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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3회차! 재벌빌런-8화 (8/175)

#008화

ST 그룹이 조선 및 중공업 분야를 중심으로 한 현장 중심의 기업이라고 하더라도 현 상황을 모를 리 없다.

당연히 두 사람은 놀랐고 오 실장이 먼저 나서서 하석원에게 캐물었다.

“도련님께서는 백신을 개발한 사람이 누군지 아시는 겁니까?”

“네, 이신후라는 놈입니다.”

“그 사람의 정체도 알고 계시는지요.”

“별거 없는 놈입니다. 그냥 어쩌다가 백신을 개발한 운 좋은 놈입니다.”

오 실장은 하석원의 말을 믿지 않았다.

국내를 비롯해 세계 유수의 IT 기업이 총력을 다해도 개발하지 못했던 백신이다.

그런 엄청난 업적을 이룬 사람이 평범할 리 없기 때문이다.

“지경부에서 먼저 접촉했는데 어떻게 우리가 먼저 차지할 수 있다고 하시는 겁니까?”

“그놈이 백신의 권리 일체를 대가로 1조 원을 요구했습니다. 이지석 장관이 내부 협의를 하기 위해 일단 돌아갔습니다만 아마 내일이면 지경부에서 그놈한테 연락할 겁니다.”

오수홍 실장의 촉이 움직였다.

1조 원. 엄청난 거금이지만 백신을 얻는 비용으로는 괜찮은, 아니 엄청나게 싼 값이다.

인수해서 제대로만 운영한다면 앞으로 엄청난 이익이 기다리고 있을 게 분명했다.

거기까지 생각한 그가 하 회장에게 의견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회장님, 1조 원에 백신의 권리를 가져올 수 있다면 이건 엄청나게 남는 장사입니다. 어쩌면 그룹의 채무를 전부 해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가?”

오 실장은 하 회장의 말투에서 조그마한 불만을 느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주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게 마름이라고 오 실장은 하 회장의 불만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깨달았다.

“회장님, 혹시 1조 원이….”

“아깝다. 좀 깎을 방법 없을까? 본사 임원 자리를 준다든지 아니면 적당한 회사와 교환을 한다든지. 어떨 거 같냐? 오 실장아.”

오 실장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ST 그룹의 핵심 계열사는 조선, 상선, 중공업이다. 나머지는 규모가 작거나 이제 겨우 시작하는 단계일 뿐이었다.

핵심 계열사를 내준다면 몰라도 백신을 개발한 천재가 그런 밑지는 거래를 할 리가 없다.

“힘들다고 봅니다.”

“아버지, 제가 백신을 가져오겠습니다.”

오 실장이 부정적인 의견을 냈지만 동시에 하석원은 백신을 가져온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평소라면 당연히 하석원의 의견을 들어 보지도 않았을 아니, 아예 듣지도 않았을 하 회장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아들의 의견에 기꺼워했다.

그동안 밥벌레라고만 생각했던 아들이 큰 건을 물어 온 것이 대견했고 1조 원이란 돈이 정말 아까웠기 때문이다.

“오호라, 어떻게 가져오겠다는 게냐?”

“한국 땅에서 제깟 놈이 대단해 봤자 아니겠습니까? 사람 좀 끌고 가서 얘기 좀 하고 돈 좀 쥐여 주면 알아서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겠습니까?”

“대쪽 같은 놈이라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럼 산에 묻어 놨다가 한두 시간 후에 꺼내 준 다음 다시 물어보겠습니다. 그놈이 계약서에 사인할 때까지 반복하면 됩니다. 세상에 자기 목숨보다 소중한 건 없는 법이니까요.”

“…네놈이 마음을 독하게 먹었구나.”

당사자의 목숨을 파리처럼 여기는 전형적인 재벌의 수법이다.

오 실장만 하더라도 그룹을 대표해서 이 같은 방법을 몇 번이나 행했으나 이번만큼은 하던 대로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 있느냐?”

“예! 믿어 주십시오. 이 이야기의 마지막은 해피 엔딩이 틀림없습니다.”

“만약 네가 제대로 한다면 그룹의 후계자로 공표함과 동시에 지주 회사의 지분 5%를 주마. 어떠냐, 할 수 있겠느냐?”

“감사합니다. 아버지, 꼭 해내겠습니다.”

하석원이 기대에 가득 찬 눈빛으로 하 회장을 바라봤다.

“회장님! 정부에서 주시하고 있는 건인데….”

오 실장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오 실장.”

“예, 회장님.”

