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화
“누가 대장이야?”
잡혀 있는 놈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몰렸다.
아까 철사에 목이 졸려 기절한 놈이었다.
나는 그놈에게 다가가 입을 막은 수건과 철사를 풀어 줬다.
“저 새끼가 사주한 놈 맞아?”
손가락으로 한쪽 구석에 누워 있는 하석원을 가리키며 물었다.
“…….”
돈으로 엮인 사이에 의리가 꽤나 대단한지 아니면 두려운 구석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침입자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뭐, 이럴 때는 실력 행사가 가장 빠르지.
푹.
칼을 들어 하석원의 무릎에 박아 넣었다.
이런 곳에 칼이 박히면 상처가 낫는다고 하더라도 몇 년은 절름발이로 살아야 한다.
“읍!”
“……!!!”
하석원이 비명을 질렀고 지독한 손속에 침입자 우두머리가 놀랐는지 눈을 크게 떴다.
“마지막으로 다시 물어볼게. 이번에도 대답 안 하면 너 포함해서 여기 있는 전부 평생 절름발이로 살게 해 준다.”
우두머리가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저 새끼가 사주한 거 맞지?”
“맞다.”
“저놈 정체가 뭐야?”
“장관 보좌관….”
“그거 말고, 아무리 고위직이라지만 일개 공무원이 네놈들 같은 깡패 새끼들을 어떻게 알고 부려 먹어? 나 그렇게 순진한 놈 아니다.”
침입자의 우두머리가 입을 다물었다.
발설하면 안 되는 무언가가 있어 보인다.
“어차피 저놈 휴대폰 뒤지면 나오게 돼 있어.”
“끄응….”
우두머리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어차피 하석원의 휴대폰을 뒤지면 어디 소속인지는 금방 들통 날 게 뻔하기 때문이다.
“ST 그룹….”
“ST 그룹?”
“회장 아들이라고 알고 있다.”
“오호라, ST 그룹에서 보낸 해결사들이라……. 하긴, 역사가 짧아도 재벌은 재벌이니까.”
재벌들은 자신들이 직접 손쓰기 어려운 일에는 해결사들을 동원했다.
주로 깡패 출신 중에 뛰어난 인물이나 특수 부대 출신을 돈으로 회유해서 고용했는데 이놈들은 군 출신은 아니고 전부 깡패 출신이었다.
“이제 어떻게 할래?”
“뭘 말이냐.”
“너희 말이야, 이대로 돌아가면 큰일 나지 않아?”
“…어떻게든 되겠지.”
“뭘 어떻게든 된다는 거야? 이대로 돌아가면 죽는 거 알고는 있냐?”
순간적으로 우두머리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임무에 실패한 건 물론 정체까지 불어 버린 이상 어떠한 보복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살 방법을 알려 줄까?”
“알려다오.”
“자수해.”
“…감옥에서도 칼은 돌아다닌다.”
“그건 걱정하지 마.”
“……???”
“너희를 고용한 클라이언트가 망해 없어질 테니까.”
***
다음 날.
아침 8시가 되자마자 이지석 장관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여보세요.”
침입자들 때문에 잠을 못 자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 쉰 소리가 섞인다.
-밤새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목소리가 영 아닙니다.
“별일 없었습니다. 그냥 장관님께서 일전에 데리고 온 보좌관이 깡패들을 이끌고 쳐들어와서 백신을 내놓으라고 하더군요.”
-그, 그게 무슨!
“다 잡아서 묶어 놨으니 오셔서 보시면 알 겁니다.”
뚝.
전화를 끊고 소파에 등을 기댔는데 최효석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신후야.”
“예.”
“내가 아는 신후 맞냐?”
이런, 최효석이 아는 10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인데 최효석이 느낄 괴리감을 생각하지 못했다.
당연히 최효석으로서는 내가 다른 사람으로 보일 수밖에.
“그럼 아니겠습니까?”
“그 말 하는 게 아닌 거 알잖아.”
“…….”
