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화
위잉.
천장에 붙어 있는 환풍기가 시끄럽게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눈을 떠 보니 몇 번인가 본 천장이 보였다.
“우욱….”
시체가 썩은 역겨운 냄새가 느껴진다.
수십 번이나 경험한 냄새지만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몸을 일으켜 주변을 살펴봤다.
겨우 5평 남짓한 빛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어둡고 축축한 지하 공간.
그곳에 나를 제외한 두 명의 남녀가 쓰러져 죽어 있었다.
아마, 교통사고로 죽었는지 팔다리가 휘어지고 목이 부러져 있었다.
이들은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다만 확실한 건 이대로 조금만 있으면 경찰이 들이닥쳐 나를 교통사고로 인한 과실 치사와 시체 유기 혐의로 몰아갈 게 확실했다.
어떻게 아느냐고?
회귀 전.
그러니까 회귀 0회차에서 그랬으니까.
그때는 뭣도 모르고 잡혀 들어가 감옥에서 20년이 넘는 세월을 갇혀 있었다.
아무리 결백을 주장해도 어디서 구했는지도 모를 완벽한 증거와 본 적도 없는 증인들의 증언 때문에 1심에서 징역 20년을 때려 맞고 항소조차 못 했다.
그러니까, 또 그런 뭣 같은 상황에 부닥치기 전에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한다.
“크윽.”
발걸음을 떼자 복부에서 격통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손이 복부로 갔다.
“시팔….”
이곳으로 잡혀 들어오기 전 입은 상처다. 칼이 상당히 깊게 들어갔는지 통증이 상당했다.
“개새끼들, 붕대라도 감아 주지.”
피가 줄줄 흘러나오는 복부를 부여잡고 문을 여니 복도가 보였다.
저벅저벅.
내 기억상에 아마 복도 끝에 계단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계단을 오르면 갇혀 있던 별장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
하지만, 지키고 있는 놈이 하나 있다.
0회차에서는 지하방에 있다가 경찰에 의해 잡혀가서 몰랐지만, 1회차에서 도망치려다 갑작스럽게 맞닥뜨렸다.
그때는 굉장히 놀랐다. 조금 있으면 경찰이 들이닥치는데 이곳을 지키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이쯤인데….”
그렇게 생각나는 장소로 몇 걸음 더 걸으니 좁은 계단에 서서 문을 지키고 있는 남자를 만날 수 있었다.
“뭐야?! 어떻게 빠져나온 거야?”
“어떻게 빠져나오긴, 니 새끼가 문단속을 안 해서 빠져나왔지.”
남자가 품 안에서 30cm 정도 되는 회칼을 꺼내 들며 위협했다.
“좋은 말로 할 때 다시 들어가라. 괜히 깝죽거리다가 멱 따이지 말고.”
피식.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회귀 전과 완전히 똑같은 대사를 들으니 오히려 반갑기까지 하다.
“이 새끼가 진짜!”
자신을 비웃는다고 생각했는지 남자가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1회차에서는 있을지 몰라서 당황했고 2회차에선 쉽게 상대했다.
생긴 거만 험악하지 진짜 별것 없는 새끼다.
‘하긴, 그러니까 여기서 문이나 지키고 있겠지.’
어느새, 지근거리에 다가온 놈이 칼을 늘어뜨려 내 허벅지를 향해 휘둘렀다.
나를 죽이면 누명을 씌우지 못하니 급소를 피해 칼을 먹이려는 것이다.
쉬이익.
망설임이 있어 느려진 칼을 살짝 움직여 피해 냈다.
“어?”
설마 내가 피할 줄 몰랐는지 당황한 표정이 보였다.
덥석.
칼을 쥔 팔을 겨드랑이에 껴 고정시킨 뒤 오른손으로 남자의 얼굴을 잡고 엄지로 안구를 있는 힘껏 눌렀다.
푹.
엄지손가락이 남자의 안구를 터뜨렸고 남자의 눈 밖으로 피와 체액이 줄줄 흘러나왔다.
“끄아악!”
한쪽 눈을 잃은 상실감과 고통에 계단을 지키던 놈이 무릎을 꿇고 고통에 가득 찬 비명을 질렀다.
놈이 떨어뜨린 회칼을 집어 들었다.
“조금만 참아. 금방 편하게 해 줄게.”
