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화
“반갑다, 공하신.”
놈이 이를 악무는 게 보였다.
“네노….”
탕!
그가 뭐라 말하기 전에 그를 향해 사격했다.
주르륵. 털썩.
미간에 붉은색 원이 생긴 공하신이 힘없이 쓰러졌다.
“가!”
최효석의 외침에 리우와 함께 공하신의 부하들을 향해 뛰었다.
목적지는 착공식장 뒤에 있는 바다.
바로 그곳에 탈출용 고무보트가 준비되어 있다.
“다 죽여!”
자신들의 보스를 잃은 공하신의 부하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지만.
탕. 탕.
요원들의 사격에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잠시 후.
모두를 해치우고 착공식장 끝에 다가갔다.
대기하고 있던 요원이 줄로 엮은 모터보트들을 몰고 절벽 쪽으로 다가왔다.
이제 다 같이 뛰어내려 보트에 타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위이이잉!
멀리서 경찰차가 사이렌 소리를 내며 달려오고 있었다.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요원들이 자리를 잡고 경계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5분도 안 됐는데 벌써?’
생각보다 빠른 출동.
착공식 때문에 근처에 대기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러면 나가린데.’
이대로 보트를 타고 도망치게 되면 둘 중 하나다.
위에서 쏜 총에 벌집이 되거나.
실시간으로 위치가 전송되어 바다 한가운데서 해양 경비대를 만나는 것.
고민할 시간도 없기에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이 자리에서 모두 죽이기로.
“형님!”
최효석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요원들을 돌아보며 외쳤다.
“진석아! 버스로 받아 버려! 나머지는 버스 뒤로 붙어!”
요원 하나가 재빨리 달려 우리가 타고 온 버스를 움직였고 나머지 요원들이 일사불란하게 버스 뒤를 쫓아 달렸다.
버스가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경찰차를 들이박았다.
탕. 탕!
경찰들이 차에서 내려 버스 운전석에 있는 요원을 향해 사격을 시작했다.
동료가 위험해지자 요원들이 달려 나가 경찰들을 상대했고.
“리우!”
나 역시 리우와 함께 경찰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탕!
한 놈의 머리를 꿰뚫고.
내게 총을 겨누는 놈의 가슴을 향해 총을 쐈다.
“컥!”
총에 맞은 놈이 힘없이 쓰러지는 게 보였다.
어깨에서 화끈한 고통이 느껴졌다.
다행히 총알이 스치고 지나가 큰 상처는 아니다.
근처에 있던 최효석이 놈의 머리를 꿰뚫었다.
“괜찮아?”
끄덕.
고개만 한 번 끄덕이고 다시 뛰쳐나갔다.
나를 발견한 놈이 총구를 돌려 겨눴다.
사격 반경에서 피함과 동시에 차의 보닛을 넘어 놈에게 다가갔다.
피슛. 푹.
내밀면서 놈의 팔을 긋고 당기면서 뒷덜미를 찍었다.
동료의 죽음에 분노한 경찰이 총을 들었지만.
콰직.
리우가 대번에 달려들어 넘어뜨리며.
우드득.
목을 부러뜨렸다.
탕. 탕. 탕.
사방에서 흘러나오는 총성.
요원들이 착실하고 재빠르게 경찰들의 숫자를 줄였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면 안 된다.’
“다들 빨리!”
내가 보트가 있는 쪽을 가리키자 경찰들을 모두 처리한 요원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첨벙!
하나둘 절벽 밑 바다로 뛰어들기 시작했을 때.
위이이잉!
멀리서 다시 한번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다시 한번 경찰들이 출동한 듯싶다.
“시팔.”
나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치밀어 오른다.
‘어쩌지?’
고민하고 있을 때.
“내가 막을 테니까 너는 애들 데리고 먼저 떠나.”
최효석이 나섰다.
“혹시라도 붙잡히면 변호사는 사 줄 거지?”
개소리다.
외국인이 자국민 수십 명을 사살한 사건을 맡아 줄 변호사가 어디 있을까.
설사 변호사가 붙는다 하더라도 보나 마나 사형이다.
“안 됩니다.”
“그럼 다른 방법이 있어?”
없다.
이대로 시간이 지체된다면 모두 죽은 목숨.
진퇴양난의 상황에 고민하던 찰나.
띠리리리.
전화벨이 울렸다.
‘혹시?’