“그래, 서로 칼질하고 싸울 때는 그렇다고 쳐. 서로 목숨 걸고 싸운 거니까. 그런데 실토하지 않는다고 무릎에 칼까지 박아 넣는 거 보니까 내가 아는 이신후가 맞나 싶어서 그런다.”
“저 맞습니다. 얼굴에 이신후라고 쓰여 있잖아요.”
“껍데기만 이신후일까 봐 그런다. 알맹이는 다른 사람이고.”
뭐야? 왜 이렇게 날카로워?
최효석의 불신이 커져 가는 게 보였다.
“저는 뭐 호굽니까? 죽이려고 칼 들고 찾아온 놈 몸 성히 보내 주다 보면 계속 찾아올 게 뻔하고 잘못하면 평생 칼질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아예 싹을 뽑는 게 희생자가 적어요.”
최효석이 피식 웃었다.
“하긴, 그 말도 맞다. 멀쩡하게 보내 주면 다시 찾아온다 이거지?”
“예.”
잠시 후.
전화를 끊었던 이지석 장관이 1시간도 안 돼서 찾아왔다.
그리고 그는 오피스텔 내부의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팔다리가 묶여 제압된 7명의 해결사.
그리고 한쪽 구석에 기절해 있는 하석원이 입과 무릎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이지석 장관이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하석원은 어제 해고됐다고? 이건 정부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믿을 리가 없다.
어제 하석원을 해고하자마자 알렸다면 상관없었으나 이제 와서 그렇게 얘기해 봤자 꼬리 자르기로밖에 보이지 않을 거다.
사실, 어제 하석원을 해고하면서 그의 배경을 떠올리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가 ST 그룹이라는 재벌가의 아들이란 걸 알고 있었고 또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 돈과 인력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빠른 처리를 위해 밤새도록 회의를 했고 대통령의 재가까지 받아왔다.
1조 원에 달하는 거금의 예산 집행 속도로는 엄청나게 이례적인 속도였다.
그러나 그런 논의는 이제 쓰레기통에 가져다 버려야 했다.
이제 문제는 어떻게 이신후를 설득하냐는 것이다.
“제가 일반인이었다면 어제 잡혀가서 죽도록 맞고 바다에 수장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어째 으스스합니다.”
“이신후 씨, 하석원 보좌관은 어제부로 해고되었습니다. 이건….”
“어라? 꼬리 자르긴가요? 뭐 이건 개인의 일탈이다? 이거 너무 진부한 대산데요?”
“정말 아닙니다. 부처에 확인시켜드릴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계약직 공무원인데 이러려고 위장 해고 한 것인지 제가 알 게 뭡니까?”
“…제가 어떻게 하면 믿어 주시겠습니까?”
이지석 장관이 절실하게 억울함을 피력했다.
“몇 가지 조건을 제시하겠습니다. 납득하시면 계약을 진행하시는 거고, 아니시면 그냥 나가시면 됩니다. 어차피 백신 팔아먹을 곳은 많으니까요.”
처음부터 백신의 판매처는 다양했다. 대체제가 전무한 상황이기에 팔고자 하면 어디서든 반길 게 뻔하다.
특히, 돈만 생각한다면 OS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MS사에 넘기는 게 가장 많이 받는다.
하지만, 밀고 당기는 협상의 과정이 싫었다. 지금 현재 내게 가장 중요한 건 시간이기 때문이다.
“…말씀해 보시지요.”
“첫째로 저기 하석원인가 뭔가 하는 놈을 제대로 처벌해 주십시오. 못해도 10년 이상, 아니 무기 징역이면 더 좋고요. 증거는 저기 묶여 있는 놈들이 알아서 제출할 겁니다.”
“그건 저도 원하는 바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VIP께서 이 사실을 알면 저 새끼를 사형 때리라고 할 겁니다.”
점잖았던 이지석 장관이 분노가 차올랐는지 비속어를 섞어 말했다.
“둘째로 저놈 재벌 집 아들인 거 같은데…. 아십니까?”
“예, 알고 있습니다.”
“혹여나 나중에 귀찮은 일 없었으면 합니다.”
“ST 그룹은 사세를 확장하기 위해 많은 채무를 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채권 대부분은 정부 소유의 산업은행에서 쥐고 있고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마지막으로 공급가는 세금 떼고 2조 원입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권리 일체를 넘겨주는 대가입니다.”
