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화
이재현에게 뜯은 50억을 명동에서 현금으로 바꿔왔다.
원래 이만한 돈을 바꾸려면 신원이 확실해야 했지만, 명동 사채 시장에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이 있어 비교적 수월하게 바꿀 수 있었다.
그렇게 수수료를 떼고 내 손에 들어온 금액은 49억.
돈만 바꿔 주는데 2%라는 미친 이자를 떼는 곳은 전 세계에서 명동이 유일할 것이다.
나는 그 돈을 가지고 강북구 수유동에 있는 6층짜리 오피스텔을 통째로 사들였다.
분양을 받은 사람에게는 웃돈을 줘 재매입했고 아직 분양이 되지 않은 호수는 직접 분양을 받았다.
세를 줄 생각은 전혀 없었고 순수하게 아지트 격으로 구입했다.
나중에 하나둘 같이 움직이는 사람들이 생기면 숙소로도 사용하거나 당장 사무실 용도로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일단 나는 맨 꼭대기 층 가장 커다란 평수의 오피스텔에 자리 잡았다.
사무실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는데 복층으로 이루어져 있어 공간 활용에 있어 꽤나 유용했다.
그곳에서 나는 컴퓨터를 두드리고 있다.
내가 세운 3회차 마스터플랜의 시작을 위해서였다.
탁. 탁. 탁. 탁.
“흐음….”
그렇게 오피스텔 구석에서 밤새 컴퓨터를 두드린 지 벌써 3일째.
그동안, 잠도 자지 않고 컴퓨터만 두들기며 시간을 보냈다.
심지어 씻지도 않았고 밥도 모니터 앞에서만 먹었다.
그런 3일간의 노력이 이제 곧 열매를 맺을 참이었다.
“끝났다!”
나는 키보드에서 손을 떼며 엔터 키를 눌렀다.
검수 프로그램이 코딩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0%… 10%… 30%… 50%… 80%… 100%. Complete.
완료 메시지가 뜬 걸 보자 이제 끝이라는 생각에 미뤄 왔던 피로가 함박눈이 쏟아지듯 한꺼번에 몰려왔다.
“으아아….”
기지개를 켜니 어깨가 뻐근하다. 일을 최대한 빨리 끝내기 위해 조금 무리했나 보다.
3일 동안 잠도 자지 않고 만든 건 2회차에서 내 부하 중 한 명인 빅터이바노프가 만든 ‘크레이터 붐’이라는 컴퓨터 바이러스다.
내가 크레이터 붐을 퍼뜨린 시기는 2036년이다.
당시에 나는 이너서클과의 전쟁에서 밀리자 한창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때였다.
그렇기에 이 바이러스를 퍼뜨려 전 세계의 전산망을 3개월 동안 멈춰 세웠다.
일개 컴퓨터 바이러스가 어떻게 그게 가능했냐고?
그건 바로 이 바이러스가 가지는 특유의 전파력과 파괴력 때문에 가능했다.
크레이터 붐은 유저가 따로 다운로드를 하지 않고 감염된 웹사이트에 접속하기만 하면 PC에 잠입했다.
그 후, 3일 동안 해당 PC와 한 번이라도 접촉한 모든 PC에 자동으로 퍼진 후, PC의 파워를 자극하여 컴퓨터의 본체를 폭파시켰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일개 바이러스가 PC 자체를 폭파시켜 버리다니.
만약, 당시에 탈레반이나 IS 같은 테러 단체가 남아 있었다면 그들의 영입 순위 1순위에 내 이름이 올라갈 게 분명했다.
그렇게 우리 조직이 만든 컴퓨터 바이러스 ‘크레이터 붐’은 세계 전산망을 3개월이나 멈춰 세웠고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엄청난 혼란을 가져왔다.
또한, 컴퓨터의 폭발로 인한 화재 사고 때문에 사상자도 엄청나게 나온 걸로 알고 있다.
지금 책상에 앉아 생각해 보니 당시의 나는 빌런이라고 불려도 당연한 미친놈이 맞다.
