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7화
“할아버지께서 당분간 엘의 홍콩 사무실에 붙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질리언이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거부권은 없습니까?”
“할아버지께서 전하란 말씀이 있었습니다.”
“뭡니까?”
“로스차일드는 속을 보이지 않은 상대와 거래하지 않는다.”
대놓고 감시하겠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감시자로 자신의 손자를 보낸다는 말은.
“질리언은 인질이자 감시자군요.”
이번 투자에 있어 배신은 없다는 뜻이다.
“…어떻게 보면요.”
직접적인 내 말에 질리언이 어색하게 대답했다.
“어쩔 수 없죠. 이왕 이렇게 된 거 잘해 봅시다.”
“네!”
***
골드만삭스 최상층.
지금은 감옥에 수감된, 로이드 전 회장의 사무실이었던 공간에서 조지 소로스가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탁. 탁. 탁.
초조했는지 그가 손가락으로 일정한 리듬에 맞춰 책상을 두들겼다.
그렇게 몇 시간.
지이잉.
그의 전화기에서 진동이 울려 퍼졌다.
조지가 반색하며 재빨리 전화기를 들어 내용을 확인했다.
[익일 상하이 증권 거래소의 개장과 함께 시작하시면 됩니다. - 질리언]
문자를 확인한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TF팀이 있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덜컹.
그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업무를 보고 있던 팀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금융계의 살아 있는 전설인 그를 경외의 눈으로 바라봤다.
저벅. 저벅.
사무실 중앙에 도착한 조지 소로스가 모두를 돌아봤다.
“내일 상하이 증권 거래소의 개장과 동시에 계획을 시작한다.”
꿀꺽.
팀원 중 하나가 긴장됐는지 침을 삼켰다.
조지가 주위를 둘러보다 각각의 이름을 호명하며 격려했다.
격려를 마친 그가 사무실 중앙에 서서 모두에게 말했다.
“다들 이번 기회가 다시 없을 좋은 기회라는 건 알고 있을 거다.”
TF팀의 모두가 눈을 빛냈다.
저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그들이 소속된 가문들은 큰 손해를 봤다.
그리고 이번 계획은 그 손해를 대부분, 혹은 전부 메꿀 수 있는 기회였다.
만약, 이번 투자가 성공한다면 소속된 가문은 물론, 그들 개인적으로도 출세가 보장된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의 목표는 맨손으로 시작해 로스차일드가의 이인자가 된 조지 소로스였다.
“그런 만큼 단 한 치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된다. 다들 알아들었나?”
TF팀의 모두가 힘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들의 눈에는 반드시 해내겠다는 열망으로 가득했다.
15억 중국인들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전혀 상관하지 않고 말이다.
***
“휴우….”
제니가 긴장했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투자는 첸의 계획대로 진행하시면 됩니다. 제니는 계획을 따르다가 이레귤러가 생겼을 때 대응하시면 됩니다.”
“알아요. 그래도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다고요….”
긴장하는 그녀가 이해됐다.
이번 투자에 동원된 자금은 무려 7천억 달러.
한국 1년 예산에 2배가 넘는 금액이다.
단군 이래 이만한 자금을 다룬 사람은 앞으로도 제니가 유일할 것이다.
“그리고, 이게 다 우리 돈도 아니잖아요! 고리 대출로 빌렸으면서….”
“어흠!”
그녀의 말에 졸지에 고리대금 업자가 되어 버린 질리언이 헛기침을 했다.
“다 잘될 겁니다.”
그녀를 다독이고 질리언을 돌아봤다.
그가 준비가 끝났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질리언, 제니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이제 준비는 모두 끝났다.
빌더버그의 모든 가문이 참여했고 천문학적인 자금들을 동원했다.
이제 백문의 비명만 감상하면 된다.
“그럼, 저는 나가 보겠습니다.”
“네?! 엘, 그게 무슨?”
“제가 있어 봐야 도움 될 일도 없습니다. 급한 용무는 전화 주시면 되구요.”
당황하는 두 사람을 놔두고 호텔을 나섰다.
“지금?”
“네.”
최효석이 나를 마중 나왔다.
