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6화
로스차일드 왕국에 소속된 골드만삭스 지방의 영주이자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금융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로이드 회장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전화를 돌리기 바빴다.
“미국의 부동산은 안전 자산입니다. 현 상황은 약간의 조정 기간뿐이지 장기적으로 우상향할 건 분명합니다.”
이 같은 말로 상대적으로 미국 상황에 어두운 타국의 금융 기관에 부도 수표행 KTX를 탄 CDO를 팔아먹거나.
“미스터 그레이플, 저번에 얘기한 신용 부도 스와프 증권을 매수하고 싶소만….”
동업자 정신은 어디론가 팔아먹고 사기를 치고 있었다.
로이드 자신도 알고 있다.
지금 자신의 행위가 나중에 법정에 설 수도 있는 중대한 금융 범죄라는 걸.
하지만, 프랭크 로스차일드가 보호해 준다면 금융 범죄가 아니라 1급 살인죄를 저질러도 실형을 살지 않는다.
그만큼 미국에서 로스차일드 가문의 힘은 대단하니까.
이제, 법정에 설 위험도 없겠다. 로이드는 사기와 다름없는 행위를 계속했다.
아니, 더욱 열심히 했다.
지금에 와서는 계약의 탈을 쓴 사기에 성공할 때마다 짜릿함을 느꼈다.
조금만 더 성공시키면 골드만삭스는 안전하다.
아니 욕심을 조금만 더 부리면 이번 기회에 큰돈도 벌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어차피 이번 일이 끝나고 자신의 행동이 밝혀지게 되면 월가에서의 로이드란 이름이 가진 명예는 길바닥 쓰레기보다 못한 취급을 받게 된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로이드는 모두를 털어먹을 생각으로 열심히 전화기를 붙들고 열변을 토해 냈다.
“휴….”
지쳐서 더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쯤, 로이드가 전화기를 내려놓고 의자에 몸을 깊숙이 파묻었다.
그가 앞에 있던 서류를 신경질적으로 내던지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Fucking 로져스!! 일은 제대로 하고 있는 거야?! 왜 연락이 없어!!”
그는 몇 번이나 로져스의 이름을 되새기며 욕을 했다.
회사의 일은 대충 수습이 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로져스가 체결한 스티브 컴퍼니와의 계약이다.
로이드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이걸 해결하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조금 있으면 월가에 핵폭탄이 떨어진다.
오늘 아침에도 조짐이 보인다는 보고서를 수십 부나 받았다.
월가에 핵폭탄이 떨어진 후, 400억 달러를 지급한다?
이건 숫제 골드만삭스를 폭파하는 일이다.
“휴….”
로이드 회장은 좋게 생각하기로 하고서 커피를 약간 마시며 의자에 몸을 뉘었다.
잠시간의 평온.
그가 약간의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쾅!
문이 세게 열리며 그의 평온을 박살 내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여비서 한 명이 창백한 얼굴로 들어와 비명을 질렀다.
“로이드! TV 켜 보세요. 어서요!”
다급한 목소리에 로이드는 자신도 모르게 TV를 켰다.
잠시 후, 그는 큰 충격에 목덜미를 잡고 쓰러져 버렸다.
“로이드! 로이드!”
그가 쓰러지는 것을 목격한 비서가 로이드 회장에게 달려갔다.
TV에서 계속 CNN 뉴스 속보가 방영되고 있었다.
-골드만삭스의 임원인 로져스 클레멘타인 씨가 투자자를 납치해 고문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 투자자는 최근 불거진 부동산 사태에 베팅하여 큰돈을….
***
납치된 첸을 구한 지 한 달이 지났다.
“흐흐흐….”
그동안 일이 아주 쉽게 풀렸다.
이게 다 알아서 자폭해 준 로져스 덕분이다.
그가 죄수복을 입고 법정에 나와서 ‘이게 다 회사에서 시킨 일이다.’라고 증언한 덕분에 골드만삭스 본사에 FBI가 들이닥쳐 압수 수색을 진행했다.
골드만삭스는 부패의 온상이 되어 버렸고 미국 전역의 시선이 우리의 계약에 집중되었다.
덕분에 그들은 우리의 돈을 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렇게 일이 순조롭게 흘러가 나도 모르게 경박한 웃음이 계속 흘러나온다.
병상에 누워 있는 첸이 나를 미친놈 보듯이 봤다.
하지만, 웃음이 안 나올 수 있나? 무려 1,570억 달러다.
한화로 170조.
물론 세금을 내고 여기저기 기름칠 좀 해야 하지만 무조건 1,000억 달러 이상은 남는 장사다.
“그렇게 좋습니까?”
“그럼 첸은 안 기쁩니까?”
