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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3회차! 재벌빌런-37화 (37/175)

#037화

“지금 백문이라고 하셨습니까?”

“역시, 자네라면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네.”

백문이 상현 전자를 노리고 있다니.

내가 아는 백문은 한 걸음을 움직일 때도 10가지 생각을 하며 움직인다.

그런 그들이 아무 이유 없이 혹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 상현의 경영권을 노릴 리가 없다.

상념에서 깨어나자 이강진 회장의 담담한 얼굴이 보였다.

“회장님께선 침착하시군요.”

“이미 벌어진 일 허둥지둥해서 얻을 게 뭐 있겠는가.”

상현 전자의 경영권이 위협받는 일 따위는 원 역사에서는 없다.

결국, 이건 내 개입으로 인한 나비 효과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백문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그들은 내 적이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상현이 넘어가게 된다면 앞으로의 내 행보에 지장이 생길 게 분명하다.

여기까지 생각한 나는 이강진 회장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도와드리겠습니다.”

“고맙네.”

이강진 회장이 담담하게 받았다.

“제가 도와드린다고 하더라도 경영권을 못 지킬 수도 있습니다. 지분 싸움으로 가게 되면 자금을 얼마나 움직일 수 있냐는 건데, 백문은 중국의 부를 독점할 정도로 많은 부를 쌓은 집단입니다.”

“그래도 나는 반은 지켰다고 생각하고 있네.”

“어째섭니까?”

“세계 최고의 부호가 도와준다는데 이미 반은 지킨 것 아니겠는가?”

“……!!!”

***

오피스텔에 돌아와 누웠다.

이강진 회장과의 대화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설마, 미국에서의 성과를 알고 있을 줄이야.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겠군.’

그렇게 상념 속에서 잠을 청하려고 하는데 휴대전화의 벨 소리가 울렸다.

액정에 표시된 이름은 바로 첸이었다.

“첸?”

-엘, 우리가 해냈습니다!

첸은 흥분했는지 전화기 너머에서 소리를 질렀다. 격양된 목소리였다.

“무슨 일입니까?”

-유가가 사상 최고치라고요. 수익률이 엄청납니다!

첸의 말에 나는 날짜를 확인했다.

최고점이 오려면 시간이 남았지만, 충분히 올랐을 시기. 지금 처분해도 엄청난 차이는 나지 않는다.

안 그래도 실탄을 확보해야 하기에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들르겠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그때 나누도록 하죠.”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다음 날, 해가 뜨자마자 SC 인베스트먼트에 들렀다.

퀭한 얼굴의 첸과 같은 몰골을 하고 있는 직원들이 나를 맞아 주었다.

“다들 얼굴이….”

“신경 쓰지 마세요. 요즘 다들 돈 벌 생각에 흥분해서 차트만 보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다크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온 모습들이었지만, 얼굴은 하나같이 밝았다.

내가 첸과 직원들에게 약속한 보수율은 수익의 1%.

평균적인 펀드 매니저보다 낮은 보수율이지만 엄청난 돈을 움직이는 만큼 첸도 직원도 만족하고 있었다.

“예상 수익금이 얼마길래 다들 저렇습니까?”

“놀라지 마세요. 무려 120억 달러가 넘습니다!”

“그렇군요.”

나비 효과를 방지하기 위해 극단적인 레버리지를 이용하지 않았기에 수익이 생각보다 적었다.

“노, 놀랍지 않으십니까?”

“아닙니다. 충분히 놀랐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첸.”

첸이 그제야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자금 상황을 좀 점검하고 싶습니다. 곧 돈을 뭉텅이로 쓸 일이 생길 것 같거든요.”

우리는 회의실로 이동했고 첸은 커다란 화이트보드에 SC 인베스트먼트의 자금 상황을 브리핑하기 시작했다.

“우선 저번 CDS로 얻은 이익이 1,513억 달럽니다. 그중 미국에 납부한 소득세는 245억 달럽니다.”

