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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3회차! 재벌빌런-17화 (17/175)

#017화

“설마요. 부모님의 복수를 하려면 돈을 가지고 도망치기보다 실적을 내서 회사를 키워야 하는 거 아닙니까?”

“……!!!”

내 말에 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스티븐 첸.

영국인 아버지와 홍콩인 어머니를 둔 영국계 홍콩인이다.

내가 이 사람을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진데 첫째는 그는 나와 똑같이 백문에 원한을 가지고 있었고 둘째는 그의 능력이 아주 출중했기 때문이다.

그는 모종의 이유로 2006년, 골드만삭스를 그만두고 홍콩으로 돌아와 자신의 투자 회사를 차렸고 2030년대에는 포스트 워런 버핏이라 불리며 세계적인 투자 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다.

특히, 선물 시장에서의 그의 명성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고 당시 세계적인 기업을 이끌고 있던 나 역시 그를 만나기 위해 대기표를 들고 기다려야 했을 정도였다.

그 뒤는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 모든 것을 잃은 내가 자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2회차에 들어서자마자 최우선 순위로 이 사람을 같은 편으로 스카우트하기 위해 뒷조사에 착수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첸이 골드만삭스를 그만둔 이유를 알아낼 수 있었다.

바로 첸의 부모님이 운영하던 투자사가 백문 휘하 투자 회사인 중신그룹의 사기로 인해 망했다는 것과 그 절망감에 첸의 부모님이 동반 자살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다.

과정은 이랬다. 중신그룹의 계열사 중 하나인 중신 은행에서 유가에 관련한 파생 상품을 판매했다.

첸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스티브 컴퍼니는 유가 상승에 거액을 베팅했고 예상보다 더 높아진 유가 덕분에 투자 수익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났다.

첸의 부모님은 기쁜 마음으로 중신 은행 계좌에서 다른 은행으로 투자금과 수익금을 옮기려 했으나 거절당했다.

다름 아닌 이 돈을 탐내고 있던 중신그룹이 서류를 조작하여 스티브 컴퍼니가 유가의 상승이 아닌 유가의 하락에 베팅했다고 주장하며 계좌를 동결시켰던 것이다.

결국, 양측은 법원에서 맞붙었다. 결과는 어이없게도 스티브 컴퍼니의 패배.

증거는 완벽했고 증인도 많았다. 다만, 부족한 것은 권력이었다.

재판을 앞둔 중신그룹은 백문의 힘을 빌렸고 재판은 그들의 권력 앞에서 결코 공정하지 않았다.

그렇게 부모님을 잃은 첸은 월가의 골드만삭스를 그만두고 홍콩에 와 투자 회사를 차리게 된다.

중신그룹에 어떻게든 복수를 하기 위해서 말이다.

나는 이 정보를 가지고 그에게 접근하여 중신그룹에 복수하는 걸 도와주는 조건으로 그를 휘하로 거둘 수 있었고 학살과 방화로 그의 복수를 완성해 주었다.

중신그룹 사옥을 아무도 빠져나오지 못하게 폐쇄한 후, 빌딩을 통째로 불태웠다.

천 명이 넘는 중신그룹의 직원과 임원 그리고 오너 일가가 불에 타 죽었고 그 모습을 TV로 보던 첸은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물론, 이번에는 같은 방식으로 그의 복수를 도울 생각은 없다. 정정당당히 돈의 힘으로 복수를 도와줄 것이다.

“중신그룹에 복수하고 싶지 않습니까?”

“그,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알아보는 거야 어렵지 않죠. 이미 소문이 홍콩 바닥에 쫙 돌았는데요. 스티브 컴퍼니가 중신 은행에 사기를 당해 모든 것을 빼앗겼다. 라는 소문이요.”

“…….”

“심지어 어떻게 사기를 당했는지 과정도 알고 있습니다. 서류 조작이더군요.”

“맞습니다.”

“그렇다면 더욱이 투자를 받으셔야죠. 빨리 실적을 쌓아야 중신그룹에 복수할 힘을 얻는 것 아닙니까?”

복수라는 말을 들은 첸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곧 백기를 들었다.

