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화
암살.
어두울 암(暗), 죽일 살(殺).
어둠 속에서 죽인다는 뜻이다.
상대방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은밀함을 가지고 어둠 속에 숨어 기회를 노려 한순간에 상대방을 죽인다.
이게 킬러(Killer)들이 일하는 기본적인 방식이다.
전직 킬러였던 나도 같은 방식으로 수없이 많은 살인을 저질렀고 오늘 역시 같은 방식으로 살인을 저지를 생각이다.
왕소군이 저녁을 먹으러 매일 들르는 식당 건너편에 도착했다. 멀리서 안을 살펴보니 왕소군이 중앙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한창 식사 중인 게 보였다.
술도 몇 병 보이는 게 식사를 마치기까지 얼마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가장 다행인 건, 식당 내외부를 살펴봐도 왕소군 혼자 온 걸로 보인다는 점이다.
그가 경호원 없이 걸어 다니는 일이 얼마나 될까? 그것도 하필 내가 홍콩에 있을 때 말이다.
만약, 오늘 왕소군을 놓친다면 앞으로 이와 같은 기회는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살인에 대한 계획을 세우던 중 식당 건너편에 꼬치구이를 파는 푸드트럭의 고기를 끼우는 30cm 정도 되는 쇠꼬챙이가 안성맞춤으로 보였다.
나는 몰래 트럭으로 다가가 근처를 살폈고 곧 낡고 녹슨 쇠꼬챙이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마 조리 도구로 적합하지 않아 버리기 위해 빼둔 것처럼 보였다.
트럭 주인 몰래 쇠꼬챙이를 소매에 거꾸로 넣어 숨기고 길가를 서성이다 보니 술을 마셨는지 왕소군이 식당에서 비틀거리며 나오는 게 보였다.
물론 술을 마셨다고 해도 방심할 상대는 아니다. 구룡회를 딱지치기로 먹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더욱 생각하지도 못하는 곳. 상상할 수도 없는 타이밍을 노려야 하기에 나는 구룡회의 본부인 구룡채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성채라고 칭했지만 ㅁ형의 아파트다. 다만, 그 크기가 엄청나게 커 상주하는 구룡회의 조직원만 3천 명이 넘었고 그 가족들까지 더하면 서울의 웬만한 행정 구역보다 인구가 많았다.
왕소군보다 먼저 구룡채에 도착하기 위해 뒷골목을 전속력으로 뛰었다.
그렇게 15분 정도를 달렸을까?
숨이 가쁘게 차오르기 시작할 때쯤 저 멀리 구룡채가 보였다. 그곳이 보인다는 건 지금 내가 도착한 곳이 바로 구룡채로 향하는 외길을 칭하는 구룡도에 도착했다는 뜻이다.
“허억. 허억.”
“누구냐?!”
구룡도를 지키고 있던 조직원이 나를 발견하고 다가오기 시작했다. 평소에 두 명씩 서는 경비가 한 명인 걸 확인한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마치, 왕소군을 꼭 죽이라는 하늘의 배려인 것 같았다.
어느새 두 발자국 거리로 다가온 놈의 울대를 빠르게 가격했다.
콰직.
“켁….”
그의 울대를 잡아 소리를 막은 뒤.
퍽.
손에 힘을 줘 터뜨렸다.
“키이이….”
풍선에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며 조직원의 눈빛이 흐려졌다. 나는 죽은 조직원의 상의를 벗겨 내어 내 옷 위에 걸치고 시체를 안 보이는 곳에 숨겼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 왕소군이 오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잠시 후, 언덕을 오르는 왕소군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척.
아주 천천히 허리를 90도 가까이 숙이며 포권을 했다. 구룡회주에게만 하는 외부인은 모르는 인사 방법이다.
“하오. 하오.”
술도 먹었겠다. 기분이 좋아 보이는 왕소군이 나를 조직원이라고 착각했는지 웃으며 인사를 받았다.
포권을 풀지 않고 상체를 천천히 일으키며 왕소군이 지나가는 순간을 기다렸다.
그와의 거리는 3발자국.
오른손을 왼손 소매에 넣었다.
2발자국.
쇠꼬챙이의 손잡이를 쥔다.
1발자국.
쇠꼬챙이를 빼 들고 그의 턱밑에 쑤셔 넣었다.
푸욱.
“케륵….”
쇠꼬챙이가 그의 턱을 뚫고 목덜미로 빠져나왔다.
입에서 피거품을 내뿜고 있는 왕소군의 눈빛이 흐려졌다.