미 정부의 압박은 프랭크 로스차일드를 통해서 풀어 냈지만, 세금은 피할 수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그나마 세율이 더 낮은 홍콩에서 내는 것이 맞지만 미 정부의 벼랑 끝 전술에 지쳐 결국 세금을 납부하고 국채를 사 주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남은 1,268억 달러 중 유가 선물에 460억, 미국 국채에 208억, 부동산과 주식에 400억, 유보금에 200억 달러입니다. 그리고 이번 유가 상승으로 인해 120억 달러가량의 수익이 발생했습니다.”

첸이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유보금 같은 경우, SC 오션의 해외 사업에 투자될 예정입니다.”

“잘 들었습니다. 그럼 유가 선물에 투자된 자금을 뺍시다.”

“예?”

첸이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닌가 하며 황당한 얼굴을 한다.

“제대로 들은 게 맞습니다. 유가 선물에 투자된 자금이 급하게 사용될 일이 있습니다.”

“엘! 지금 유가는 상승 여력이 충분합니다. 묻어만 놔도 수십억 달러는 벌어들일 겁니다.”

역시, 선물 시장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던 첸답게 보는 눈이 정확하다.

유가는 앞으로 3년간 계속해서 상승한다.

그렇지만 지금은 수십억 달러보다 백문의 이빨을 부러뜨리는 게 먼저다.

“상관없습니다. 앞으로 돈 벌 기회는 차고 넘칩니다.”

“그렇지만!”

첸의 반응이 격하다.

어찌 보면 첸의 반응은 당연하다.

내 소유이긴 해도 SC 인베스트먼트의 선장은 첸이니까.

원양 어선의 선장도 자신의 소유도 아닌 배를 최선을 다해 운영하지 않는가.

하물며 1,300억 달러, 한화로 140조에 가까운 돈을 운용하는 SC 인베스트먼트의 선장이라면 더하면 더했지 못할 리가 없다.

“첸, 중신그룹을 소유한 백문이란 단체가 상현 전자를 먹어 치우려 합니다. 우린 백기사로 나서 줘야 하고요.”

“…그게 정말입니까?”

“어제 오후에 상현의 회장에게 직접 듣고 요청받은 얘깁니다.”

중신이란 단어를 들은 첸이 고양된 얼굴을 했다.

“그 백문이란 곳은 대체 어떤 곳입니까?”

“중국 그 자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가진 부의 크기도 엄청난 거 아닙니까?”

“확실히는 모르지만 6조 달러, 그 이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부의 크기에 첸이 질색하는 게 보였다.

하긴, 한화로 7천조 원에 가까운 돈이니 그가 놀라는 건 당연했다.

“믿기지가 않습니다. 세상에 그런 부가 있다니요.”

“그런 곳이 세계에는 몇 군데 더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백문이 강력한 편이기는 하지만요.”

“우리가 대항할 수 있겠습니까?”

“있습니다. 아니, 충분히 이길 수 있습니다.”

“어째섭니까?”

“그들은 겉으로는 하나의 단체지만 실상 몇 개의 계파로 쪼개져 있습니다. 당연히 반목이 없을 리가 없죠.”

이해가 됐는지 첸이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다.

“알겠습니다. 유가 선물에 투자된 자금을 회수해 상현 전자 백기사로 나서겠습니다.”

“단순히 백기사로만 나서면 재미없죠.”

“그럼 어떻게?”

“함께 계획을 세워 봅시다. 백문의 코뼈를 부러뜨릴 계획을요.”

***

상현 전자.

대한민국을 견인하는 대기업이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의 패자이기도 하다.

그런 상현 전자에 대해서 어느 날부턴가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바로 이강진 회장이 상현 전자의 경영권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내용.

그걸 증명하듯이 어느 날부턴가 이강진 회장과 그의 일가가 회사에서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얼마 후, 상현 전자를 향해 적대적 인수 합병 소식이 들려왔다.

주체는 미국의 사모펀드인 블루스톤.