“내일 아침이면 지경부에서 채갈 텐데 오늘 안에 1조를 구할 수 있나?”

“그룹의 쌈짓돈을 꺼내고 모자란 돈은 어음으로 어떻게든….”

그룹의 비자금인 쌈짓돈이란 말이 나오자 하 회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만큼 아깝다는 반증이었다.

“이번만큼은 석원이 말대로 하자고. 저놈이 지금이야 그냥 밥버러지지만 어렸을 때는 꽤 총명하지 않았나?”

하 회장이 하석원의 어린 시절까지 입에 담으며 반대 의견을 냈다.

오 실장은 본능적으로 일이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지만 하 회장이 이렇게까지 나온 만큼 무조건 반대할 수만은 없었다.

“예, 그럼 도련님의 계획대로 진행하는 거로 하고 저는 저대로 따로 조사해 보겠습니다.”

“수고해 주게.”

오 실장이 고개를 숙이며 서재에서 나갔고 하석원이 비릿하게 웃으며 오 실장을 바라봤다.

***

자정이 조금 지난 시간.

나와 최효석은 오피스텔에서 불을 끈 채 따로 설치한 CCTV를 보고 있었다.

“오늘 올까?”

“아마도요. 백신을 노린다면 오늘밖에 시간이 없거든요.”

“괜히 힘 빼는 거 아닌가 싶다. 차라리 경찰을 불러서….”

“불러서 뭐라고 합니까? 조금 있다가 나쁜 놈들이 쳐들어온다고요?”

“하긴, 맞네.”

부우웅.

창밖에서 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고 CCTV를 확인하니 검은색 봉고차 두 대와 승용차 한 대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준비하죠.”

최효석이 설치한 부비 트랩을 점검했고 나는 옷장을 뒤져서 예전에 사 뒀던 방검복을 꺼내 왔다.

척.

“이게 뭐냐?”

“보면 몰라요? 방검복입니다.”

“그러니까 깡패 새끼들 상대하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저놈들이 깡패 출신인지 특수 부대 출신인지 어떻게 압니까? 막말로 UDT 선배일 수도 있습니다.”

최효석이 내 말을 듣더니 방검복을 착용했다.

깡패들이라면 몰라도 군인 출신이면 조심해야 하는 걸 그도 알기 때문이다.

잠시 후.

철컥.

침입자들이 올라왔는지 잠겨 있던 문이 조용히 열렸다.

침입자들은 나와 최효석이 숨어 있는 거실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발소리를 들어 보니 7명이었다.

‘개새끼들이 신발도 안 벗고 들어오네.’

침입자들이 다가옴에 따라 최효석과 나는 더욱 숨을 죽였고 그들이 거실의 경계는 넘는 순간 최효석이 손에 쥐고 있던 철사를 잡아당겼다.

복층으로 향하는 계단 제일 밑에 묶여 있던 철사가 단숨에 팽팽해졌다.

“어?”

순식간에 앞에 있던 침입자가 철사에 발이 걸려 넘어졌고 나는 재빨리 튀어 나가 뒷사람의 울대를 향해 중지를 세운 주먹을 찍었다.

콰직.

“케엑!”

제대로 들어갔다. 순간적인 충격에 울대를 맞은 침입자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대로 몸을 빼서 침입자를 넘어뜨린 철사를 잡아 넘어진 남자의 목에 걸어 숨을 졸랐다.

“켁, 켁!”

“이 새끼가!”

“빨리 가!”

침입자들이 목이 졸리고 있는 자신들의 동료를 구하기 위해 앞으로 나섰을 때 최효석이 펜치로 옆에 있던 철사를 끊었다.

쿵.

그러자 오피스텔 천장에 걸려 있던 커다란 압력 밥솥이 떨어져 침입자 한 명의 머리를 강타했다.

밥솥에 맞은 침입자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눈을 뒤집어 까고 기절했다.

최효석이 뒤로 물러나며 칼날이 얇고 짧은 나이프를 꺼내 자세를 취했다.

나 역시 철사로 목을 조른 남자가 기절한 걸 확인한 후 나이프를 꺼내며 거실 한편으로 물러났다.

순식간에 3명이 제압된 탓에 4명이 남은 침입자와 나와 최효석이 대치를 시작했다.

그렇게 1분이나 지났을까? 최효석이 먼저 나섰다.

독이 오를 대로 오른 침입자들이 회칼을 꺼내 들었는데도 그는 방검복을 믿고 침입자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저러라고 사 준 방검복이 아닌데….