“저도 물론 기쁘고 뿌듯한 건 맞는데, 지금 엘의 모습은 조금….”
“첸, 무려 1,500억 달러예요. 기쁘지 않으면 거짓말이죠. 그나저나 몸은 좀 어때요?”
“한순간에 부자가 돼서 그런지 많이 좋아졌습니다.”
“원래 치료 중 가장 비싼 치료가 금융 치료 아니겠습니까? 흐흐.”
이번 투자로 내가 첸에게 지급해야 할 수수료는 수익률의 5%다.
때문에 첸 역시 억만장자의 반열에 오르게 됐다.
똑똑.
병실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방문한 사람은 다름 아닌 AIG의 담당 임원인 지미였다.
“지미?”
“오오! 두 분 다 무사하셨군요. 걱정했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걱정도 돼서….”
“그런 분이 일이 벌어진 지 한 달 만에 오시는군요?”
병상에 누워 있는 첸이 싸늘하게 지미를 맞았다.
“오신 용건이나 말씀하시고 가세요. 피곤합니다.”
“계약에 대해서….”
“됐습니다. 계약 증권에 적혀 있는 내용대로 실행될 겁니다. 이따위 얘기를 하려면 찾아오지도 마세요.”
지미가 본전도 못 찾고 쫓겨났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원래 자본주의 세상에서 가장 신성한 바이블은 계약서가 아니던가.
슬슬 면회 종료 시간이 되어 가 첸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그럼 저도 나가 볼게요. 편히 쉬세요.”
“네, 다음에 오실 때는 초콜릿 케이크 말고 치즈 케이크로 사다 주시고요. 뉴욕 하면 치즈 케이크 아니겠습니까?”
“흐흐, 알겠습니다.”
병원을 나서기 위해 병실의 문을 여니 최효석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장님아, 누가 찾아왔는데?”
“누구요?”
최효석이 손가락으로 한 사람을 가리켰다.
검은 양복을 입은 노신사였는데 어찌 분위기가 아주 익숙했다.
“형님, 오늘은 먼저 들어가세요. 저 사람을 좀 만나고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별일 없겠지?”
“그럼요. 기껏해야 노인네 하난데요.”
최효석을 보내고 나를 찾아왔다는 노인의 앞에 서자 이 노인이 누군지 그제야 기억이 났다.
조지 소로스.
헝가리 출신의 현대 금융사의 신화 같은 존재이자 과부 제조기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전설적인 투자자다.
이민자 출신으로 진정한 아메리칸드림을 달성한 사람이기도 하다.
이건 밝혀진 사실이고, 실상은 로스차일드 가문의 집사다.
지독한 인종 차별주의자이기도 하고.
어떻게 아느냐고?
2회차에서 내가 직접 이 사람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 넣었으니까 안다.
2007년인 지금도 한국 나이로 77세인데 이 사람은 놀랍게도 2028년에 내가 죽이기 전까지 살아 있었다. 그것도 매우 정정하게.
아마 내가 죽이지 않았다면 기네스북 세계 최고령자에 이름을 올렸을 게 분명한 조지 소로스는 나를 보자 악수를 청해 왔다.
“소로스 회장님 아니십니까?”
“날 아시는군?”
“천하의 소로스 회장님을 모르면 기업인이라고 하겠습니까? 영광입니다. 엘입니다.”
“오늘 이렇게 찾아온 이유는 엘을 만나고 싶어 하는 분이 있기 때문인데 혹시 지금 시간 되시오?”
“소로스 회장님의 초댄데 없는 시간도 만들어야지요. 하하하.”
“그럼 가시지요.”
무려 조지 소로스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뉴욕 외곽에 있는 궁전 같은 저택에 도착했다.
“어서 오시오. 로스차일드가는 처음 보시겠군.”
“…정말 크군요.”
정말 크다.
광대한 면적을 자랑하는 저택 안의 풍경은 마치 다른 세상처럼 이질적인 모습을 자랑했고 나는 아름다운 모습에 압도당해 말문이 막혔다.
“사실, 이곳에 초대받은 옐로 몽키는 자네가 처음이네. 자부심을 가져도 좋아.”
이 미친 인종 차별 발언을 듣기 전까지 말이다.
잠시 후.
조지의 안내에 따라 저택의 응접실에 앉아서 프랭크 로스차일드를 기다렸다.
2회차에서 만나지 못했던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이너서클의 대장.
그를 기다리면서 내가 느끼는 감정은 긴장보다는 흥분과 설렘에 가까웠다.
덜컹.
문이 열리며 탄탄한 근육질의 노인이 들어왔다.
눈빛이 호랑이를 잡아먹을 정도로 강렬했고 두터운 신념이 느껴졌다.