짐작이 가는 바가 있어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
-어서 떠나시게. 우리가 시간을 끌겠네.
양처지였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앞을 바라보니 반대편 차선에서 자동차 수십 대가 달려와 경찰들의 차와 충돌했다.
쾅!
“가시죠.”
그 말을 끝으로 바다에 뛰어들었다.
10분 후.
모터보트를 타고 이동하던 우리는 입고 있던 옷에 납을 넣어 버림과 동시에.
보트에 구멍을 내어 장비와 함께 바닷속으로 빠뜨렸다.
흔적을 지우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수영복 차림으로 헤엄친 지 20여 분.
마침내 목적지인 라마섬에 도착할 수 있었다.
푸확.
“허억, 허억.”
빠르게 헤엄쳐 오느라고 체력을 소진한 우리는 기진맥진한 상태로 해변을 걸어 나왔다.
양처지가 마련해 준 집에 들어가니 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첸이 미리 준비해 둔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 주었다.
후루룩.
겨울 바다를 헤엄쳐 온 모두가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으허! 살 것 같네.”
최효석이 아주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자 그제야 작전을 완수한 게 실감됐는지 요원들이 함께 웃었다.
몇 시간이 지나자 노곤한 하루를 보낸 모두가 잠을 자려 자리에 누웠다.
나는 한 사람의 연락을 기다리며 밖으로 나갔다.
“피곤하지 않으십니까?”
첸이 그런 내가 걱정됐는지 믹스를 잔뜩 넣은 커피를 가져다줬다.
“맛있네요. 고맙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게 이런 거밖에 없어서 미안할 뿐이죠.”
잠시간의 침묵.
첸이 약간은 괴로운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엘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건 진즉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
“그런데… 오늘 저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생겼더군요.”
‘벌써 뉴스에 나왔나 보군….’
수십 명이 죽고 비슷한 수가 다친 대사건이다.
뉴스 속보가 떠도 진즉 떴을 일.
집에 있는 TV로 확인한 모양이다.
“엘을 비난하려는 건 아닙니다.”
“그러면요?”
“그저, 엘과 제가 가는 길이 많은 사람의 희생을 담보로 할까 두려워서 그렇습니다.”
첸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이 행하는 혹은 조력하는 일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 간다는 걸 알게 된다면 누구나 이런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이런 반응은 2회차에서 지겹게 겪었던 일이기에 나는 첸에게 처음으로 독한 말을 쏟아부었다.
“첸에게 있어서 부모님의 목숨은 장난같이 가벼운 것입니까?”
내 말에 첸이 발끈한다.
“무슨!”
“화를 내시는군요. 정작 알지도 못하는 남의 목숨은 아까워하시는 분이.”
“그건….”
첸의 말문이 막혔다.
“우리는 골드만삭스에서 1,000억 달러가 넘는 돈을 뜯어냈습니다. 그로 인해 골드만삭스는 직원의 절반을 해고했죠. 여기서는 죄책감이 안 느껴지십니까? 직장을 잃어서 자살하거나 파산한 사람이 수백은 될 텐데.”
“…….”
“첸이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압니다. 하지만, 저는 목적 앞에서 타인의 목숨 따위는 생각할 겨를도 이유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비정한 말에 첸이 울컥하다 다시 입을 다물었다.
“목적이야 여러 가지겠죠. 돈, 명예, 권력, 혹은 첸의 경우처럼 복수까지요. 인간사를 살펴보면 많이 나오지 않습니까? 권력을 위해 가족을 죽이고 돈을 위해 형제를 죽이는 일 따윈 수도 없이 벌어졌습니다.”
“…….”
“그런 사람이 되란 말이 아니라 그 정도의 각오가 되어 있냐는 말입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첸이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푹 쉬었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그가 시원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부터는 바빠질 테니 일찍 들어가 자겠습니다.”
“그럼 커피 한 잔만 더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첸이 씨익 웃더니 집에 들어가 커피를 가져다주었다.
첸이 들어가자 너른 공터에 나 혼자만이 남았다.
아까는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집에 딸린 마당이 넓고 관리가 잘되어 있었다.
달빛에 의지해 마당 곳곳을 살피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보니 입구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깨어 있었는가?”
양처지였다. 일을 마무리하고 넘어온 모양이다.
“…전화를 주실 줄 알았습니다.”
“내 부하들 수십의 목숨을 살려 준 은인에게 어찌 전화 따위로 감사 인사를 하겠나.”
