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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3회차! 재벌빌런-47화 (47/175)

#047화

약간 어두운 정사각형의 방.

테이블에 검사와 마주 앉았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검사가 노트북을 열어젖히더니 질문을 시작했다.

“무슨 혐의로 오신지는 아시죠?”

“아까 들어서 압니다. 마약, 밀수, 상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혐의를 인정하십니까?”

“설마요. 법원에서 무슨 증거로 체포 영장에 도장을 찍었는지 궁금할 뿐입니다.”

내 말에 검사가 등받이에 기대며 팔짱을 꼈다.

그의 입가에 조소가 서린 게 보였다.

“그나저나 검사님의 이름은 어떻게 됩니까? 계속 그쪽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 아직 통성명을 못 했군요. 여기 제 명함입니다.”

그가 내민 명함을 확인했다.

“손민수 검사님이시군요.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시작된 조사.

손민수 검사가 질문을 시작했다.

“이 사람 기억하시죠?”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하석원의 사진이었다.

“네, 압니다.”

“하석원 씨의 말로는 이신후 씨가 무릎에 칼을 찔러 평생 절름발이로 살아야 한다는데 이것도 모르시는 이야깁니까?”

“전혀 모르는 일입니다.”

쾅!

손민수가 양손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이신후 씨가 하석원을 칼로 찔렀다고 증언한 목격자가 한둘이 아닙니다. 이래도 잡아떼실 겁니까?”

“증거 있습니까?”

“뭐라고요?”

“증거 있냐고 물었습니다.”

“증언이….”

“검사님, 재판 기록은 읽어 보시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

당황했는지 손민수의 입이 다물어졌다.

초짜 검사 티가 났다.

명색이 대기업 오너에게 초짜를 붙였다라….

아무래도 본 게임 전에 힘을 빼놓으려는 수작인 듯 보였다.

“하석원이 깡패 예닐곱과 함께 칼 들고 찾아왔습니다. 재판은 정당방위로 판결 났구요.”

“그러니까, 그들의 증언이….”

“증언요? 지금 깜빵에 갇혀 있는 놈들 말만 듣고 체포 영장 청구한 거라고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손민수가 이를 악물었다.

더는 몰아붙일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그가 다음 질문을 이어 나갔다.

“SC 오션의 직원들이 이신후 씨의 명령으로 마약 밀수에 가담했다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누가 그런 제보를 한 겁니까?”

“제보자 신변 보호를 위해 가르쳐 드릴 수는 없습니다.”

손민수가 뭔가를 잡았다는 듯 조소를 지으며 사진이 프린트된 서류를 건넸다.

“여기 이 사람들 아시죠?”

손민수가 내민 서류를 확인했다.

첫 장은 마약 밀매에 가담했던 중국인 선원들의 사진이었고 두 번째 장은 김동화와 정원진의 사진이었다.

“모릅니다.”

“이봐요! 어떻게 자기 직원들을 모를 수가 있습니까? 자꾸 이렇게 발뺌하실 겁니까?”

“검사님, 검사님은 이곳에 출근하는 사람 전부 아십니까?”

“뭐라구요?”

“검사님은 겨우 천 명 출근하는 이곳의 사람들도 모르면서 저한테 만 명 가까이 되는 직원들을 모른다며 타박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크흠….”

손민수가 민망한 듯 얼굴을 붉히더니 다시 질문을 시작했다.

“그럼 이 사람들이 해외로 출국한 거는….”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기업의 오너가 직원들의 동향을 전부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까?”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손민수의 무의미한 질문이 계속되었고 나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가 작은 꼬투리라도 잡으려 하는 이유는 확실하다.

‘딱 봐도 기획 수사구만.’

그리고 그 기획 수사를 요청한 원흉은 너무나도 명확했다.

‘백문에서 정치권에 작업을 쳤을 거고.’

계속 이렇게 무의미한 시간을 보낼 수는 없기에.

나는 이 사람의 배후를 불러들이기로 마음먹었다.

“제보자의 말에 따르면….”

“검사님.”

“네.”

“시간 아까우니 허수아비 짓 그만하시고 손민수 검사님 뒤에 계신 분 좀 나오라고 하시죠.”

“뭐요?!”

“귓구멍이 막혔어? 본인 나오라고 하라고.”

손민수가 발끈하며 벌떡 일어섰다.