물론, 지금 내가 만들어 낸 아니, 다운그레이드시킨 크레이터 붐은 컴퓨터를 폭파시키지도 않고 개인용 컴퓨터는 감염시키지 않는다.
오직 기업용과 관공서용 PC만 감지하여 감염시키고 깡통으로 만들 뿐이다.
사실, 3일이나 밤을 새운 이유도 이러한 다운그레이드를 위해서였다.
이제 바이러스를 퍼뜨리기만 하면 된다.
나는 망을 4번이나 우회하여 마카오에 있는 카지노의 홈페이지 몇 군데에 바이러스를 업로드 시켰다.
“으아! 진짜 끝났다.”
그렇게 쏟아지는 잠에 굴복해 침대로 가지도 못하고 의자에 걸터앉은 채 잠이 들었다.
***
3일 후.
마카오에서 발생한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했다.
특히, 한국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퍼졌는데 그만큼 PC 기반의 전산망이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잘 깔려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기업들은 PC에 저장해 놓은 자료들을 지키기 위해 깡통이 된 PC가 발견되면 바로 랜선을 뽑았고 최대한 많은 자료를 USB와 CD 같은 외부 매체로 이동시켰다.
이건 관공서와 은행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러스가 퍼지는 속도가 상상을 초월했다.
본래 바이러스란 특정 프로그램을 내려받음으로써 퍼지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다운로드를 하지 않아도 바이러스가 퍼졌던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어떤 경로로 퍼지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점이었고 말이다.
그렇게 바이러스가 발견되고 겨우 이 주일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기업들과 관공서, 그리고 은행이 보유한 거의 모든 PC가 깡통이 되었다.
관공서는 민원인들의 요청을 처리하지 못했고 기업들은 업무에 심각한 차질을 겪었다.
결국, 대부분의 관공서와 기업들의 직원들이 감염되지 않은 개인용 OS가 깔린 PC를 사용하기 위해 재택근무를 실시하게 되었다.
문제는, 은행이었다.
민감한 개인정보를 다루는 은행의 전산 특성상 원천적으로 재택근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결국, 예금, 대출, 인출 등 은행의 모든 업무가 중단되었다.
돈에 관련된 업무이니만큼 전산망을 이용한 정확도를 요구하기 때문이었다.
“아니! 오늘까지 담보 대출을 해 주기로 했잖아! 이제 와서 안 된다고 하면 어떻게 하냐고!”
“고객님, 죄송하지만 전산망이 복구되어 고객님의 신용 등급과 담보 물건이 확인될 때까지는 대출이 불가능합니다.”
“나 정말 급하다고! 당장 내일모레 전세금을 돌려줘야 하는데 이러면 어떻게 하라는 거야!”
“조금 시일을 미뤄 보는 게….”
“그게 되면 내가 지금 이러겠어?!”
“정 그러시다면 일단 본점에 전화를 해 보겠습니다.”
다행히, 이 사람은 본점에서 소유한 USB에 데이터가 남아 있어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해결되는 경우는 적었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에 은행은 대출을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
담보와 신용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출을 해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은행이 돈줄을 제한하자 기업 경영에 어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돈줄이 막힌 중소기업은 도산의 위험에 빠졌고 대출 기반의 사업을 꾸리는 대기업 역시 구조 조정을 준비했다.
만약 이대로 1년만 지나게 된다면 대한민국의 많은 기업들이 도산할 것이고.
수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고 길거리로 내몰릴 것이며 내수 소비가 줄어들어 자영업자 역시 위험해진다.
결국, 제2의 IMF급의 사태가 오는 것이다.
상황이 최악을 향해 달려가자 청와대에선 긴급 국무 회의가 열렸다.
“대체 백신은 언제 개발된다는 겁니까?”
대통령이 정보통신부 장관 김효중에게 질문을 던졌다.
“윤철수 연구소에서 최선을 다해 개발한다고는 하는데 아직 성과가 크게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진척도로 따지면 얼마나 됩니까?”
“그, 그게… 0%입니다. 아직 바이러스의 정체도 밝혀 내지 못했습니다.”
“뭐요!”
대통령이 이마에 손을 얹었다. 이 사태를 하루빨리 해결해야 하는데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지식경제부에서 알아보신다고 하신 거는 어떻게 됐습니까?”