“긴장되는데? 장판파의 장비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글쎄요? 안 겪어 봐서.”
“이제부터 찐하게 겪지 않겠어?”
그가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
중신증권.
“뭐야? 왜 이래?”
직원 하나가 이상함을 눈치챘다.
개장하자마자 시작된 외인들의 순매도에 모든 주가가 하향세를 그렸던 것이다.
그가 옆자리 동료에게 의견을 물었다.
“이거 봐 봐, 이상해 보이지 않아?”
“내비둬, 주가 요동치는 게 하루 이틀이야? 오를 만큼 올라서 저러는 거겠지.”
“아니야, 봐 봐, 정말 이상하다니까? 수익 실현을 했다면 오른 주식을 팔아야 하는데 지금은 가격과 상관없이 전부 팔고 있잖아.”
“그럼 손절이겠지. 외인들이 주식 진득하게 가지고 있는 거 봤어?”
“그런가?”
동료의 말을 들은 그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하지만, 다음 날부터 그는 동료의 말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다.
또다시 엄청난 매도세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현상이 하루 이틀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매도세는 이어졌고 주가는 연일 하한가를 갱신했다.
그렇게 되자 사람들이 두 부류로 나뉘었다.
주가 하락에 따른 공포심에 가지고 있던 주식을 던지는 부류와.
“지금이 바닥이야. 얼른 주워야 해!”
주가가 바닥을 찍었다고 생각해 마구 사들이는 부류.
중국의 은행들은 후자였다.
그들은 막대한 돈을 풀어 우량주를 마구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주가가 잠시 반등하나 싶었지만.
며칠 후 그들은 지옥을 보게 되었다.
주가가 끝없이 내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건 전초에 불과했다.
중국 전역의 모든 곳에서 해외 투자자들이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주식, 부동산, 채권, 심지어 예술품까지, 가지고 있는 모든 자산을 팔아 치웠다.
말 그대로 셀 차이나.
개방 이후, 중국은 압도적인 인구수와 그에 따른 낮은 임금을 바탕으로 끝없이 성장해 왔다.
그리고, 성장하는 곳에는 자금이 몰리기 마련.
당연하게도 해외 투자금이 몰려들었고 그 돈은 곧 중국의 성장을 가속시켰다.
하지만, 이번에는 반대였다.
해외 투자금은 회수되기 시작했고 회수된 자금은 곧 달러로 환전되었다.
보통의 국가라면 시세에 맞춰 환율이 변동될 테지만.
중국의 입장은 달랐다.
그들은 현재 고정 환율 제도를 고집하고 있었기 때문.
즉, 위안화의 가치가 떨어졌어도 시장에 즉시 반영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중국 정부에서는 이 같은 현상에 계속해서 환율 공시를 변동시켰으나.
빠르게 빠져나가는 달러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위안화의 객관적 가치는 셀 차이나가 시작했을 당시에 대비해 50% 이하로 떨어졌지만.
중국의 인민은행이 공시한 환율은 90%에 가까운 가치로 환전해 줬기 때문이다.
즉, 투자자 입장에서 위안화를 달러로 바꾸지 않으면 손해를 본다는 뜻이다.
당연히 환전은 계속해서 이뤄졌고 돈 많은 내국인까지 이 행렬에 동참했다.
자신의 재산을 모두 팔아 달러로 환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결국, 중국 정부는 외환 보유고를 지키기 위해 위안화의 평가 절하를 단행했다.
달러에 5위안 하던 환율을 7위안으로 대폭 상승시켜 환전세를 막고 수출을 통해 외환을 벌어들이려 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그런 노력에도 외환 보유고는 빠르게 내려갔고.
오히려, 환율 정책에 반발한 미국과 러시아, 유럽 등지에서 중국산 제품에 막대한 관세를 부과한다는 말이 들려왔다.
이제 중국 정부의 손발이 모두 묶였다.
그들은 빠져나가는 외환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고 제발 이 사태가 진정되기만을 기도했다.
그렇게 피 말리는 시간이 흐르고 있을 때, 새로운 소식이 들렸다.
이번 셀 차이나 현상을 일으킨 자들이 월가의 은행들이라는 소식과.