그가 앉아 있던 철제 의자가 넘어졌다.

“이 사람이 진짜!”

“지금 우리 직원들이 당신 뒤를 탈탈 털고 있거든? 내일 9시 뉴스에 이름 안 나오려면 말 들어, 이 새끼야.”

잠시 후.

“김건훕니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다.

“긴말 필요 없고 할 말 있으면 빨리 하고 갑시다. 어차피 증거 하나 없는데 시간 낭비 할 거 없잖아요?”

“증거 하나 없어도 이신후 씨 구속시키는 건 충분합니다.”

“증거가 없어도 구속시킬 수 있으시다?”

내 말에 김건후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못 할 것 같습니까?”

“못 할 거 같은데….”

“지금까지 제 손으로 잡아넣은 대기업 총수가 몇 명인지 아십니까?”

“오? 능력이 좋으신가 봅니다.”

“이신후 씨 하나 잡아넣을 만큼은 됩니다.”

서로에 대한 탐색이 이어지던 중.

띠리리리.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 한 통 받아도 되죠?”

내 말에 김건후가 마음대로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고.

“예, 총리님.”

상대방이 누군지 알게 된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잠시 후.

검찰청에서 나와 신종민이 보내 준 차를 타고 강북구 오피스텔로 돌아가는 길.

고민이 깊어졌다.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백문과의 싸움은 페어플레이로 흘러가지 않았다.

문제는 그들이 이렇게나 빨리 정치권을 통한 공격을 해 올지는 몰랐던 것이다.

석탄으로 시작한 백문과의 싸움은 이제 머니 싸움으로 흘러가는 중이다.

이럴 때, 그들의 공작으로 첸이나 신종민의 신변이 구속된다면 전쟁에 지장이 생길 건 불 보듯 뻔한 상황.

나는 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전화를 걸었구만. 안 그래도 자네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네.

이강진 회장이 무거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걱정되셨나 봅니다.”

-에이, 이 사람아, 당연히 걱정했지. 나야 몇 번이나 검찰청 조사실을 가 봤지만, 자네는 이제 처음 아닌가. 괜히 쫄아서 자백하지 않을까 걱정했네.

그의 농담을 들으니 확실히 어느 정도 편한 사이가 된 게 느껴졌다.

“저를 뭘로 보시는 겁니까? 회장님 구하러 갔을 때 깡패놈들 다 때려잡은 거 못 보셨습니까? 제가 일개 검사를 무서워할 것 같습니까?”

-어디 조무래기 깡패와 대한민국 최고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검찰청을 비교할 수 있겠나. 날고 긴다는 놈들도 검찰청 한 번 들어갔다 나오면 영혼까지 털려서 나오지 않나.

“하긴, 생각해 보니 그렇기도 합니다.”

-그건 그렇네만….

이강진 회장의 목소리가 무거워졌다.

아마 본론을 꺼낼 모양.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봤네.

“안 그래도 많이 궁금했던 참입니다.”

-쉽지만은 않아. 웬일인지 청와대가 자네를 공격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움직이고 있네. 이번 검찰 조사는 그것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쉽지는 않겠다고 예상했지만, 정권 초기의 청와대가 상대면 버티기 힘들겠군요.”

이강진 회장이 내 말에 끌끌 웃었다.

-예끼! 이 사람아, 겨우 이 정도 가지고 뭘 그러는가. 나만 해도 감옥을 두 번이나 갔다 왔는데. 그냥 이번 기회에 별 하나 단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는가.

“회장님께선 일에 지쳐 쉬러 들어간 거 아닙니까?”

내 말에 전화기 너머 이강진 회장이 폭소를 터뜨렸다.

숨넘어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말이다.

-역시 자네는 특별해. 천하의 이강진이에게 못 하는 말이 없어.

“칭찬으로 알아듣겠습니다.”

-그래, 어떻게 할 작정인가. 힘들면 내가 도와주겠네. 돈은 자네가 더 많지만, 힘은 내가 더 세지 않겠는가.

맞는 말이다.

돈에 힘을 붙여야 금력(金力)이 된다.

돈은 내가 많아도 이강진 회장이야말로 대한민국 제일의 금력을 가진 사람.

그의 힘으로 이번 공격을 막아 내기로 결정했다.

“도와주신다니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나중에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게.

“무슨 부탁을….”