“…알겠습니다. 투자금을 맞아 운용하겠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투자의 방향성을 설명해 줄 차례다.

오늘은 한국 기준으로 2008년 1월 10일.

투자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아닐지는 몰라도 몇 개월 후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알고 있거든.

“미스터 리….”

“이신후입니다. 풀네임이 부담스러우시면 그냥 엘이라고 부르시죠. 제 영어 이름입니다.”

“아, 죄송합니다. 엘은 어떤 투자 방식을 원하십니까? 투자는 제가 전문가지만 고객의 의견은 항상 존중해야 해서요.”

“첸 씨, 혹시 대폭락 시장에서 수익을 내려면 어떤 투자를 해야 합니까?”

“대폭락 말입니까? 80년대 멕시코나 90년대 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한 태국과 한국처럼 말입니까?”

“못하지는 않을 겁니다.”

“흠…. 일단, 풋옵션을 생각해 볼 수 있겠군요. 국가적인 위기라면 외환 거래 역시 고려해 봐야 합니다. 나머지는…. 해당 국가의 파생 상품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보험 상품도요.”

척.

서류 가방에서 보고서 한 부를 꺼내 첸에 앞에 올려놨다.

“한번 읽어 보세요.”

보고서는 앞으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론이 위험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 실제로 존재하는 보고서는 아니고 여기저기에서 기사와 학술지를 짜깁기해서 만들었다.

잠시 후.

보고서를 다 읽은 첸은 의뭉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여기 쓰여 있는 내용이 사실입니까?”

“사실일지 아닐지는 저도 모릅니다. 당장 내일 주가 지수도 오를지 내릴지도 모르는데 그만한 일을 예측하는 게 말이 됩니까?”

“그럼 갑자기 이걸 왜….”

“이 보고서의 내용이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투자를 진행해 주세요. 투자금 전부를요.”

“네?! 조금 전에는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원래 투자라는 게 반쯤은 도박 아닙니까? 저 보고서대로 된다면 엄청난 수익이 나는 거고, 안 된다면 약간의 투자 손실만 감수하면 됩니다. 해 볼 만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위험 부담이 너무 큽니다. 5%의 손실만 봐도 3억 달러입니다. 잘못되면 10.12%까지 투자 손실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첸.”

“예.”

“손해를 보면 그냥 제 손해로 남는 겁니다. 대신 이 투자를 성공시켰을 때 첸이 가질 명성과 돈을 생각하세요.”

첸의 동공이 마구 흔들리는 게 보였다.

고객의 요구에 따라서 투자했다가 손해를 본다?

이건 펀드 매니저의 명성에 아무 흠집이 나지 않는 일이다. 애초에 돈의 주인이 시키는 대로 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주위에서 말이 나온다면 한마디만 해 주면 된다.

나는 말렸다고.

반대로 엄청난 수익을 본다?

이건 대박이다. 엄청난 명성을 가질 기회와 수익금에 대비해서 받는 수수료는 엄청날 것이다.

결국, 첸은 내 말을 따르기로 마음먹었는지 긍정적인 답을 줬다.

“포트폴리오를 짜 보겠습니다. 보고서 내용을 가정해서 투자하려면 여러 가지를 살펴봐야겠습니다. 포트폴리오가 완성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축객령이다.

이제부터 일해야 하니까 방해 말고 나가라는.

“계좌 번호 주시면 오늘이라도 입금하겠습니다. 포트폴리오 완성하시면 저한테 보고하지 마시고 바로 투자하세요.”

“…엘은 정말 의심이 없군요. 한두 푼도 아니고 무려 60억 달러인데.”

“첸 씨가 돈을 빼돌릴 사람 같으면 여기까지 찾아오지도 않았습니다.”

첸은 절대 돈을 빼돌리지 않을 거다.

어떻게 아느냐고?

2회차에서 위기에 빠진 조직의 돈을 지키기 위해 자청해서 머리통에 총알을 맞은 사람이 바로 첸이니까.

그 정도로 신의가 있는 사람이다.

***

다음 날.

관광 삼아 홍콩 번화가를 돌아다닌 뒤, 저녁 시간이 되어 호텔 근처에 있는 딤섬을 파는 식당에 들렀다.