그가 천천히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나 역시 같은 자세로 그의 인사를 받았다.
“우리의 예법을 아는군.”
“그냥 겉보기로 따라 한 것입니다.”
“그런가?”
“그나저나 아까는 감사했습니다.”
내 인사에 그가 손사래를 쳤다.
“우리가 살기 위해 도운걸세. 자네들 중 하나라도 잡힌 뒤 술술 불기라도 한다면 큰일이지 않은가.”
“…….”
내가 가만히 있자 양처지가 어설픈 농담을 한 걸 뻘쭘해하며 말을 이었다.
“커험, 말이 그렇다는 걸세, 말이. 아무튼, 구룡회는 내 아들이 회주 자리에 오르는 걸로 정리되었네.”
“축하드립니다.”
“다 자네가 부회주를 제거해 준 덕이지.”
“그럼 이제 제 차례군요.”
“그래, 내가 뭘 어떻게 도와주면 되겠나?”
“일단, 이번에 잡혀간 홍콩 인사들이 석방되도록 도움을 주십시오. 수배령도 모두 풀어 주시구요.”
“민주인사들을 말하는 거로군.”
“가능하시겠습니까?”
내 말에 양처지가 자신 있는 대답을 했다.
“홍콩이 왜 구룡회의 땅인지 보여 주지.”
대답을 마친 그가 문을 나섰다.
“내일부터 바쁠 테니 이만 돌아가 보겠네.”
“살펴 가십시오.”
“아! 하나 물어본다는 걸 까먹었군.”
“얼마든지 물어보십시오.”
“홍콩에서 백문의 영향력을 걷어 내서 자네가 얻는 건 무엇인가? 도무지 짐작을 할 수 있어야지.”
그의 물음에 나는 간단히 대답했다.
“돈이요.”
“뭐?! 으하, 으하하하!”
양처지가 어이없다는 듯한 얼굴을 하더니 곧 크게 웃으며 길을 떠났다.
***
다음 날.
신병을 구속당했던 홍콩 민주인사들이 하나둘 석방됐다.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언론에 대고 인터뷰를 했는데.
하나의 중국을 뒷받침하는 반분열국가법과 본토의 간섭을 비판했다.
그리고 그 인터뷰를 본 홍콩의 젊은 청년들은 거리로 나왔다.
“반분열국가법을 홍콩으로 가지고 오지 말라!”
그들은 본토의 독재에 분노했고 공권력에 맞서 싸웠다.
시위가 격해지자 본토의 압력을 받은 홍콩의 행정부는 강경 진압을 명령했고.
공권력에 의해 청년들이 다치는 일이 속출했다.
전 세계 언론에서 이에 대해 연일 보도를 이어 갔으며 특히, 중국과 날을 세우고 있던 미국에서는 인권을 존중하라는 공식적인 성명을 발표하기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상황이 최악으로 한창 치달을 때,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시위대가 나타나면 득달같이 달려들던 경찰대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시위대는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시위를 이어 나갔고.
도심은 시위를 하는 시민들로 가득 찼다.
며칠간 TV를 보며 이 같은 모습을 보던 나는 이유를 깨닫고 진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양처지가 과감하게 움직였군.’
저건 구룡회가 가지고 있는 인맥과 돈으로 가능한 게 아니다.
협박한 거다.
뇌물을 받은 증거, 불륜을 저지른 증거, 남을 폭행한 증거 등 그동안 모아 온 증거를 가지고.
만약, 협박 대상이 너무도 바른 사람이라 증거가 없다면?
더 간단하다.
본인과 가족들의 목숨을 가지고 협박하는 거다.
구룡회라는 거창한 이름을 사용하고 있지만 본디 깡패 집단 아니던가.
문제는.
‘백문에서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억지로 공권력을 틀어막아 봤자 본토의 군대가 밀고 들어오면 끝이다.
지금이야 자유 홍콩을 군대로 짓밟았다는 오명과 국제 사회의 비판이 두려워 군대를 보내지 않고 있을 뿐이다.
만약 본토의 군대가 밀고 들어오게 된다면 구룡회부터 시작해 앞장서서 본토를 비판하는 민주인사들은 모두 죽는다고 봐야 한다.
일이 거기까지 진행된다면 내 계획이 무너질 게 분명하다.
‘그렇게 가만히 둘 순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