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3회차! 재벌빌런-44화 (44/175)

#044화

“이름.”

“리, 리샤오.”

“어라? 반말?”

리샤오가 흠칫 놀라며 몸을 떨었다.

“리샤옵니다! 백문 한국 지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기합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

녀석에게 USB 하나를 던져 줬다.

“자! 이제 컴퓨터 켜서 싹싹 긁어 넣어.”

리샤오가 붕대를 잔뜩 감은 손을 덜덜 떨면서 마우스를 움직였다.

오른손 중지가 잘렸는데도 꽤 침착해 보였다.

잠시 후.

그가 자료를 전부 옮겼는지 손을 멈췄다.

“다 했어?”

“네.”

꽤 많은 자료.

아무거나 하나를 켜서 슬쩍 읽어 보니 백문의 돈을 받은 사회 각층 인사들의 이름과 액수, 그리고 돈을 준 방법이 적혀 있었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닐 터.

“이게 전부야?”

“지부에 남아 있는 건 이게 전부입니다. 나머지는 문(門)으로 보내고 삭제했습니다.”

“쩝, 어쩔 수 없네.”

그렇게 포기하고 밖으로 나가려던 찰나.

리샤오가 슬그머니 눈치를 보며 말했다.

“저어…. 이제 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뭘 어떻게 돼? 너 알아서 도망가야지.”

리샤오의 눈이 흔들렸다.

그도 알 것이다.

한국에 남아 있으면 백문에서 보낸 칼날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혹시, 저 좀 숨겨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피식.

놈의 말에 웃음이 지어졌다.

“알았다. 내가 아주 안전한 곳으로 보내 주마.”

꿈과 희망이 넘치는 시베리아로.

***

자료를 담은 USB를 빅터에게 보낸 뒤, 요원들과 함께 부산으로 출발했다.

다음 목적지는 호주.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비행기를 타지 않고 SC에서 운용하는 화물선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오늘 있었던 작전에 피곤했는지 요원들이 하나둘 졸기 시작했다.

그들을 지켜보며 첸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작할까요?

“네, 슬슬 올릴 때가 된 거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통화를 종료하고 창밖을 내다보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을까?

“…나.”

누군가 내 어깨를 흔들어 깨우는 게 느껴졌다.

“일어나. 다 왔어.”

눈앞에 리우가 나를 흔들고 있었다.

“벌써?”

“벌써라니, 너 잠들고 4시간도 더 지났어.”

피로가 극도로 쌓였나 보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이렇게나 오래 잠을 자다니.

“다른 사람들은?”

“모두 짐 싸고 있어. 조금 있으면 출발한다고 하던데?”

“가자.”

모두 함께 배에 올라타니 가장 먼저 선장이 우리를 반겼다.

“송동익입니다.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신 회장에게 연락받으셨죠?”

“네, 보안을 철저히 부탁한다고….”

“맞습니다. 이동 중 필요한 물품은 자체 조달 할 테니 될 수 있으면 선원들과 마주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선장이 화물선 맨 아래에 있는 선실로 우리를 안내했다.

창고로 쓰던 공간을 급하게 개조해 칸막이라곤 없는 공간.

갑작스럽게 준비했는지 가구는 사람 수에 맞춘 간이침대가 전부였다.

선장이 민망했는지 내 눈치를 봤다.

“혹시 불편하시면….”

“아닙니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선장이 올라가고 모두 자리를 잡고 짐을 풀었다.

우우웅.

화물선의 엔진 소리가 들리는 걸 보아하니 이제 곧 출발할 모양이다.

“도착할 때까지 최대한 편안하게 쉬세요. 도착하면 잠시도 쉴 시간이 없을 겁니다.”

이 말을 끝으로 자리에 누웠다.

‘첸이 잘해 줘야 할 텐데….’

***

서울 광진구.

SC 인베스트먼트의 인원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거기 차트 좀 확인해 봐!”

“누가 석탄 선물 가격 동향 파악한 거 없어?”

“여기 좀 봐 주세요!”

“이 계좌, 잔고가 이상한데?”

정신없이 돌아가는 사무실 한편에서 첸이 자신의 계획을 점검하고 있었다.

석탄 가격을 인위적으로 올리는 게 바로 이번 계획의 요체.

석탄 가격과 백문을 공격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겠나 싶지만.