-나중에 말해 주겠네.

그렇게 이강진 회장과의 통화를 종료한 후 눈을 감았다.

***

성북동에 있는 저택.

이강진 회장이 의자에 몸을 뉘었다.

그리고 그가 곧 미친 사람처럼 광소를 터뜨렸다.

“으하, 으하하하.”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에 들었다.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는 배짱.

파괴적일 만큼의 과감함.

그리고 남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행동력까지.

만약 자신의 아들들 중 하나가 이신후 같았다면, 아니 반만 닮았더라도 망설임 없이 상현 그룹을 넘겼으리라.

한참 웃던 이강진 회장이 서재 밖으로 소리쳤다.

“거기 누구 있다면 최 실장 좀 불러오거라.”

한 시간 후.

최우현 실장이 이강진 회장의 자택에 도착했다.

“부르셨습니까?”

“그래, 최 실장. 일이 어떻게 돼 가고 있나?”

이신후에게 구명의 은혜를 입은 적이 있는 최우현은 이신후가 검찰에 채포됐다는 소식에 자기 일처럼 나서서 상황을 파악했다.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내일 당장 SC에 세무 조사가 예정되어 있답니다.”

“벌써?”

“예, 아무래도 청와대에서 단단히 노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큰일이군.”

이강진 회장이 어두운 얼굴로 답했고 최우현이 계속해서 보고했다.

“전략실에선 최종적으로 이신후 회장이 ST 그룹을 인수한 것을 문제 삼아 공격할 확률이 높다고 판단했습니다.”

“그건 전 정부의 요청으로 인수한 게 아니던가.”

“맞습니다만, 다른 쪽에서 본다면 특혜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빌어먹을 놈들. 지금이 무슨 쌍팔년도인지 아는군. 정치하는 놈들은 예나 지금이나 바뀐 게 없어.”

이강진이 옛날 일이 생각나서 이를 악물었다.

“방법은?”

“없습니다.”

“국회로 출근하는 사람 중에 삼분지 일이 상현 장학생인데 방법이 없다고?”

이강진은 최우현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전국의 뛰어난 수재들을 선발해 학비를 주고 생활비를 줬으며 유학까지 보내 준 세월이 30년이 넘는다.

그렇게 자란 인재들이 지금 국회의 3분의 1을 채웠는데 방법이 없다니?

“저번 상현 전자 때와 마찬가지로 청와대에서 우리 사람들의 약점을 쥐고 흔들고 있답니다.”

이강진은 이제야 이해가 됐다.

“허허, 막아 주겠다고 큰소리를 쳤는데 이걸 어쩐다.”

그렇게 이강진이 힘없는 웃음을 지을 때, 최우현이 품에서 작은 수첩 하나를 꺼냈다.

그걸 본 이강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네, 설마?!”

“네, 제가 총대를 메겠습니다.”

최우현이 꺼낸 수첩.

그건 그동안 상현 그룹이 정치권에 뿌린 돈의 액수와 받은 사람의 명단이 적혀 있는 수첩이다.

심지어 저 안에는 현직 대통령의 이름도 적혀 있을 정도로 파괴적인 물건이었다.

저걸 터뜨리면 아무리 정권 초기의 청와대라고 하더라도 힘을 잃을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불가하네. 자네가 또 감옥에 간다면 20년은 썩을 걸세.”

“목숨을 구함받았는데 그깟 20년의 세월, 아깝지도 않습니다.”

“20년 지나면 내가 죽고 없을 텐데 누가 자네를 챙겨 주겠나. 안 되네.”

“회장님, 그동안 회장님을 모셔서 영광이었습니다. 이번만큼은 제 뜻대로 하게 해 주십시오.”

“자네….”

그렇게 이강진과 최우현이 서로를 전우애가 불타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똑똑.

“회장님, SC에서 회장님 앞으로 서류를 보냈습니다.”

저택에 상주하는 비서가 문을 두들겼다.

“크흠, 가져오게.”

잠시 후, 두 사람은 서류를 확인했고.

“…이걸로 하면 되겠구만.”

“…어떻게 보면 우리 자료보다 더 나은 것 같습니다.”

최우현이 뻘쭘하게 뒤통수를 긁었다.

“자네 감옥에 안 가도 되겠는데?”

“네….”

최우현은 생각했다.

괜히 나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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