무릎 꿇은 놈의 뒤통수가 훤히 보였다.
나는 망설임 없이 놈의 뒷목에 회칼을 깊게 꽂아 넣었다.
푸욱. 털썩.
마치 푸딩을 썰 듯이 칼이 아무 저항 없이 박혔다.
남자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즉사했다.
방해꾼도 죽었겠다, 그대로 계단을 올라가 문을 열고 별장 밖으로 빠져나왔다.
별장은 남양주에 있는 축령산 중턱에 마련되어 있었는데 밤사이 서리가 내렸는지 산의 머리가 하얗게 셌다.
남들이 보기에는 아름다운 풍경일 수도 있지만 나는 이 모습이 다르게 보인다.
“언제 봐도 지랄 같은 풍경이구먼….”
시간적 여유가 많은 건 아니지만 이대로 떠나면 안 된다. 1회차 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떠났다가 경찰의 추적이 따라붙어서 따돌리느라 얼마나 애먹었는지 모른다.
멀쩡한 몸도 아니고 복부가 꿰뚫린 상태로 산에서 숨어 지내는 경험은 다시는 체험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별장 옆에 달린 보일러실로 향했다.
보통 별장들이 위치한 산에는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다.
때문에 대부분 기름보일러를 사용한다.
그리고 보일러 옆에는 기름 저장고가 있다.
기름 저장고의 뚜껑을 열고 바지 주머니에 있는 라이터와 담배를 꺼냈다.
치익.
“쓰읍-”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얼마나 갇혀 있었는지 니코틴이 몸에 들어가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후우.”
불이 붙어 있는 담배를 기름 저장고로 던졌다.
화르륵.
보일러에 등유가 아닌 경유를 사용하는 탓에 저장고에서 순식간에 불이 올라왔고 곧 옆에 있는 보일러실로 옮겨붙었다.
이 정도면 됐다. 별장은 활활 불탈 것이고 경찰이 추적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아느냐고?
2회차에서 이 방법으로 탈출해서 성공했으니까.
그대로 몸을 돌려 길이 보이지 않는 산비탈로 내려갔다.
사람이 전혀 다니지 않는 길이지만 앞선 전생에서 두 번이나 내려간 경험이 있어 방향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크억….”
걸을 때마다 복부에서 통증이 올라왔지만 어쩔 수 없다.
근처에 병원도 없을뿐더러 병원을 갈 수도 없다.
자상이 의심된 의사가 경찰에 신고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왜 반항해서는 칼을 맞았냐…. 그냥 순순히 따라가지.”
0회차의 나에게 하는 타박이다. 칼 들이밀고 따라오라고 했을 때 따라갔으면 이렇게 고생할 일도 없지 않은가.
저벅. 저벅.
출혈이 많아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날카로운 추위에 몸이 덜덜 떨렸지만 내려가야만 한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걸었을까? 축령산을 완전히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산을 올려다보니 별장이 있던 산 중턱이 활활 타오르는 게 보였다.
“그나저나 이 근처였는데….”
지금 내가 찾는 곳은 빈집이다. 2회차에서 이용한 은신처였는데 그곳에서 며칠간 상처를 치료하며 숨어 있을 생각이다.
문제는 2회차를 70년이나 살았던지라 장소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마치 지도 없이 70년 전에 찾아갔던 맛집을 찾는 기분이랄까?
그렇게 20분쯤 주변을 뒤지니 작은 이동식 목조 주택 하나를 찾아냈다.
안에 사람이 없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에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끼이익.
“여기도 오랜만이네.”
가장 먼저 찬장과 서랍들을 뒤져 구급상자와 바늘 그리고 장롱 안에 있는 비단 이불을 찾아 꺼냈다.
부우욱.
비단 이불을 찢어 한 줄기의 실을 뽑아내 바늘과 함께 소독약을 뿌려 두었다.
상의를 벗고 칼에 찔린 상처를 닦아 냈다.
칼이 깊게 들어갔지만, 목숨을 잃게 할 의도는 없었는지 아니면 그냥 우연인지 몰라도 몸 안에 장기를 건들지는 않았다.
문제는, 존나게 아프다는 거다.
“크으…!”
이건 칼을 네 번 맞은 거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칼이 들어온 건 한 번이지만 치료는 네 번째니까.