그들은 상현 전자의 주식을 대량으로 취득했음을 알리는 공시를 했고 주식을 마구잡이로 사 모으기 시작했다.

당연히 주식 시장은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장이 시작되자마자 상한가. 매물도 없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계속되는 상한가 행진에 시장에서 안 그래도 황제주라 불리던 상현 전자의 주가가 불과 한 달 전보다 3배나 가까이 뛰었다.

그리고 블루스톤이 경영진 교체에 관한 임시 주총을 요구했다.

피할 수는 없다. 법적으로 대주주의 임시 주총 요구는 당연한 권리이니 말이다.

결국, 임시 주총의 날짜가 잡혔고 세상의 눈은 이강진 회장에게 집중되었다.

***

성북동, 이강진 회장의 자택.

본인의 회사에 태풍이 몰아치고 있었지만 정작 이 회장은 정원에서 차를 마시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10분 정도 기다렸을까?

저택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고 이 회장은 짐짓 긴장한 얼굴로 그를 맞았다.

“어서 오시오. 상현의 이강진이오.”

“처음 뵙는구려, 백문, 대외부장 진오청이오.”

이 회장의 미간이 꿈틀댔다.

그의 평생 자신의 앞에서 이토록 오만하게 구는 인물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서로 편하게 차 마실 사이는 아니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얼마든지.”

“상현 전자, 꼭 가져야겠소? 아니, 가져간다고 해서 경영이나 제대로 할 수 있겠소?”

이 회장의 물음을 들은 남자가 비열하게 웃기 시작했다.

“그건 우리가 결정할 문제요.”

“…그쪽에서 우리를 흔드느라 손해 본 돈은 보상할 용의가 있소.”

“당신이라면 그 선택을 하겠소?”

남자의 말에 이 회장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반대로 생각한다면 그 역시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을 거니 말이다.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상현 전자를 가질 것이오.”

“결국, 그런 선택을 하는군. 하지만 이곳은 한국이고 정부는 내 뒤에 있소. 이대로 끝날 거라고 생각하지 마시오.”

평소라면 남의 힘을 빌려 허세를 치는 호가호위 같은 행위를 경멸하는 이 회장이었지만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다.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빌려 전자를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회장의 말을 들은 진오청은 오히려 크게 웃었다.

“으하하하! 협박 한번 같잖군. 한국 정부가 아직도 당신 뒤에 있다고 생각하오?”

“…….”

진오청의 반응에 무언가 잘못됨을 느낀 이 회장의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그럼 가 보겠소. 좋은 얼굴로 마주보기엔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군.”

이 말을 끝으로 진오청이 이 회장의 저택을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그의 뒷모습을 보는 이 회장의 얼굴에 낭패가 서렸다.

“회장님.”

최우현 실장이 어느새 이 회장의 곁으로 다가왔다.

무언가를 결심한 듯 그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아닐세. 저 사람을 해치워 봤자 바뀌는 것이 없네.”

“그래도….”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나서면 그쪽 또한 같은 방법을 쓸게야. 놔두시게나.”

“알겠습니다.”

이 회장이 의자에 몸을 깊숙이 파묻었다.

“그나저나 청와대에선 뭐라는가?”

“…민간 기업의 일에는 개입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으허, 으허허허!”

이 회장이 미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이 상황이 너무나도 어이없었기 때문이다.

상현 전자는 국가의 핵심 산업 중 하나인 반도체 부분에서 세계적인 패자다.

이런 곳의 경영권이 중국으로 넘어간다?

그나마 가지고 있던 기술적 우위를 빼앗기게 된다는 소리다.

가격이 밀리는데 기술까지 밀린다는 말은 세계 시장에서의 메이드 인 코리아의 가치가 추락한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정부는 나서지 않는단다.

그렇다면 이유는 하나다.

“엄청나게 처먹였구먼.”

이 회장이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봤다.

“그 친구는 소식이 있나?”

“아직 없습니다.”

“그렇군.”

이 회장은 생각했다.

돈과 권력은 밀린다.

이제 믿을 것은 하나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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