두 배로 올라 버린 가격에 이지석 장관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사정을 봐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지금이라도 나가시면 됩니다.”
이지석 장관이 입을 다물었다. 1조 원에 사다가 해외에다가 팔아먹으면 엄청난 이익이 남고 2조 원이면 못해도 본전이다.
심지어 백신을 공급하면서 외교적으로 크게 이득을 거둘 수도 있다.
결국, 이지석 장관이 이를 꽉 물고는 내게 물었다.
“잠시만 시간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얼마든지요.”
이지석 장관이 복도로 나가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통화를 마친 이지석이 들어오며 수정된 계약서를 건넸다.
“청와대의 재가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진행하시죠.”
“알겠습니다.”
수정된 내용은 인수 금액과 인수 주체였다. 기존 인수 주체가 지경부였던 반면에 지금은 산업은행으로 변경되었다.
아무래도 인수가가 조정되다 보니 주체 또한 바뀐 것 같다.
샤삭.
서명을 하니 이지석 장관이 설명을 덧붙였다.
“지금 산업은행장이 이곳으로 오고 있으니 잠시만 기다리시면 대금이 들어 있는 통장을 받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예, 그런데 하나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인수 대금을 어디서 마련하실지가 궁금합니다.”
이지석 장관이 구석에 있는 하석원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답을 줬다.
“VIP께서 ST 그룹 채권의 전량 회수를 명령하셨습니다. 인수 대금은 거기서 나옵니다.”
“ST 그룹이 어려워지겠군요.”
멀쩡한 대기업도 몇조 원이나 되는 채권 회수를 견디기 힘들다.
하물며 사세를 확장하기 위해 유보금이 거의 없다시피 한 ST 그룹이라면 큰 위기가 닥칠 게 뻔하다.
“자식놈의 잘못은 부모의 잘못이기도 하니까요.”
“그렇군요.”
이 정도면 만족할 만한 거래다.
“다만 혹시나 ST 그룹이 망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아무래도 조선업은 대량 고용의 상징이니까요.”
이지석 장관이 나랏일 걱정에 한숨을 내쉬었지만, 어차피 ST 그룹은 2013년도에 직원들에게 월급도 주지 못하며 망한다.
1회차에서의 나는 그런 ST 조선을 거의 공짜나 다름없이 인수했었고 말이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세계적으로 조선 호황 아닙니까? 잘 버텨 낼 겁니다.”
내년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론 사태 때문에 불황으로 바뀌겠지만요.
잠시 후.
산업은행장이 도착해서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대금이 들어 있는 통장을 내밀었다.
나 역시 이지석 장관에서 백신의 원본이 담긴 USB를 건네며 거래가 종료되었다.
다음 날부터 언론이 시끄러웠다.
-전 세계를 뒤흔든 바이러스, 백신 나왔다. 정부에서 구매 후 무료로 배포하기로….
-백신 개발자로 알려진 L. 그는 대체 누구인가….
-야당, 백신 구매에 2조 원은 너무 과하다. VS 여당, 당장 사태를 진정시키지 않으면 연간 수십 조 규모의 피해가 나올 것….
-검은 커넥션이 의심되는 백신 거래….
-산업은행은 어떤 돈으로 대금을 지급했나….
백신을 너무 비싼 값에 구매했다며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았던 것이다. 뭐, 언론에서 뭐라고 떠들든 나와는 상관없지만 말이다.
나는 지금 여의도의 한 증권 회사에서 창구 담당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공매도 말입니까?”
“네.”
“죄송하지만 개인 투자자는 공매도가….”
탁.
직원 앞에 통장을 내밀었다. 백신 판매 대금이 들어 있는 통장이었다.
잠시 통장을 살펴보던 창구 직원이 사색이 되어 내게 말했다.
“자, 자, 자, 잠시만 기, 기다려 주시면 지, 지점장님을 모시고 오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뛰어가는 직원의 뒷모습을 바라보니 문득 생각이 들었다.
역시 돈이 좋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