이렇게 되면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법. 나 역시 침입자들에게 몸을 날렸다.

내가 뛰어 들어가자 한 명이 내 복부를 향해 칼을 내밀었지만 방검복에 막혔다.

“뭐야?!”

덥석.

칼이 들어가지 않자 당황한 남자의 팔을 그대로 잡아끌어 중심을 무너뜨렸다.

피슛, 피슛, 콰직.

그리고 칼을 두 번 찍어 전완근을 끊고는 칼 손잡이로 턱을 후려쳤다.

자신의 동료가 당하는 것을 보자 눈이 뒤집힌 침입자가 내게 뛰어들며 어깨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쒸익.

몸을 숙여 피함과 동시에 침입자의 허벅지, 대퇴근에 칼을 그었다.

피슉. 피슛.

“끅….”

침입자가 비명을 지르기 전에 목울대를 잡아 졸랐다.

기절시키기 위함이다.

“휴….”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침입자 두 명을 정리한 최효석의 모습이 보였다.

피식.

누가 뭐라 하지 않았는데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고 웃었다.

“이야, 이신후 중사, 아직 안 죽었는데?”

“최효석 상사님은 좀 죽으셨는데요? 그거 봐요. 방검복 입어야 한다니까.”

자세히 보니 최효석의 상의 여기저기가 갈라져 있었기에 타박을 줬다.

“안 입었으면 알아서 피했지. 입었으니까 써먹은 거지. 흐흐.”

“그나저나 이놈들 묶어 놓을 만한 게 있나요?”

“저기 철사 남은 거로 묶어 놓으면 되겠는데?”

“그럼 좀 부탁드립니다.”

“이놈들 보낸 놈 잡아 오게? 같이 왔을까?”

“형님, 부자가 왜 부자가 됐는지 아십니까?”

“먼 소리야? 나이 마흔에 홀어머니 모시면서 전세 사는 놈이 부자 되는 방법을 어떻게 알아?”

“부자는요.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심지어 혈육도요.”

말을 마치고 오피스텔을 나섰다.

내 생각이 맞는다면 사주한 놈이 근처에 있을 거다.

숨어서 주차장을 살펴보니 놈들이 타고 온 봉고차 두 대가 아무렇게나 세워져 있었다.

“저기 있을 것 같은데….”

봉고차와 뒤에 있는 검은색 승용차가 눈에 띄었다.

선팅이 짙게 되어 있어 안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0회차 인생에서 백문의 암살자로 활약하면서 기른 강력한 직감이 승용차에 사람이 있을 거라고 알려 줬다.

차 뒤로 몰래 다가가 뒤쪽 유리로 안을 살펴보니 사람이 타고 있었다.

보자마자 확신이 들었다. 이놈이다.

재빨리 차 앞쪽으로 다가가 운전석 유리를 팔꿈치로 깨부쉈다.

“뭐, 뭐야!”

당황한 놈의 얼굴이 보였고 나는 놈의 멱살을 잡아 운전석 바깥으로 한 번에 끌어내렸다. 유리에 긁혔는지 놈의 얼굴 여기저기에서 피가 새어 나왔다.

“역시 네놈일지 알았다.”

“너 이 새끼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진부한 대사 그만 치고 조용히 그냥 따라올래? 아니면 맞고 기절한 뒤에 나한테 끌려갈래?”

놈의 눈동자가 돌아가는 게 보였다.

왜 이런 새끼들은 항상 생각하는 게 똑같나 모르겠다.

콰직.

중지를 세운 주먹을 놈의 인중에다가 냅다 꽂았다. 순간적으로 감정이 실렸는지 힘 조절을 못 해 놈의 앞니 두 개가 부러졌다.

나는 눈이 뒤집혀 기절한 놈을 들쳐 메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끄응, 이거 체력 단련을 조금 해야겠어.”

생각보다 무거운 무게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

한바탕 난리가 난 오피스텔 내부를 정리하며 시간을 보내니 침입자들이 하나둘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으으.”

칼에 베이고 찔린 자상 때문에 철사에 목이 졸린 놈을 제외하고는 상태가 영 좋지 못해 보였다.

“일어났냐?”

“읍!”

한 녀석이 소리를 질렀지만 최효석이 수건으로 입을 막아 놔 소리가 퍼지지는 않았다.

“지금부터 소리 지르는 새끼는 아킬레스건을 끊어 준다. 못 끊을 것 같으면 소리 질러 보든가.”

나는 놈들이 가져온 회칼을 이리저리 돌리며 놈들을 바라봤다.

즐거운 심문 타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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