그들의 배후에는 성장 중인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이 있다는 소식이다.
당연히 후진타오 주석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쾅!
“이 버러지 같은 놈들이 감히!”
그가 책상을 내리치며 분개했다.
이윽고.
콰당.
분노를 참지 못했는지 책상 위의 물건들을 모조리 바닥으로 쓸어 버렸다.
“마우장 위원.”
“예, 옛, 주석!”
“어떻게 해야 하오?”
“그것이….”
마우장이 후진타오의 물음에 식은땀만 흘렸다.
대응책은 있다.
하지만, 잘못 말했다가 자신이 책임지는 사태가 오는 게 무서웠기 때문이다.
“방법을 묻고 있지 않소!”
“…….”
마우장이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자 후진타오가 그를 달래기 위해 약간은 누그러진 목소리로 물었다.
“내 마 위원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테니 대략적으로나마 알려 주시오. 답답해서 그렇소.”
마우장이 눈을 질끈 감더니 후진타오의 물음에 대답했다.
“외환 제도를 변동 환율제로 바꿔야 합니다.”
“그러면 해결되오?”
“확신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이대로 둔다면 한 달 안에 모든 외환 보유고가 바닥을 보일 것입니다.”
마우장의 말에 후진타오가 침음성을 흘렸다.
그가 전문가는 아니라지만.
외환 보유고가 바닥난다면 무슨 일이 터질지는 알고 있었다.
“잘못하면 대중화가 IMF에 사정하며 돈을 빌려야 될 수도 있다는 뜻이로군.”
“맞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금리를 대폭 올려야 합니다. 외국에서 돈을 싸 들고 들어올 수 있게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기업들이 힘들어지지 않소? 그들 대부분이 돈을 빌려 사업을 하고 있잖소.”
“맞습니다. 하지만, 국가의 명운이 걸린 문제에 기업들까지 신경 쓸 수는 없습니다.”
“좀 생각을 해 보겠소. 이만 들어가시오.”
마우장이 떠난 후 후진타오가 답답했는지 넥타이를 벗어 던져 버렸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후진타오가 사용인을 불러 차를 준비시켰다.
그의 목적지는 백문.
백문이라면 지금 중국이 처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는 믿음에서였다.
문제는, 백문의 문주이자 정방의 주인인 장백과 자신이 사이가 좋지 않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자존심을 내세울 때가 아니다.
이대로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중화의 성장은 끝이라는 생각에 후진타오는 그에게 무릎을 꿇을 요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백문에 도착한 후진타오는 곧바로 장백의 처소에 도착했다.
나무 울타리가 쳐져 있는 오래된 집.
바로 이곳이 대대로 내려오는 백문주의 처소였다.
그가 나무 울타리의 문을 열고 들어가려 하자.
“문주님의 허락 없이는 안 됩니다.”
문도 하나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으득.
후진타오가 이를 악물었다.
중국의 주석도 아래로 보는 것들.
그들이 바로 백문이었기에 그는 어쩔 수 없이 대문 밖에서 기다렸다.
잠시 후.
장백이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왔다.
“오오! 후 주석 아니시오?”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장백이 후진타오를 불렀다.
그는 후진타오가 도착한 걸 알고 있음에도 일부러 시간을 끌었다.
“오랜만입니다, 문주.”
“어서 들어오시지요. 안에 차를 준비해 뒀소.”
“감사합니다.”
그렇게 집 안으로 들어간 후진타오는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가구라곤 작은 침대와 테이블 그리고 의자 두 개뿐인 공간.
심지어 가구가 오래됐는지 곳곳에 때가 묻어 있기까지 했다.
“후 주석께선 깨끗한 곳에서만 사니 이런 곳이 익숙지 않으신가 보군.”
“아, 아닙니다.”
“아니라면 다행이오. 어서 앉으시오.”
후진타오가 의자에 앉자마자 본론을 꺼냈다.
“도와주십시오. 이대로는 버티기가 힘듭니다.”
그가 장백에게 머리 숙여 부탁했다.
“우리 백문도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장백이 거절의 의사를 밝히자.
쿵.
후진타오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 모습을 본 장백이 승리자의 얼굴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