생각보다 엄청난 상관이 있다.

중국은 세계에서 전력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나라다.

그리고 그 전력 대부분을 화력 발전에 의지하는데.

그 화력 발전의 주원료가 바로 석탄이다.

석탄 가격이 치솟는다?

중국 경제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는 뜻이고 그건 곧 백문도 마찬가지란 얘기다.

그리고 첸은 거기서 생긴 틈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다음 날 아침.

선물 시장이 열리자마자 첸이 모두에게 명령했다.

“다들, 레버리지를 최대한 활용해서 석탄 선물을 매수해.”

첸의 말이 떨어지자 직원들이 각자 자신의 앞에 있는 키보드를 두들겼다.

타탁. 탁. 타탁.

첸이 모니터에 시선을 집중했다.

톤당 가격 70불.

SC 인베스트먼트에서 대량 주문을 넣으니 가격이 조금씩 상승하기 시작했다.

70.5… 71… 73… 75….

조금씩 그리고 확실하게 상승하는 그래프.

상승한 선물 가격에 매도 주문이 몰려들었다.

그래프가 살짝 밀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확인한 첸이 메신저를 활용해 모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Eat.]

SC 인베스트먼트의 직원들이 미친 듯이 주문을 넣어 매도 주문을 먹어 치웠다.

이런 식으로 몇 번을 진행하자.

선물 가격 그래프가 하늘 높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오늘 더 이상의 매도 주문은 없는 모양.

조금 있으면 선물 시장이 마감되기에 첸은 긴장을 풀고 의자에 몸을 뉘었다.

그가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며 생각했다.

‘열흘만 버티면 된다.’

***

스위스 추크.

노인에 가까운 중년 남자가 한 회사 앞을 서성였다.

그의 이름은 이경석.

SC가 ST 그룹일 당시 부회장직을 맡았던 사람이며.

신종민에 의해 SC 오션 고문으로 위촉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한자리에서 서성이며 기다린 지 한 시간.

띠리리리.

그의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렸다.

-신종민입니다.

“예, 회장님. 지금 앞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약속을 잡았습니다. 지금 바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이경석이 눈앞에 있는 회사의 전경을 바라봤다.

건물 맨 위에 엑스트라타라고 쓰여 있는 간판이 눈에 띄었다.

일 년 매출이 천억 달러에 이르는 글로벌 광산 자원 기업.

그리고 호주 최대의 석탄 광산을 소유하고 있는 회사기도 하다.

“휴우….”

이경석 고문이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엑스트라타의 로비의 문을 힘껏 열어젖혔다.

“무슨 일이 십니까?”

덩치가 산만 한 가드가 이경석의 앞을 막았고 이경석이 안주머니에서 명함을 건네줬다.

“글렌 사장과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가드가 돌아가 무언가를 확인하더니 이경석을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

“11층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알았소.”

그가 11층에 올라가니 엘리베이터 문 앞에 금발의 남자가 마중 나와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조노프 글렌입니다.”

“이경석입니다.”

잠시 후, 이경석은 글렌의 사무실에 앉아 가져온 서류를 건넸다.

서류를 확인한 글렌의 눈이 크게 떠졌다.

“이게 정말입니까? 가격을 현 시세보다 30%나 더 쳐준다니요.”

“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요?”

“다음 장을 보시면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글렌이 서류의 다음 장을 넘겨 확인했다.

그리고 그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흐음….”

“마음에 안 드시는 구석이라도 있습니까?”

“저희 엑스트라타는 신뢰를 중요시하는 기업입니다. 가격을 더 받자고 다른 곳과의 계약을 져버릴 수는 없습니다.”

“계약을 파기하라는 게 아닙니다. 그저 다음 물량을 저희에게 독점 공급해 달라는 겁니다.”

“다음 물량이라…. 아무리 그래도 독점 공급은 좀 힘들 것 같습니다.”

글렌이 거절의 의사를 표시했다.

그러자 이경석이 글렌이 가지고 있던 서류를 가져와 숫자 하나를 고쳤다.

“이러면 어떠십니까?”

글렌이 이경석의 말에 서류를 다시 확인하고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라면 저희도 어쩔 수 없지요. 대신 이미 계약된 물량은 인도할 수밖에 없는 점은 알아 두셔야 할 겁니다.”

