
비고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직접 오실 줄 몰랐습니다.”
“엘의 일은 제가 직접 오는 게 맞습니다. 각하께서도 그렇게 지시하셨고요.”
그가 주변에 눈짓하자 그와 함께 온 요원들이 묵직한 가방 몇 개를 가져왔다.
“말씀하신 것들입니다. 무장과 무전기, 그리고….”
“거기까지만 말씀하셔도 됩니다. 각하께 감사한다고 전해 주십시오.”
시큐리티 요원들이 비고르가 가져온 것들을 챙겼다.
“무운을 빌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각하께서 전하시는 전언입니다.”
그가 밀랍으로 봉인된 편지를 하나를 주며 떠났고 나는 편지를 꺼내 봤다.
편지 내용은 간단했다.
[비용은 비싸게 받겠네.]
“푸흐.”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 나왔다.
그래, 비싸게 쳐줘야지.
이번 작전이 성공한다면 반은 아니더라도 반의반은 러시아의 공이니 말이야.
리우가 돌아가고 시간이 흘렀다.
이제 슬슬 출발할 시간이 다가오자 요원들이 무장하고 모여들었다.
최효석과 리우를 필두로 모두가 날카로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들에게 조용히 말했다.
“가시죠.”
들려 오지 않는 대답.
다만, 다들 조용히 일어날 뿐이었다.
그렇게 차를 타고 이동한 지 몇 시간.
하늘 높이 잔뜩 낀 먹구름 때문인지, 칠흑처럼 어두운 밤이 새벽이 될 때쯤.
우리는 백문이 자리 잡고 있는 한 호수에 도착했다.
우리는 호수를 둘러싼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대로 쭉 오르기만 하면 백문이 나온다.
두 시간쯤 산을 헤쳐 나가니 저 멀리 백문이 보였다.
“휴.”
잠시 심호흡을 하며 그곳을 살폈다.
10미터가 넘는 담장, 그리고 문도들이 곳곳에서 경비를 서고 있었다.
철통같은 보안에 최효석이 내 어깨를 툭 쳤다.
“아무리 봐도 침투할 루트가 안 보이는데?”
“아뇨, 하나 있습니다.”
당연히 정문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비상 탈출로를 알고 있었다.
전생에서 장백을 암살하기 위해 몇 년이나 투자해 알아낸 통로 말이다.
‘놈들이 이사하는 바람에 써먹지는 못했지만.’
“형님께선 제가 신호를 주면 총격전을 벌이십시오. 절대 주의하셔야 하는 건 거리를 좁혀서는 안 됩니다. 잘못하면 탈출하기가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알았다. 명심하마.”
일행들을 두고 나 홀로 산을 올랐다.
통로의 출구는 백문이 자리 잡은 산 중턱의 반대편.
조심스럽게 그리고 빠르게 그곳으로 이동했다.
‘여기쯤인데?’
수풀로 뒤덮인 지역에 도착해 손을 바닥에 짚으며 곳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30분쯤 뒤졌을까?
‘찾았다.’
마침내 강철이 주는 차가운 감촉을 느낄 수 있었다.
덜컹.
문을 열고 안쪽을 살폈다.
불빛이 없어 칠흑같이 어두운 통로는 사람 하나가 겨우 기어 지나갈 만큼이나 좁고 낮았다.
플래시를 입에 물고 기어들어 갔다.
점점 좁아지는 통로.
거의 끝에 다다라서는 기어갈 수도 없어 포복으로 움직였다.
툭.
도착했는지 나무로 막힌 입구가 보였다.
“흐흡.”
자세가 안 좋은 탓에 팔에 온 힘을 주고서야 입구가 조금씩 열렸다.
끼이익.
경첩이 지르는 비명에 잠시 긴장했지만 다행히 아무도 없어 몸을 빼낼 수 있었다.
재빨리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기고 메고 온 가방에서 무장을 꺼내 착용했다.
소음기가 달린 권총과 나이프 두 자루. 그리고 주먹만 한 구체 두 개.