상처를 다 닦고 아까 준비해 놨던 비단 실을 바늘에 꿰어 상처를 꿰맸다.
내가 내 배때기를 꿰매는 건 언제 해도 전혀 적응되질 않는다.
그리고 대망의 소독.
“흐읍!”
다가올 고통에 대비해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소독약 뚜껑을 열어 상처에 들이부었다.
“끄응….”
끓어오르는 고통에 나도 모르게 침음성이 나왔다.
그렇게 소독을 마치고 연고를 바르고 붕대를 감아 치료를 마무리했다.
이제 며칠 동안 이 집에서 쉬면서 상처를 치료하고 체력을 회복하는 일만 남았다.
털썩.
찢어 놓은 비단 이불에 바로 누웠다. 워낙에 피를 많이 흘린 탓에 눈앞이 몽롱했다.
눈을 감고 잠시 쉬기로 했다.
이러다가 잠이 들면 그냥 잠을 잘 생각이다.
눈을 감으니 지난 100년의 세월이 떠올랐다.
3번이나 회귀하면서 살고 있으니 내가 살고 있는 곳이 꿈인지 아니면 현실인지도 모르겠다.
꿈이면 어떻고 현실이면 어쩌랴. 내 목적만 달성하면 되는 거지.
내 목적은 ‘복수’다. 그 수단과 방법이 돈이든 폭력이든 전혀 관계없이 말이다.
이 목적 하나만을 위해 앞선 3번의 전생을 통째로 가져다 바쳤고 그로 인해 3번째 전생에서는 인류사 최악의 빌런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사실, 빌런이라고 불리는 것도 기분이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어떻게 보면 히어로 영화 속에서 자신의 목표인 세계 정복을 향해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사는 자들 아닌가.
아! 그런데, 소설 속 주인공들은 한 번만 회귀해도 수백 조씩 벌고 세계를 쥐락펴락하는데 난 왜 3번이나 말아먹었냐고?
내가 회귀를 몇 번 해 봐서 아는데 그거 진짜 개소리다. 미래 정보만을 가지고 세계 정복을 하는 건 소설이니까 가능한 거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회귀한 주인공이 엄청난 천재여서 엄청난 돈을 벌었고 소설 내용처럼 어딘가에 투자했다고 치자.
당연히 미래를 살다가 과거로 돌아간 거니까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베팅하겠지? 실제로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돈을 벌어들일 거고 말이다.
그럼 얼마 지나지 않아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거나 혹은 쥐도 새도 머리통에 총알이 박힐 거다.
왜 그러냐고?
그건 바로 이 세계는 이너서클‘들’이 지배하고 있고 그들은 주머니에서 튀어나온 송곳 같은 주인공을 가만히 두고 보지 않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투자란 건 한쪽이 벌면 필연적으로 다른 한쪽은 잃는 법이다.
즉, 소설 속 내용처럼 주인공이 엄청난 금액의 돈을 벌면 필연적으로 세계 경제의 주류인 이너서클은 그만큼의 돈을 잃는다.
세계 경제를 마음대로 주무르는 이들은 자신들의 영역이 매우 확고하다.
새로운 누군가가 나타나 자신들의 파이를 빼앗아 가는 걸 극도로 경계하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계획에 방해되는 인간이 나오거나 심지어 그럴 기미만 보여도 제거해 왔다.
그럼 무일푼에서 시작해 엄청난 부자가 된 부류는 뭐냐고?
사실, 그런 성과를 낸 사람이 아예 없지는 않은데 그런 부류는 보통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정말 홀로 성공한 사람이다.
이들은 천재적인 두뇌와 더불어 끊임없는 노력으로 성공한 사람들이다.
이너서클들이 이 부류를 가만 내버려 두는 이유는 키워서 잡아먹기 위함이거나 아니면 가만히 두어도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이너서클들이 키워 주는 부류다.
뛰어난 인재를 눈여겨보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자본, 기술, 인재, 정치적인 도움까지 가능한 모든 도움을 준다.
성공한다면 이너서클을 뒷받침해 주는 새로운 자본과 권력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럼 나는 뭐냐고?
뭔데 미친놈처럼 혼자 중얼거리냐고?
나는 빌런이다.
놈들을 모두 물리치고 세상을 움켜쥘 빌런이다.