“물론입니다. 다만 위약금 관련 부분은 확실히 해 주셨으면 합니다.”

글렌이 이경석의 말에 서류의 위약금 부분을 다시 확인했다.

“계약된 양을 제때에 인도하지 않으면 7배의 위약금이 책정된다라….”

“문제가 될 거 같으면 저희는 포기하겠습니다.”

이경석이 포기할 것처럼 행동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자 글렌이 급하게 말했다.

“전혀 문제 되지 않습니다. 계약하시죠.”

잠시 후.

성공적으로 계약을 마친 이경석이 신종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40%를 더 챙겨 주는 조건으로 계약서에 사인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이제 중국으로 떠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계속해서 수고해 주십시오.

전화를 끊은 이경석이 고개를 저었다.

최선을 다해서 일하고 있지만.

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톤당 70불에 불과한 석탄을 98불이나 주며 거래하다니.

조금만 샀다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계약한 양은 무려 2백만 톤, 달러로 2억 달러가 넘는다.

많은 석탄을 사서 어디에 쓸지도 상상이 되지 않을뿐더러 앞으로 이와 비슷하거나 더 많은 양의 계약을 몇 번이나 체결해야 한다.

그것도 SC 오션의 모든 유보금을 쏟아부어서 말이다.

이경석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지시에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는 월급쟁이일 뿐이고 월급쟁이의 숙명은 시킨 일을 최선을 다해서 완수하는 것이다.

이경석이 비행기를 타기 위해 택시를 붙잡았다.

***

쿵.

커다란 진동이 느껴졌다.

잠시 후, 선장이 우리가 머무르고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회장님, 항만 근처에 도착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선장은 할 일을 하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아시죠?”

선장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배에는 선원들을 제외한 그 누구도 탑승하지 않았습니다.”

선장의 대답이 만족스러웠다.

“한국으로 돌아가시면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 가령…. 좋은 차가 생긴다거나 하는 일이요.”

“가, 감사합니다.”

“그리고.”

“네, 넵!”

“우리가 돌아오면 꼭 전에 말한 대로 움직여 주셔야 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선장이 굳은 얼굴로 선실을 나갔다.

주위를 둘러보니 요원들이 준비를 마친 게 보였다.

“혹시, 지금이라도 빠지고 싶은 사람 있습니까?”

내 말에 최준현이 손을 들었다.

“민간인 사상자가 나올 수도 있습니까?”

“있습니다.”

웅성. 웅성.

요원들이 동요했다.

마음 같아서야 모두 데리고 가고 싶지만, 괜히 하기 싫은 사람 억지로 시키다 작전을 망칠 수 있다.

그럴 바엔 차라리 준비된 인원들만 데리고 가는 게 확실하다.

잠시 후.

세 명의 요원들이 손을 들었다.

“죄송합니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해합니다.”

손을 들지 않은 요원들과 리우를 데리고 갑판으로 올라갔다.

저 멀리 뉴캐슬 항구가 밤을 밝히고 있는 게 보였다.

호주 최대의 석탄 수출 항구.

그곳 남쪽에 산처럼 쌓인 석탄이 보였다.

오늘 우리가 불태워야 할 곳이기도 하다.

가지고 온 캐리어를 열어 안에 있는 것들을 요원들에게 넉넉히 나눠 줬다.

“소이탄입니다. 발화점이 낮으니 조심해서 다루세요.”

요원들이 그것들을 받아 가지고 온 방수 가방에 넣었다.

“각자 자신의 작전 지역은 확인하셨습니까?”

“네, 확인했습니다.”

“작전의 성패는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느냐에 달렸습니다. 이 점 유의해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한 명도 빠짐없이 다시 봅시다.”

요원들이 내 말에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한국말이 익숙해진 리우가 얼굴을 들이민다.

“넌 그냥 호주에 눌러살면 안 되냐? 말도 통하겠다, 백인이겠다. 살기 좋을 것 같은데?”

“크크크크.”

리우가 웃음이 터졌는지 몸을 흔들며 웃었고 나 역시 웃음이 터져 함께 웃었다.

이거 큰일 났는데?

자주 봐서 정이 든 거 같다.

이걸 에펠탑 효과라고 하던가?

잠시 후.

우리는 갑판에서 바다로 뛰어들었다.

뉴캐슬항을 불태우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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