주위를 살펴 위치를 확인했다.
‘식당이군.’
다행히 문주의 처소와는 멀지 않았다.
모든 걸 확인한 뒤 최효석에게 작전을 시작하라고 무전을 보냈다.
잠시 후.
탕. 탕.
총알이 날아가는 소음이 메아리치기 시작했다.
위이이잉.
백문 곳곳에 경보음이 울려 퍼졌고.
“빨리 내려가!”
무장한 문도들이 우르르 빠져나가는 게 보였다.
식당에서 일하는 문도도 예외는 아니었는지.
“누구?”
나와 마주쳤다.
꽈악.
한 번에 튀어 나가 놈의 목에 팔을 걸었다.
“켁. 켁.”
놈이 잠시 바둥거리다가.
축 늘어졌다.
다른 놈들이 없는 걸로 보아 새벽 시간이라 한 놈만 있었던 모양이다.
놈의 숨통을 끊자마자 가져온 구체 한 개를 꺼내 버튼을 누른 뒤 던졌다.
지지지지직. 펑.
마치 작은 번개를 보는 듯한 불꽃이 튀기며 터졌다.
러시아에서 개발한 소형 EMP 폭탄이다.
효력이 미치는 시간은 20분에서 25분 사이.
그 시간 동안 백문이 있는 일대의 통신망이 마비될 것이다.
EMP가 터지자마자 문주의 처소로 향해 은밀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문주의 처소로 갈 수 있는 유일한 오솔길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길 양쪽에 뻗은 나무로 인해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 그리고 200미터 남짓한 이 길을 지나면 문주인 장백이 있다.
하지만, 보통 길은 아니다.
길 양쪽 소나무 숲에는 수없이 많은 지뢰가 설치되어 있고.
백문의 암살자가 숨어 있다.
온몸이 드러난 상태로 훈련받은 암살자에게 발각된다?
1분도 되지 않아 온몸에 구멍이 뚫릴 것이다.
‘보통 놈들은 말이지.’
수십, 수백 번을 넘게 이곳을 지켜봤다.
그들의 습성, 타이밍, 그리고 숨어 있는 장소까지 모든 게 눈앞에 훤하다.
또한, 자신이 알기로 암살자가 매복해 있는 위치는 백문 역사상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
‘지뢰가 너무 많아 숨을 곳이 몇 군데 없으니까.’
나는 거침없이 오솔길로 직진했다.
‘왼쪽 나무 위.’
피슉. 쿵.
총을 쏘자마자 몸을 앞으로 굴렀다.
나무 위에서 암살자 하나가 떨어졌다.
탕.
총알이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필시 방금 내가 있던 자리에 박혔을 것이다.
‘오른쪽 나무 사이.’
피슉. 피슉. 털썩.
또다시 총을 쏘자마자 바로 옆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퍽.
나무에 총알이 박히는 소리가 들렸다.
제일 안쪽에서 날아온 저격이다.
조용히 손을 뻗어 처음 해치웠던 놈의 시체를 끌어당겼다.
놈이 가지고 있던 소총을 빼앗아 들고 소나무 숲 가장 안쪽을 노렸다.
칠흑같이 어두운 곳으로의 사격.
당연히 타깃이 보일 리가 없다.
하지만, 저곳은.
내가 수백 번이나 매복해 있던 장소였다.
탕. 탕. 쿵!
총소리가 들린 후, 사람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100미터만 더 가면 장백이 있는 곳에 도달한다.
탁. 탁.
목적지에 도달할수록 심장이 뛰었다.
어릴 때 헤어진 오랜 친구를 만나는 기분.
그러다.
‘아! 맞다.’
탕.
바닥을 향해 총을 쐈다.
“컥!”
위장막을 하고 숨어 있던 암살자가 단말마를 내며 절명했다.
그렇게 모든 암살자를 해치우고.
쾅!
나무 울타리를 발로 차 넘어뜨렸다.
그리고.
“유언장은 써 놨냐.”
놀란 눈을 한 장백을 마주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