최효석이 오랜만의 여행에 입맛이 좋았는지 딤섬을 16접시나 비우는 기염을 토했다.

“사장님아.”

“왜요?”

“내가 아까 낮에는 가만히 듣고 있었는데 자금을 몰빵? 아니, 올인한 거지?”

“맞습니다.”

“너무 위험하지 않아? 투자의 투자도 모르는 나도 계란은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은 아는데.”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아니겠습니까?”

“그렇냐?”

“만약 잘못돼서 모조리 잃어도 다시 벌면 되죠. 저 아직 20댑니다. 돈 벌 시간은 넘쳐나요. 흐흐흐.”

물론, 투자금을 잃을 일은 없지만 말이다.

“하긴, 그것도 맞다. 생각해 보니까 사업한다고 찾아온 게 겨우 반년밖에 안 됐네?”

“그렇게 됐네요.”

“참, 세상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다. 군대 후배가 사업 시작한 지 반년 만에 대기업 총수가 되다니. 요즘 너 보면 미래에서 살다 온 사람 같아. 정말 내가 알던 신후 맞냐?”

“이건 비밀인데 형님에게만 특별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분위기를 잡았다.

“전 미래에서 살다 과거로 회귀했습니다. 그것도 3번이나요.”

“미친놈.”

최효석이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 게 보였다.

“얼추 다 먹은 거 같은데 나갈까요?”

“좀 부족하긴 한데 건강을 위해서 소식하지 뭐.”

“16접시 드시지 않았습니까?”

“저 쪼맨한 거 몇 접시 먹었다고 배가 차냐, 한국인은 뜨끈한 국밥 든든하게 먹어야지. 안 그러냐?”

전혀 동의하지 못하겠다. 국밥이 맛있는 건 인정하지만 16접시면 딤섬이 80개가 넘는다. 이 많은 양을 먹어 놓고 배가 부르지 않다니.

모르긴 몰라도 최효석의 뛰어난 신체 능력은 먹는 양에 비례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형님, 먼저 들어가세요. 저는 투자 때문에 첸을 한 번 더 만나 봐야겠네요.”

“그래? 알았어. 혹시라도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

“네.”

그렇게 최효석을 호텔로 돌려보내고 나는 뒷골목 어느 한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최효석에겐 비밀로 했지만, 이번 홍콩 방문의 목적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첸을 만나기 위해서고 다른 하나는 홍콩 구룡회의 회주인 왕소군을 죽이기 위해서다.

사실, 원한이 가득 차 있는 백문과는 달리 그에게는 원한이 없다. 오히려 내가 백문에 있을 당시 유일하게 내게 잘 대해 준 사람이라 약간의 고마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친 백문의 성향을 지닌 그는 몇 년 뒤, 구룡회를 백문에게 통째로 가져다 바치게 된다.

한국에서 나는 왕소군을 죽일 거냐. 혹은, 그냥 지나쳐 원 역사대로 홍콩이 백문의 영향력에 들어가게 둘 것이냐를 놓고 고민을 한 적이 있다.

후자를 선택하면 확실히 백문의 세력은 강화된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백문은 아직 홍콩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지 못했다.

그만큼 구룡회의 영향력이 홍콩 전반에 걸쳐 강하게 뻗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다만, 친 백문 성향을 가지고 있는 왕소군이 계속해서 구룡회와 백문을 합병시키려고 노력하고 있고 나중에는 이 계획이 성공해 백문은 홍콩을 통째로 집어삼키게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친 백문의 성향을 띄는 왕소군을 죽이기라도 한다면?

분명 구룡회 내부에서 권력 투쟁이 일어날 것이고 만약 반 백문 성향의 인사가 회주가 된다면 백문이 홍콩을 잡아먹는 게 늦춰질 거라 예상된다.

하나 걱정되는 점은 기껏 왕소군을 죽였는데 친 백문 성향의 인물이 구룡회를 이어받게 되면 말짱 도루묵이 된다는 점이다.

고민하던 나는 결국 결정을 내렸다.

그의 자리를 누가 이을지는 모르지만, 왕소군을 죽이기로 말이다.

왜 인생은 도박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일단 왕소군을 죽이고 내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또 죽이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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