대통령의 물음에 이지석 장관이 답을 줬다.
“미국과 유럽 쪽에서 백신 개발에 진척이 있는지 확인해 봤지만, 그쪽도 어렵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감염된 PC가 모두 먹통이 되어 버려 개발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게 가장 미칠 노릇이었다. 백신을 개발하려면 감염된 PC를 확인해야 하는데 뭔 놈의 백신이 감염되면 추가 제안 모조리 깡통으로 만드니 바이러스 자체가 확인이 안 된다.
결국, 개발자들이 과거에 유행했던 바이러스를 토대로 상상력으로 백신을 개발해야 하는데 이건 해운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나 다름없었다.
“…최선을 다해 주세요.”
“예, 각하.”
대통령이 얼굴을 쓸어내렸다. 정권 말에 이 무슨 날벼락인가 말인가.
“경제부 총리님.”
“예.”
“은행에 전달하세요. 현금으로라도 대출을 진행하라고요. 일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기업들을 줄도산시킬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하나 그렇게 되면 은행의 부실화가….”
쾅.
대통령이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장관의 대답이 답답했기 때문이다.
“이보세요! 지금 은행만 볼 게 아닙니다. 기업들 줄도산하면 은행이라고 멀쩡할 것 같습니까?!”
대통령의 판단은 옳았다. 그는 현재 가장 시급한 문제를 본능적으로 집어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국토부 장관님.”
“예, 옙!”
“예산 책정된 거 상반기에 전부 쓴다고 생각하고 모조리 사용하세요. 시중에 조금이라도 돈이 돌아야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 있습니다.”
“옙!”
국토부 장관은 아까 재경부 장관 꼴이 나지 않으려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건설 회사들의 업무가 중단된 지금 누구에게 공사를 맡겨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알았다고 답을 하고 복귀해서 실무진들을 쪼려는 생각이었다.
대통령이 자리에서 일어나 정부 부처 장관들에게 말했다.
“안 그래도 레임덕이니 뭐니 말이 많은데 최선을 다해 이 사태를 해결해야 합니다. 잘못하면 다음 대선 때 정권 교체됩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지 짐작하시죠?”
대통령의 말에 장관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야당 대선주자의 독한 성질을 봤을 때, 정권이 교체되면 이 중에 누군가는 본보기로 감옥에 갈 확률이 높았다.
물론, 완벽하게 깨끗하게 살아왔다면 상관없지만, 세상에 털어서 먼지 한 톨 나오지 않을 사람이 어딨으랴. 분명 누군가가 본보기로 걸릴 게 뻔했다.
““예!””
그렇게 국무 회의가 끝났고 곧 각 부처에서 기자 회견을 열었다.
내용은 은행권의 긴급 대출과 전국 곳곳에 뉴타운 개발 발표였다.
TV에서 이 같은 정부 정책에 대한 뉴스가 나돌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상관하지 않고 분당에 도착했다.
최효석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고려 가드의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저번에 찾아왔을 때와는 다르게 혼란이 가득한 사무실이 눈에 들어왔다.
“클라이언트 서류 어딨어?!”
“스엠 엔터테인먼트 건 어디 USB에 담아 놓은 거 없습니까? 대금 수급해야 하는데 금액을 확인 못 하고 있습니다.”
“김 대리님, 전자세금계산서 발급 리스트 찾았습니다!”
“고마워! 지금 바로 세무서 다녀올게.”
마치 혼돈의 카오스를 보는 느낌이다.
사방에 서류가 날아다니고 직원들의 책상에 산더미처럼 종이들이 쌓여 있었다.
PC가 깡통이 되기 전에 자료들을 전부 출력해 둔 것 같다.
그렇게 사무실을 구경하며 부장실로 향했다.
“형님.”
“신후야! 너 잘 왔다! 우리가 지금 손이 부족하거든? 너 잠깐 일 좀 도와줘라. 일당은 쳐줄게.”
최효석이 내 앞에 서류를 놓아 분류를 부탁함과 동시에 부장실을 나가 버렸다.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