그의 죽음을 확인하고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뛰었다.
***
30여 분쯤 지났을까?
구룡도의 경비 업무를 교대하기 위해 밖으로 나온 조직원은 쓰러져 있는 왕소군을 발견했다.
황급히 상태를 살폈지만 이미 절명한 상태였기에 그는 휴대전화로 자신의 상관에게 이와 같은 사실을 알렸다.
잠시 후, 구룡회의 모든 인원들이 구룡도로 나와 싸늘하게 식어 있는 왕소군을 보게 되었고 대부분의 간부들이 범인을 찾아 복수해야 한다며 울부짖었다.
물론 겉으로만 말이다.
속으로는 누구에게 줄을 설까. 혹은 어떻게 해야 자신이 구룡회주가 될 수 있을까. 같은 궁리에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구룡회 전체가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상황을 정리한 건 구룡회의 장로들이었다.
전대 구룡회주의 직속 부하였던 장로들은 일단 범인의 색출을 명령함과 동시에 구룡회주를 뽑는 절차에 들어간다는 걸 공표했다.
그 말을 들은 간부들의 마음속에 야망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구룡회에 처절한 권력 투쟁이 시작되는 장면이었다.
***
다음 날.
흔적을 지우기 위해 대중교통을 갈아타며 여기저기 이동한 탓에 새벽 늦게 숙소에 도착해 곤히 자고 있는 나를 최효석이 깨웠다.
“여어. 벌써 해가 중천이다. 점심 먹으러 가자.”
“흐음…, 형님 혼자 드시고 오시면 안 됩니까?”
“관광지에서 혼자 무슨 맛으로 밥을 먹어? 잔말 말고 빨리 따라오기나 하셔.”
“후아암….”
대충 씻은 뒤 최효석을 따라서 호텔 식당에 내려가니 향긋한 음식 냄새가 풍겨 왔다.
“아침에 먹어 봤는데 먹을 만하더라.”
“…아침 안 드신 거 아니었어요?”
“안 먹었다고는 안 했다. 혼자 먹으니까 맛없다고 했지.”
“어련하시겠습니까.”
그렇게 테이블에 앉아서 주문한 지 10분이 지나자 음식들이 나왔고 음식들을 맛보고서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최효석을 바라봤다.
“어라? 이거 뭔데 이렇게 맛있습니까?”
“그치? 존나 맛있지?”
“예, 깜짝 놀랄 만큼요….”
후루룩.
“우물우물, 오늘 몇 시 비행기지?”
“5시 비행깁니다. 점심 먹고 낮잠 좀 자다 나가면 딱 맞을 거예요.”
“서울 돌아가면 다시 시작이지?”
“네.”
할 일이 태산이다. SC에 들러서 신종민을 만나 돌아가는 것도 봐야 하고 현장 분위기도 살펴야 한다.
또한 만나자는 사람 역시 태산이었다. SC 그룹의 현장이 몰려 있는 경남과 전남 쪽 지역구 국회의원부터 시작해서 이지석 장관까지 면담을 요청해 왔다.
아무리 이빨 빠진 호랑이여도 재계 10위권의 SC 그룹이다. 오너에게 관심이 쏟아지는 건 당연하기도 하다.
사실, 1회차에서도 틈만 나면 정치인들을 만나고 다니기도 했다. 부탁할 일도 많고 부탁받을 일도 많았으니 말이다.
그렇게 만났어도 내가 불리해지니까 가장 먼저 거리를 둔 사람들이 정치인들이었고 참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동안 신종민을 대신 보냈으나 얼마 전부터는 계속 불평을 쏟아 내었다.
-새벽 6시에 출근해서 밤 11시에 퇴근합니다. 정치인들 그만 만나면 안 됩니까?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데 어쩔 수 있나?
내가 가서 정리해 줘야지.
방으로 돌아가 간단하게 씻은 후, 체크아웃을 하니 호텔 정문을 막고 있는 험악한 무리가 보였다.
“뭐야?”
“구룡회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구룡회?”
“홍콩의 조직폭력배라고 보시면 돼요.”
“겨우 깡패 새끼들이 저래도 돼? 홍콩은 경찰 없어?”
“그러게요….”
차마 최효석에게 몰래 살인을 하고 왔다고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어 나도 모르게 말끝을 흐렸다.
“어이!”
구룡회의 조직원 한 명이 우리를 불러세웠다.
“왜?”
“여권 내놔 봐.”
고압적인 태도에 욱했지만, 지금은 홍콩을 빠져나가는 게 우선이기에 꾹 참았다. 하지만 최효석은 아니었나 보다.
