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화
2시간 후, 최효석이 사무실로 돌아왔다.
“미안하다. 컴퓨터가 다 깡통이 돼 버려서 난리도 아니야. 거래처별로 수기로 세금계산서 받으러 다닌다 요새.”
“괜찮습니다.”
저 때문에 그렇게 된 거니까요.
“그나저나 이렇게 온 걸 보면 전에 얘기했던?”
“네.”
가지고 온 오피스텔 부동산 매매 계약서를 보여 줬다.
“진짜 있었구나, 50억이.”
그는 어떻게 50억을 만들었는지 묻지 않았다.
“네.”
“알았다. 나가자.”
“사직서를 제출해야 하지 않습니까? 명색이 회사 부장님인데 인수인계도 안 하고요?”
“네가 찾아오면 바로 나가겠다고 다 말해 놨다. 사직서도 제출했고 인수인계도 끝마쳐 놨어. 그냥 나가면 돼.”
이 대책 없는 양반을 어쩌면 좋을까.
“제가 거짓말이라고 하면 어쩌려고 그랬습니까?”
“글쎄, 그냥 믿음이 갔어. 만약 거짓말이라고 해도 내 퇴직금 가지고 같이 치킨집이나 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싶었고.”
“…아직도 대책 없이 사시는 건 똑같습니다. 사업 계획서는 확인 안 하셔도 됩니까?”
내 말에 최효석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봐도 몰라. 알잖아, 나 이런 거에는 까막눈이나 다름없는 거.”
“그럼 뭘 믿고 따라오시겠다고 한 겁니까?”
“그냥 이신후니까. 이신후가 나를 필요로 한다니까 따라간다는 거지.”
“…….”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 형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걸까.
“가자. 점심도 못 먹었지? 요 앞에 곰탕집 맛있다. 밥은 사 주는 거지, 사장님?”
피식.
최효석의 능청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서 미소가 지어졌다. UDT 때도 저 긍정적인 성격이 얼마나 의지가 되었던지.
“가시죠. 특으로다가 사 드릴라니까.”
“어이쿠, 감사합니다. 사장님.”
***
잠시 후.
곰탕집에서 식사를 마친 후, 최효석에게 강북구 오피스텔의 주소를 알려 주고 이현준의 사무실을 찾았다.
일전에 의뢰한 법인 등록은 완료되었고 이번에는 물건을 팔기 위해서였다.
“안녕하십니까.”
들어가며 인사를 건네자 이현준이 반가운 기색을 보였다.
“오셨습니까. 전화해 주셨으면 커피라도 사다 놓았을 텐데요.”
“괜찮습니다. 일전의 일 처리를 잘해 주셔서 감사의 의미로 선물 하나 드리려고 왔습니다.”
“예? 선물이요?”
나는 이현준의 책상 위에 있는 2대의 PC를 바라봤다. 1대는 원래 있던 데스크톱이었고 다른 1대는 집에서 가져온 듯한 노트북이었다. 아마 기존에 있던 PC가 깡통이 되어 집에서 급하게 가져온 듯하다.
“저기 있는 컴퓨터, 요즘 유행한다는 바이러스 때문에 깡통이 된 겁니까?”
“예, 아주 죽겠습니다. 일이 별로 없으니까 다행이지 일이 많았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이현준이 일이 없다는 사실이 쑥스러운지 웃으면서 답했다.
“고쳐 드리겠습니다.”
“예?”
망가진 PC로 다가가 전원을 켠 후에 단자에 USB를 꽂았다. 그러자 PC의 화면이 들어오며 곧 OS의 시작 화면이 들어왔고 조금 있다가 PC가 완전히 켜졌다.
“어?!”
이현준이 모니터를 들여다봤다. 그동안 켜 보려고 별의별 짓을 다 해 봤는데 이렇게 쉽게 고칠 수 있다는 게 신기한 모양이었다.
그가 마우스를 들어 컴퓨터를 확인했다.
아마도 유실된 자료가 있을까 확인을 하는 것 같았다.
“…어떻게 고치신 겁니까?”
이현준의 물음에 USB를 들어 보여 줬다.
“백신이요.”
“이걸 어떻게 구하셨습니까?”
어안이 벙벙해 보이는 이현준이 내게 물었다.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요?”
“열심히.”
“…….”