아! 이렇게 생겼구나.
내가 앞으로 상대할 최강자는.
놀랍게도 내 안에서 아무런 적의도, 분노도 생기지 않는다.
그냥 단순히 이 사람을 본 것만으로 만족스러웠다.
“반갑네. 프랭크 로스차일드네.”
“엘입니다.”
“한번 보고 싶었네.”
“어째서입니까?”
“근 100년 이내 로스차일드에 가장 큰 타격을 준 장본인이니 안 보고 싶겠는가?”
프랭크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지만, 적의가 느껴졌다.
“칭찬으로 알아듣겠습니다.”
내 너스레에 프랭크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본론만 말하겠네. 우리 가문에서 운영하는 은행에서 받을 돈이 있다고 들었네.”
“골드만삭스가 로스차일드의 것이었습니까? 주주 명부에는 그런 이름은 없던 것 같은데요?”
“세상에는 자네가 알지 못하는 것이 참 많지.”
“그렇군요.”
“지급될 돈은 확실히 지급하겠네. 대신 더 일을 키우지 말게나.”
“제가 왜 그래야 합니까?”
“여론이 커져서 골드만삭스가 로스차일드의 소유라는 게 알려지면 곤란한 사람이 많아지거든.”
“마땅히 받을 돈 받는 겁니다. 그리고 일은 저희가 아니라 골드만삭스에서 키웠고요.”
명백한 거절의 의사를 밝히니 프랭크가 예상했다는 듯 딜을 걸었다.
“대신 자네가 원하는 걸 들어주겠네.”
“제가 뭘 원하는지 아십니까?”
“10억 달러 정도? 보상금 정도를 생각했네만.”
폭행 합의금으로 10억 달러를 지르다니.
역시 세계 최대 부호다웠다.
하지만, 지금 내가 원하는 건 보상금이 아니다.
나는 프랭크를 이용해 미 정부의 방해를 치우기로 마음먹었다.
“1,500억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돈에 움직일 정도로 가난하지는 않습니다.”
“원하는 걸 말해 보게.”
“조만간 돈을 회수해야 하는데 방해가 없었으면 합니다. 아무도요.”
프랭크 로스차일드가 잠시 생각한 뒤 긍정적인 답변을 줬다.
“이 친구, 여우구먼.”
“다시 한번, 칭찬으로 알아듣겠습니다.”
***
그로부터 3개월 후.
세상이 뒤집혔다.
시작은 월가에서 알아주는 대형 금융 기관인 베어스턴스와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 보호 신청을 한 일부터였다.
위험을 느낀 은행들이 급하게 대출을 막았다.
그러자 모기지 론을 대출 돌려 막기로 상환하던 이들의 연체율이 치솟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은행은 이들의 담보 물건인 집을 빼앗아 시장에 내놨지만 아무도 보러 오지 않았다.
은행들이 대출을 꺼려 더는 모기지 론을 받아 집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자 미국 전역의 집값이 하향 곡선을 그렸다.
집값이 무너지자 정상적으로 채무를 상환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집을 포기했다.
그들은 남은 대출금을 갚는 것보다 집을 경매로 날리는 게 싸게 먹힌다고 느꼈다.
이제 월가의 기관들은 살아남을 궁리를 해야만 했다.
그동안의 황금기가 거짓말처럼 그들은 한순간에 몰락했다.
결국, 그들이 선택한 건 백악관에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국민의 혈세를 써서 자신들을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그동안 정부의 시장 개입을 앞장서서 막아 내던 자본주의 첨병들의 말로가 정부의 시장 개입 요청이라니.
웃기지도 않았지만, 백악관은 그들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미국의 주요 산업인 금융 산업이 몰락하게 되면 무주공산이 된 미국의 금융 산업을 유럽의 금융 기관들이 먹어 버릴 게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결국, 백악관은 1조 달러라는 엄청난 금액을 투입해서 이 사태를 진정시키기로 했다.
동시에 금융 산업 재편이라는 카드 또한 꺼내 들었다.
백악관의 대처는 생각보다 단호했다.
살릴 수 없는 건 버린다. 합쳐서 살릴 수 있다면 합친다.
버릴 수 없는 건 어떻게든 살린다.
원 역사에서는 이런 대처로 인해 최소한의 피해로 끝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미국 최대의 투자 은행인 골드만삭스와 마찬가지로 미국 최대의 보험사인 AIG가 파산하게 생겼다.
그 때문에 미 정부와 관계자들은 이를 막으려 발에 땀이 나도록 한 사람을 쫓아다녔다.
누구냐고?
그는 바로 내 업무 짬통, 아니 업무 대리인 스티븐 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