“뭐래?”
“여권 달라는데요?”
“지가 무슨 권리로?”
구룡회의 조직원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해 내 멱살을 잡아챘다.
“이 새끼가!”
빠아악!!
털썩.
“…….”
호텔 로비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열 명이 넘는 구룡회의 조직원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그들의 동료의 턱을 후려쳐서 기절시키다니.
“이 새끼 뭐야? 갑자기 멱살을 잡아채?!”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른지 모르는 것 같은 최효석이 오른손을 털며 불평했다.
“…형님, 왜 갑자기?”
“왜긴, 이 새끼가 감히 하늘 같은 우리 사장님 멱살을 잡았잖아.”
“혼자 온 것도 아닌데 마구잡이로 덤비면 어쩌려고요.”
“뭐 어때? 덤비면 전부 다 두들겨서 경찰에 넘겨주면 되잖아?”
구룡회 쪽을 보니 어느새 각자의 무기를 꺼내 들고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쟤네 맨손으로 온 것도 아닌 거 같은데….”
“흐흐, 다 덤비라 그래. 내가 다 죽여 줄 테니까.”
이 미친 형님을 어쩌면 좋냐.
“우와와!”
구룡회의 조직원들이 달려들었다.
콰직. 빠악.
엄지를 바짝 세워 달려온 순서대로 관자놀이를 찍고 눈두덩이를 찍었다. 쓰러진 놈들을 뒤로하고 다가오는 다른 놈의 낭심을 걷어찼다.
빠악.
자신의 소중한 곳을 부여잡고 쓰러지는 조직원의 턱을 후려치려는 찰나.
부웅.
내 머리를 노리고 짧은 쇠몽둥이가 휘둘러졌다.
피하는 대신 몽둥이를 휘두른 놈에게 바싹 다가가 머리 대신 어깨를 맞아 주고.
콱. 콱. 콱!
놈의 목젖에 중지를 세운 주먹을 연신 꽂아 넣었고 놈의 몽둥이를 빼앗았다.
서걱.
등에서 화끈한 느낌이 들었다.
뒤를 돌아보니 조직원 하나가 피가 묻은 중식도를 들고 있었다.
시팔 새끼.
놈이 다시 한번 칼을 휘둘렀고 옆으로 피하며 아까 주운 쇠몽둥이로 놈의 옆구리를 연신 후려쳤다.
퍼억. 퍼억.
“켁!”
콰직!
놈이 옆구리를 보호하기 위해 손으로 막았고 그때를 놓치지 않고 쇠몽둥이로 머리를 후려치니 눈을 뒤집으며 기절했다.
“그마안!”
상황이 심각해지자 구룡회의 간부로 보이는 놈이 소리쳤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아마 경찰에 신고가 들어간 듯하다.
구룡회 조직원들이 우리에게서 떨어졌다. 방금까지 살벌하게 싸웠던 터라 눈가에 살기가 흉흉했다.
멀쩡히 서 있는 놈은 다섯.
쓰러진 놈들은 아홉.
상황을 파악한 구룡회 간부가 화가 머리끝까지 났는지 내 앞으로 와 으르렁거린다.
“여긴 홍콩이다. 감히 구룡회에 덤비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나?”
“여기가 한국이었다면 너흰 모두 철창신세야.”
“하! 이러고도 살아 돌아갈 수 있을 거 같은가? 혹시 경찰을 믿고 있는 거라면 착각하는 거다.”
“그거야 두고 보면 알겠지.”
위이잉!
경찰차와 기동 버스가 사이렌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구룡회 간부가 우리를 보며 이죽거렸다.
“조용히 잡혀가. 괜히 반항하다가 두들겨 맞지 말고. 감옥에 얌전히 있으면 우리 애들이 선물을 주러 갈 거다.”
잠시 후.
기동 버스에서 내린 경찰들이 나를 체포하기 위해 찾아왔고 나는 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대기업 총수인 내 신분을 확인시켜 줌과 동시에 억울함을 피력했다.
어떻게?
“홍콩에 투자하기 위해 왔는데 칼까지 맞을지는 몰랐네요. 당장 투자를 철회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이다.
이 말을 들은 경찰들이 몸을 돌려 구룡회의 조직원들을 무차별적으로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퍽. 퍽. 퍽. 퍽.
그들의 간부 역시도 예외는 아니었는지 얼굴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두들겨 맞았다.
나는 잡혀가는 놈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역시 돈이 최고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