“그럼 선물도 드렸으니까 이만 가 보겠습니다. 아! 혹시나 해서 그러는데 제가 백신 만들었다는 사실은 비밀입니다. 여기저기 고쳐 달라는 사람이 많으면 귀찮아서….”
말을 마치고 사무실을 나갔다.
물론, 백신에 대해서 비밀이라고 말한 거는 거짓말이다.
오히려, 나는 이현준이 백신 개발 사실을 퍼뜨려 주는 걸 원한다.
홍보가 되어야 고객님들이 줄을 서지 않겠는가.
혹시 몰라 사무실 문에 귀를 가져다 대 보니 역시나 백신 개발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 백신이요!”
“…….”
“예?? 아뇨아뇨, 이번에 퍼진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찾았다고요.”
“…….”
“사기 아니라니까요! 제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어요.”
“…….”
“누구냐고요? 제 의뢰인 중에 이번에 법인 등록…….”
이 정도면 되었다. 내 생각대로 이현준은 자신의 아버지인 이지석 장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제 집에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찾아올 듯싶었다.
***
예감은 여지없이 들어맞았다.
강북구 오피스텔에 도착하고 최효석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들어온 지 채 2시간이 지나지 않아 벨이 울렸다.
띵동. 띵동.
“제가 나가 볼게요.”
“그랴.”
최효석이 소파에 누워 있는 자세로 엉덩이를 긁으며 대답했다.
회사에서 나온 최효석은 군 생활을 함께할 때의 재미있고 능글맞은 사람으로 돌아갔다.
문에 다가가 유리 구멍으로 살짝 보니 누가 봐도 높은 사람처럼 보이는 몇 명의 남자가 양복을 빼입고 서 있었다.
“누구십니까?”
이들이 찾아올지는 알고 있었지만 마치 몰랐다는 듯이 연기를 했다.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일종의 기 싸움이다.
“이신후 씨 맞으십니까?”
“네, 맞습니다만 누구십니까?”
“여기 문 좀 열어 주세요. 이신후 씨를 보고 싶어 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것 봐라? 부탁하러 왔으면서 고개가 빳빳하네?
“잡상인은 사절입니다. 회의 중이었으니 그만 가 주세요.”
“이보세요!”
서 있던 남자가 잡상인이라는 말에 발끈했는지 소리를 버럭 질렀다.
“경찰 부를까요? 아니면 조용히 가실래요?”
“…끄응, 지금 이러시는 거 후회하실 겁니다.”
후회는 무슨. 백신 못 구해 가면 니들이 X 되는 거지.
서 있던 남자가 안주머니에서 명함을 한 장 꺼내더니 유리 구멍에 가져다 댔다.
명함에 ‘지식경제부 장관 정책 보좌관 하석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흔히들 정책 보좌관이라고 하면 헷갈리는데 이들은 장관이 임명하는 계약직 공무원으로서 일종의 수행 비서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평범한 비서라고 볼 수는 없는 게 이들은 보통 2급에서 4급 공무원의 직위를 가지고 있는 고위 계약직이다.
뭐, 그렇다고 해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그래서요?”
“예?”
“당신이 정책 보좌관인 건 알겠는데 명함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제가 어떻게 압니까? 또 사실이라고 해도 제가 당신을 만나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그, 그런….”
“경찰 부르기 전에 돌아가세요. 이번에는 진짜 부릅니다.”
보좌관이 당황할 때 뒤에서 중후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신후 씨, 제 아들 녀석한테 연락받고 왔습니다. 저 지경부장관 이지석입니다.”
이지석 장관의 얼굴을 확인하고 문을 열어 주었다.
띠리링.
도어 록 버튼을 누르고 문을 여니 기 싸움을 한 보좌관이 나를 불편하게 쳐다봤다.
그 옆에 있는 이지석 장관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네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지석입니다.”
“아…. 예, 일단 들어오시죠.”
우르르.
장관과 보좌관 2명, 그리고 나와 최효석까지 총 5명의 남자가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오니 20평형 오피스텔이 꽉 찼다.
중앙에 있는 소파에 나와 이지석 장관이 마주 보고 앉았고 눈치 빠른 최효석은 내 뒤에 조용히 섰다.
“사무실이 아직 아담합니다. 아드님한테 들으셨으면 아시겠지만 이제 창업해서요.”
“하하, 원래 시작은 다 이렇게 시작하는 거죠. 아! 제 아들놈 사무실 첫 손님이시라고요? 사실, 아들이라고 하나 있는 놈이 밥벌이도 못 하는 꼴을 보는 게 마음이 좋지 않았는데 감사드립니다.”
“아드님이 열심히 하니 곧 잘될 겁니다. 사법연수원 수석 졸업생 아닙니까.”
“그놈의 단 하나뿐인 자랑거립니다.”
여기까지가 서로의 인사치레.
이지석 장관의 얼굴이 진지해진 걸 보니 본론을 꺼낼 것 같다.
“요즘 퍼지고 있는 바이러스의 백신을 개발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소식을 듣자마자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이렇게 달려왔습니다.”
“맞습니다.”
일부러 단답형으로 대답했지만, 이지석 장관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혹시 국가를 위해 제공하실 생각은 없습니까?”
“뭘요? 백신을요?”
“네, 지금 한국은 사실상 기능이 멈췄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국가 행정망은 마비되었고 기업들은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신후 씨가 개발한 백신이 꼭 필요합니다. 부디 조국을 위해서라도 부탁드립니다.”
이지석 장관이 애국심을 자극하는 장황한 말과 함께 머리를 숙였다. 장관이라는 높은 위치를 감안하면 대단히 자세를 낮춘 모양새다.
아마, 내가 군인 출신이라는 걸 알아보고 와서 일부러 애국심을 자극하는 거 같다.
하지만, 4번째 인생을 살고 있는 내게는 통하지 않는다.
지난 3번의 인생에서 국가에 데인 게 터무니없게 많았거든.
“혹시 국가를 위해 제공해 달라는 말이 무료로 제공해 달라는 겁니까?”
“완전히 무료는 아닙니다.”
이지석 장관이 몇 가지 조건을 내게 제시하기 시작했다.
“이제 사업을 시작하셨다 들었는데 지경부 이신후 씨의 회사를 협력 업체로 지정하겠습니다. 또 필요하시다면 산업은행을 통해 자금 지원을….”
“싫습니다.”
“예?”
이지석 장관이 이렇게 단호하게 거절당할지는 몰랐던지 당황하는 게 보였다.
“싫습니다. 제가 왜 무료로 공개해야 합니까?”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조국을 위해서입니다.”
“나라가 해 준 게 아무것도 없어서요.”
“직업군인 출신 아닙니까? 그것도 특수 부대 출신이라고 들었습니다만.”
“부사관으로 나라를 위해 존나게 봉사했죠.”
이건 팩트다. 2006년, 대한민국 특수전 부대의 부사관은 하사관 기준으로 이백만 원 남짓 되는 월급을 받으며 국가를 지키기 위해 가혹한 훈련을 견딘다.
심지어 이백만 원의 월급도 위험 수당을 포함해서 각종 수당을 전부 때려 넣어서 맞춘 월급이다.
사실상 애국심이 없으면 하기 힘든 직업이라고 보면 된다.
내가 한마디도 지지 않으니 이번에는 문 앞에서 나와 신경전을 벌였던 보좌관이 쏘아붙였다.
“이봐! 그깟 백신 우리라고 못 만들 것 같아!? 어차피 나중에 다 풀릴 거 먼저 좀 쓰자고! 그럼 우리가! 어! 신문에도 나오게 해 주고 지금 시작한 사업도 도와주고 해 준다잖아! 당신 잘 생각해! 이만한 기회가 쉽게 오는 줄 알아?!”
저 개소리를 듣고 이지석 장관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부끄러웠는지 그가 손을 들어 자신의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그럼 당신이 나서서 만들면 되겠네.”
“무, 뭐?”
“당신이 여기저기 협력 업체 만들어 준다고 찔러서 백신 개발시키라고.”
“이 사람이!”
하석원이라고 했나? 저 새끼는 내가 따로 기억한다.
“그만!”
언성이 높아지자 이지석 장관이 중재했다.
“제가 사과드리겠습니다.”
장관이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고 보좌관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괜찮습니다.”
“그럼 한번 여쭤보죠. 우리가 어떻게 하면 신후 씨가 백신을 제공하시겠습니까?”
왼손을 들어 검지와 엄지의 끝을 마주쳤다.
“돈이요.”
시드 머니가 필요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